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을 오르는 동안 바람이 방향을 바꿨다.
처음에는 솔 냄새였다. 그다음에는 흙. 세 번째로 코끝을 건드린 것이 탄 종이 냄새였다. 담소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만 숨을 한 번 더 깊이 들이켰다. 굴 안에서 맡았던 냄새와 같았지만 더 짙었다. 무언가를 서두르며 태웠을 때 나는 냄새였다. 천천히 태우면 연기가 옅게 퍼지지만, 급하게 태우면 매캐하게 속이 썩는 냄새가 남는다. 객잔 아궁이 앞에서 삼 년을 보낸 탓에 그 차이를 그는 코로 알았다.
백천리가 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너무 빨리 가지 마라. 고수 둘이 먼저 지나간 길이다."
"압니다."
"알면서 그 눈이냐."
담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이 어떤지는 자신이 알 수 없었다. 다만 발끝이 지면을 짚는 감각만 또렷했다. 능선 끝에서 무엇이 기다리든 멈추지 않기로 한 것은 이미 굴 안에서 사부의 이름을 마주쳤을 때였다. 위무강(魏武剛). 돌에 새겨진 두 글자가 아직 눈 안에 남아 있었다.
능선 너머의 경사면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바위가 군데군데 솟아 있고 소나무가 비스듬히 자라 있어 시야가 자꾸 막혔다. 담소하는 발을 고를 때마다 지면의 상태를 살폈다. 발자국 두 쌍. 하나는 보폭이 넓고 뒤꿈치 자국이 얕았다. 내공을 쓴 사람의 걸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작고 빠른 발자국이었는데, 어딘가 익숙한 간격이었다. 담소하는 그 익숙함을 애써 외면하며 세 번째 바위를 돌아섰다.
작은 화로 하나가 바위 그늘에 놓여 있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재가 아직 따뜻했다. 손바닥을 가까이 대자 온기가 느껴졌다. 오래되지 않았다. 한 시진도 안 됐을 것이다. 그 옆에 노경천이 서 있었다.
노경천은 놀라지 않았다.
그게 담소하를 멈추게 했다. 발소리를 들었든, 기척을 느꼈든, 혹은 처음부터 알고 기다리고 있었든 — 어느 쪽이든 좋지 않은 답이었다. 노경천의 오른손에는 반쯤 탄 종이 조각이 들려 있었다. 잿빛과 검정이 뒤섞인 채 가장자리가 흐물거렸다. 아직 다 타지 않은 부분에 붓 자국이 남아 있었는데, 그 획의 형태가 담소하의 시선을 붙잡았다. 검결(劍訣)의 서체였다. 청문검파에서 사부의 글씨를 수백 번 베껴 썼던 손이 그것을 알아봤다.
"소하야."
형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았다. 낮고 따뜻하고 형다웠다. 담소하는 그 목소리에 속지 않기로 했다. 처음으로.
"그 종이, 형이 태운 겁니까."
노경천은 손 안의 잔해를 내려다봤다. 잠깐이었지만 그 잠깐이 너무 계산된 것처럼 느껴졌다.
"사부님의 글이었다. 여기 두면 흑풍채 손에 들어갈 것이 뻔했으니까."
"전부 태웠습니까."
"읽을 수 있는 것은 내가 먼저 읽었다. 태우기 전에."
담소하의 발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의식한 것이 아니었다. 몸이 먼저였다. 신발 밑창이 바위 틈새의 마른 흙을 밟았고, 그 소리가 능선 위에서 작게 울렸다.
"형은 나보다 먼저 굴에 들어갔습니까."
노경천은 대답 대신 웃었다. 환한 웃음이 아니었다. 입 끝이 조금 올라가는, 오래 연습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담소하는 그 웃음을 사형의 얼굴에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늘 있었는데 지금 처음 제대로 본 것인지도 몰랐다.
"형."
"소하야, 형이 하는 일은 다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나한테는 말할 수 없습니까."
바람이 지나갔다. 소나무 사이로 솔가지가 흔들렸다. 뒤쪽에서 백천리가 바위 그늘에 등을 기대는 소리가 들렸다. 끼어들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담소하는 그 침묵에 감사했다. 이건 혼자 버텨야 하는 자리였다.
노경천이 화로 위로 잔해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부님은 네 등에 뭔가를 새기셨다. 그날 밤에. 넌 아직도 그게 화상 자국인 줄 알고 있지."
담소하는 등이 당기는 감각을 느꼈다. 늘 있었던 감각이었다. 삼 년 내내 그 자리가 쑤실 때마다 멸문의 밤을 떠올렸다. 불길 속에서 사부가 등을 짚던 손의 온도. 그 뒤로는 기억이 끊겼다. 의원은 화상이라 했고, 노경천은 경혈을 짚어 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상이 아니라고요."
"잔월십삼식의 전반부 검결이야. 사부님이 직접 손으로 새기셨어. 네 살 속에."
침묵이 능선 위에 내려앉았다.
담소하는 등 뒤 자국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구불구불하고 불규칙해서 화상이 번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묘련이 약을 발라줄 때도, 노경천이 경혈을 짚을 때도 단 한 번도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형의 말이 그 모든 감각을 다시 읽어 들이게 했다. 손바닥이 아닌 손가락 끝으로 새긴 흔적. 불길 속에서 사부가 서두른 이유. 그리고 그 순간 사부가 노경천이 아닌 자신의 등을 선택한 이유.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습니까."
"네가 알면 더 위험해졌을 테니까."
"형이 결정한 겁니까. 내 위험을."
이번엔 노경천이 말을 멈췄다. 처음으로.
담소하는 그 침묵 속에서 지난 사흘의 장면들을 차례로 떠올렸다. 형이 객잔에서 웃던 얼굴, 약첩을 슬쩍 들여다보던 눈길, 새벽에 담을 넘었을 향 냄새, 정묵산에 먼저 도착해서 굴을 뒤지고 문서를 손에 넣고 태운 순서. 그 모든 것이 한 방향으로 맞아 들어갔다. 형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사부의 마지막이 무엇인지, 비급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누구의 몸 안에 새겨져 있는지.
"형이 날 아낀다는 건 압니다."
담소하의 목소리는 낮았다. 떨리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다. 떨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형은 날 아끼는 것과 나를 쓰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을 먼저 고른 겁니까."
노경천의 눈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그러나 담소하는 그 흔들림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형에게서 본 가장 진실한 표정이었다. 웃음도 아니고 설명도 아닌, 그냥 사람의 얼굴이었다.
백천리가 바위 뒤에서 나직이 혀를 찼다.
"이런 말은 산에서 할 게 아닌데."
그 한마디가 찬물처럼 능선 위로 쏟아졌다. 담소하는 형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내려가겠습니다. 형도 같이 내려가십시오."
노경천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다운 미소가 다시 돌아와 있었지만, 이제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담소하는 알았다.
능선을 내려가는 내내 형의 등이 눈앞에 있었다. 삼 년 전이었다면 그 등을 보며 안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등이 너무 반듯해서, 오히려 그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담소하는 자신의 등 뒤 자국이 다시 당기는 것을 느꼈다. 사부의 손이 새긴 것. 자신도 몰랐던 유산. 그리고 형이 그것을 알면서 삼 년 동안 기다려 온 이유.
백천리가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며 한마디 했다.
"잘했다."
칭찬인지 위로인지 알 수 없었다. 담소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밑의 흙이 경사를 따라 조금씩 무너졌고, 그때마다 신발 안에서 발가락이 앞으로 쏠렸다. 그 감각이 이상하게 또렷했다. 산 아래에서 바람이 올라왔다. 저녁이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