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은 태블릿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에는 외부 접속 시각이 찍혀 있었다. 오전 한 시 사십칠 분. 북쪽 비상계단 정찰조가 출발하고 스무 분 남짓 지난 때였다. 그 시각 응급실에 남아 있던 이동 가능 인원은 윤호와 도혁, 환자는 기존 두 명뿐이었다.
“제가 한 접속이 아니에요.”
“그건 기록해 두자.” 세온이 말했다. “누가 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정찰조가 돌아온 시각은 두 시 십이 분이었다. 하린은 접속 시각과 자신이 흔적을 발견한 시각을 분리해 적었다. 접속은 귀환 전, 발견은 귀환 후였다. 시간은 한 줄로 이어졌다.
최병호가 가림막 안에서 기침했다. 유리는 마스크와 장갑을 바꾸고 다가갔다. 병호는 마흔둘이라고 다시 말했고, 내과 입원 중 4층 계단에 고립됐다고 했다. 열감과 탈수 소견은 있었지만 원인이나 전염 가능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유리는 기존 환자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같은 장비를 쓸 때마다 닦고, 상태 변화만 기록했다.
“안전지대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호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마지막 연락에서 새벽 네 시에 서쪽 게이트를 닫는다고 했어요. 언제 보낸 연락인지는 제 기기가 없어 정확히 확인 못 합니다.”
세온이 시계를 봤다. 두 시 십팔 분.
“위치는요?”
“서쪽 공단 방향. 병원에서 이 킬로미터쯤이라고 들었습니다. 버스 차고지 담을 따라가면 된다고요. 직접 가본 적은 없습니다.”
전언, 미확인. 세온은 그대로 적었다.
오도혁이 몸을 일으켰다.
“박선묵이 운영하는 곳일 겁니다. 내가 아는 민간 물류 루트하고 겹쳐요.”
정윤호의 펜이 멈췄다.
“그 이름 압니까?” 세온이 물었다.
“구청에 운영 허가 문건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결재 라인은 아니었지만 일부 조건을 봤어요.”
“일부가 뭡니까?”
윤호는 안주머니를 눌렀다.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 USB를 꺼내 바닥에 놓았다.
“수용 인원과 물자 배분 표입니다. 원본인지, 최종본인지는 장담 못 합니다. 사람을 상태와 기술로 나누는 항목이 있었어요.”
하린이 손을 뻗다가 멈췄다.
“지금 이걸 태블릿에 꽂으면 안 돼요. 악성 파일인지도 모르고, 원본이 바뀔 수 있어요.”
세온은 USB를 봉투에 넣고 발견 시각과 소지자를 적었다. 복제와 확인은 분리된 장비가 생길 때 하기로 했다. 하린이 모든 인증과 로그를 즉시 풀어내는 장면은 없었다. 대신 그는 모르는 장치를 함부로 연결하지 않는 선택으로 팀을 지켰다.
세온은 처치대 위 인원 원장을 펼쳤다.
이동 가능 여섯: 세온, 태민, 유리, 하린, 윤호, 도혁.
기존 이동 곤란 환자 둘.
보조하면 짧은 거리를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최병호 한 명. 상태 변동 가능.
총 아홉.
유리가 기존 환자 둘의 상태를 설명했다. 오십대 여성은 복부 수술 후 회복 중이며 산소 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십대 남성은 다리를 고정해 자력 보행이 어려웠다. 둘 다 들것과 보조 인력이 필요했다. 이동 중 악화 가능성은 있었고, 병원에 남는 것이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전원 한 번에 이 킬로미터는 무리예요.” 유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누가 살고 죽는다고 지금 단정할 수도 없어요.”
태민이 약도 위에 두 선을 그었다.
“선발 둘이 먼저 가서 경로와 게이트 조건을 확인한다.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지, 환자 평가를 누가 어떻게 하는지 본다. 후발은 들것 둘을 포함해 따라간다.”
“선발은 태민 씨와 나.” 도혁이 말했다.
태민이 그를 봤다.
“네가 길을 안다고 했으니 같이 간다. 대신 혼자 접촉하거나 거래하지 마.”
도혁은 웃지 않았다.
세온은 시각을 정했다. 선발 출발 두 시 삼십 분. 게이트 예상 도착 세 시 오 분 전후. 경로가 막히면 세 시 이십 분까지 병원으로 복귀. 후발 출발은 선발 신호를 확인한 뒤, 늦어도 세 시 이십오 분에 재판단. 네 시라는 말은 확정 사실이 아니라 병호의 전언이므로,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무리하게 뛰는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후발 이동조는 세온, 유리, 하린, 기존 환자 둘. 다섯.
