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희가 처음 내놓은 재건 도면에는 로비 중앙이 비어 있었다. 예전 꽃 테이블도, 긴 소파도, 호텔 역사를 담은 사진 벽도 없었다. 직원들은 아직 가구를 그리지 않은 초안이라고 생각했다.
소희는 빈 공간 자체가 설계라고 설명했다. 화재 때 여행 가방과 대기 줄이 계단 접근을 좁혔고, 평소 장식이 피난 경로를 고정했다. 로비 중앙의 대피 폭을 항상 비워 둘 필요가 있었다.
대피 시뮬레이션은 휠체어 두 대와 유아차, 큰 가방을 동시에 넣었다. 법적 최소 폭은 통과했지만 사람들이 방향을 바꿀 때 병목이 생겼다. 소희는 폭을 더 넓혔다.
객실 수를 줄인 층의 복도도 다시 설계했다. 무장애 이동 경로와 직원 주거 출입이 겹치지 않게 했고, 비상시에는 양쪽 문이 자동으로 열리되 평소 사생활은 분리했다.
시설팀은 자동문이 전원 상실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 물었다. 수동 개방 힘과 손잡이 높이를 실제 사용자와 시험했다. 고급 장치가 있어도 전원이 끊긴 상황을 기준으로 봤다.
한 장기투숙객은 빈 로비가 차갑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소희는 안전을 이유로 모든 머묾을 없애지 않았다. 벽 쪽에 이동 가능한 작은 좌석과 손잡이를 두되 중앙 동선 밖에 배치했다.
꽃 장식은 낮은 벽면 선반으로 옮겼다. 화분이 넘어져 통로를 막지 않도록 고정했고, 계절 조달망 업체들과 물 공급·관리 노동을 다시 계산했다.
지역 행사 공간은 로비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작은 강연과 공연을 열 수 있지만 비상시 집결지와 물품 배분 공간으로 바뀌도록 이동식 설비를 썼다.
공연팀은 이동식 의자가 불편하다고 했다. 소희는 안전만 말하며 무시하지 않고 보관 속도와 착석 편의를 비교한 새 제품을 시험했다.
직원들은 임시 프런트 경험을 반영해 상담석 두 곳을 분리해 달라고 했다. 고객 소지품과 건강 이야기가 공개되지 않도록 가림과 음향을 설계했다.
장지민은 옛 사진 벽을 완전히 없애면 역사를 지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희는 사진을 이동 기록 서가로 옮기고, 전시 기간과 설명을 바꿀 수 있게 했다. 역사를 통로보다 앞에 두지 않았다.
윤종필의 사진은 소유자 중심 설명에서 과거 운영 시기 자료로 바뀌었다. 직원과 거래처 이름이 빠진 사진은 추가 확인 뒤 전시하거나 보관했다.
서린과 도윤의 커플 사진은 로비에 없었다. 현재 관계가 호텔 재건의 상징이 될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도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직원 주거 층에는 비상 호출이 평소 감시로 쓰이지 않게 별도 규칙을 넣었다. 객실 키 기록과 근무 출입 기록을 분리하고 관리자 임의 열람을 금지했다.
한 직원은 호텔 안에 살면 쉬는 날에도 불려 나올까 걱정했다. 입주 계약에는 긴급 호출 의무 없음과 당직 수당, 거절권이 명시됐다.
무장애 객실 이용자는 욕실 손잡이 위치와 침대 높이를 직접 시험했다. 표준 도면이 아니라 여러 신체 조건의 의견을 받아 조절 가능한 설비를 선택했다.
소희는 사용자에게 무료 조언을 요구하지 않았다. 테스트 시간과 교통비를 지급했다. 설계에 이름을 공개할지도 각자 골랐다.
첫 모형에서는 피난 안내판이 시각적으로 예뻤지만 낮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소희는 글자와 대비, 설치 높이를 바꿨다. 브랜드 색보다 읽을 수 있는 정보가 먼저였다.
청각 경보와 빛 경보도 함께 시험했다. 객실 안과 샤워실, 직원 주거에서 신호가 다르게 느껴졌다. 설치 수를 늘리고 수동 확인 절차를 남겼다.
도윤은 지역 주방 경험을 반영해 비상 식사 준비 공간을 제안했다. 새 주방 하나에 모든 기능을 모으지 않고 외부 협력 주방과 연결할 보관·인계 지점을 만들었다.
새 주방 책임자는 비상 공간이 평소 창고처럼 차지되지 않게 월간 점검을 요구했다. 소희는 바닥 표시와 비우기 책임자를 설계 문서에 넣었다.
