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조가 안전지대 서쪽 게이트 앞에 닿은 시각은 새벽 세 시 칠 분이었다.
강태민이 담벼락 그늘에 등을 붙이고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오도혁은 반박 없이 멈췄다. 태민은 그 자연스러운 동작을 기억했다. 도혁은 이 길을 안다고 말했지만, ‘안다’와 ‘전에 거래했다’ 사이에는 아직 빈칸이 있었다.
게이트는 철제 슬라이딩 구조였다. 표면에는 녹이 슬었고 경첩 부분만 새것처럼 반짝였다. 안쪽에서 안정적인 발전기 소리가 났다. 태민은 용량을 추정하려다 그만뒀다. 소리만으로 시설 규모와 안전을 단정할 수는 없었다.
발소리 하나가 가까워졌다. 게이트가 사람 한 명이 지날 만큼 열렸다.
“박선묵입니다.”
사십대 후반의 남자는 온화하게 웃었다. 시선은 태민보다 도혁에게 먼저 닿았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연락이 늦었습니다.”
태민은 도혁의 팔꿈치를 잡았다.
“무슨 연락이지?”
“병원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 보냈어요. 조건은 몰랐고.”
“언제, 어떤 장비로?”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선묵이 둘 사이로 한 발 나왔다.
“밖은 위험합니다. 들어와서 이야기하시죠.”
태민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쪽은 총 아홉 명입니다. 선발 둘, 후발 다섯, 병원 잔류 둘. 기존 이동 곤란 환자 둘과 보조가 필요한 환자 한 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선묵의 미소가 아주 조금 멈췄다.
“수용에는 건강 확인이 필요합니다. 발열, 피부 상태, 호흡 이상을 봅니다.”
“누가 봅니까?”
“내부 의료 인력이—”
“자격과 절차가 있습니까? 발열 하나로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이동 불가 환자를 문밖에서 제외한다면 그건 건강 확인이 아니라 선별입니다.”
선묵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태민은 그 침묵까지 기록하려고 작은 수첩을 꺼냈다.
“우리 의료 인력이 먼저 상태를 봅니다.” 선묵이 말했다. “수용 가능 여부는 이후 결정합니다.”
“그 전까지 게이트 앞에서 분리하거나 물건을 빼앗지 않는다고 적어 주십시오. 후발조가 올 때까지 문도 닫지 말고요.”
“새벽 네 시가 마감입니다.”
“그 시각은 누가 정했고, 예외 기준은 무엇입니까?”
선묵의 온화한 얼굴에 처음으로 피로가 드러났다.
“모든 사람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받을 수 있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기준을 숨긴 채 사람을 데려오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도혁이 작게 숨을 내쉬었다.
“강 형, 일단 안에서—”
“넌 연락한 내용부터 전부 말해.”
게이트 안쪽에서 다른 두 사람이 나타났다. 무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허리춤에 무전기가 있었다. 태민은 물러서지 않았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문이 어떤 규칙으로 열리는지 확인하러 왔다. 싸움이 나면 후발조에게 길을 남길 수 없었다.
선묵은 잠시 생각한 뒤 경비용 장부를 가져오게 했다. 태민은 자기 수첩과 장부에 같은 문장을 적게 했다.
성산병원 생존자 총 아홉 명. 선발 두 명 도착. 후발 다섯 명 이동 예정. 잔류 두 명 별도 이동 예정. 환자 세 명은 문밖에서 자동 제외하지 않고, 평가자 이름과 관찰 근거를 남긴 뒤 판단한다. 게이트는 최소 네 시까지 유지한다.
보장이라고 부르기엔 약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아무 기록도 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태민은 표시용 손전등을 꺼내 게이트 바깥 높은 벽을 향해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비췄다. 병원 옥상 방향에서 보일지는 알 수 없었다. 하린과 정한 신호였다. 경로 도달, 문 열림, 조건 미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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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하린이 서쪽 창문에 태블릿 카메라를 고정하고 있었다. 화면에 빛이 잡힌 것은 세 시 십구 분이었다. 노이즈일 수도 있어 영상을 세 번 돌려봤다. 짧은 빛 세 번과 긴 빛 한 번.
“도착했어요.”
하린은 기뻐하기 전에 덧붙였다.
“아마도요. 약속한 패턴하고 같지만 발신자가 태민 씨라는 걸 여기서 확인할 방법은 없어요.”
세온은 그 한계를 받아들였다.
“후발 준비. 다만 게이트가 안전하다고 가정하지 않는다.”
유리는 기존 환자 둘의 상태와 들것 고정 줄을 다시 봤다. 이동 중 산소 공급이 끊기지 않게 장비를 묶었지만, 흔들림과 추위가 상태를 악화시킬 가능성은 그대로였다. 유리는 두 환자에게 알고 있는 계획과 모르는 위험을 설명했다. 의식이 있는 환자의 의사를 묻고,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을 임의의 동의로 바꾸지 않았다.
