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북문 앞에 식량 수레 두 대가 멈춘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덮개 틈으로 마른 콩 자루와 식용 기름 통이 보였고, 뒤편 썰매에는 연료통 세 개가 묶여 있었다.
수레 곁에는 열한 사람이 서 있었다. 네 사람은 긴 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고 두 사람은 칼집을 허리에 찼다. 총구가 문을 향하지 않았어도 망루의 손은 경보 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선두에 선 여자가 흰 천을 들어 보였다. 자신들은 남쪽 도로 터널에서 왔고, 식량과 연료를 정수 필터와 해열제, 바늘과 실로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북문 안에서는 당장 문을 열자는 목소리와 아무 대답도 하지 말자는 목소리가 함께 나왔다. 배급창고의 곡물은 열이틀치 기준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약품은 내줄 수량부터 확실하지 않았다.
강태민은 총을 들고 문밖으로 나가자는 제안을 막았다. 무장한 상대를 보았다는 사실과 싸워야 한다는 결론은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필요한 물자가 보인다는 이유로 경계를 지울 수도 없었다.
그는 먼저 성벽 방송으로 세 가지를 물었다. 물자의 출처, 함께 온 전체 인원, 교환 뒤 돌아갈 경로였다. 여자는 터널 인근 폐물류소에서 공동으로 회수했고, 뒤에 기다리는 사람은 스물일곱 명이며 서쪽 우회로로 돌아간다고 답했다.
민세온은 답을 곧바로 믿음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상대가 말한 내용과 아직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두 칸으로 나눴다. 숨은 인원이 없다는 보장도, 물류소의 물건이 누구 소유였다는 증명도 없었다.
은별은 문을 여는 대신 북문 바깥 옛 검문대를 중립 교환장으로 쓰자고 제안했다. 안쪽 거주 구역과 떨어져 있고 두 방향으로 빠질 수 있으며, 망루에서도 바닥 전체가 보이는 곳이었다.
조건은 양쪽에 같게 걸렸다. 교환장에는 대표 두 명과 검사 담당 두 명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표시선 밖에서 기다렸다. 무기는 빼앗지 않되 표시선 안에서는 어깨에 고정하고 손을 대지 않았다.
외부 여자는 먼저 안전지대도 무기를 들고 나오지 말라고 요구했다. 태민은 경계조가 망루에 남되 교환장 바닥에는 무장 인원을 보내지 않겠다고 답했다. 보이지 않는 우위를 숨기지 않고 위치와 역할을 알렸다.
서로의 퇴로도 지도 위에 따로 그렸다. 외부인은 서쪽 길, 안전지대 검사조는 동쪽 작은 문으로 물러났다. 협상이 깨져도 한쪽이 다른 쪽의 출구를 지나지 않게 했다.
첫 수레는 외부인이 검문대 중앙까지 밀어 놓고 표시선 밖으로 물러났다. 태민과 정윤호는 덮개를 열기 전에 바퀴 아래와 상자 사이, 바닥의 줄을 확인했다. 함정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고 손댈 순서를 합의했다.
콩 자루는 겉이 말랐지만 가운데 하나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조리조는 작은 표본을 떠 색과 냄새, 벌레 흔적을 확인하고 그 자루를 교환량에서 뺐다. 외부 대표도 봉합선을 직접 보고 이의를 적었다.
기름 통에는 제조 표찰이 없었다. 내용물을 모두 식용이라고 부를 수 없어 한 통만 소량 가열 시험으로 넘겼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다른 두 통은 봉인한 채 어느 쪽도 가져가지 않았다.
연료는 도혁이 휴대 측정기와 냄새, 침전물을 확인했다. 발전기에 바로 붓지 않고 소형 시험 장치에서 태웠다. 검은 연기가 예상보다 많이 나와 실내 난방용이 아니라 외부 조리용 후보로만 적혔다.
안전지대가 내놓을 필터도 같은 검사를 받았다. 사용하지 않은 필터 여덟 개로 알려졌지만 포장 두 개는 습기를 먹어 밀봉이 약해져 있었다. 정상 후보 여섯 개와 재검사 두 개로 나눴다.
약품은 차유리가 품목명과 남은 수량, 보관 상태를 봤다. 상대가 해열제라고 부른 요구를 증상 해결 약속으로 바꾸지 않았다. 안전지대 내부 수요를 뺀 뒤 내줄 수 있는 기본 의약품 수량만 공개했다.
