밤사이 눈이 조금 더 쌓였다. 로벨 성 안마당에는 새벽 첫 빛이 겨우 닿을 시간부터 회색늑대 대원 둘이 나와 돌 위에 쌓인 눈을 쓸고 있었다. 빗자루가 아니라 방패 손잡이를 뒤집어 쓰는 방식이었는데, 하르트가 처마 아래서 그것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치우는 방법이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방법이 이 성에서 처음 보이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엘리안이 안마당으로 내려왔을 때 모닥불 자리는 이미 잡혀 있었다. 화덕도 아니고 화로도 아닌, 그냥 돌을 세 개 모아 만든 자리였다. 그 위에 장작이 얹혀 있고, 회색늑대 대원 마렉이 부싯돌을 두드리고 있었다. 불이 붙는 데 한참 걸렸다. 손이 시린 탓인지 부싯돌 소리가 자꾸 빗나갔다. 마렉은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았다.
"이런 자리 처음이죠, 영주님."
마렉이 부싯돌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불꽃이 겨우 붙어 작게 살아 있었다.
"귀족 성에서 이렇게 하는 거 본 적이 없어서요. 단장이 허락받았다고 해서 나온 건데, 사실 성문 닫을 줄 알았습니다."
"닫지 않았으니까 나와 있는 거겠지."
엘리안은 그 옆에 쭈그려 앉아 불을 들여다봤다. 장작 틈으로 연기가 먼저 올라왔다. 겨울 나무는 다 그랬다. 물기가 남아 있어서 불보다 연기가 먼저였다. 연기가 눈을 찔렀지만 엘리안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마렉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불이 제대로 붙을 때까지 나란히 쭈그려 있었다.
하르트가 안마당으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조금 뒤였다. 집사장 외투를 걸치고 장갑도 꼈다. 그가 들고 나온 것은 수통 두 개와 낡은 나무 잔 하나였다. 대원들 쪽을 한 번 훑어보더니 엘리안 곁으로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 옆에 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뜻이 있었다. 대원 하나가 하르트를 슬쩍 보다가 눈을 피했다. 귀족 성의 집사장이 용병 장례 자리에 서는 것이 어색한 건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라는 늦게 나왔다. 막사 문을 밀고 나오는데 외투 단추가 하나 어긋나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세라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안마당 한가운데 모닥불을 보더니 걸음을 잠깐 늦췄다가 다시 걸었다. 불 옆에 선 대원들 중 세 명이 자리를 비켜 줬다. 세라는 그 자리에 섰다.
"술은 누가 챙겼어."
질문이 아니었다. 세라의 시선이 대원들을 훑자 키 작은 병사 하나가 손을 들었다. 수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영지 곳간에서 나온 건데, 집사장 어르신이 꺼내 줬습니다."
모두가 하르트를 봤다. 하르트는 불 쪽을 보고 있었다.
"레온이 술을 좋아했나."
하르트가 먼저 물었다.
"좋아하기보다는 잘 마셨습니다."
마렉이 대답했다.
"취하지 않고 계속 마시는 사람이었어요. 그게 더 무서운 거잖습니까."
하르트가 짧게 끄덕였다. 그것이 이 자리에서 그가 한 첫 번째 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무엇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수통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 옆 사람에게 넘겼다. 로벨 성에서 집사장이 용병의 장례 자리에서 수통을 돌린 것은, 아마 이 성이 서 있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수통이 돌아가는 동안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았다. 대원 하나가 레온이 야영지에서 항상 가장 마지막에 불을 껐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대원이 그게 불을 끄는 게 아니라 마지막 온기를 쓰는 거라고 반박했다. 웃음이 조금 나왔다가 금방 사그라들었다. 세라는 웃지 않았다. 불을 보고 있었다.
