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는 `대외비`라는 붉은 글씨와 함께 윤서린 개인 메일로 왔다. 노바크라운 본사가 아르덴 목적 신탁 수익권 십오 퍼센트를 인수하고, 두 호텔이 공동 예약·멤버십·구매망을 쓰자는 내용이었다.
투자금은 아르덴이 앞으로 삼 년 동안 벌어야 할 영업이익보다 컸다. 노후 객실 수선과 직원 임금 인상, 채권 상환을 동시에 시작할 수 있는 숫자였다. 이자도 없었고 당장 상환할 의무도 없었다.
대신 노바크라운은 브랜드 공동 사용권과 주요 운영 기준에 대한 동의권을 요구했다. 객실 가격, 총지배인 선임, 주방 대표 메뉴, 지역 거래처 비율을 바꾸려면 본사 승인이 필요했다.
서린은 제안서를 삭제하지도, 비밀리에 거절하지도 않았다. 이해충돌 규약에 따라 운영위원회 공용 주소로 전달하고 개인 메일 수신 경위를 기록했다. 상대에게 대외비 조건을 내부 검토 범위까지는 수용할 수 없다고 알렸다.
노바크라운은 위원들에게 공개하되 외부 발표만 미뤄 달라고 수정했다. 아르덴은 협상 중 금액과 영업비밀을 당장 공공 게시판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직원·거래처 대표가 원문을 볼 수 있게 했다.
시설팀은 자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래된 배관과 전기 설비를 단계적으로 고치다 보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새 돈이 가져오는 실제 이익을 대형 체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 없었다.
직원 대표는 총지배인 선임 동의권을 문제 삼았다. 노바크라운이 한 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계속 막을 수 있는 권리였다. 십오 퍼센트 수익권보다 훨씬 큰 통제였다.
한소희는 공동 구매망의 장단점을 정리했다. 린넨과 소모품 가격은 낮아질 수 있지만 지역 생산자 계약과 작은 물량의 유연성이 줄 수 있었다. 구매 단가만 보고 거래처 중단권을 잃을 위험이 있었다.
강도윤은 브랜드 공동 메뉴 조항을 읽었다. 자신의 이름과 아르덴 메뉴가 노바크라운 전국 지점에 사용될 수 있고, 수익 배분은 본사가 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개인 브랜드 문제가 포함돼 표결에서 빠지겠다고 신고했다.
윤서린도 운영 책임자 선임 동의권 안건에서는 직접 이해당사자였다. 설명은 하되 최종 표결에서 빠졌다. 두 사람이 같은 의견을 내더라도 두 표를 묶어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장지민은 제안서를 폭로하면 여론이 아르덴 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운영위원회는 협상 상대를 악당으로 만들면 유리한 자본 조건까지 검토하기 어려워진다며 막았다. 비밀 제안이 곧 불법 제안은 아니었다.
아르덴은 역제안서를 만들었다. 신탁 지분 인수 대신 안전 설비에 한정한 장기 후순위 자금, 브랜드와 인사 동의권 없음, 공동 구매는 품목별 선택, 고객 정보 공유 없음. 대가로 투명한 이자와 상환 순서를 제시했다.
노바크라운은 수익이 낮다며 난색을 보였다. 본사는 자선사업이 아니고 통제권 없는 후순위 자금을 낼 이유가 적었다. 아르덴은 상대의 경제적 이유를 비난하지 않았다.
두 번째 협상에서는 공동 세탁 설비 사용이 논의됐다. 노바크라운의 큰 시설을 일정 시간 빌리면 아르덴 외주 비용이 줄었다. 그러나 경쟁 호텔이 아르덴 객실 가동률을 세탁물 양으로 알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계약에는 물량 정보 비식별, 최소·최대 수량, 중단 통보, 대체 세탁 비용이 들어갔다. 공동 사용은 지분과 브랜드 계약에서 분리해 석 달 시범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역 세탁소는 자기 물량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했다. 아르덴은 기존 계약을 일방 종료하지 않고 대형 린넨만 시범 시설로 보내고, 섬세한 세탁과 긴급 물량은 지역 업체에 정상 단가로 남겼다.
노바크라운은 안전 설비 자금 일부에만 별도 대출을 제안했다. 금리는 시장보다 조금 낮았지만, 연체 시 브랜드 공동 사용 협상 우선권이 붙었다. 아르덴은 우선권을 삭제하고 금리를 정상 수준으로 올리는 쪽을 택했다.
