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의 장례는 별다른 격식 없이 끝났다. 로벨 성 동쪽 담장 아래, 얼어붙은 흙을 곡괭이로 깨서 만든 자리였다. 하르트가 제단을 쓸 수 있다고 했지만 세라는 고개를 저었다. 대원들이 직접 구덩이를 팠다. 엘리안은 곁에서 삽 하나를 건네받았고, 이유를 묻지 않고 함께 팠다. 겨울 땅은 단단했다. 세 삽을 뜨면 손바닥이 저렸다. 갑옷을 벗고 온 탓에 외투 소매 끝이 흙에 젖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흙 냄새가 짙어졌다. 얼어붙은 흙 아래에는 아직 녹지 않은 층이 있어서, 삽날이 박힐 때마다 쇳소리 비슷한 게 났다. 대원 하나가 허리를 펴며 숨을 내쉬었다. 입김이 하얗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그게 전부였다. 기도도 없었고 추도사도 없었다. 세라가 흙을 한 줌 쥐었다가 구덩이 위로 뿌렸고, 대원들이 차례로 따라 했다. 엘리안도 했다.
장례가 끝나고 대원들이 막사로 돌아간 뒤에도 마렉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봉분도 아닌 납작한 흙더미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올려놓았다. 엘리안이 보니 찌그러진 철제 술잔이었다. 마렉이 중얼거렸다.
"레온이 맨날 이걸로 마셨어요. 제가 빌렸다가 반도 못 돌려줬는데."
엘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렉도 더 말하지 않았다. 바람이 담장을 타고 내려왔고, 술잔이 살짝 흔들렸다가 멈췄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담장 너머에서 훈련장 쪽 말 울음소리가 한 번 들렸다가 끊겼다. 마렉이 손등으로 무릎을 탁 치더니 일어섰다. 흙먼지가 바지 앞에서 풀렸다. 그는 술잔을 다시 집어 들지 않았다.
막사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마구간 옆을 지났다. 말 냄새와 젖은 짚 냄새가 섞여서 코를 찔렀다. 마렉이 갑자기 걸음을 늦추더니 낮게 말했다.
"영주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됩니까."
"하세요."
"레온 같은 사람이 죽으면, 영주님한테는 뭐가 남습니까. 이름 하나요?"
질문이 날카로웠다. 엘리안은 잠시 걸으면서 생각했다. 마구간 안에서 말발굽 소리가 한 번 울렸다.
"이름이라도 남으면 다행이지요. 아무것도 안 남는 것보다는."
마렉이 코웃음을 쳤다. 비웃는 게 아니었다. 인정하기 싫은데 인정하는 소리였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고 막사 문을 열었다.
막사 안은 낮보다 따뜻했다. 화덕에 장작이 새로 들어가 있었다. 대원 몇 명이 구석에서 주사위를 굴리고 있었는데, 평소보다 소리가 낮았다. 죽은 사람이 없어도 막사는 이상하게 조용해지는 날이 있다. 오늘은 죽은 사람이 있었다. 화덕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젖은 외투 냄새와 섞여 있었다. 세라는 화덕 앞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장갑을 벗지 않은 채였다.
엘리안이 화덕 옆에 섰다. 세라가 눈을 들었다.
"계약 이야기, 지금 해도 됩니까?"
세라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대원들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엘리안을 봤다.
"하든지요."
엘리안은 외투 안쪽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접은 자국이 여러 번이라 가장자리가 약간 닳아 있었다. 펼쳐서 세라에게 내밀었다. 세라가 받아서 읽기 시작했다. 주사위 소리가 멎었다. 대원 셋이 고개를 들었다.
종이에는 계약 갱신 조항이 없었다. 엘리안이 어젯밤에 직접 쓴 것이었다. 금액 칸이 없었다. 대신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첫째, 회색늑대 대원의 전사 시 로벨 영지가 사망 통지와 유품 수령인 연락을 책임진다. 둘째, 부상 대원은 로벨 성 내 치료 공간을 영지 병사와 동등하게 쓴다. 셋째, 작전 결정에서 세라 헬몬의 동의 없이 대원을 독립 배치하지 않는다. 마지막 줄에는 '금전 계약과 별도로 로벨가 이름으로 약속한다'고 썼고, 서명 칸이 두 개였다.
세라가 종이를 내려놓지 않은 채 말했다.
"이게 뭡니까."