병원 잔류조는 윤호와 최병호. 둘. 병호가 이동하기 어렵거나 기존 환자 이송이 지연될 때 서로 위치를 잃지 않게 하는 최소 인원이었다. 유리는 윤호에게 병호의 상태 확인 간격과 위험 신호를 말했지만, 그것이 전문 치료를 대신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다. 임의 투약과 무리한 단독 이동은 금지했다.
“잔류가 포기는 아닙니다.” 세온이 말했다. “게이트 조건이 확인되면 돌아오거나 다음 이동을 연결합니다. 누구도 원장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윤호는 아홉 이름을 오래 보았다.
“안 돌아오면요?”
“세 시 이십 분에 다음 판단. 시간과 방향을 적고 움직이세요. 기다리다 발전기와 같이 멈추지는 말고요.”
태민과 도혁이 장비를 챙겼다. 손전등 둘, 물 한 병, 마스크, 표시용 천, 호루라기. 총을 든 영웅의 출발이 아니라 길 하나를 확인하러 가는 두 사람의 짐이었다.
두 시 삼십한 분, 선발조가 서비스 통로를 나섰다. 하린은 문이 닫힌 시각을 적었다. 유리는 환자 둘의 고정 줄을 다시 확인했다. 윤호는 최병호 옆에 앉았다. 세온은 원장의 숫자를 다시 셌다.
선발 둘. 후발 다섯. 잔류 둘. 총 아홉.
첫 희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결정된 것은 누구도 조용히 숫자 밖으로 밀어내지 않겠다는 것뿐이었다.
출발을 앞두고 태민은 원장 아래에 자기 이름을 직접 썼다. 오도혁도 잠시 머뭇거리다 옆 칸에 서명 대신 휴대폰 잠금 화면의 시각을 보여 줬다. 세온은 서명을 강요하지 않고 그 시각을 출발 확인란에 옮겼다.
“표시 신호는 짧게 세 번, 길게 한 번.” 하린이 말했다. “도달했지만 조건은 모른다는 뜻. 짧게 두 번이면 돌아오는 중. 아무 신호도 없으면 성공으로 보면 안 돼요.”
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다른 데서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신호 하나만으로 출발하지 않을 거예요. 방향과 간격을 영상으로 남기고, 환자 상태와 남은 시간도 같이 보고 결정해요.”
세온은 하린을 봤다. 처음 봉쇄선을 보여 줄 때보다 말이 느려져 있었다. 느려진 만큼 정확해졌다.
윤호는 최병호 옆에 둘 의자와 물, 기록지를 옮겼다. 병호는 자신이 짐이 되느냐고 물었다. 유리는 ‘괜찮다’고 쉽게 답하지 않았다.
“상태가 바뀔 수 있어서 혼자 두지 않는 겁니다. 지금 이동이 더 위험할 수도, 기다리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 다음 시각에 다시 봐요.”
병호는 그 불완전한 설명을 듣고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자기 상태가 이미 결정된 운명처럼 취급되지는 않았다.
도혁이 셔터 앞에서 태민에게 물었다.
“나를 믿습니까?”
“아니.”
“그런데 왜 데려가요?”
“네가 아는 길을 네가 없는 데서 추측하는 것보다, 네 행동을 옆에서 보는 게 낫다.”
도혁은 잠시 웃다가 표정을 지웠다. 그 말은 모욕이면서 동시에 역할이었다. 자신도 숫자 안에 있고 책임도 있다는 통보였다.
두 사람이 통로 너머로 사라진 뒤 세온은 셔터를 완전히 닫지 않고 약속한 위치에 걸었다. 바로 열 수 있는 틈과 외부에서 손이 들어오지 못할 간격 사이를 태민이 미리 표시해 둔 대로 맞췄다. 완벽한 방어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선택이었다.
유리는 들것 두 개 사이에 서서 환자 상태를 다시 확인했다. 하린은 서쪽 창문으로 이동했다. 윤호는 병호의 마지막 확인 시각을 적었다.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동작이 합의가 됐다.
세온은 원장을 소리 내 읽었다. 이름을 부르면 당사자나 곁의 사람이 대답했다. 선발조가 이미 나간 뒤에도 태민과 도혁의 이름에는 ‘이동 중’이라고 답했다. 침묵을 실종으로, 부재를 희생으로 바꾸지 않기 위한 절차였다.
마지막 대답이 끝나자 시계는 두 시 삼십사 분을 가리켰다. 게이트까지 남은 시간보다, 다음 확인까지 남은 시간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