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객잔 아침은 늘 연기로 시작되었다. 부뚜막 쪽에서 담소령이 죽을 올리는 동안 막금산은 처마 아래 평상에 앉아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불은 붙이지 않은 채였다. 그냥 물고만 있는 것이다. 서진해는 그 모습을 마당 안쪽에서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불도 없이 담뱃대를 물고 있는 사람을 보면 뭔가를 생각하는 중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막금산은 그랬다.
사흘 전 막금산이 받은 편지는 아직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정확히는 편지 자체가 아니라 봉투였다. 내용물은 막금산이 꺼내어 읽은 뒤 품속에 넣었고, 봉투만 남은 것이다. 서진해가 어젯밤 그 봉투를 집어 들었을 때 막금산은 말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슨 편지냐고 묻자 노인은 대답 대신 담뱃대를 두드리며 딴 데를 보았다. 그것이 서진해가 얻은 전부였다.
문양은 봉투 왼쪽 귀퉁이에 찍혀 있었다. 인장이라기보다는 손가락 끝으로 눌러 찍은 것처럼 테두리가 번져 있었고, 모양은 새 날개 같기도, 구름 같기도 했다. 서진해는 그것을 아직 품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봉투 안쪽에서 나는 먹 냄새가 특이했다. 보통 먹이 아니었다. 송진을 섞은 것인지, 아니면 오래된 것인지, 그 냄새가 어딘가에서 한 번 맡아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도 봉투를 꺼내어 코를 가까이 댔다. 냄새는 여전했다.
"죽 됐어요."
담소령이 부뚜막 쪽에서 불렀다. 서진해는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막금산도 평상에서 일어나 들어왔고, 윤세하는 아직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사형은?"
"어젯밤 늦게 들어왔어요. 피곤한 것 같더라고요."
담소령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뭔가를 더 말하려다 그만둔 것 같은 짧은 침묵이 있었다. 서진해는 그 침묵을 집어 들지 않았다. 죽을 한 숟갈 떴다. 생강 냄새가 났다. 지난번과 같은 죽이었다. 담소령은 걱정이 있으면 생강을 넣는다. 서진해는 그것을 두 번째 아침부터 알아챘다.
막금산이 밥상 앞에 앉으면서 헛기침을 했다.
"조사 위원회 명단 봤냐."
"어제 담소령이 들고 왔죠."
"뭔가 이상한 거 없던가."
서진해가 막금산을 보았다. 노인은 죽 그릇을 당기면서 눈을 밥상 위로 고정하고 있었다.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처럼. 서진해는 담소령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소령 씨가 입을 다물었어요."
담소령이 국자를 탁 내려놓았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저는 그냥 명단이 길어서 읽다가 멈춘 거예요."
"다섯 번째 이름에서 멈췄잖아요."
"세어봤어요?" "보였으니까요."
두 사람이 잠깐 마주보았다. 담소령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녀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면서 입술을 오무렸다. 손가락 끝이 살짝 떨리는 것이 보였다. 서진해는 모른 척했다.
"명단에 있는 이름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요."
"어머니 약첩 이야기 나왔던 쪽이요?"
"아니요. 그쪽이 아니라요."
담소령은 더 말하지 않았다. 서진해는 기다렸다. 막금산도 죽을 뜨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나 담소령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고, 밥상 위에 잠깐 어색한 침묵이 깔렸다. 부뚜막 쪽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만 작게 들렸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윤세하가 나왔다. 머리를 제대로 매지 않은 채였고, 눈 아래 그림자가 짙었다. 어젯밤 늦게 들어왔다는 게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밥상을 보더니 잠깐 멈추었다가 자리에 앉았다.
"죽이에요?"
"앉아요."
서진해가 말했다. 윤세하는 군말 없이 자리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더니 죽을 한 숟갈 먹고 잠깐 멈추었다.
"생강이 많네요."
"감기 기운 있어 보여서요."
담소령이 짧게 대답했다. 윤세하가 담소령을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그냥 웃은 것이다. 그 웃음이 서진해의 눈에 걸렸다. 어젯밤 어디에 다녀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물어도 될 타이밍이었지만 서진해는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지금은 아니었다. 윤세하는 피곤한 사람이 먹는 속도로 죽을 먹었다. 서두르지도, 남기지도 않았다.
아침을 마치고 나서 서진해는 혼자 마당으로 나왔다.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새벽에 비가 왔다 간 것이었다. 돌 위에 물이 고여 하늘이 작게 비쳤다. 그는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어 다시 들여다보았다. 문양. 날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그것. 빛 아래에서 보니 번진 테두리 안쪽에 가는 선이 두 개 더 있었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것이었다.
어딘가에서 본 것이다. 분명히.
삼 년 전 일이 스쳐갔다. 청문파 사건을 처음 뒤지기 시작했을 때 들른 고성 어귀의 약방. 그곳 주인이 내온 약첩 표지에 이와 비슷한 문양이 찍혀 있었다.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다. 약방 마크겠거니 했다. 그런데 지금 손에 쥔 봉투에도 같은 모양이 있다. 먹 냄새도 같다. 고성 약방과 삭풍객잔으로 날아온 편지 사이에 선이 이어진다면, 그 선의 다른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막금산이 마당으로 나왔다. 담뱃대를 이번에는 손에 쥐고 있었다. 두 사람이 처마 아래 나란히 섰다. 물방울이 마당 돌 위에 부딪혀 작은 원을 그렸다. 서진해는 봉투를 내밀지 않았다. 그냥 손안에 쥔 채로 물었다.
"편지 보낸 사람 알아요?"
막금산이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오래된 사람이야."
"그게 다예요?"
"지금은 그게 다야."
노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서진해는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막금산에게서 꺼낼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막금산은 담뱃대를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돌리더니 처마 너머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멀었다. 오래된 사람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 서진해는 봉투를 다시 품속에 넣었다.
오후가 되자 담소령이 외출을 하겠다고 말했다. 혼자서. 서진해가 따라가겠다고 하자 담소령은 고개를 저었다.
"조사 위원회 명단에서 아는 이름 찾아볼 거예요. 제가 직접 확인해야 해요."
"위험할 수 있어요."
"알아요. 그래도 제가 가야 해요."
담소령이 서진해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서진해는 그 눈빛을 한 박자 받아냈다. 이 사람은 무서운 것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무서운 걸 알면서 가는 것이었다. 담소령은 포대기 안에 뭔가를 챙겨 넣으면서 끈을 단단히 묶었다. 손이 빠르고 정확했다.
"두 시진 안에 돌아와요."
서진해가 말했다. 담소령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삭풍객잔 문이 닫혔다. 마당에는 서진해 혼자 남았고, 방 안쪽에서는 윤세하가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창호지 너머 그림자로 보였다. 잠든 것인지, 그냥 누워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서진해는 그 그림자를 잠깐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윤세하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지금은 아니었다.
봉투 안쪽의 먹 냄새가 아직 손끝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고성 약방. 학영회. 조사 위원회. 담소령이 입 다물고 있는 이름. 그것들이 한 줄로 연결되는지, 아니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뭔가가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오래되고, 깊이 숨겨진 것의 냄새. 서진해는 처마 끝을 바라보았다. 물방울이 한 방울 더 떨어졌다. 두 시진. 담소령이 그 안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디부터 움직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