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성 무림맹 대청의 동쪽 별당에는 긴 탁자 하나와 의자 아홉 개가 놓여 있었다. 탁자 안쪽 다섯 자리는 청문위원들의 것이었고, 바깥 세 자리는 증인석, 나머지 하나는 서기석이라 했다. 그러나 서진해가 들어섰을 때 증인석 가운데 한 의자는 벽에 붙어 있었다. 위원들이 질문하고 당사자는 한 명씩 들어와 답한 뒤 나가는 배치였다.
담소령은 약상자를 내려놓기도 전에 그 의자를 끌어 탁자 앞으로 옮겼다. 나무다리가 돌바닥을 긁는 소리가 별당에 길게 울렸다. “우리를 따로 불러 말이 달라지는지 보는 겁니까, 아니면 서로 들으며 바로잡게 할 겁니까?” 위원장 오현직은 수염을 쓸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심리는 규정대로 한다.”
“그 규정을 누가 정했습니까?” 혜산댁이 물었다. 그녀는 전승명의 계보와 본명을 봉한 문서를 각각 다른 주머니에 넣어 들고 있었다. 오현직 옆의 젊은 위원 정인각이 대답하려 했으나, 서기 윤도겸이 먼저 기록철을 펼쳤다. “어젯밤 위원장 명의로 배치가 바뀌었습니다. 처음 의결은 증인들이 함께 앉는 공개 대질이었습니다.”
별당 뒤편에 모인 방청인들 사이에서 낮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오현직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보안을 위해 바꾼 것이라고 했으나 변경 의결서는 내놓지 못했다. 막금산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벽에 붙은 의자를 탁자 곁으로 가져왔다. “사람 하나를 벽으로 밀어 두는 데에도 까닭을 적어야 하오. 문파 하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던 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고.”
서진해는 다섯 위원의 이름을 한 명씩 읽었다. 오현직은 멸문 당시 물자 감찰부의 자문이었고, 정인각의 형은 청문파 창고를 인수한 상단의 주인이었다. 의녀 출신 위원 모연주는 담소린의 환자 기록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나머지 둘은 사건 뒤에 관직을 얻었지만 직접 거래한 흔적은 아직 없었다. 그는 누구를 당장 죄인이라 하지 않고, 각자의 이해관계와 피해야 할 사안, 답해야 할 질문을 먼저 정하자고 요구했다.
오현직은 그것이 위원회를 모욕하는 일이라 했다. 서진해는 청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지 않고 등 뒤에 맨 채 답했다. “권위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권위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기록하자는 겁니다. 청문파는 그 선이 없어서 불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방청석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모연주가 먼저 자신의 관계를 밝혔다. 담소린의 약첩에서 두 처방을 베껴 쓴 적이 있고, 그중 하나가 감찰부 보고서에서 독 제조법으로 뒤바뀐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그녀는 약첩의 진위를 판단하는 일에는 참여하되 자신의 필사본과 관련된 책임 심리에서는 물러나겠다고 적었다. 서기 윤도겸이 그 말을 한 글자도 줄이지 않고 받아썼다.
정인각은 형의 상단이 창고를 산 것은 공개 경매였다고 반박했다. 담소령이 낡은 거래 원장에서 경매 전날 이미 인수 가격이 적힌 줄을 보여 주자,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형의 일을 아우가 대신 죄로 질 필요는 없습니다.” 담소령이 말했다. “하지만 자료를 보고도 모른 척할 권리는 없어요.” 정인각은 결국 창고 인수 관련 표결에서 빠지고 상단 장부를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오현직만은 관계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문이 단순한 절차 검토였으며 오래전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 윤세하가 방청석 뒤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위원회가 아직 부르지 않았는데도 증인석의 빈 의자에 앉았다. “제가 기억합니다. 오 자문은 그날 청문파 물품에 위험 표식을 붙이라고 말했습니다. 명령문을 제가 옮겼으니까요.”
오현직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말이든 하는 배신자의 증언이라고 쏘아붙였다. 윤세하는 얼굴을 들었다. “맞습니다. 저는 살아남으려고 명령을 옮겼고, 그중 일부가 사람을 잡아가는 데 쓰일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 말은 혼자 믿을 것이 아닙니다. 날짜가 적힌 출입패와 다른 서기의 일지를 함께 대조하십시오.” 그는 자신의 옛 출입패를 탁자에 놓았다.
서진해는 사형을 바라보았다. 운주성에서 다시 만난 뒤 윤세하는 줄곧 반 발짝 뒤에 서 있었다. 도울 때에도 자신이 아는 범위를 다 말하지 않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너무 빨리 길을 찾아냈다. 지금 그는 처음으로 어느 편의 사람인지를 주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일을 확인할 물건을 내놓고, 틀리면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것은 용서보다 먼저 필요한 자리였다.
