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뒤 월요일, 한이겸은 처음으로 조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사받는 자리에 앉았다. 외부 위원 세 명이 감사팀의 사건 처리 기록을 펼쳐 놓았다. 장승민과 차준석을 잡은 성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감사팀이 사람과 정보를 어떻게 다뤘는지가 심사 대상이었다.
첫 질문은 박시우를 봉투의 이동 경로에 그대로 두었던 판단이었다. 이겸은 위험을 예상했고도 반응을 보기 위해 즉시 중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더 큰 사슬을 확인했어도 그 판단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시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보 가능성이 있는 사람부터 보호 담당자에게 넘기고, 물건의 이동은 통제된 대체물과 승인된 관찰로 확인하겠습니다. 당사자의 모르는 위험을 조사 수단으로 쓰지 않겠습니다.”
윤해진은 이겸과 별도로 진술했다. 이겸이 회귀 기억을 근거처럼 취급해 조회 순서를 독점했고, 자신과 민가온에게 자료를 늦게 알린 사례를 제출했다.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남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 문제를 지우지 않았다.
민가온도 자기 보류 보고서를 늦게 공개한 책임을 적었다. 서다온은 외부 조력자인 자신에게까지 자료가 집중됐던 구간을 지적했다. 조사팀 누구도 ‘좋은 편’이라는 이유로 검토표 밖에 남지 않았다.
외부 위원회는 이겸에게 서면 경고와 조사 지휘 교육을 명령했다. 감사팀에는 단독 조회 지시, 비공식 미끼 운용, 개인 수첩에 원본 정보를 보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시정 조치가 내려졌다. 이겸은 이의 신청을 하지 않고 결정문에 수령 서명을 했다.
“억울하지 않습니까?” 복도에서 강인호가 물었다. 그는 감사 지휘 권한을 잃고 인사위원회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겸은 결정문을 접지 않았다. “책임을 묻는 규칙이 나만 피해 가면, 우리가 만든 결론도 오래 못 갑니다.”
그날 오후 이사회는 상설 통제 개편안을 의결했다. 감사 책임자는 전략실이나 계열사 대표에게 우회 보고하지 않고 독립 감사위원회에 직접 보고하게 됐다. 이해충돌이 있는 책임자는 사건 배정과 결재에서 자동 제외됐다.
공용 계정은 모두 폐기됐다. 업무마다 실명 계정과 추가 인증을 사용하고, 권한 대여는 허용되지 않았다. 외부 보관함은 공동 승인 구조를 유지하되 두 인증 조각 모두 실제 사용자 이름과 사용 이유가 남도록 바뀌었다. Joint Key 같은 이름 없는 자격은 다시 발급할 수 없었다.
노동자 대표는 새 감시 체계가 직원의 모든 행동을 들여다보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이겸은 보안이라는 말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기록 대상을 사건 자료의 열람·변경·반출과 고위험 결재로 한정하고, 개인 메일 내용이나 근무 외 이동은 수집하지 않는다는 제한을 규정에 넣었다.
열람 로그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제한됐다. 조사 필요가 생기면 보호 위원과 독립 감사위원의 공동 승인을 받고, 조회 대상 직원에게 사후 통지하는 원칙을 세웠다. 제보자 신원을 가릴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통지 유예 사유와 종료일을 별도 위원이 검토했다.
첫 시범 운영에서는 경고가 지나치게 많이 울렸다. 정상적인 대용량 감사 파일 복사까지 이상 반출로 잡혀 직원들이 업무를 멈췄다. 가온은 경고를 꺼 버리지 않고 승인된 사건 번호와 보존 목적을 함께 확인하도록 기준을 고쳤다. 일주일 뒤 오탐은 줄었지만 무기명 접근 경고는 그대로 남았다.
해진은 분기 공개 보고서의 범위도 직원 대표와 정했다. 개인 이름과 제보 내용은 가리고, 접근 위반 건수, 처리 기간, 보호 조치, 미종결 사유만 공개했다. 감시하는 조직이 무엇을 수집하고 어떻게 잘못을 고쳤는지 구성원이 다시 감시할 수 있어야 했다.
