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검증 보고서의 결론 회의는 오전 아홉 시에 시작됐다. 한이겸은 밤새 다듬은 문장을 화면 맨 위에 띄웠다. ‘복수 기관의 동시 지연은 태성 측의 조직적 로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방 안의 누구도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윤해진은 인쇄본 여백에 선을 하나 그었다. 문장 끝까지 길게 이어진 선이었다. “저는 여기에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다온이 안경을 벗어 책상에 놓았다. 가온은 화면의 변경 기록을 켰다. 이겸은 이유를 묻기 전에 자기 손에 들린 펜부터 내려놓았다. 해진의 거부를 설득할 대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작은 준비였다.
“같은 시기에 보류됐고 같은 재단 사람이 양쪽 기관을 만났어요.” 이겸이 말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연결이 많습니다.”
해진은 자료 번호를 차례로 읽었다. 재단 행사 참석 명단, 감독기관의 보류 공문, 수사기관의 보완 요구, 전직 관료의 일정표. “시간이 겹치는 건 맞아요. 하지만 누가 어떤 요구를 했고 결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아직 없습니다. 가능성을 결론에 쓰면 뒤의 조사는 그 말을 증명하는 방향으로만 갑니다.”
그 말은 이겸이 가장 경계한다고 공언해 온 오류를 정확히 찔렀다. 첫 생의 기억으로 빈칸을 먼저 채우고 현재 자료를 거기에 끼워 맞추던 습관. 그는 창밖을 보지 않고 화면을 계속 바라봤다.
“그럼 아무 판단도 하지 말자는 겁니까?” 위원회 파견 실무자가 물었다. “기관 두 곳이 동시에 늦었고 재단 접촉도 있는데, 보고서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겁니다.”
해진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확인된 사실을 모두 씁니다. 동시 지연과 접촉 중첩도 씁니다. 다만 그것이 하나의 지시로 연결됐다고 아직 단정하지 않는다고 쓰자는 겁니다. 비판받지 않기 위해 결론을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이겸은 문장을 둘로 나눴다. 첫 문장에는 확인된 중첩을 적고, 둘째 문장에는 추가 독립 조사가 필요하다고 썼다. 그러나 ‘조직적 로비 가능성’이라는 표현은 남겼다. 그에게는 의심의 핵심을 숨기는 것도 책임 회피처럼 느껴졌다.
해진은 수정본을 읽고도 서명란을 비워 두었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제목처럼 작동합니다. 사람들은 그 뒤의 제한 문장을 읽지 않을 겁니다.”
회의는 두 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다온은 중재안을 내지 않고 법적 효과만 설명했다. 해당 문구가 들어가면 조사 대상자에게 소명 기회를 먼저 줘야 하고, 보고서 발표도 늦어질 수 있었다. 빼면 의혹 은폐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가온은 검색 화면을 돌려 현재 원본에 ‘로비’, ‘대가’, ‘보류 요청’이라는 직접 표현이 있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없었다. 대신 ‘일정 조정’, ‘정책 의견 전달’, ‘기관 간 협의 대기’ 같은 표현이 반복됐다. 그것들은 책임을 숨기는 말일 수도, 실제 행정 용어일 수도 있었다.
점심때가 지나자 다른 위원들은 자리를 비웠다. 이겸과 해진만 긴 탁자 양끝에 남았다. 예전 같으면 이겸은 자기 기억에 있는 결과를 말해 해진을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에는 이 조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해진이 먼저 말했다. “우리가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 차이를 보고서가 지켜야 해요.”
“내가 또 앞서 갔군요.”
“앞서 갈 수는 있어요. 다만 혼자 쓴 결론에 모두의 서명을 요구하면 안 되죠.”
이겸은 자신이 작성한 문장 옆에 작성자 의견 표시를 붙였다. 본문 결론에서는 삭제하되, 별도 검토 의견에 ‘한이겸은 중첩 정황이 조직적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조사할 충분한 사유라고 판단함’이라고 남겼다. 해진의 반대 이유도 바로 아래 같은 분량으로 실었다.