재무팀은 빈 공간이 수익을 내지 않는다는 우려를 냈다. 소희는 그 면적이 대피와 집결, 지역 행사, 고객 대기를 동시에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사용 시간과 유지비도 수치로 냈다.
해외 운영사 기술자는 브랜드 표준 라운지가 없으면 예약망 사진 기준에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한 자금 계약에는 디자인 권한이 없었다. 아르덴은 사진 점수를 위해 동선을 줄이지 않았다.
노바크라운 로비와 비교하는 기사도 나왔다. 소희는 더 화려한 렌더링으로 맞서지 않고 모의 대피 결과와 사용자 수정표를 공개했다.
직원 대표는 설계 회의가 낮 시간에만 열리는 문제를 지적했다. 야간 직원용 회의를 따로 열고 실제 경보 당시 동선을 바닥 위에서 재현했다.
야간 직원은 새 프런트 보조석에서 계단 한쪽이 기둥에 가려진다고 말했다. 소희는 모니터를 늘리는 대신 보조석 위치를 옮겨 직접 시야를 확보했다.
지역 주민은 집결 공간이 호텔 손님에게만 쓰이는지 물었다. 재난 때 지역 협력 요청이 있으면 공동 사용하되 책임자와 수용 인원을 사전에 정했다.
소희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는 모호한 문구를 쓰지 않았다. 평시 예약, 비상 전환, 안전 인원, 관리 비용을 각각 규정했다.
첫 예산 초과는 조절 가능한 욕실 설비에서 생겼다. 장식 목재 일부를 줄이고 접근성 예산은 유지했다. 소희의 서명 아래 변경 이유가 남았다.
서린은 소희에게 예산을 지켜 줘서 고맙다고만 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가 처음부터 접근성 비용을 별도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인정했다.
소희는 최종 도면 한가운데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다. 대신 점선으로 피난 방향과 회전 반경, 집결 인원을 표시했다. 비어 있어야 쓸 수 있는 기능이었다.
청소팀은 비어 있는 면적이 넓어지면 바닥 관리 시간이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소희는 관리 노동을 설계 비용에서 빼지 않고 기계 보관 위치와 교대 시간을 다시 계산했다.
프런트는 이동 좌석을 손님 요청 때 누가 옮기는지 물었다. 무거운 가구를 한 사람이 들지 않도록 바퀴 잠금과 두 사람 이동 기준을 넣고, 이용자가 직접 옮기게 두지 않았다.
지역 행사 뒤 원상 배치 책임도 정했다. 공연팀, 호텔 직원, 외부 업체가 각자 맡을 구역과 종료 확인 시각을 계약에 적어 새벽 교대가 혼자 정리하지 않게 했다.
시설팀은 빈 공간에 임시 홍보물을 세우려면 안전 검토를 받도록 바닥 표식 색을 달리했다. 행사 수익이 커도 중앙 피난선 안에는 아무것도 놓을 수 없었다.
첫 완공 청소 날 소희는 도면과 실제 치수를 다시 쟀다. 시공 벽면 하나가 계획보다 두 센티미터 나와 회전 반경이 줄어든 것을 발견했고, 마감재를 다시 손보게 했다.
작은 차이가 법적 기준을 넘지 않았지만 사용 시험에서는 바퀴가 벽에 닿았다. 소희는 준공 지연과 비용을 감수하고 고쳤다. 빈 공간은 도면 위 숫자가 아니라 실제 몸이 움직이는 거리였다.
완공 전 모형 공개 날 아이들이 빈 중앙을 뛰어다녔다. 소희는 곧바로 막지 않고 평시 놀이와 혼잡 위험을 관찰했다. 필요하면 행사 때만 낮은 경계를 설치하기로 했다.
서린과 도윤은 도면 앞에서 호텔이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둘 중 누구도 예전으로 돌려 달라고 하지 않았다. 화재 전 아름다움을 복원하는 일이 책임의 증거는 아니었다.
소희의 빈 공간은 잃어버린 로비의 흔적이 아니었다. 사람이 멈추고 돌아서고 빠져나갈 권리를 위해 호텔이 팔지 않기로 한 면적이었다.
도면이 승인되자 소희는 자기 이름을 가장 크게 쓰지 않았다. 사용자 검토자와 야간 직원, 시설팀, 지역 공연팀이 같은 목록에 있었다. 공간은 한 사람의 영감보다 많은 수정의 결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