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기가 두 번 떨렸다. 짧은 진동이었지만 응급실 천장 비상등이 그에 맞춰 흔들렸고, 바닥에 누워 있던 환자 하나가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세온은 그 눈이 다시 감기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내쉬었다. 발전기는 살아 있었다. 두 시간 더.
북쪽 비상계단 앞 복도는 생각보다 좁았다. 태민이 먼저 들어가 손전등을 위아래로 훑었다. 오른쪽 벽에 물이 흘렀던 자국이 길게 나 있었고, 계단 첫 번째 단에는 젖은 천 쪼가리 하나가 뭉개진 채 놓여 있었다. 군화 밑창 크기가 아니었다. 슬리퍼 발자국이었다.
"누가 다녀갔어요."
하린이 태민 뒤에서 손전등 불빛을 그 천 쪼가리에 고정하며 말했다. 태민은 대답 대신 무릎을 굽혀 가까이 들여다봤다. 냄새를 맡는 것처럼 잠깐 멈췄다가 일어섰다.
"최소 여섯 시간은 지났다. 피는 없어."
세온이 그 말을 들으면서 계단 위쪽을 올려다봤다. 손전등 불빛이 닿지 않는 구간이 있었다. 3층에서 4층으로 꺾이는 부분. 그 구간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이동조는 세온, 태민, 하린, 유리 네 명이었다. 응급실에는 윤호와 도혁,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 셋이 남아 있었다. 세온은 출발 전 윤호에게 직접 말했다. 발전기 한계 시각 새벽 네 시. 그 전에 돌아온다. 그 전에 연료를 구해 온다. 윤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은 벽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는데, 눈꺼풀이 완전히 내려가 있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유리가 세온 옆으로 붙었다. 걸음 속도를 맞추며 낮게 말했다.
"3층 처치실에 드레싱 물품 남아 있을 거예요. 올라가면서 확인할게요."
"연료 먼저야."
"알아요. 그냥 보면서 가겠다는 거예요."
세온이 잠깐 유리를 봤다. 유리는 이미 시선을 계단 위쪽으로 돌린 상태였다. 말다툼이 아니었다. 그냥 각자 셈하는 방식이 달랐다. 세온은 연료를 먼저 세고, 유리는 사람을 먼저 셌다. 그 차이가 이 계단 안에서도 정확하게 살아 있었다.
3층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치실 문이 열려 있었고 안에 드레싱 물품은 반쯤 뜯긴 포장지만 남아 있었다. 유리가 포장지 하나를 들어 뒤집었다가 내려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꺾이는 부분에서 태민이 멈췄다.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세온이 반 박자 뒤에 멈추고 하린이 그 뒤에 섰다. 유리는 맨 뒤에서 숨을 참았다.
계단 위에 무언가가 있었다.
크기는 사람이었다. 등을 벽에 기대고 무릎을 세운 자세로 앉아 있었다. 손전등 불빛을 받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태민이 불빛을 천장으로 돌려 간접으로 비췄다. 숨을 쉬고 있었다. 가슴이 아주 얕게, 그러나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오십대 남자였다. 병원 환자복 차림이었고 왼팔에 링거 줄이 아직 꽂힌 채 피부 바깥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감염 여부."
태민이 유리에게 시선을 줬다. 유리가 앞으로 나와 남자 앞에 쭈그려 앉았다. 손전등을 세온에게 건네고 장갑을 꼈다. 눈꺼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목 옆 림프 부위를 눌렀다. 남자가 낮은 신음을 냈다. 눈을 뜨지는 않았다.
"발열 있어요. 하지만 피부 출혈은 없고 눈 충혈도 없어요. 탈수 쪽이에요."
"움직일 수 있어?"
"혼자는 무리예요."
세온은 남자를 내려다봤다. 남자는 링거 줄이 끊어진 채 이 계단 구석에 앉아 있었다. 누가 올라오길 기다렸는지, 아니면 올라가다 포기했는지 알 수 없었다. 세온은 잠깐 생각했다. 이 남자를 데리고 가면 이동 속도가 줄어든다. 두고 가면 발전기보다 먼저 꺼진다.
"올라가면서 결정해요."
유리가 세온의 눈을 보지 않고 말했다. 결정을 미루는 게 아니었다. 연료를 확인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데려가겠다는 뜻이었다. 세온은 그 말이 가진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5층 창고는 잠겨 있었다. 태민이 잠금장치를 살폈다. 자물쇠가 아니라 전자식 도어락이었다. 전력이 끊겨 있었다.
"하린."
하린이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이 켜졌다.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비상 개방 코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온은 그 화면을 옆에서 지켜봤다. 하린의 손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3초 줘요."
1초. 2초. 3초. 전자식 도어락 디스플레이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가 꺼졌다. 문이 열렸다. 하린이 태블릿을 주머니에 넣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비상 개방 코드는 병원 관리자 디폴트 번호가 그대로예요. 아무도 안 바꿨네요."
창고 안에는 예비 연료통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가득 찼고, 하나는 절반이었다. 세온은 가득 찬 것을 먼저 들어 무게를 확인했다. 발전기 한 시간 반 분량이었다. 절반짜리를 합산하면 두 시간 조금 넘는다. 새벽 네 시 직전까지 버티는 건 가능했다.
"됩니까."
태민이 물었다. 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민이 가득 찬 통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유리가 절반짜리를 잡으려다 세온이 먼저 들었다.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세온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에 4층 계단 구석의 남자가 아직 같은 자리에 있었다. 유리가 무릎을 굽혔다. 남자의 팔 하나를 어깨에 걸쳤다. 세온이 반대편을 잡았다. 연료통은 하린이 들었다. 태민이 앞에서 불빛을 잡았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세온은 생각했다. 응급실에서 지금쯤 윤호와 도혁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을지. 두 사람을 같이 남겨 둔 건 선택이 아니었다. 인원 배분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게 결과적으로 선택이 된다는 걸, 세온은 출발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응급실 문을 밀었을 때 윤호는 창문도 없는 벽 앞에 서서 메모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도혁은 구석 바닥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세 걸음쯤 됐다. 말을 하다 멈춘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세온이 연료통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윤호에게 말했다.
"발전기 돌려요."
윤호가 돌아봤다. 시선이 연료통에서 남자 환자에게로 옮겨 갔다가 다시 세온에게 왔다. 그 시선이 머무는 순서가 세온은 마음에 걸렸다. 왜 환자보다 통을 먼저 봤는지. 아니면 그냥 통이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인지.
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무심히 말했다.
"수고했네요. 나도 좀 자야겠다."
태민이 도혁을 한 번 봤다가 시선을 거뒀다. 유리는 환자를 눕히는 데 집중했다. 하린은 태블릿을 꺼내 뭔가를 확인하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세온은 그 멈춤을 봤다. 하린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전기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비상등 붉은빛이 조금 안정됐다. 새벽 네 시까지 두 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 생겼다. 세온은 응급실 중앙에 서서 그 빛을 올려다봤다. 살아 있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