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의 사표는 금요일 오후 다섯 시 사십 분에 접수됐다. 감독기관은 퇴근 시각 직전 보도자료를 냈다. ‘태성 관련 업무를 부적절하게 처리한 실무 책임자가 자진 사퇴했다.’ 네 줄짜리 문서에는 상급 결재선도 조사 중이라는 사실도 없었다.
윤해진은 수현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보호 담당자를 통해 연락 동의를 확인했다. 수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노조 동행인이 짧게 전했다. 인사위원회 출석을 앞두고 사직하면 징계를 면하게 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한이겸은 보도자료의 ‘자진’이라는 단어에 선을 그었다. 사표 원본에는 개인 사유라고만 적혀 있었다. 자진 여부를 판단하려면 제출 전후의 면담과 선택지를 봐야 했다.
독립 조사 기구는 기관에 인사 면담 기록을 보존하라고 통지했다. 기관은 정식 녹취가 없고 인사 담당자의 업무 메모만 있다고 답했다. 메모에는 ‘사직 의사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빠져 있었다.
해진은 수현을 다시 면담하되 태성 사건 진술과 인사 압박을 분리했다. 수현은 과장이 사표 양식을 책상 위에 놓고 “조직을 위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사직하지 않으면 중징계와 손해배상 검토가 이어질 거라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기관 과장은 강요를 부인했다. 수현이 스스로 지쳤다며 양식을 달라고 했고, 자신은 절차를 안내했을 뿐이라고 했다. 말은 정면으로 갈렸다.
민가온은 두 사람의 출입 기록과 문서 시각을 맞췄다. 사표 양식 파일은 수현이 인사실에 들어가기 세 시간 전 과장 계정에서 내려받아졌다. ‘요청에 따른 준비’라는 해명은 시간 순서와 맞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 강요가 완성되지는 않았다. 과장은 조직 개편에 대비해 미리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해진은 다른 직원의 양식도 같은 날 내려받았는지 물었다. 기록에는 수현 이름의 파일만 있었다.
조사팀은 사표를 철회하라고 대신 결정하지 않았다. 수현이 돌아가고 싶은지, 징계 절차를 계속 받을 의사가 있는지부터 독립 상담을 받게 했다. 그의 선택을 또 다른 조직 명분으로 덮지 않기 위해서였다.
수현은 사표를 낸 가장 큰 이유가 가족의 피로라고 말했다. 집 앞에 기자가 기다렸고 자녀 학교에도 문의가 갔다. 사표를 취소하면 그 시간이 더 길어질까 두려웠다.
해진은 그의 사직을 영웅적 희생으로 만들지 않았다. 신원 노출 대응과 법률 지원, 임시 생계 지원의 근거를 안내하고, 어느 선택을 해도 기존 진술 보호가 유지된다는 확인서를 줬다.
한편 기관은 내부 조사 결과 초안을 공개했다. 수현이 보완 요청을 늦게 보냈고 위험 보고를 외부 채널에 올리지 않았다는 두 가지 잘못이 적혀 있었다. 국장과 과장의 역할은 ‘관리 감독 미흡’ 한 줄이었다.
이겸은 일정 변경표를 다시 펼쳤다. 수현은 초안을 두 번 제때 올렸고 과장이 반려했다. 현장 검사 인력은 국장 승인 뒤 다른 사건으로 옮겨졌다. 외부 채널은 부서장에게 자동 통지돼 실제 독립 경로가 아니었다.
“수현 씨에게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가면 안 됩니다.” 해진이 말했다. “위험을 알면서 우회 보존 요청을 찾지 않은 선택은 남겨야 해요. 다만 그 선택이 최종 보류 결정은 아니죠.”
팀은 행위표를 네 줄로 만들었다. 초안 상신, 반려, 인력 재배치, 외부 신고 미사용. 각 행위의 권한자와 가능한 대안, 당시 제약을 따로 적었다.
과장은 구두 회의에서 국장에게 검사 연기를 제안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유는 정책 발표와 시장 충격이었다. 김태욱의 의견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상부 회의의 내용은 여전히 확인 중이었다.
