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당 마당에는 칼 대신 물그릇과 체, 숯불 화로가 놓였다. 종이 장인 유평달은 무림맹이 부른 사람이었고, 먹을 감정할 노파 진묵선은 담소령이 장터에서 찾아온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 했다. 곽운제는 어느 쪽도 미리 문서를 만지지 못하게 하고, 방청인들 앞에서 손을 씻은 뒤 흰 천 위에 도구를 펼치게 했다.
유평달은 먼저 진짜 문서와 의심 문서를 이름 없이 갑과 을로 나누었다. 빛에 비춰 보고 가장자리에서 한 올씩 닥섬유를 떼어 물에 불렸다. 갑의 섬유는 길고 누런빛이었으며, 을의 섬유는 짧고 희었다. 그는 북쪽 산닥과 남쪽 논닥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멸문 당시 무림맹 공문은 북쪽 제지방의 종이를 썼지만, 조작 혐의를 받은 청문파 거래서는 남쪽 창고에서 두 해 뒤 들여온 종이였다.
오현직은 종이를 나중에 베껴 보관했을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유평달은 가능하다고 인정했다. “종이만으로는 글의 내용이 거짓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문서가 적힌 때를 멸문 전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요.” 그는 확신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어 말했다. 서진해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진실을 위한 말이라도 넘치면 다른 거짓이 될 수 있었다.
진묵선은 먹빛을 마른 눈으로만 보지 않았다. 종이 귀퉁이에 증류한 식초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 번지는 테두리를 흰 사기 조각에 옮겼다. 담소린의 약첩에서 채취한 먹은 검은빛을 유지했으나 위원회 명단의 지운 부분과 조작 거래서의 날짜는 자줏빛을 띠었다. 철가루가 든 먹이었다. 고성 원장에 적힌 구매 기록에는 그 먹이 멸문 뒤 무림맹 감찰부로 납품된 날짜가 남아 있었다.
“같은 먹을 쓴 사람이 많을 수도 있소.” 정인각이 말했다. “그렇지.” 진묵선은 바로 답했다. “그러니 층을 봐야지.” 그녀는 확대경을 문서 위에 세우고 가느다란 등잔빛을 비스듬히 비췄다. 거래서의 본문은 평범한 송연묵이었고 청문파의 이름과 날짜, 죄목을 잇는 획만 철분 먹이었다. 붉은 인장은 그 위에 찍혔지만, 일부 획은 인장 가장자리를 타고 올라가 있었다. 글을 고치고 인장을 찍은 뒤 다시 획을 덧댄 세 번의 순서가 드러났다.
담소령은 자신의 약첩을 내밀기 전에 모든 사람에게 손을 떼라고 했다. 어머니의 처방이 적힌 장과 감찰부 보고서에 독 제조법으로 인용된 장을 나란히 펼쳤다. 처방에는 ‘열을 내리고 숨을 고르게 한다’고 적혀 있었으나 보고서에는 같은 재료 순서를 베낀 뒤 양을 열 배로 늘리고 마지막 약재를 바꾸어 놓았다. 바뀐 글자만 철분 먹이었다.
모연주는 자신이 베껴 주었다는 두 처방 중 하나가 바로 그 장이라고 인정했다. 그녀가 남긴 필사본에는 약재 양이 원래대로였고, 하단에 환자의 맥과 복용 뒤 반응까지 있었다. 감찰부 문서는 환자 부분을 잘라 내고 배합만 남겼다. 모연주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옛 서명을 확인했다. “나는 치료법을 검토해 달라는 줄 알았습니다. 무기 분류표에 들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쓰는지 묻지 않은 책임은 있습니다.”
윤세하는 별당 구석에서 그 말을 듣다가 앞으로 나왔다. 철분 먹을 처음 본 장소가 백무결의 사저 문서방이라고 했다. 감찰부 공식 먹은 검은 송연묵이었지만, 비밀 지시를 고칠 때에는 마른 뒤 색이 드러나는 철분 먹을 썼다. 오래 지나면 자줏빛이 되어 원문과 구별되므로, 일이 끝난 뒤 문서를 태우기 쉽도록 바꾼 부분을 표시하는 목적이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하오?” 오현직이 물었다. 윤세하는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그 먹을 갈아 준 사람이 저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문구 수정이라 들었고, 뒤에는 무엇을 하는지 알았습니다. 그래도 살려고 갈았습니다.” 방청석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윤세하는 고개를 숙이지도 맞서지도 않았다. 서기에게 먹을 간 날짜와 사저 문서방의 위치, 함께 있던 사람 이름을 불러 주었다.
