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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0화]

태도가 남는 자리

작성: 2026.04.14 10:48 조회수: 28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금요일 오후 네 시 반, 사무실은 한 주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조용했다. 에어컨 바람이 낮게 돌고 있었고, 누군가 탕비실에서 종이컵을 뽑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다. 현우는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화면을 보는 건지 그냥 응시하는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책상 위에는 이번 달 계약 건 정리 파일이 펼쳐져 있었다. 줄이 많지 않았다. 줄이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세어보는 버릇은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옆자리 선배 민태준이 자켓을 집어 들며 지나쳤다.

"야, 도현우. 넌 또 그 파일 세는 거야? 세면 늘어나냐."

현우는 대꾸하지 않았다. 민태준은 가볍게 웃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 웃음이 예전 같았으면 얼굴이 달아올랐을 텐데, 오늘은 그냥 들었다. 세는 게 아니라 보고 있는 거라고, 속으로만 정정했다.

이번 달은 숫자로 따지면 좋은 달이 아니었다. 신계약 건수는 팀 평균의 절반이었고, 추가 심사 중인 건이 하나 있었고, 민원 가능성이 있는 건이 하나 더 있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만족스럽지 않은 수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지난달 말처럼 속이 뒤집히는 느낌은 없었다. 숫자가 달라진 게 아니라 숫자를 보는 자신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다. 아직 뭔가를 알게 된 건 아니고, 그냥 조금 달랐다.

현우는 파일을 덮지 않은 채 펜을 집어 들었다. 딱히 쓸 게 있어서가 아니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펜 끝을 종이 모서리에 대고 잠깐 멈췄다가, 아무것도 쓰지 않고 다시 내려놨다. 이번 달 상담 중에서 자기가 제대로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몇 번이나 됐는지 세어보려다가, 그것도 세는 버릇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다. 대신 박은주 씨 상담을 떠올렸다. 설명을 줄이고 질문을 먼저 꺼냈던 그 순간. 말을 아끼는 게 그렇게 어색할 줄은 몰랐다. 입이 자꾸 다음 설명으로 달려가려는 걸 붙잡는 느낌이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박은주 씨였다.

문자였다. 길지 않았다.

『설계사님, 어머니 추가 심사 결과 연락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저번에 질문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덕분에 하고 싶었던 말 했네요.』

현우는 문자를 세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덕분에'라는 단어에서 멈췄고, 세 번째 읽을 때는 '하고 싶었던 말'이라는 부분에서 다시 멈췄다. 자기가 뭘 했다기보다는 그냥 잠깐 입을 다물었을 뿐인데, 그게 누군가에게 '덕분에'가 됐다는 게 낯설었다. 나쁘지 않은 방식으로 낯설었다. 현우는 답장을 쓰려다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폰을 책상에 내려놨다. 잘됐다고 하기엔 자기가 한 게 없는 것 같고, 감사하다고 하기엔 감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고.

"그거 박은주 씨 문자야?"

아라가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현우는 화들짝 놀라며 화면을 반쯤 가렸다가, 가리는 게 더 이상해 보여서 그냥 폰을 내려놨다.

"네. 심사 결과 기다린다고요."

아라는 종이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하나를 현우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탕비실 커피. 원두 아니고 봉지 커피야. 기대하지 마."

"감사합니다."

아라는 맞은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봉지 커피 특유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책상 위로 번졌다. 잠시 커피를 마시더니 아라가 물었다.

"박은주 씨한테 어떻게 했어?"

현우는 잠깐 생각했다. 뭘 어떻게 했다고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그냥... 설명을 좀 줄였어요. 대신 뭐가 제일 걱정이냐고 먼저 물었고요."

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인지 확인인지 알 수 없는 끄덕임이었다.

"그게 다야?"

"네."

아라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그게 전부 맞아."

짧은 말이었다. 현우는 그 말이 어디에 내려앉는지 한 박자 뒤에야 느꼈다. 칭찬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운 말이었다. 네가 이번 달에 배운 게 그게 맞다는 확인. 현우는 커피를 마시는 척 고개를 숙였다. 봉지 커피는 예상대로 별로였다.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사무실 안에는 에어컨 바람 소리와 멀리서 누군가 통화하는 소리만 있었다. 아라가 먼저 일어섰다.

"심사 결과 나오면 바로 연락 줘. 조건부 승낙이면 설명 방식 같이 정리하자."

"네."

현우는 대답했다. 그러다 생각난 듯 덧붙였다.

"선배님, 저 이번 달에 계약 건수가 많지는 않았는데요."

아라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알아."

"그래도 괜찮아요?"

그제야 아라가 돌아봤다. 딱 한 번.

"넌 이번 달에 고객한테 대충 넘긴 상담 있어?"

현우는 잠깐 생각했다. 정직하게.

"없어요."

"그럼 됐어."

아라는 돌아섰다.

"숫자는 다음 달에 채워."

현우는 그 등을 보면서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향으로. 그리고 나서야 박은주 씨 문자에 답장을 썼다. 『결과 나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릴게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보내고 나서 보니 너무 짧은 것 같기도 했는데, 길게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그냥 뒀다.

오후 다섯 시 십 분. 퇴근을 준비하던 현우의 휴대폰이 다시 진동했다. 이번엔 문자가 아니라 카카오 알림이었다. 이름을 확인하는 데 0.5초, 그 이름이 뭘 의미하는지 다시 떠올리는 데 또 0.5초가 걸렸다.

김정호였다.

『이번 주 토요일 오전 열 시에 통화 가능합니다. 작년에 가입한 건 확인해 보셨나요?』

현우는 메시지를 읽고 화면을 끄지 않은 채로 한동안 그냥 들고 있었다. 작년에 가입한 건. 그 문장이 이번 달 내내 무언가처럼 걸려 있었는데, 이제 날짜가 생겼다. 토요일 오전 열 시. 이틀 뒤였다.

그는 박은주 씨 건에서 배운 것들을 떠올렸다. 설명보다 질문을 먼저, 말을 줄이는 게 더 많이 듣는 방법. 그런데 지금 이 메시지 앞에서 그 원칙이 쉽게 꺼내지지 않았다. 박은주 씨는 현우가 몰랐던 걱정을 꺼낸 거였고, 김정호 씨는 현우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실수를 묻고 있었다. 그 차이가 지금 이 순간 꽤 크게 느껴졌다. 질문을 먼저 꺼내는 것과, 자기 실수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같은 용기가 아니었다.

현우는 가방을 챙기다가 멈췄다. 서랍 안쪽에 작년 계약 건 파일 목록이 있었다. 지금 열어볼 수도 있었다. 퇴근 전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그는 서랍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았다.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은 아니라는 게 용기 없어서인지, 아니면 제대로 볼 준비를 하고 싶어서인지, 그것도 아직 몰랐다. 다만 토요일 전에는 봐야 한다는 것만 분명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복도 형광등 하나가 또 깜빡였다. 시설팀에 신고한 지 한 달이 됐는데도 그대로였다. 현우는 그 밑을 지나면서 이번엔 눈을 찡그리지 않았다. 그냥 지나쳤다. 어차피 오늘은 그게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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