가온은 국장 계정의 상부 열람 기록을 찾았다. 태성 위험 보고서가 회의 전날 밤 열렸고, 다음 날 아침 다시 출력됐다. 국장이 위험을 몰랐다는 해명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웠다.
국장은 직접 열지 않았고 비서가 출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비서는 국장의 지시로 출력해 회의 책상에 놓았다고 진술했다. 자료를 읽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접근 기회와 전달은 확인됐다.
독립 조사 기구는 기관에 보도자료 정정을 요구했다. 수현을 실무 책임자라고 단독 지칭한 근거가 부족하고, 보류 권한은 상급 결재선에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기관은 처음에는 조직 신뢰를 이유로 거부했다.
해진은 공개된 일정표와 권한표를 기자들에게 그대로 제공했다. 자극적인 개인 폭로가 아니라 누가 어떤 버튼을 누를 수 있었는지 보여 주는 표였다. 여론은 서서히 ‘사표로 끝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기관 감사위원 한 명이 비공개로 연락해 왔다. 그는 수현 사직을 먼저 발표하면 고위자 청문 전에 책임 수습 인상을 줄 수 있다는 회의 발언을 들었다고 했다. 해진은 익명 진술만으로 쓰지 않고 해당 회의록과 참석자 확인을 요청했다.
회의는 공식 기록이 없었지만 회의실 예약과 참석자 일정은 남아 있었다. 참석자 둘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들었다고 확인했다. 정확한 문구는 달랐으므로 ‘사직 발표를 조직 대응 수단으로 논의함’이라고 범위를 좁혔다.
수현은 정정 보도 전날 사표 철회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관은 규정에 없다고 거부했다. 외부 변호사는 강요 가능성이 조사 중인 경우 처리를 보류할 수 있다는 일반 행정 원칙을 제시했다.
독립 조사 기구가 임시 보류 결정을 내렸다. 수현은 당장 복귀하지 않았고 급여와 출입 권한도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만 사직이 확정돼 보호가 끊기는 일은 막혔다.
그 사이 수현은 자기 진술서를 또 고쳤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변호인의 초안 문구를 지우고, 외부 신고를 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을 남겼다. 그는 희생양이 되기를 거부하면서 책임 없는 피해자 역할도 거부했다.
이겸은 그 문장을 읽으며 박시우와 강승표를 떠올렸다. 과거에는 사람을 배신자와 증인 중 하나로 세웠다. 지금 수현은 압박받았고, 실수했고, 상급 결정에 이용된 한 사람으로 동시에 기록됐다.
기관은 결국 보도자료를 수정했다. ‘실무 책임자 자진 사퇴’는 ‘중간 담당자의 사직 의사와 인사 과정의 적정성을 조사 중’으로 바뀌었다. 국장·과장의 결정 책임도 독립 조사 대상이라고 명시됐다.
정정문은 첫 보도자료와 같은 위치와 글자 크기로 게시됐다. 기관은 처음에 정정 링크만 붙이려 했지만, 해진은 잘못된 낙인이 퍼진 만큼 정정도 같은 가시성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현의 이름은 두 문서 모두에서 가려졌다.
수현은 사표를 즉시 철회하지 않았다. 그는 한 달 휴직 뒤 복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조사팀은 그 선택을 성공의 증거로 이용하지 않고 보호 계획과 연락 중단 시간을 지켰다.
해진은 사표 원본을 인사 사건철에 넣었다. 취소 도장도 수리 도장도 찍지 않았다. 그 종이는 아직 당사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태였다.
한이겸은 벽의 날짜표에 새 칸을 더했다. ‘사건 뒤 기관의 책임 배분.’ 수사를 늦춘 행위만큼, 조사 뒤 누구에게 책임을 몰았는지도 공적 검증의 일부였다.
월요일 아침 수현의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이름표는 치워지지 않았다. 과장과 국장의 면담 일정이 각각 잡혔다. 중간 공무원 한 사람의 사표로 닫히려던 문은, 상부의 열람과 결정 기록을 향해 다시 열렸다.
해진은 그날의 회의에서 누구도 수현을 영웅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건 이야기에 맞는 사람 하나가 아니라, 각 사람이 한 선택과 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회의록 마지막 줄에는 그 원칙과 함께 다음 보호 심사 날짜가 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