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여섯 시 사십 분. 이겸이 감사팀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빛이 아니라 냄새였다. 식은 커피와 형광등이 오래 켜진 공간 특유의 건조한 공기. 커피머신 옆에 종이컵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이겸은 가방을 내려놓기 전에 그쪽으로 걸어가 컵 하나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완전히 식어 있었다. 한 시간은 됐을 것이다. 립스틱 자국은 없었다. 해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형광등은 두 줄만 켜져 있었다. 나머지 절반은 꺼진 채였고, 그 경계선이 사무실 바닥을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프린터가 대기 상태를 알리는 초록 불을 느리게 깜박였다. 이겸은 그 불빛을 잠깐 봤다가 시선을 창가로 옮겼다.
서다온이 거기 있었다.
코트는 등받이에 걸려 있었고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트북도, 서류도 없었다. 그냥 앉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이겸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도 일어서지 않았다. 고개만 돌렸다. 그 눈빛이 이겸의 발을 잠깐 늦췄다. 밤을 새운 사람의 눈이었다. 충혈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말끔하게 깨어 있는, 그 종류의 눈.
"일찍 왔네요."
이겸이 먼저 말했다. 다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 건물 유리에 새벽 하늘이 얇게 반사되고 있었다. 다온이 그쪽으로 시선을 한 번 주고 나서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박시우 그냥 보냈죠."
질문이 아니었다. 이겸은 자기 자리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면서 대답을 잠깐 골랐다. 골라 봤자 대답은 하나였다.
"봤어요. 막지 않았고."
"왜요."
짧은 두 글자였는데 무게가 달랐다. 이겸은 잠시 있다가 말했다.
"전략실 채널이 어디까지 연결됐는지 확인하려면 그 봉투가 움직여야 해요. 막으면 루트가 닫혀요."
다온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오히려 의자를 조금 앞으로 당기면서 말했다.
"그 논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아요?"
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을 길 위에 세워 두고 무슨 차가 오는지 보는 방법."
다온의 목소리는 낮고 일정했다. 화난 것과 다른 온도였다. 더 불편한 종류의 차가움이었다.
"장승민도 같은 논리로 사람 씁니다. 비용 대비 효율. 이겸 씨는 지금 그 방식이랑 뭐가 달라요."
사무실 안이 조용했다. 프린터의 초록 불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이겸은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다온의 말을 그대로 뒀다. 반박할 말을 찾는 게 아니었다. 찾아지는 말이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예전 생에서 이겸은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다. 아무도 묻지 않았거나, 이겸이 그 질문을 들을 만큼 오래 살지 못했거나. 지금 이 아침, 이겸은 회귀 후 처음으로 자기 방식에 대해 말문이 막혔다. 그게 단순한 당혹이 아니라 더 깊은 데서 올라오는 것 같아서 이겸은 잠깐 눈을 내렸다.
"박시우가 두려워서 움직이는 건지, 자기 의지로 움직이는 건지 아직 몰라요."
이겸이 천천히 말했다.
"모르는 채 막으면 그 사람을 구한 게 아니라 그냥 채널을 끊은 거예요. 그게 저한테는 달라 보였어요."
다온이 잠시 이겸을 봤다. 그러고 나서 말했다.
"달라 보이는 거랑 다른 거랑은 달라요."
이겸은 그 말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덧붙일 수가 없었다. 다온이 틀린 말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이겸은 생각했다. 회귀 전에 장승민이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을 볼 때마다 그 냉정함이 역겨웠다. 그런데 지금 이겸이 선택한 방법과 그 사이의 거리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되는지 이겸은 정확히 측량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트를 집어 들었지만 바로 입지는 않았다. 팔에 걸친 채로 이겸을 내려다봤다. 서 있는 쪽이 앉아 있는 쪽보다 높았고, 그 높이 차이가 이 대화의 온도를 그대로 보여 줬다.
"박시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다온이 말했다.
"이겸 씨가 그 사람 이름을 처음 꺼냈을 때부터 저는 그게 신경 쓰였어요. 이겸 씨는 그 사람을 단서로 보고 있고, 그 사람은 자기가 단서인지도 모를 수 있어요."
이겸이 고개를 들었다. 다온의 얼굴에는 분노도 없었고 연민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게 이겸한테는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종류였다.
"알아요."
이겸이 말했다.
"알면서 그랬죠."
다온이 코트를 입기 시작했다. 단추를 잠그면서 말했다.
"그게 제가 물어보고 싶었던 거예요. 알면서 하는 선택이 모르면서 하는 선택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는 거, 이겸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온도 더 기다리지 않았다. 코트 단추를 다 잠그고 나서 가방을 들었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멈췄다.
"면담 결과 나오면 저한테도 알려 줘요. 부탁이 아니라 요청이에요."
그리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이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손이 책상 위에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는데 그 빛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데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문이 다시 열렸다. 해진이 들어오면서 머플러를 벗었다. 얼굴이 약간 상기돼 있었다. 뛰어온 것 같았다.
"부장님, 물류팀 면담 오전 아홉 시로 잡혔어요. 담당자가 오늘 오후에 외근이 있대서 시간을 앞당겼는데요."
해진은 말하다가 사무실 안을 한 번 훑었다. 다온이 없었다. 종이컵 두 개가 여전히 커피머신 옆에 있었다. 해진이 이겸을 봤다.
"혼자 계셨어요?"
"방금 나갔어요."
이겸이 말했다. 그리고 바로 덧붙였다.
"면담 전에 담당자 이름이랑 직함 다시 확인해요. 어제 민가온이 넘긴 물류 코드 중에 담당자 이니셜이 겹치는 게 있었어요."
해진이 즉각 수첩을 꺼냈다. 볼펜 뚜껑을 입으로 물고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빨랐다.
"겹치는 게 몇 개예요?"
"두 개. 하나는 발송 코드, 하나는 수신 확인 서명란."
"같은 사람이면 양쪽에 다 있는 거네요."
해진이 볼펜 뚜껑을 뱉으면서 말했다. 그 말투에 긴장이 섞여 있었지만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겸이 이 팀에서 가장 믿는 부분이었다.
이겸은 그 모습을 잠깐 봤다가 서랍에서 수첩을 꺼냈다. 박시우라는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폈다. 어젯밤 적어 둔 시간과 위치, 그리고 봉투 수신처가 공란이었다는 사실. 그 아래에 이겸이 어젯밤 쓰다 멈춘 문장이 한 줄 있었다.
'이 선택이 맞는가.'
마침표가 없었다. 이겸은 그 문장을 잠깐 내려다봤다가 수첩을 덮었다. 마침표는 찍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까지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해진이 면담에서 물류 담당자를 만나면 새 단서가 나오거나 막힌 길이 나오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었다. 그 전에 이겸이 결정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박시우를 어떻게 할 것인가. 채널 안에 그대로 두면 이겸이 묵인한 것이 되고, 꺼내면 전략실이 이겸의 인지를 역추적할 것이다. 다온의 말처럼, 어느 쪽도 깨끗하지 않았다. 이겸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알면서도 어제 막지 않았다. 그게 냉정한 계산이었는지, 아니면 회귀한 사람이 다시 굳어 가는 방식이었는지, 이겸은 지금 당장 구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구분을 못 한다는 사실이, 오늘 아침 이겸이 느끼는 가장 불편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