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희는 증언 날짜를 정한 뒤에도 기억을 바로 말하지 않았다. 당시 썼던 일정 수첩과 공간 도면, 교통카드 이용 기록을 먼저 꺼냈다. 기억에 맞는 자료만 고르면 장면을 새로 만들 수 있어 기록 담당자가 함께 확인했다.
수첩에는 차우진 측 쇼룸 회의가 오후 네 시에 적혀 있었다. 소희는 아르덴 로비 개편 자문으로 참석했고, 윤서린은 예정에 없던 후반 회의에 불려왔다. 도면 뒷면에는 `개인 발표 반대, 서린 퇴장`이라는 짧은 메모가 있었다.
소희는 그 문장을 언제 썼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회의 직후인지 집에 돌아간 뒤인지 기억이 흐렸다. 그는 메모가 장면을 보강하지만 정확한 발언을 그대로 기록한 것은 아니라고 표시했다.
법률 담당은 소희에게 당시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차례로 물었다. 차우진 측 자문자가 가족 이미지와 호텔 안정성을 묶은 발표를 제안했고, 서린이 자기 관계를 거래 조건에 넣지 말라고 답한 장면이 떠올랐다.
윤종필은 침묵했고 차우진은 문구를 더 검토하자고 했다. 소희는 차우진이 직접 약혼을 선언했다고 기억하지 않았다. 불리한 인물을 더 나쁘게 만들기 위해 빈 기억을 채우지 않았다.
서린은 회의실을 나가며 자료를 폐기하라고 말했다고 소희는 진술했다. 다만 누구에게 한 말인지, 실제 폐기 확인을 누가 맡았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 뒤 소희도 자기 공간 발표 준비로 돌아갔다.
소희는 왜 그때 서린에게 다시 확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고객 집안의 사적인 갈등이라고 생각했고, 계약을 잃을까 두려웠다고 답했다. 목격했지만 행동하지 않은 책임이 있었다.
서린은 증언석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소희가 자신의 표정을 확인하며 기억을 맞추지 않도록 별도 방에서 영상 기록을 봤다. 두 사람은 쉬는 시간에도 사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수첩 종이와 잉크 감정은 당시 작성 가능 범위와 맞았다. 회의실 방문 기록에도 소희와 서린 이름이 있었다. 정확한 문장까지 확정할 수는 없어도 서린이 개인 결합 발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흐름은 다른 자료와 일치했다.
소희는 증언을 마치고 나서야 서린을 만났다.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지 않았다. 당시 침묵이 서린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 자신이 다 알 수 없고, 지금 증언했다고 과거가 상쇄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린은 고맙다는 말과 늦었다는 감정을 함께 말했다. 둘은 어느 하나를 취소하지 않았다. 소희의 증언은 우정의 선물이 아니라 사실 확인 절차의 일부였다.
그날 오후 운영위원회는 소희에게 새 로비 공간 브랜드 제안을 발표해 달라고 했다. 약혼 문건 증언 때문에 주는 보상이 아니었다. 계절 조달망과 행사 동선 개선 성과를 이미 평가한 결과였다.
소희는 발표 첫 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목격자`가 아니라 `공간감독`으로 적었다. 아르덴 로비를 서린과 도윤의 사랑 이야기로 꾸미지 않겠다고 밝혔다. 직원 교대, 지역 행사, 조용한 대기 기능을 중심에 뒀다.
기존 로비 벽에는 호텔 역사 사진 대부분이 윤종필과 유명 손님 중심으로 걸려 있었다. 소희는 모두 없애지 않고 촬영 동의와 설명을 다시 확인했다. 직원 이름이 빠진 사진에는 역할 설명을 추가했다.
약혼 문건 유출 뒤 커플 포토존을 만들자는 외부 제안도 들어왔다. 소희는 공간을 사실 반박 광고판으로 쓰지 않았다. 공개 사실표는 안내 데스크 옆 작은 서가에 두고, 로비의 주 기능을 유지했다.
새 설계에는 야간 직원이 혼자 응대하지 않도록 시야가 연결된 보조석이 포함됐다. 행사 취소가 생기면 지역 공연팀이 대기할 작은 연습 공간도 만들었다. 장식보다 운영 위험에서 나온 변화였다.