"읽으셨으면 아시겠지요."
"귀족 문서 치고 돈 얘기가 없네요."
"돈 얘기는 따로 합니다. 이건 그게 아니라서요."
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화덕 불빛이 그쪽 얼굴을 반쯤 밝혔다. 뭔가를 재보는 눈이었다. 엘리안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구석에서 주사위를 굴리던 대원 하나가 헛기침을 했다. 세라가 그쪽을 흘끗 봤다가 다시 종이로 시선을 내렸다.
"구석에서 주사위 굴리던 그분들도 이거 알고 있습니까?"
엘리안이 막사 구석을 향해 말했다.
"듣고 싶으시면 오세요."
주사위 소리는 더 나오지 않았다. 대원 셋이 자리를 옮겨 왔다. 그중 하나가 마렉이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몰랐는데, 손에 찬 흙이 아직 묻어 있었다. 마렉이 팔짱을 끼고 섰다. 표정은 없었지만 눈이 종이 위에 고정됐다.
엘리안은 서명 칸을 짚었다.
"저는 여기 씁니다. 세라 단장께서 서명하시면 이게 효력이 생기는 게 아니라, 단장께서 서명하기 전에 먼저 씁니다. 로벨가가 먼저 이름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세라가 천천히 말했다.
"귀족이 먼저 서명하는 계약은 없어요."
"지금 하려고 합니다."
막사 안이 잠시 조용했다. 마렉이 허리를 약간 폈다. 화덕에서 장작 하나가 툭 갈라지며 불꽃이 튀었다. 대원 하나가 낮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안은 허리춤에서 잉크병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펜촉을 담갔다가 빼서 종이 위에 올렸다. 천천히 이름을 썼다. 엘리안 로벨. 로벨이라는 글자의 마지막 획이 끝나는 걸 막사 안 사람들이 다 봤다. 잉크가 마르기 전에 엘리안이 종이를 세라 쪽으로 밀었다.
세라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종이를 가져갔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잠시 뒤 세라가 말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거절이 아니었다. 세라가 그 정도를 말하는 데는, 엘리안도 이제 어느 정도는 알았다, 꽤 많은 게 필요했다. 마렉이 팔짱을 풀었다. 다른 대원 하나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 주사위를 집어 들었지만 굴리지는 않았다. 화덕 불빛이 막사 안을 고르게 덮었다. 쇳소리도 없고 말발굽 소리도 없었다. 잠시 동안만이었지만, 막사 안이 오늘 처음으로 무겁지 않았다.
저녁이 되기 전 하르트가 접견방 문을 두드렸다. 엘리안이 들어오라고 하자 하르트가 장부 두 권을 안고 들어섰다. 표지 색이 달랐다. 하나는 덴의 경로 기록, 하나는 파견 명단이었다.
"대조가 끝났습니다."
하르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엘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촛불 쪽으로 다가갔다.
"결과가 어떻습니까."
하르트가 장부를 탁자 위에 펼쳤다. 파견 명단 세 번째 줄에 손가락을 짚었다.
"이 이름은 파견 당일 경로를 이탈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덴의 이동 경로 기록에는 이 이름이 두 곳에 겹쳐 나옵니다. 시간이 맞지 않아요."
엘리안이 장부를 내려다봤다. 촛불이 흔들렸다.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낯설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엘리안은 손가락으로 그 이름을 짚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만 읽었다.
하르트가 말을 이었다.
"마렉의 협곡 목격 시간대와도 어긋납니다. 그쪽에서 습격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지요. 그 시간에 이 사람은 수송로 반대편 기록에 이름이 올라가 있습니다."
엘리안은 장부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촛농이 탁자 모서리를 타고 흘렀다. 겨울 바람이 창틀을 흔들었다. 오늘 오후 맹세문에 이름을 쓰던 손과 지금 이 장부를 내려다보는 손이 같은 손이었다.
"마렉을 불러 주십시오."
하르트가 나가는 발소리가 복도에서 사라졌다. 엘리안은 혼자 탁자 앞에 남아 장부를 다시 봤다. 맹세문의 잉크는 이미 말라 있었다. 그 아래 종이에서 이 이름을 보게 될 줄은 오늘 오후에는 몰랐다. 장례식 흙 냄새가 아직 외투 소매에 남아 있었다. 촛불이 또 한 번 흔들렸다. 이번에는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