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유리는 실험 명단을 의료 구역 안쪽 탁자에 펼치지 않았다. 이름과 기호가 함께 보이는 종이는 잠긴 보관함에 두고, 공개 작업실에는 줄 번호와 날짜만 옮긴 대조표를 놓았다. 명단을 본 적 있다는 이유로 사람의 몸을 설명할 권리가 생기지는 않았다.
지난번 발견한 열두 번째 줄의 임수아가 먼저 들어왔다. 그는 자기 이름이 관찰 목록에 있었다는 사실까지는 공동체에 알려도 좋지만, 당시 증상과 지금 먹는 약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리는 동의 범위를 대조표 첫 칸에 적었다.
수아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았느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날 받은 것은 눈 세척과 수분 보충, 호흡 관찰이었다. 손목띠 색과 명단의 삼각형 기호가 겹쳐 보인 탓에 누군가 예방 주사라고 단정했을 뿐이었다.
유리는 실험 명단의 기호를 네 칸으로 분리했다. 연구 참여 설명을 들은 사람, 어떤 처치를 받은 사람, 처치 없이 관찰만 한 사람, 현장 노출 진술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에게 여러 칸이 겹칠 수 있었고 빈칸은 거절인지 누락인지 알 수 없었다.
북서 의료소가 보낸 옛 약품 반출 기록에는 같은 날 소모된 주사기 수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줄의 사람에게 무엇을 썼는지는 연결되지 않았다. 수량이 맞는다는 이유로 명단 전원의 처치를 채워 넣을 수 없었다.
박선묵은 붉은 동그라미가 우선 투여를 뜻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유리는 그 말을 증언 칸에 넣고 기호 설명 칸에는 옮기지 않았다. 당시 현장 직원 두 사람의 기억이 다르고, 원래 범례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린은 관찰소 서버의 남은 색인에서 파일 이름만 복구했다. ‘초기 반응’, ‘대조군’, ‘추적 불가’라는 말이 있었지만 본문은 손상돼 있었다. 그는 파일 이름을 내용처럼 읽지 않고, 복구 가능한 영역과 손상된 영역을 따로 표시했다.
공개 회의에 참석한 주민은 백신이라는 말부터 물었다. 도시 방송이 한때 ‘긴급 대응 물질’이라 불렀고, 다른 방송은 ‘예방 접종’이라 불렀다. 용어가 바뀐 시점과 실제 처치의 성격을 구분해야 했다.
유리는 자신이 확인한 범위에서 일부 사람이 시험 단계의 예방적 처치를 받았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확한 제형과 배정표가 없고, 그 처치가 검은 분진이나 여러 증상을 막았다는 근거도 아직 없었다.
수아는 자신이 맞지 않은 것을 맞았다고 기록되는 순간, 지금의 기침까지 그 선택 탓으로 돌려진다고 했다. 반대로 맞았다고 믿는 사람은 도움을 덜 받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두 오해 모두 배급과 진료 접근을 해쳤다.
차유리는 의료 당번들에게 명단을 입소 분류에 사용하지 말라고 다시 알렸다. 현재 상태, 노출 가능성, 필요한 보조는 직접 확인하되 옛 줄 번호로 사람을 나누지 않았다. 과거 연구 참여 여부는 치료 순번의 자격증도 벌표도 아니었다.
세온은 명단을 전부 공개하면 숨은 사실이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공개의 비용을 설명했다. 이름과 증상이 함께 퍼지면 당사자는 다른 거점으로 이동하거나 물을 받는 순간에도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사실 확인은 신상 폭로와 같지 않았다.
대신 네 거점은 익명 통계를 만들기로 했다. 처치 확인, 미확인, 비처치 관찰, 노출 진술의 수를 세되 중복을 표시하고, 당사자가 원하면 자기 기록을 열람하고 정정 요청을 할 수 있게 했다.
임수아는 자기 줄에서 ‘접종 완료’라는 오래된 필기부터 지웠다. 정확히는 지우지 않고 취소선을 긋고 ‘근거 없음, 당사자 진술상 주사 처치 없음’이라고 적었다. 잘못된 기록이 있었던 사실까지 사라지지 않게 했다.
