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묵산 북록은 이름과 달리 조용하지 않았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낮게 울고, 낙엽이 덜 썩은 채 발밑에서 눅눅하게 짓이겨졌다. 담소하는 백천리의 반 걸음 뒤를 따르며 숨을 고른 채 주변을 살폈다. 관도에서 정묵산 북록까지는 두 시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생각보다 가까웠다. 그게 오히려 불안했다. 가까운 곳에 오래된 것이 묻혀 있다면, 그건 누군가 일부러 가까이 둔 것이라는 뜻이니까.
백천리는 말이 없었다. 오르막이 시작된 뒤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은 칼자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연스럽게 걸려 있었다. 담소하도 허리춤의 단도 위치를 손등으로 한 번 확인했다. 칼집이 차가웠다. 아침 공기가 아직 빠지지 않은 탓이었다. 흙냄새와 솔잎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만 낙엽을 밟으며 이어졌다.
"이상하다."
백천리가 먼저 발을 멈췄다. 아무 몸짓 없이 턱만 짧게 들었다. 담소하의 눈이 그 방향을 따라갔다.
입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낮고 납작한 암벽 아래, 사람 허리쯤 되는 높이의 틈. 석굴이었다. 그 앞에 무언가 쓰러져 있었다. 검은 복색. 허리춤에 흑풍채 특유의 쇳조각 장식이 달린, 사람이었다. 쇳조각이 낙엽 위에 닿아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담소하는 뛰지 않았다. 두 걸음, 세 걸음, 끝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을 낮췄다. 남자는 이미 식어 있었다. 등에 검상이 하나. 깔끔하고 짧았다. 숙련된 솜씨였다. 피는 낙엽 아래로 스며들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죽은 지 반나절은 넘었다는 뜻이었다. 그 솜씨가 흑풍채 것인지, 아니면 흑풍채를 먼저 친 누군가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둘은?"
담소하가 물었다. 백천리는 시신 주변 낙엽을 슬쩍 발끝으로 헤쳤다.
"발자국이 석굴 안으로 이어지다가 끊겼어. 안에서 나온 흔적은 없고."
둘 다 잠시 말이 없었다. 안에 있다는 것인지, 안에서 사라졌다는 것인지. 백천리가 먼저 허리를 펴며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들어갈 거야?"
"예."
단어 하나뿐이었다. 백천리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담소하를 앞세우지 않고 자신이 먼저 틈 사이로 몸을 비집었다. 갑옷도 없는 몸이었지만 그 움직임은 조용했다. 천 소재가 암벽에 스치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석굴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허리를 굽혀야 하는 입구와 달리 안쪽은 어른 두 명이 나란히 설 수 있을 만큼 공간이 트여 있었다. 천장 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와 바닥의 윤곽을 흐릿하게 그렸다. 냄새가 먼저였다. 오래된 흙, 이끼, 그리고 불에 탄 것과 비슷한 무언가. 담소하는 입 안에서 그 냄새를 굴려봤다. 종이였다. 종이가 탄 냄새.
나머지 두 명의 흑풍채 수하는 없었다. 그들이 남긴 것은 있었다. 석굴 한쪽 벽면에 기름 횃불이 꽂혔던 자리, 그 아래로 누군가 무릎을 꿇고 앉았을 만한 눌림 자국,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종이 조각들. 종이는 거의 재가 되어 있었다. 불을 질렀다. 그것도 서둘러.
"읽힌 다음에 태웠군."
백천리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재 조각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재가 손가락 사이로 흩어졌다. 담소하는 그 옆에서 시선을 벽으로 옮겼다. 이끼 낀 암벽. 그런데 이끼가 긁혀 나간 자리가 있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새긴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것으로 새긴 흔적이었다. 가느다랗고 정확했다. 검날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흔적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글자였다. 세 자.
위(危). 무(武). 강(江).
담소하의 숨이 잠깐 막혔다.
위무강. 사부의 이름이었다.
그가 얼마나 오래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 몰랐다. 백천리가 옆에서 말없이 기다렸다. 담소하는 손가락을 내리지 않은 채 글자의 획을 천천히 짚었다. 서두른 흔적이 없었다. 힘이 고르게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 이 세 글자를 새길 때, 그 손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오직 남겨야 한다는 의지만으로 새긴 것 같았다.
"사부님이 직접 새기신 건 아닐 거야."
백천리가 조용히 말했다.
"멸문이 삼 년 전이고, 이 이끼 긁힌 흔적은 많아야 반 년이 지났어. 너희 스승이 죽기 전에 다른 사람을 여기 보낸 거거나, 아니면……"
그는 말을 잘랐다. 담소하가 알아들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사부 외에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먼저 다녀갔다는 뜻이었다.