한 거래처는 소희가 호텔과 가까운 인물이라 심사에서 유리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소희는 자기 납품 계약과 공간 설계 평가가 겹치는 항목에서 빠지고 외부 설계자 검토를 받았다.
첫 시제품에서는 안내 서가가 휠체어 회전 공간을 막았다. 소희는 미관을 이유로 밀어붙이지 않고 위치를 바꿨다. 자기 결정권은 수정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었다.
직원들은 교대 보조석이 감시 자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희는 카메라가 아닌 도움 요청 버튼과 가림 가능한 유리를 적용했다. 실제 사용하는 사람의 불편이 설계를 바꿨다.
지민은 소희의 과거 증언과 새 설계를 묶은 인터뷰를 제안했다가 스스로 철회했다. 한 사람이 오래된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현재 전문성이 생긴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소희도 증언 보도에는 공간 프로젝트를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목격자라는 이름이 사업 홍보 수단이 되면 앞으로 다른 증언자에게도 대가를 의심하게 만들 수 있었다.
차우진 측 법률인은 소희의 기억이 뒤늦게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질문했다. 소희는 수첩 밖의 세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반복했다. 모르는 부분을 인정한 태도가 오히려 확인된 부분의 경계를 선명하게 했다.
윤종필의 일정 기록과 외부 자문사 메모가 같은 회의를 가리켰다. 서린에게 동의 요청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파일 이력도 맞물렸다. 증언 하나가 사건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여러 기록 사이 빈칸을 줄였다.
증언 공개 뒤 소희에게 영웅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납품된 가지의 수량과 로비 통로 폭을 확인했다.
서린은 새 공간 예산을 검토하며 소희에게 개인적으로 더 좋은 자재를 승인해 주지 않았다. 안전·내구·관리 노동 기준을 직원 대표와 함께 비교했다. 친밀함이 전문 판단의 지름길이 되지 않게 했다.
소희는 비싼 석재 대신 수리 가능한 지역 목재를 골랐다. 과거 사진 일부는 이동식 패널에 두어 설명이 바뀌면 다시 편집할 수 있게 했다. 역사를 벽에 영원히 고정하지 않았다.
첫 공개 행사에는 연애 문건 질문이 나올 수 있어 별도 질의 창구를 안내했다. 공간 담당자가 사생활 논쟁까지 떠맡지 않도록 역할을 나눴다.
행사 전날 소희는 지역 공연팀과 비상 동선을 직접 걸었다. 새 보조석 때문에 관객 대기 줄이 계단 쪽으로 밀리는 구간이 보여 바닥 표식과 입장 시간을 다시 나눴다.
공연팀은 대기 공간의 흡음이 부족해 로비 손님과 소리가 겹친다고 했다. 소희는 완공됐다는 이유로 참으라고 하지 않고 이동식 흡음판을 빌려 시험한 뒤 다음 예산에 반영했다.
야간 직원은 보조석 호출 버튼이 청소 카트에 가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버튼 높이와 카트 정차 위치를 바꾸고, 실제 교대자가 눈을 감고도 찾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
소희는 이 수정들을 공간 브랜드 설명의 핵심으로 삼았다. 고정된 아름다움보다 사용자가 문제를 말하고 다음 날 구조가 바뀔 수 있는 공간이 아르덴의 현재 모습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야간 직원은 보조석 덕분에 늦은 단체 손님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안내 서가 조명이 눈부셨다는 의견도 남겼다. 소희는 다음 날 밝기를 낮췄다.
그는 수정표에 증언 날짜와 공간 프로젝트 날짜가 섞이지 않도록 따로 기록했다. 과거 사건의 목격과 현재 노동은 각각 평가받아야 했다.
서린과 소희는 로비 한쪽에서 새 패널을 바라봤다. 서린은 예전 회의에서 자신이 혼자였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소희는 그 말에 변명하지 않고 지금은 기억과 기록이 허용하는 만큼 곁에 서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은 과거를 완전히 회복했다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소희는 조명 점검표를 들고 다음 통로로 갔고 서린은 운영 회의로 돌아갔다.
첫 초안을 본 사람이라는 역할은 증언서에 남았다. 로비에는 한소희가 설계한 보조석과 넓어진 통로가 남았다. 그는 누군가의 비밀을 밝혀 주는 인물에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결정하는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