엘리안은 수통을 받아서 마셨다. 독한 맛이 목을 넘어갔다. 영지 곳간에서 나온 술이 이런 맛인 줄은 몰랐다. 하르트가 어디서 꺼냈는지 물어볼 자리는 아니었다. 수통이 다시 손을 떠나는 순간, 엘리안은 갑옷 없이 서 있는 자신의 어깨가 새벽 냉기에 묵직하게 눌리는 것을 느꼈다. 레온이 협곡에서 수레를 붙잡고 버텼을 때 그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지금 이 추위 속에서 처음으로 몸으로 짐작했다.
"장례는 이게 다입니까."
엘리안이 수통을 옆에 넘기며 말했다. 세라가 불 쪽에서 시선을 들었다.
"우리는 이게 다예요."
세라가 말했다.
"말할 사람이 말하고, 마실 사람이 마시고, 기억할 사람이 기억하고. 제단도 없고 조문도 없어요.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뭘 했는지가 남는 거니까."
"레온은 뭘 남겼나."
세라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렉이 말했다.
"협곡에서 수레 붙잡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미끄러지는 수레 앞에서 혼자 버텼어요. 군량이 내려가면 안 된다고.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침묵이 왔다. 엘리안은 그 침묵 안에서 자신이 수레와 부상병 사이에서 무엇을 먼저 선택했는지를 떠올렸다. 그 선택과 레온의 마지막 사이에 어떤 선이 이어져 있는지를. 그 선을 따라가면 어디에 닿는지를. 마렉은 그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지만, 목소리 끝이 조금 낮아졌다. 그것을 알아챈 사람이 엘리안 혼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모닥불이 조금 더 커졌다. 연기가 줄었다. 나무가 이제 제대로 타고 있었다.
하르트가 자리에서 물러설 때 엘리안이 따라갔다. 두 사람이 처마 아래 서자 안마당의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발밑에 쌓인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하르트의 장갑 낀 손이 외투 자락을 여몄다.
"집사장."
"말씀하십시오."
"어제 저녁 기록 건은 오늘 오전 안에 마렉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협곡 목격 시간대를 확인해야 하니까."
하르트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하르트의 시선이 안마당 쪽을 잠깐 향했다가 돌아왔다.
"그 확인은 이 자리가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엘리안은 대꾸하지 않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르트가 그 말을 하는 것이 어떤 뜻인지도 알았다. 이 성에서 하르트가 용병 장례 자리에 수통을 들고 서 있었다는 것. 그것이 먼저였다.
"마렉은 오전 중으로 괜찮습니다."
엘리안이 말했다.
"자리가 끝나면 바로 오라고 해주세요."
하르트가 물러났다. 엘리안은 다시 안마당으로 돌아갔다. 모닥불 옆에 세라가 아직 서 있었다. 수통이 한 바퀴를 돌아 그녀의 손에 다시 들어와 있었다. 세라는 마시지 않고 그냥 들고 있었다.
엘리안이 옆에 섰다. 세라가 말하지 않았고, 엘리안도 말하지 않았다. 불이 타는 소리만 있었다. 장작 하나가 무너지면서 불꽃이 잠깐 튀었다. 세라가 반사적으로 반 걸음 물러났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잠시 뒤 세라가 수통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어젯밤 맹세문 생각했어요."
낮은 목소리였다. 대원들에게 들리지 않을 크기였다.
"그래서."
"아직 모르겠어요."
세라가 불을 보며 말했다.
"이름을 올리는 게 뭔지는 알아요. 그게 뭘 잃는 건지도 알고. 근데 이 자리를 내준 게 어르신 혼자 결정한 건 아니잖습니까."
엘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라가 답을 원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손이 수통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맹세문에 이름을 올리는 손과 같은 손이었다.
모닥불이 안마당 가운데서 타고 있었다. 로벨 성의 아침 공기가 연기와 함께 달랐다. 전날까지와는 분명히 달랐다. 그것이 무엇으로 달라진 건지를 말로 정리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그 공기 속에서, 엘리안은 마렉이 오전 중으로 들고 올 진술이 오늘 이 장면의 온도와 함께 얹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두 가지가 같은 무게로 놓일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