가온은 새 원본 보존 화면을 시연했다. 사건 파일은 감사위원회, 외부 보관기관, 감독기관 제출본의 해시값을 자동 대조했다. 값이 달라지거나 보존 기한이 바뀌면 세 기관에 동시에 경고가 갔다. 어느 한 관리자가 경고를 지우는 기능은 없었다.
해진은 제보자 보호 절차를 맡았다. 제보 접수와 사실 조사를 서로 다른 담당자가 수행하고, 조사 성과 평가에 제보자 동원 여부를 넣지 않았다. 인사 불이익 신고는 감사팀 바깥의 보호 위원이 받고, 면담 거부와 법률 조력권을 첫 안내문에 적었다.
박시우는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인사평가에는 봉투 사건이 불이익으로 반영되지 않았고, 본인이 원할 때만 후속 면담에 참여했다. 강승표는 보호 아래 진술을 이어 가면서 자신이 한 위조와 문서 이동에 대한 인사 절차도 받았다. 협조와 압박은 참작됐지만 행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특별감사 최종보고도 확정됐다. 차준석은 이사회와 주주 절차를 거쳐 경영 직위에서 해임됐고, 장승민은 징계 해임됐다. 오재훈과 강인호에게는 각자의 예외 결재와 묵인 범위에 따른 징계가 내려졌다. 이재필, 최덕선, 박이연의 명의·운용 행위는 원본 목록과 함께 수사기관에 이첩됐다.
수사기관은 차준석과 장승민을 자금 유용, 감사 방해, 증거 훼손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다른 관련자들은 확인된 행위에 따라 기소, 참고인, 보호 협조자로 나뉘었다. 회사 보고서는 법원의 판단을 앞질러 유죄라고 쓰지 않았고, 내부 권한 책임과 형사 판단의 단계를 구분했다.
임직원에게 공개된 요약 보고서에는 자극적인 계좌 그림 대신 여섯 칸 책임 표가 실렸다. 어느 원본이 어느 결론을 뒷받침하는지, 반론은 무엇이었고 왜 받아들이거나 배척했는지 적혀 있었다. 가린 부분의 사유와 해제 예정일도 함께 공개됐다.
첫 정기 점검 날, 외부 위원은 감사팀에 예고 없이 공동 보관함 파일 하나를 꺼내 보라고 했다. 이겸은 자기 권한만으로 열 수 없었다. 해진의 조사 승인과 외부 보관 담당자의 인증이 함께 들어간 뒤에야 화면이 열렸다. 누가 언제 왜 열었는지가 즉시 기록됐다.
“불편하죠?” 외부 위원이 물었다.
가온이 먼저 웃었다. “불편해야 정상인 자료도 있습니다.”
이겸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의 그는 빠른 접근을 힘이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느린 승인과 남는 흔적이 사람을 지키는 힘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제약은 자신을 못 믿어서 만든 족쇄가 아니라, 누구도 혼자 정의가 되지 못하게 하는 난간이었다.
해진은 정기 점검 결과를 사내 게시판에 올렸다. 원본 불일치 없음, 무기명 접근 없음, 제보자 불이익 신고 한 건 조사 중. 조사 중인 항목에는 담당자와 종료 예정일이 붙었다. 작은 문제도 종결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게 했다.
퇴근 전 이겸은 서면 경고 결정문을 개인 서랍이 아니라 팀 시정 기록철에 넣었다. 후임자가 자신들의 성공만이 아니라 잘못도 읽게 하기 위해서였다. 해진은 기록철 표지에 ‘감사팀 자체 점검’이라고 썼다.
회의실 불이 꺼진 뒤에도 보존 화면의 초록 불은 남았다. 그것은 누군가를 몰래 지켜보는 감시가 아니었다. 권한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되묻는 기록이었다. 복수는 끝날 수 있었지만, 책임을 확인하는 절차는 끝나지 않아야 했다.
외부 위원은 반년 뒤 같은 항목을 다시 확인할 날짜를 달력에 등록했다. 제도가 시행 첫날만 반짝이지 않도록 담당자가 바뀌어도 점검 일정과 미이행 사유가 이어졌다. 이겸은 완료 도장을 찍는 대신 첫 후속 점검의 책임자를 해진과 함께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