담소하는 돌아서지 않았다. 벽을 보는 채로 물었다.
"재가 된 종이는 뭐였을 것 같습니까."
"모르지. 하지만 흑풍채 수하들이 여기 와서 불을 지른 건, 읽고 없애려 한 거야. 아니면 없앤 척하려 한 거거나."
"차이가 있습니까?"
"전자면 그 내용이 어딘가로 전달됐다는 거고, 후자면 내용 자체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거지."
담소하가 천천히 몸을 낮춰 재 위에 손바닥을 펼쳤다. 손가락 사이로 재가 빠져나갔다. 남은 건 재 밑에 깔린 돌바닥뿐이었다. 그런데 돌바닥이 매끄러웠다. 원래 이 석굴의 바닥이 이렇게 반반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누군가 손질한 것이었다. 오래전에. 이 굴을 처음 쓴 자는 흑풍채가 아니었다.
"이 굴, 누군가 쓴 적 있습니다. 사부님과 연결된 자가."
백천리가 긴 침묵 끝에 대꾸했다.
"그 누군가가 흑풍채보다 먼저 여기 왔었다면, 진짜 단서는 이미 여기 없을 수도 있어."
그 말이 공기를 눌렀다. 담소하는 손에 묻은 재를 바지에 털었다. 털면서 생각했다. 흑풍채 수하 셋이 이 굴을 찾았다. 한 명은 입구에서 죽었다. 나머지 둘은 사라졌다. 종이는 태워졌다. 그런데 벽의 이름은 남아 있었다. 지운 것과 남긴 것이 갈린다는 것은, 남긴 자가 선택했다는 뜻이었다.
위무강. 이 세 글자는 지우지 않았다. 아니, 지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담소하는 다시 벽 앞에 섰다. 이번엔 손을 올리지 않았다. 그냥 봤다. 삼 년 동안 사부의 이름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누군가 물으면 피했고, 혼자 있을 때도 소리 내지 않았다.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었으니까.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차갑고 좁은 돌 굴 안에서 사부의 이름이 칼날로 새겨진 채 그를 보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가 오래 참은 것처럼 뻐근했다.
"……사부님."
소리가 나왔다. 아주 작게. 백천리는 듣지 못한 척 굴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담소하는 등을 폈다. 화상이 있는 자리가 당겼다. 늘 그랬다. 날이 차거나 긴장하면 그 자리가 먼저 말했다. 사부님이 마지막으로 손을 대신 곳이었다.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몰랐다. 화상인지, 다른 무엇인지. 삼 년 동안 그 자리를 남에게 보인 적이 없었다. 보이면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면 사부의 이름을 꺼내야 하니까.
지금 그 자리가 당기고 있었다. 마치 이 굴이, 이 이름이, 그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처럼.
굴 밖에서 백천리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소하야. 나와봐."
백천리가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 건 처음이었다. 담소하가 몸을 굽혀 입구로 나오자, 백천리는 굴 앞 낙엽 사이를 가리켰다.
발자국이었다. 크고 깊었다. 흑풍채 수하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크고, 훨씬 가벼웠다. 발뒤꿈치가 거의 눌리지 않은 자국이었다. 고수의 보법이었다. 담소하는 쪼그려 앉아 자국의 간격을 손으로 재봤다. 보폭이 넓었다. 서두르지 않았는데도 빠르게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발자국은 석굴 쪽이 아니라 정묵산 서쪽 능선을 향해 이어졌다. 담소하와 백천리가 온 방향과는 전혀 달랐다.
"먼저 온 자가 있었어. 흑풍채보다도."
백천리가 말했다. 담소하의 눈이 발자국을 따라 능선 위로 올라갔다. 능선 너머는 보이지 않았다. 소나무가 가렸다.
"그리고 이 발자국, 한 사람 것이 아니야. 두 사람."
담소하는 한참 그 방향을 봤다. 두 사람. 흑풍채보다 먼저, 이 굴을 알고 있었던 두 사람. 그중 하나가 위무강의 이름을 새겼거나, 아니면 그 이름을 보고 무언가를 가져갔거나. 어느 쪽이든 그들은 이미 능선을 넘었다. 담소하가 도착하기 전에.
바람이 소나무를 흔들었다. 바람 속에, 아주 희미하게, 불에 탄 종이 냄새가 섞여 있었다. 굴 안의 냄새가 아니었다. 능선 쪽에서 흘러오는 것이었다.
담소하는 천천히 일어섰다. 무릎의 흙을 털지 않았다. 발자국 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한 번 더 봤다. 그리고 백천리를 돌아봤다.
"따라갑니다."
백천리는 대답 대신 먼저 걸음을 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