막금산은 윤세하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화로 옆의 동패를 집게로 들어 보였다. 학영회 표식이 새겨진 앞면과 감찰부 창고 번호가 찍힌 뒷면에 서로 다른 검댕이 끼어 있었다. 진묵선은 뒷면 홈에서 굳은 붉은 가루를 긁어냈다. 백무결의 서신 봉인에 쓰인 밀랍과 색과 향이 같았다. 단순히 주워 온 패라면 양쪽 홈 깊숙이 같은 밀랍이 스며들 이유가 없었다.
봉인 장인까지 불려왔다. 그는 백무결 사저의 인장이 두 겹으로 만들어져 바깥 테두리를 돌리면 무림맹 감찰부 인장처럼 보이게 된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그런 인장을 만든 적이 없다고 했지만, 고성에서 건진 밀랍 조각에 남은 미세한 갈라짐을 보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 갈라짐은 자신이 잘못 새긴 구름 한 획 때문이며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했다.
곽운제는 누구의 말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판결로 바꾸지 않았다. 종이의 생산 시기, 먹의 납품 기록, 글씨 층의 순서, 봉인의 갈라짐을 각각 따로 적게 했다. 네 갈래가 같은 날짜와 장소를 가리킬 때에만 하나의 사실로 묶었다. 그 결과 조작 거래서는 멸문 뒤 적어도 열세 달이 지나 작성되었고, 청문파 이름과 독 제조 죄목은 백무결 사저에서 쓰던 먹으로 덧붙여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현직은 감정인들이 담소령 일행에게 매수되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평달이 웃지도 화내지도 않고 종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방청인 가운데 아무나 같은 시기의 무림맹 공문을 가져오면 눈앞에서 다시 비교하겠다고 했다. 장터 서기 하나가 집안에 보관한 세금 고지서를 가져왔고, 결과는 같았다. 북쪽 산닥의 긴 섬유와 철분 없는 먹이 나왔다.
진묵선은 자신의 판단도 의심하라며 식초와 사기 조각을 모연주에게 넘겼다. 모연주는 같은 절차를 반복했고 자줏빛 테두리가 다시 나타났다. 담소령은 그 과정을 빠짐없이 적었다. 누가 해도 같은 흔적을 볼 수 있어야 물증이 한 사람의 권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정 도중 별당 처마에서 기와 하나가 떨어졌다. 서진해는 소리보다 먼저 위쪽의 그림자를 보았다. 가느다란 침이 진묵선 앞의 물그릇을 향해 날아왔다. 청락이 칼집에서 반 치 빠져나오며 침의 옆면을 쳤다. 침은 흰 천에 박혔고 끝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독이 아니라 종이를 한순간에 검게 태우는 화유였다.
지붕 위 도망자는 막금산과 경비대가 양쪽 길을 막자 뛰어내렸다. 서진해는 칼날을 그자의 목에 대지 않고 발목 앞의 기왓장을 베었다. 디딜 곳을 잃은 사내가 마당 짚단 위로 굴렀다. 윤세하가 팔을 꺾어 제압했고, 담소령은 입안에 숨긴 독약부터 꺼냈다. 사내의 소매 안에는 고성에서 달아난 추격자와 같은 사저 출입표가 있었다.
그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신발 밑창의 푸른 진흙이 대신 경로를 말했다. 백무결의 사저 북문에서만 쓰는 안료 찌꺼기가 섞인 흙이었다. 곽운제는 그 자리에서 사저 수색을 명하지 않았다. 먼저 체포 과정과 소지품을 세 사람에게 확인시키고, 신발과 침을 따로 봉했다. 서진해는 지체가 답답했으나 절차가 느리다는 이유로 다시 권력의 지름길을 택할 수는 없었다.
해가 기울 무렵 윤도겸은 감정 결과를 큰 종이에 옮겨 별당 바깥 벽에 붙였다. 원문은 보관하되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요점을 베낀 것이었다. 백무결의 이름도, 윤세하와 모연주의 가담 및 미확인 책임도 빠지지 않았다. 방청인들은 줄을 서서 읽었고 글을 모르는 이에게는 장터 서기가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담소령은 약첩을 다시 싸며 진묵선에게 물었다. “종이는 약한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말할까요?” 노파는 먹 묻은 손을 씻으며 답했다. “종이가 강한 게 아니다. 서로 다른 결을 놓고 자꾸 대보는 사람이 있어서 버티는 게지. 한 장만 믿으면 좋은 종이도 거짓말을 품는다.”
서진해는 청락을 완전히 칼집에 넣었다. 오늘 검이 한 일은 사람을 베는 것이 아니라 작은 침 하나의 방향을 바꾼 것뿐이었다. 그 작은 움직임 덕분에 종이와 먹물은 끝까지 제 말을 했다. 기억은 흔들렸고 사람은 두려워했지만, 닥섬유와 먹의 층과 겹친 봉인 자국은 서로 맞물려 조작의 손길을 숨김없이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