바늘과 실은 의료용과 수선용을 구분했다. 의료 포장이 훼손된 것은 치료용으로 건네지 않았고, 수선 가능 물품은 용도를 크게 표시했다. 부족하다는 말이 물건의 상태를 좋게 만들지는 않았다.
협상 중 표시선 밖의 젊은 남자가 총끈을 고치려 손을 들었다. 망루에서 경보 줄이 당겨졌고 검문대 안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말이 끊겼다.
태민은 달려들지 않고 미리 정한 정지 신호를 세 번 울렸다. 양쪽 대표가 손을 보이는 위치로 옮기고, 젊은 남자는 총에 손을 댄 이유를 큰 소리로 설명했다. 총은 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동료가 끈을 대신 묶었다.
정지 신호 뒤에는 바로 협상을 재개하지 않았다. 서로 다친 사람이 없는지, 표시선을 넘은 사람이 없는지, 망루가 표적을 바꿨는지를 각자 확인했다. 멈춤은 겁을 주는 시간이 아니라 오해가 폭력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절차였다.
외부 대표는 자기들이 식량을 먼저 보여 줬으니 필터를 전부 내놓으라고 했다. 세온은 검사된 양과 안전지대의 최소 잔량을 기준으로 여섯 개 가운데 세 개만 교환할 수 있다고 답했다.
대신 안전지대는 수선용 바늘과 실, 기본 의약품 일부, 다음 물 검사법을 적은 그림표를 더했다. 그림표는 물건 가격으로 세지 않고 양쪽이 같은 검사 순서를 쓰기 위한 자료로 복제했다.
외부인은 콩 네 자루와 외부 조리용 연료 두 통을 제시했다. 곰팡이 의심 자루와 미확정 기름은 제외하고, 정상 후보 필터 세 개와 수선 꾸러미, 합의된 의약품을 받기로 했다.
교환품은 한꺼번에 손에서 손으로 넘기지 않았다. 빈 중앙 칸에 양쪽 물건을 놓고 수량과 봉인 번호를 함께 읽은 뒤, 각자 자기 쪽 통로로 물러나 상대 물건을 가져갔다.
은별은 외부인 가운데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대표는 두 사람이 숫자 표찰을 헷갈린다고 답했다. 봉인 번호를 소리 내 읽고 모양 표식도 붙여, 대표의 말만으로 거래 결과가 닫히지 않게 했다.
콩 네 자루가 북문 안으로 들어왔지만 바로 배급창고 재고가 되지는 않았다. 별도 선반에서 다시 표본을 보고 조리 시험을 거쳐야 했다. 부족한 겨울일수록 들어온 물건에 ‘안전’이라는 이름을 성급히 붙이지 않았다.
외부 대표도 필터 하나를 즉시 사용하지 않고 그림표대로 밀봉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다음 접촉 때 사용 결과와 막힘 시간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성공담 대신 서로 고칠 수 있는 관찰값을 약속했다.
태민은 떠나는 사람들의 등을 보며 숫자를 다시 셌다. 열한 명이 왔고 열한 명이 서쪽 우회로로 나갔다. 그 사실은 뒤에 스물일곱 명이 있다는 주장까지 증명하지는 않았다.
세온은 교환 기록에 상대 이름 대신 스스로 고른 대표 호칭과 거점, 가져온 물자의 출처 주장, 검사 결과, 중단 신호를 남겼다. 무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전부 도적으로 묶지 않았고 식량을 주었다는 이유로 동맹으로 부르지도 않았다.
북문 주민들은 왜 필요한 식량을 더 받아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은별은 상대에게도 돌아갈 사람이 있고, 협상을 궁핍의 시험으로 만들면 다음에는 더 많은 무기만 온다고 답했다.
교환장 바닥에는 두 갈래 발자국이 남았다. 어느 쪽도 상대의 출구를 밟지 않았고, 중앙 칸에만 수레 자국이 겹쳤다. 태민은 그 겹친 자리의 폭을 다음 접촉 전까지 더 넓히자고 적었다.
밤 방송은 식량 수레가 왔다는 소식보다 검사 중인 양과 아직 배급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알렸다. 사람들은 굶주림을 숨기지 않았지만, 굶주림을 핑계로 확인과 선택을 생략하지도 않았다.
닫힌 문은 끝내 거주 구역까지 열리지 않았다. 다만 문밖에는 싸우지 않고도 물건과 질문을 건넬 수 있는 작은 장소가 생겼다. 강태민은 망루 교대를 넘기며 다음에는 상대편 중단 신호도 먼저 물어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