위원회 실무자는 의견이 갈린 보고서를 내면 신뢰가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해진은 오히려 신뢰의 근거를 설명했다. 사실 합의와 해석 이견을 섞지 않았다는 것, 이후 조사자가 두 판단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독립 위원은 두 사람에게 각각 질문했다. 이겸에게는 어떤 추가 자료가 나오면 판단을 철회할 것인지, 해진에게는 어떤 자료가 나오면 로비 조사로 넘어갈 것인지를 물었다. 두 사람은 중단 조건과 전환 조건을 문서로 썼다.
이겸은 재단 접촉과 보류 결정 사이에 독립적인 정책 사유가 확인되면 조직성 판단을 철회하겠다고 적었다. 해진은 구체적 요청, 보고 누락 지시, 대가 약속 중 하나가 현재 기록으로 연결되면 영향력 행사 조사에 동의하겠다고 적었다.
그제야 논쟁이 사람 사이의 신뢰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조건으로 옮겨갔다. 다온은 두 조건이 법적 조사 범위를 넘지 않는지 확인했고, 가온은 필요한 자료 목록을 작성했다. 보고서는 결론을 덜 가진 대신 다음 질문을 더 정확히 갖게 됐다.
최종 서명 시간, 해진은 사실 확인 부분과 조사 필요성 부분에 이름을 썼다. ‘조직적 로비 가능성’ 별도 의견란에는 서명하지 않고 이견 표시를 남겼다. 이겸은 그 빈칸을 채워 달라고 말하지 않았다.
발표 직후 기사 제목은 예상대로 ‘감사팀 내부 충돌’이었다. 회사 홍보실은 공동 입장문으로 불화를 부인하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거절했다. 대신 합의한 사실과 갈린 판단을 각각 한 문장으로 공개했다.
직원 게시판에는 해진이 팀을 떠나는 것이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해진은 “떠나지 않습니다. 서명하지 않은 문장과 함께 조사합니다”라고 답했다. 그 짧은 답변 아래에 가온과 다온도 확인 표시를 남겼다.
그날 오후 위원회는 추가 자료 요청서 초안을 보내왔다. 이겸의 별도 의견을 근거로 재단 관계자의 접촉 기록 전부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해진은 ‘전부’라는 단어에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정책 자문과 무관한 가족 일정까지 포함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겸이 먼저 범위를 줄였다. 보류 결정 전후의 공식 비용, 안건, 업무 연락만 요청하고 사적 일정은 제외했다. 자신의 의심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자료 최소화 원칙보다 앞서지 않게 했다.
위원회 실무자는 두 사람이 합의를 번복했다고 불평했다. 다온은 합의가 아니라 요청 범위의 재검토라고 정정했다. 조사 결론이 갈렸어도 법적 한계는 함께 지킬 수 있었다.
해진은 변경 사유서에 자기 이름을 쓰고 이겸에게 넘겼다. 이겸도 같은 문서에 서명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놓였지만, 그것은 의견이 같아졌다는 표시가 아니라 의견과 무관하게 지켜야 할 선을 합의했다는 뜻이었다.
가온은 두 조건표를 조사 대시보드에 붙였다. 자료가 들어올 때마다 이겸의 전환 조건과 해진의 전환 조건 중 무엇이 충족됐는지 각각 표시되도록 했다. 어느 판단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슬쩍 바뀔 수 없었다.
며칠 뒤 해진은 자기 책상에서 보고서 초안의 처음 인쇄본을 발견했다. 자신이 그은 긴 선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버리지 않고 이견 기록철에 넣었다. 서명하지 않은 결론도 훗날 책임을 묻는 원본이 될 수 있었다.
늦은 오후, 이겸은 보고서 원본의 서명 페이지를 기록실에 넘겼다. 빈칸이 있는 문서는 미완성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 빈칸을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누군가의 확신이 공동 사실로 둔갑하지 못하게 막은 살아 있는 통제였다.
해진은 문을 닫기 전에 말했다. “나중에 증거가 나오면 제가 틀렸다고 적겠습니다.”
이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오지 않으면 내가 앞섰다고 적죠.”
두 사람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같은 결론을 들고 있지는 않았다. 층수 표시가 하나씩 내려가는 동안 아무도 화해를 연기하지 않았다. 함께 일한다는 것은 똑같이 믿는 일이 아니라, 이견이 증거보다 먼저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