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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2화]

빨간 딱지 다음, 골목은 남는다

작성: 2026.05.21 23:22 조회수: 1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설명회가 끝나고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건물 복도에는 아직 사람 냄새가 남아 있었다. 땀과 싸구려 커피, 그리고 누군가 신발 밑에 밟고 들어온 빗물 냄새. 선우는 삼 층 계단 끝에 서서 문 너머 목소리를 들었다. 두 개였다. 하나는 봉수였다. 다른 하나는 선우가 들어본 적 없는 낮고 매끄러운 목소리였다. 조합 직원이라기엔 너무 조심스러웠고, 박도경 본인이라기엔 직접 손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 서미라가 선우의 팔꿈치 옆으로 바짝 붙어 서더니 문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마틴은 계단 한 칸 아래에서 핸드폰 화면을 꺼놓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아무도 먼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선우가 먼저 손잡이를 잡았다.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봉수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고, 맞은편에는 서류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린 사십 대 남자가 있었다. 양복 상의에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모습이었다. 남자는 문이 열리는 순간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가 앉았다. 봉수는 놀란 표정 없이 선우를 봤다. 손에 볼펜이 들려 있었다. 합의서는 아직 서류 위에 그대로였다.

"아직 안 쓰셨네요."

선우가 봉수한테 직접 말했다.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분이랑 개인적인 상담 중이었는데요."

목소리에 날은 없었다. 정확히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선우는 남자를 한 번 보고 봉수를 다시 봤다.

"봉수 씨, 지금 이 서류 뭔지 아세요?"

봉수가 잠깐 고개를 내렸다. "대충은요." 그러고는 볼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남자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서미라가 앞으로 나섰다.

"이분 가게 명부에서 빠진 거 알고 계세요? 당신네 회사 제출 자료에."

서미라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단단하게 들렸다.

"빠진 사람한테 합의서 받아가는 게 법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죠?"

남자가 서류 가방을 집어 들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우 옆을 지나쳐 나갔다. 마틴이 계단 쪽에서 옆으로 비켜섰다. 발소리가 아래로 내려가고,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렸다.

봉수가 테이블 위에 놓인 볼펜을 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지쳤다고 했는데."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못 쓰겠더라고. 손이 안 가더라고요."

선우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서미라가 봉수 옆 빈 의자를 당겨 앉았다. "지친 거 맞아요. 그건 틀린 말 아니에요."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오늘 밤은 여기서 이렇게 있어줘요. 내일 아침 구청 접수 끝나고 나서 지쳐도 늦지 않아." 봉수는 대답 대신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걸로 충분했다.

마틴이 문 옆 벽에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나 아까 그 사람 명함 받았는데."

셋이 동시에 쳐다봤다. 마틴이 명함을 꺼내 앞면을 읽었다.

"'도시개발 컨설팅 이사'."

잠깐 멈췄다가 뒷면을 봤다. "뒷면에 박도경 의원실 전화번호가 같이 인쇄돼 있네요." 서미라가 손을 내밀었다. 마틴이 명함을 건넸다. 서미라는 그것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러나 봉수가 처음으로 어깨에서 힘을 뺐다.

어머니 가게로 돌아온 건 열한 시가 넘어서였다. 가게는 닫혀 있었다. 선우는 뒷문 열쇠를 꺼내 들어갔다. 주방 형광등 하나만 켜진 채였다. 냉장고 모터 소리가 조용한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식탁 위에 보리차 한 잔이 랩을 씌워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워줬다는 뜻이었다. 선우는 의자를 당겨 앉아 외투 안쪽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비자금 이체 내역, 은평 현장 하청 계약서 사본, USB. 세 가지가 아직 그대로였다.

장하늘한테 연락을 해야 했다. 공익 제보 창구를 거쳐 공식 경로에 자료를 올리는 것, 윤태식 이름이 어디에도 안 보이게 하는 것, 목요일 오전 투입 전에 이의 신청 서류가 구청 접수창구에 들어가는 것. 순서는 이렇게였다.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 장하늘이었다.

"자료 지금 넘길 수 있어요?"

"응."

"이체 내역이랑 계약서 사본, 정식 제보 경로로 넣으면 목요일 오전 기사 타이밍 맞출 수 있어요. USB는 별도로 처리해야 해요. 원본 사진 포함이면 경위서 붙여야 하거든요."

선우는 잠깐 멈췄다.

"경위서 내 이름으로 써도 돼."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장하늘이 다시 물었다. "괜찮아요? 선우 씨도 초기 계획에 관여했다는 거 알아요. 경위서 쓰면 그게 같이 드러날 수 있는데."

선우는 랩을 씌운 보리차를 한 손으로 잡았다. 랩 위로 손바닥이 닿았다. 미지근했다.

"알아. 그래서 쓰는 거야."

전화가 끊겼다. 냉장고 소리가 다시 선명하게 들렸다. 선우는 보리차 랩을 벗겼다. 다 마셨다. 컵을 내려놓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다음 날 오전 여덟 시, 구청 민원 접수창구 앞에 여섯 명이 섰다. 봉수를 포함해 명부에서 빠진 네 명 전원이었고, 서미라와 마틴이 옆에 있었다. 접수 번호표를 뽑는 기계 앞에서 마틴이 번호를 누르다 잘못 눌러 번호표 두 장이 튀어나왔다.

"이거 둘 다 써도 되나?"

봉수가 피식 웃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서미라가 번호표 한 장을 가져가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마틴 씨는 구청 기계도 협상하려고 해요" 하고 말했다. 마틴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의 신청 서류는 오전 아홉 시 십칠 분에 접수됐다. 담당 공무원이 서류를 훑어보고 도장을 찍는 소리가 창구 너머에서 들렸다. 서미라는 접수증을 받아 들고 잠깐 그것만 바라봤다.

선우는 창구 옆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뭔가 끝난 것 같은 기분. 그러나 끝난 건 아니었다. 장하늘의 기사는 그날 낮 열두 시에 온라인에 올라갔다. 제목은 단순했다. 「재개발 조합 비자금 의혹, 이체 내역 단독 입수」. 박도경 이름은 없었다. 아직은 없었다. 하지만 이체 내역의 수신 계좌와 하청 계약서 서명란에 적힌 이름이 기사 본문에 담겼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할 일이었다.

선우는 기사 링크를 열어 첫 문단만 읽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어머니 가게 앞 골목은 수요일 낮처럼 조용했다. 철물점 셔터가 반쯤 올라가 있었고, 옆 순대국 집에서 국물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주 잠깐, 선우는 이 골목이 언제부터 이렇게 생겼는지를 생각했다. 자신이 떠나기 전에도 이랬는지. 아니면 돌아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다는 건 알았다.

저녁, 서미라가 문자를 보냈다.

'조합 측에서 오늘 오후에 회의 잡았대요. 우리 이의신청 때문에.'

선우는 잠깐 그 문자를 봤다. 끝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가 다음이었다. 박도경은 아직 의원 배지를 달고 있었고, USB 속 사진 이름은 서미라가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윤태식은 내일부터 다시 현장 연락을 재개할 수 있었다. 이 골목에 붙은 빨간 딱지는 아직 떼이지 않았다. 선우는 답장을 쳤다.

'내일 오전에 봐요.'

그리고 외투를 걸쳤다. 안쪽 주머니가 이제 비어 있었다. 봉투는 장하늘한테 넘겼고, USB는 제보 경로를 통해 올라갔다. 손이 가벼웠다. 그게 안도인지 불안인지는 아직 몰랐다. 골목 끝에서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가게 간판들이 흔들렸다. 선우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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