그 수정은 다른 사람들의 요청을 불러왔다. 한 남자는 처치를 받았지만 어떤 것인지 기억하지 못했고, 한 여성은 동의서를 읽지 못한 채 서명했다고 말했다. 유리는 같은 답으로 만들지 않고 각자의 불확실성을 그대로 남겼다.
박미숙은 명단 바깥에 있던 사람들의 기록도 살펴야 한다고 했다. 명단에 없다는 이유로 노출되지 않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면 또 다른 줄이 생길 수 있었다. 병원 접수와 현장 진술은 관찰 명단과 독립된 자료로 유지됐다.
북서 의료소의 권수진은 무전으로 증상 양상과 처치 기록을 비교할 때 필요한 최소 항목을 알려 줬다. 나이 전체나 가족관계를 모으지 않고, 시각 범위와 장소 유형, 처치 종류, 이후 관찰만 공유했다.
차유리는 간호사로서 기록 분리를 맡았다. 원인을 진단하거나 연구 결과를 확정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환경 담당과 의료소에 질문을 남기고, 급한 호흡 이상은 자료 작업보다 먼저 전문 인계하도록 했다.
오후에는 옛 냉장 보관함에서 빈 용기 상자 하나가 발견됐다. 주민 몇 명이 그것을 처치 물질의 증거라고 둘러쌌다. 유리는 제조 표찰과 보관 온도 기록을 확인하기 전에는 상자의 용도를 말할 수 없다고 막았다.
상자 안쪽 번호는 북서 의료소의 일반 염수 보관 목록과 일부 겹쳤다. 그것만으로 같은 물건이라는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포장 단위와 출고 날짜, 실제 수령 서명을 더 확인해야 했다.
저녁 대조 작업에서 중요한 차이가 드러났다. 처치를 받았다고 확인된 소수 중 초기 눈 자극이 덜했다고 적힌 사람이 있었지만, 호흡 증상은 있었고 차이도 일정하지 않았다. 처치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 증상이 가벼운 경우도 있었다.
세온은 그 결과를 ‘효과 있음’과 ‘효과 없음’ 두 칸으로 나누지 않았다. 확인 수가 적고 노출 강도를 모르는 상태라는 주석을 앞에 붙였다. 수치가 작다는 것은 사람의 경험이 하찮다는 뜻이 아니라 결론의 범위가 좁다는 뜻이었다.
하린은 공개본에 원자료로 돌아갈 길을 달았다. 각 익명 줄이 어느 봉인 문서와 연결되는지 해시와 보관 위치를 기록했다. 누군가 표를 고쳐도 원본과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아는 마지막으로 자기 줄을 읽었다. 이름 공개 동의, 처치 없음 진술, 당시 눈 세척 확인, 현재 증상 비공개가 서로 다른 칸에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 기록이 자신보다 앞서 걸어 다니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명단 바깥에서는 저녁 배급 줄이 시작됐다. 예전 같으면 삼각형이나 붉은 동그라미가 있는 사람을 따로 세웠을지도 몰랐다. 그날 줄은 필요한 이동 보조와 식사 형태에 따라 나뉘었고 관찰 목록의 색은 쓰이지 않았다.
박선묵은 자신이 기호의 뜻을 더 알고 있을 수 있다고 다시 말했다. 유리는 기억을 적어 주되 다른 자료와 대조될 때까지 범례로 쓰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에게 말할 기회는 있었지만 빈칸을 채울 권한은 없었다.
밤 공개 방송은 결론보다 정정을 먼저 읽었다. ‘관찰 명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치를 받았거나 특정 물질에 노출됐다고 볼 수 없다.’ 이어 당사자 열람권과 기록 정정 절차, 의료 도움을 요청할 연락 순서가 나왔다.
누군가는 답이 더 멀어졌다고 투덜댔다. 차유리는 섞였던 질문을 갈라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무엇을 받았는지, 무엇에 노출됐는지,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를 따로 보아야 잘못된 사람을 치료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
임수아는 돌아가기 전 자신의 공개 동의 시각을 직접 적었다. 그 작은 서명은 실험 결과의 증거가 아니었다. 다만 재난 뒤에도 자기 몸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말할지 스스로 고를 수 있다는, 사라지지 않아야 할 증거였다.
유리는 실험 명단을 다시 잠갔다. 잠금은 은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동의한 범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다음 날에는 처치 결과와 분진 노출을 비교하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이름표가 되지 않게 할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