직원들은 왜 더 싼 금리를 포기하느냐고 물었다. 재무 전문가는 낮은 이자와 미래 통제권의 가치를 같은 표에 환산했다. 연체 가능성을 고려하면 우선권 비용이 더 클 수 있었다.
노바크라운 본사는 최종적으로 안전 설비 대출과 세탁 시범만 수용했다. 신탁 지분과 브랜드 공동 사용 제안은 철회하지 않고 일 년 뒤 다시 논의할 수 있다고 남겼다. 아르덴도 영원히 거절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장지민은 협상 종료 뒤 전체 과정을 공개 요약했다. 제안 금액 범위, 얻을 수 있었던 설비 투자, 거절한 통제 조항, 받아들인 정상 거래를 함께 썼다. `아르덴, 대기업 유혹을 이기다`라는 제목은 쓰지 않았다.
노바크라운은 자기 입장문에서 상생 협의가 일부 성사됐다고 발표했다.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 호텔은 세탁과 설비 자금에서 거래했고, 소유와 브랜드에서는 합의하지 않았다.
강도윤은 자기 이름 사용 조항이 빠진 뒤에도 협상 자료를 개인 홍보에 쓰지 않았다. 큰 체인 제안을 거절한 셰프라는 이야기가 방송 예고에 들어가자 삭제를 요청했다.
서린과 도윤은 협상 뒤 저녁을 먹으며 서로 다른 표를 던졌을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도윤은 안전 자금 때문에 제한적 지분 참여를 고려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린은 통제 위험이 커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둘은 의견 차이를 관계 불안으로 읽지 않았다. 앞으로 실제 표가 다를 때도 먼저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이해충돌과 근거를 공개하자고 했다. 그 약속은 종이에 쓰지 않았지만 운영 규칙과 생활 대화에 각각 자리를 가졌다.
세탁 시범 첫날 노바크라운 시스템 오류로 수거가 두 시간 늦었다. 아르덴은 대형 체인의 선의를 기다리지 않고 계약된 대체 세탁소를 불렀다. 추가 비용은 시범 계약에 따라 노바크라운이 부담했다.
상대는 오류를 인정하고 다음 수거 시간을 고쳤다. 아르덴은 그 사건을 경쟁사의 무능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정상 거래에는 실패와 보상 절차가 포함돼 있었다.
안전 설비 자금 첫 인출은 객실 장식이 아니라 배전반 교체에 쓰였다. 노바크라운 로고는 공사 안내판에 붙지 않았다. 돈을 빌려준 사실은 공개됐지만 브랜드 소유를 암시하지 않았다.
첫 이자 지급일에는 아르덴 현금이 빠듯했다. 운영위원회는 약정대로 지급하고 비필수 구매를 미뤘다. 낮은 금리 협상을 자랑한 뒤 실제 상환을 거래처에 떠넘기지 않았다.
세탁 시범 자료를 검토하자 비용은 줄었지만 운송 거리가 늘어난 날이 있었다. 두 호텔은 수거 시간을 합쳐 빈 차량 이동을 줄였다. 공동 거래가 숫자 하나로만 성공하는지 보지 않았다.
직원 대표는 노바크라운 자금이 들어온 뒤 자기 호텔 안전 문제를 비판하기 어려워지는지 물었다. 계약에는 정상적인 노동·안전 의견을 불이익 사유로 삼지 못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일 년 뒤 재협상 날짜는 자동 동의가 아니라 재검토일로 적혔다. 당시 운영위원과 직원이 바뀌어도 원본 제안과 현재 성과를 같은 기준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했다.
서린은 재검토 알림의 수신자를 자기 개인 주소가 아닌 공용 위원회로 설정했다. 다음 제안이 또 한 사람의 비밀 봉투로 시작되지 않도록 첫 연락 경로부터 바꿨다.
대형 체인의 비밀 제안서는 완전히 악한 계약도, 아르덴을 구할 선물도 아니었다. 좋은 자금과 나쁜 통제, 쓸 수 있는 공동 시설과 넘길 수 없는 권한이 같은 봉투에 들어 있었다.
서린은 원본 제안서를 기록실에 보냈다. 다음 운영자가 일 년 뒤 다시 협상할 때 자기 거절을 신성한 유언처럼 따르지 않게, 당시 숫자와 이유를 함께 남겼다. 아르덴은 적과 친구 사이가 아니라 조건마다 다른 거래 상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