정윤호는 최병호 곁에 앉아 있었다. 병호는 부축하면 짧게 설 수 있었지만 현기증이 남아 있었다. 둘은 후발조보다 늦게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세온이 인원 원장을 읽었다.
게이트 선발 두: 태민, 도혁.
병원 후발 다섯: 세온, 유리, 하린, 기존 환자 둘.
병원 잔류 두: 윤호, 최병호.
총 아홉. 마지막 확인 시각 세 시 이십이 분.
“우릴 두고 가는 겁니까?” 윤호가 물었다.
“아니요. 먼저 문턱까지 연결하는 겁니다.” 세온이 말했다. “게이트가 닫히거나 조건이 달라지면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어요. 이 명단과 위치 기록은 양쪽에 남깁니다.”
하린은 원장 사진을 태블릿과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고 종이 사본을 윤호에게 줬다. 외부 접속 로그의 MCP 코드도 함께 적었지만, 민간 안전지대가 접속 주체라는 것은 아직 추정이라고 표시했다. 도혁의 연락, 윤호의 문건, 병원망 선접속이 한 줄로 이어지기 시작했지만 어느 것도 아직 전부 증명되지는 않았다.
후발조는 세 시 이십팔 분에 병원을 나섰다. 들것 두 개가 젖은 바닥을 긁었다. 빠르게 뛰지 않았다. 환자 고정과 호흡을 확인하며, 막힌 길에서는 되돌아갈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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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트 안에서 태민은 닫히는 문에 손을 댔다.
“아직입니다.”
선묵이 웃음 없이 그를 보았다.
“당신은 여기 규칙을 바꾸러 왔습니까?”
“먼저 읽으러 왔습니다.”
게이트는 손바닥 너비만큼 다시 열렸다. 바깥 어둠 끝에서 아주 희미한 불빛이 움직였다. 후발조의 손전등인지 다른 사람의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공식 방송이 끊긴 뒤 약 예순한 시간. 첫 일흔두 시간이 끝나기 전, 세온 일행은 이동 가능한 여섯 명과 환자 세 명을 합쳐 생존조 아홉 명을 이루고, 누구도 원장에서 지우지 않은 채 안전지대의 첫 문턱에 닿았다.
그것은 도시가 구원됐다는 뜻도, 아홉 명이 모두 안전해졌다는 뜻도 아니었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기준은 불투명했고, 도혁은 선묵과 먼저 연락했으며, 병원망에는 민간 시설로 보이는 접속 흔적이 남아 있었다. 윤호의 USB에는 아직 읽지 못한 수용 문건이 있었다. 공업지대 폭발과 오염의 정체도 그대로였다.
세온이 세운 첫 규칙은 단순했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사실로 쓰지 않는다. 혼자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도 숫자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다.
그 밤에 완성된 것은 생존이 아니었다. 다음 문을 두드릴 아홉 이름과, 그 이름을 끝까지 세겠다는 약속이었다.
후발조의 불빛은 한 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태민은 문틈 너머로 그 간격을 셌다. 장애물을 우회하는 움직임일 수도 있었고, 전혀 다른 사람의 불빛일 수도 있었다. 그는 선묵에게 문을 더 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장부에 후발 추정 신호의 시각을 적고 기다렸다.
도혁은 게이트 안쪽 사람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 했다. 태민이 물었다.
“연락은 한 번뿐이었나?”
“두 번.”
도혁이 마침내 말했다.
“첫 번째는 병원 위치. 두 번째는 여섯 명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환자 숫자는 안 보냈어요.”
“왜 숨겼지?”
“환자가 있다고 하면 답도 안 올 줄 알았으니까.”
태민은 그 고백을 자기 수첩에 적었다. 도혁은 지우라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려고 거짓말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 거짓말이 문밖에 남길 사람을 미리 골랐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선묵은 장부를 덮으려 했다. 태민이 손을 올렸다.
“후발이 도착할 때까지 열어 둡니다.”
문밖에서 이번에는 들것 바퀴가 금속 조각을 밟는 소리가 났다. 아주 멀고 작았지만 사람의 걸음과 함께였다. 태민은 그제야 숨을 조금 내쉬었다.
첫 문턱은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저 병원 안에서 만든 규칙이 병원 밖의 규칙과 처음 부딪히는 자리였다. 아홉 이름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지워지는 순간, 그들이 세운 생존조례는 시작부터 거짓이 된다.
그래서 태민은 열린 틈에 그대로 섰고, 세온은 어둠 속에서 들것 앞쪽을 잡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수십 미터와 박선묵의 조건이 남아 있었다. 그 거리를 건너는 일이 그들의 다음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