위원장 자리를 두고 짧은 표결이 열렸다. 오현직은 물자 감찰부 관련 심리에서 직무가 정지되었고, 사건과 직접 거래가 없는 노위원 곽운제가 임시 진행을 맡았다. 곽운제는 가장 먼저 별당 문을 열어 두게 했다. 방청석에는 의원골 주민, 고성 현리의 서기, 물자 창고에서 일했던 짐꾼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사람 수가 늘자 경비대는 불안해했지만, 서진해는 통로와 비상문을 함께 확인했다.
원본을 제출하라는 요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혜산댁은 타다 남은 원장 한 권만 열람대에 놓고 나머지는 서로 다른 보관자가 지녔다고 밝혔다. 곽운제가 모든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심리를 미룰 수 있다고 하자, 그녀는 사본과 대조 목록부터 보라고 했다. “한 방에 모아 두어야 진실이라는 규정은 누가 만들었소? 불은 방 하나면 충분하지만 기억은 사람마다 다르게 남소.”
담소령은 약첩 원본을 자신의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신 모연주와 위원회가 고른 감정인이 같은 장을 각각 베끼게 했다. 종이 두께와 찢어진 가장자리, 먹빛을 기록하고 열람 시각을 적었다. 서진해는 청락의 검턱 아래 남은 오래된 피도 함부로 닦지 않았던 일을 떠올렸다. 물건은 말이 없으므로 사람이 어떤 손으로 다뤘는지까지 남겨야 했다.
점심 무렵 첫 증인으로 고성의 역졸이 들어왔다. 그는 약방에서 붙잡힌 두 사람이 지닌 동패와 사저 출입표, 체포 시각을 진술했다. 오현직이 고문으로 받아낸 말이 아니냐고 묻자 역졸은 진술이 아니라 소지품만 증거로 내놓았다고 답했다. 붙잡힌 이들의 말은 의원이 상처를 치료하고 두 명의 입회자가 붙은 뒤 따로 기록했다고 했다. 막금산은 그 절차가 맞다고 확인했다.
이어 윤도겸이 위원회 명단의 원본과 담소령이 연화루에서 받은 이름 목록을 나란히 놓았다. 두 문서에는 셋째 자리의 이름만 달랐다. 공식 명단에는 정인각, 사본에는 백무결의 사저 문객인 고윤평이 적혀 있었다. 담소령이 맡았던 철분 섞인 먹 냄새는 공식 명단의 지운 부분에서 났다. 누군가 고윤평을 넣었다가 들킬 것을 우려해 정인각으로 바꾼 흔적이었다.
오현직은 사본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공격했다. 그 말은 옳은 부분이 있었다. 서진해는 윤도겸에게 연화루의 갓 쓴 사내가 본인인지 공개적으로 물었다. 윤도겸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갓을 벗어 탁자에 놓았다. “접니다. 공식 경로로 고발하면 문서가 사라질 것 같아 담 의녀에게 먼저 건넸습니다. 절차를 어긴 책임은 받겠습니다.”
곽운제는 밀고와 증거 제출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겠다고 정리했다. 윤도겸이 본 것을 진술하고 문서의 종이와 먹을 별도 감정하며, 결과가 다르면 사본을 배제하겠다고 했다. 담소령은 그 결정에 동의하면서도 감정 과정을 방청인에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모연주도 찬성했다. 이튿날 아침 별당 마당에서 종이와 먹, 봉인을 대조하기로 정해졌다.
심리가 끝날 무렵 백무결의 대리인이 봉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상자에는 조사 대상자인 백무결이 위원회에 협조한다는 서신과, 청문파 관련 문서는 모두 무림맹 내고로 옮겨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요청이 들어 있었다. 서진해는 안전이라는 글자를 오래 보았다. 한곳에 모으라는 말이 다시 모양만 바꾸어 돌아온 것이었다.
곽운제는 상자를 열람대 아래에 두고 즉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봉인 모양을 베끼고 무게를 쟀다. 혜산댁은 광주리 속 원장을 더 깊이 숨기지 않았다. 대신 어느 문서가 누구 손에 있는지 목록만 공개했다. 공격자가 길을 알게 되는 위험과, 보관자가 혼자 사라지는 위험을 함께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별당을 나설 때 윤세하는 서진해 옆에 섰다. “내가 앞에 앉은 것이 늦었다는 걸 안다.” 서진해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끝까지 앉아 계십시오. 불리한 질문이 나와도.” 윤세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청 뒤로 저녁 종이 울렸다. 봉함된 문서보다 먼저 열린 것은, 질문받을 사람과 질문할 사람의 의자를 같은 바닥에 놓는 작은 질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