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사무실은 언제나 똑같은 냄새로 시작됐다. 탕비실 전기포트 냄새, 누군가 아직 다 마시지 않은 아메리카노 냄새, 그리고 전날 저녁 청소하고 간 락스 냄새가 뒤섞인 그것. 현우는 자켓을 의자 등받이에 걸면서 창문 쪽 자리를 흘낏 봤다. 아라는 아직 없었다. 팀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아라인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오늘은 자리가 비어 있었다. 현우는 잠깐 그쪽을 바라보다가 모니터를 켰다.
부팅되는 동안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냈다. 주말 사이에 쌓인 문자들을 훑는데, 그 사이에서 눈에 익은 이름이 눈에 걸렸다. 김정호. 현우는 화면을 멈췄다가 메시지를 열었다.
'도 설계사님, 주말 잘 보내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 매형이 보험을 좀 알아보고 있는데 한 번 만나봐 주실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제가 연결해 드릴게요.'
한 번 읽고, 한 번 더 읽었다. 화면을 내려놓지 않은 채 잠시 멈췄다. 소개였다. 김정호 씨가 직접 소개를 넣어준 거였다. 반사적으로 속에서 계산이 돌아갔다. 소개 고객이면 진입 장벽이 낮고, 진입 장벽이 낮으면 상담 성사율이 올라가고, 성사율이 올라가면 이번 달 실적이— 현우는 거기서 스스로 생각을 끊었다. 잠깐. 그게 먼저는 아니잖아.
다시 문자를 읽었다.
'도 설계사님.'
직함이 아니라 이름 앞에 붙인 호칭이었다. 김정호 씨는 처음 상담 때 줄곧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언제부터인가 설계사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우는 그 두 글자 앞에서 이상하게 숨이 한 박자 늦어지는 걸 느꼈다. 설명이 통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현우가 그날 상담에서 약관을 얼마나 깔끔하게 설명했는지가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어떤 사람으로 앉아 있었는지가 이 문자를 만든 것 같았다. 확신은 없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야, 도현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같은 팀 최진석 선배가 텀블러를 들고 서 있었다. 입사 3년 차,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월요일 아침에 텀블러를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뭐 봐? 표정이 왜 그래, 복권 당첨됐어?"
"아니요. 소개 문자 왔어요."
"오, 진짜?"
최 선배가 슬쩍 다가왔다.
"누구한테서?"
"저번 달에 상담한 고객분이요. 매형 소개해 주신다고요."
"이야."
최 선배가 텀블러를 들이켜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는 처음이지? 축하해. 그게 진짜 영업 시작인 거야. 소개받기 전까지는 그냥 전화 영업이라고."
현우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애매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최 선배는 그걸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현우는 다시 화면을 봤다. 진짜 영업의 시작. 그 말이 기분 좋게 들리면서도, 자기가 아직 그 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아홉 시 이십 분쯤 아라가 들어왔다. 외부 미팅이 있었는지 파일 백을 들고 있었고, 코트 끝이 빗물에 살짝 젖어 있었다. 현우가 인사를 건넸고 아라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장갑을 빼는 동작이 익숙하고 조용했다. 그러다 아라가 현우 쪽을 한 번 봤다.
"왜 그 표정이야."
"표정이요?"
"뭔가 생긴 거 있으면 말해."
현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들고 아라 쪽으로 걸어갔다. 화면을 내밀었다. 아라는 보지도 않고 말했다.
"소개 들어온 거야?"
"...어떻게 아셨어요?"
"그 표정이 두 가지밖에 없거든. 민원 났을 때랑, 소개 들어왔을 때."
현우는 할 말을 잃었다. 아라는 파일을 꺼내며 덧붙였다.
"좋은 거야. 근데 소개 고객은 좀 달라. 처음부터 네가 번 신뢰가 아니니까."
"...무슨 뜻이에요?"
아라가 손을 멈췄다. 설명할까 말까 재는 것 같은 짧은 침묵이 있었다.
"김정호 씨가 자기 신뢰를 빌려준 거야. 그 사람한테 쌓인 신뢰를 네가 지금 잠깐 빌린 거라고. 그걸 까먹으면 소개 고객 상담이 보통 상담보다 더 어려워져."
아라는 거기서 말을 끊고 모니터를 켰다. 더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현우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서 그 말을 천천히 씹었다. 빌린 신뢰. 그러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은 그 신뢰를 되갚는 게 아니라, 잃지 않는 거였다.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 아직 잘 몰랐지만, 아라가 굳이 구분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오전 내내 현우는 김정호 씨에게 답장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했다. 메모장을 열었다가 닫고, 문자 앱을 열었다가 닫고, 세 번쯤 첫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감사합니다, 꼭 잘 해드리겠습니다'
는 너무 영업 같았고, '말씀 주셔서 감사해요'는 너무 밋밋했고, '연결해 주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는 뭔가 급해 보였다.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종이컵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식어 있었다. 결국 현우가 보낸 문자는 이것이었다.
'정호 씨,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형분께서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 만들어 드릴게요.'
보내고 나서 한 십 초 정도 화면을 바라봤다. 뭔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이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전송 완료 표시가 뜨는 순간 현우는 휴대폰을 뒤집어 책상에 올려놓았다. 더 보고 있으면 괜히 후회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현우는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았다. 계산하면서 무심코 날짜를 봤다. 월요일. 토요일까지 닷새였다. 김정호 씨와 통화하기로 한 토요일 오전 열 시. 작년 가입 건 확인을 재차 물어봤던 그 문자가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현우는 캔커피 탭을 따지 않은 채 사무실로 올라갔다.
자리에 앉아서 서랍을 바라봤다. 손잡이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금속 감촉이 손바닥에 닿았다. 잠깐 그대로 있다가, 손을 뗐다. 오늘은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이라는 말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그게 점점 더 선명하게 걱정됐다. 준비가 덜 된 건지, 아니면 그냥 열기가 싫은 건지. 그 경계가 스스로도 흐릿했다.
오후 세 시쯤 탕비실에서 종이컵에 커피를 따르다가 현우는 자기가 지금 뭘 미루고 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했다. 파일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채로 통화를 받으면, 그때 처음 알게 된다. 그 순간이 두려운 건지 아니면 그냥 귀찮은 건지, 정직하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커피는 탔는지 쓴맛이 도드라졌다. 현우는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퇴근 무렵, 김정호 씨에게서 답장이 왔다. 진동이 한 번 울렸고, 현우는 화면을 뒤집었다.
'감사합니다, 설계사님. 매형한테도 잘 말해 둘게요.'
짧은 문장이었다. 현우는 그 문자를 읽고 잠시 창밖을 봤다. 퇴근 시간 버스들이 줄지어 빠져나가는 사거리, 신호가 바뀌면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걷기 시작했다. 현우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 설명이 통했다는 감각이 아닌 다른 감각이 남아 있다는 걸 느꼈다. 사람이 남은 것 같은 감각. 아직 뭔지 정확히 모르겠는 감각.
그게 좋은 건지, 아니면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 건지는, 토요일 전에 답을 알아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