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협동 계약 첫 회의에는 호텔보다 작은 가게가 열세 곳 왔다. 세탁소, 꽃 농가, 제과점, 두부 공방, 소규모 공연팀, 야간 운송 기사. 모두 아르덴과 거래하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었다. 대형 호텔이 생긴 뒤 단가가 흔들려 공동 대응을 알아보러 온 사람도 있었다.
윤서린은 `동네가 아르덴을 살린다`는 문구를 회의 자료에서 뺐다. 호텔은 도움을 받는 주인공이 아니고, 돈을 지급해야 하는 거래처 중 하나였다. 각 업체가 무엇을 납품하고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부터 물었다.
세탁소는 아르덴 물량을 받으면 작은 숙박업소 두 곳의 시간을 미뤄야 한다고 했다. 호텔이 큰 고객이라는 이유로 먼저 처리하면 기존 거래가 무너질 수 있었다. 아르덴은 우선권 대신 고정 수거 시간과 초과 물량 거절권을 받아들였다.
꽃 농가는 계절별 최소 인수량을 요구했다. 한소희는 로비 장식이 줄어도 이미 재배한 물량 일부를 사는 조항을 넣었다. 대신 품질 기준과 대체 품목 선택을 공동으로 정했다.
식재료 업체들은 강도윤 이름이 붙은 메뉴에 납품한다는 홍보 권리를 원했다. 도윤은 자기 이름을 무상으로 주지도, 일괄 금지하지도 않았다. 사용 기간과 문구를 별도 합의하고 실제 납품이 끝나면 이름 사용도 끝나게 했다.
지역 공연팀은 호텔 로비 무대가 홍보가 되니 출연료를 낮춰 달라는 말을 이미 다른 곳에서 들었다고 했다. 아르덴은 관객 수와 상관없는 기본 출연료, 추가 리허설 비용, 취소 수수료를 표에 올렸다.
장지민은 거래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려면 촬영비를 따로 책정했다. 납품 단가 안에 인터뷰와 얼굴 공개를 끼워 넣지 않았다. 참여하지 않아도 계약 평가에 영향이 없다고 명시했다.
협동이라는 이름에도 경쟁은 있었다. 제과점 세 곳이 같은 조식 빵을 제안했고 가격 차이가 컸다. 모두 나눠 주자는 의견은 안정적인 품질과 물량을 해칠 수 있었다.
운영위원회는 기본 물량과 계절 시범 물량을 나눴다. 한 업체가 기본 납품을 맡되 다른 업체가 공개 기준으로 시범 참여할 수 있게 했다. 기존 계약을 영구 특권으로 만들지 않았다.
납품 단가는 시장 최저가가 아니었다. 원재료와 노동, 운송을 업체가 제시하고 아르덴 재무 담당이 검토했다. 호텔 사정을 이유로 마진을 숨겨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아르덴도 무조건 높은 가격을 수용하지 않았다. 같은 품질과 조건을 비교하고, 예산을 넘으면 물량이나 제공 빈도를 줄였다. 상생이라는 말이 검토 없는 구매를 뜻하지 않게 했다.
정산일은 주 단위와 월 단위로 나뉘었다. 현금 여력이 작은 업체는 매주, 규모가 큰 업체는 월말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르덴이 현금이 부족한 달에도 일방적으로 날짜를 미루지 못했다.
중단권이 가장 오래 논의됐다. 업체는 원가 급등이나 인력 부족 때 한 달 전에 물량을 줄일 수 있고, 아르덴도 서비스 축소 시 같은 기한을 지켜야 했다. 긴급 안전 문제에는 즉시 중단하되 증빙과 재협의 날짜를 남겼다.
야간 운송 기사는 호텔 후문 대기 시간이 비용에서 빠진다고 말했다. 새 계약에는 도착 뒤 십오 분을 넘는 대기부터 시간당 비용을 지급했다. 하역로 안전선과 예약 시간이 실제 단가에 연결됐다.
첫 공동 배송일에는 문제가 생겼다. 꽃과 빵, 두부 차량이 같은 시간에 도착해 후문이 막혔다. 기사들은 서로 양보했지만 삼십 분 이상 기다렸다. 아르덴은 첫날이라며 넘어가지 않고 대기 비용을 지급했다.
한소희는 납품 시간표를 공간 설계처럼 다시 그렸다. 냉장 품목을 먼저 받고, 꽃은 별도 입구를 쓰며, 빈 용기 회수는 오후로 옮겼다. 거래처와 직원이 함께 실제 동선을 걸었다.
도윤은 지역 재료를 쓴다는 이유로 메뉴 설명을 길게 만들지 않았다. 원산지와 생산자 표기는 동의 범위에서 정확히 하고, 맛이 부족하면 감성으로 덮지 않았다. 첫 두부 샘플은 염도가 맞지 않아 반려됐다.
두부 공방은 공개적으로 망신당하지 않았다. 기준과 측정값을 전달받고 재샘플 날짜를 골랐다. 두 번째 샘플이 통과한 뒤에도 첫 실패 기록은 내부 품질표에 남았다.
공연 첫날 관객은 열두 명뿐이었다. 지민은 무료 초대권을 마구 뿌리지 않았다. 계약대로 출연료를 지급하고 관객 수가 적었던 이유를 시간대와 홍보 경로에서 찾았다.
공연팀은 다음 달 시간을 바꿔 보자고 했지만, 야간 직원 교대와 충돌했다. 로비 공연이 직원 휴식을 방해하지 않도록 일요일 오후로 옮겼다. 손님 경험이 노동자의 공간을 모두 차지하지 않게 했다.
노바크라운도 지역 조달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온라인에서는 아르덴 아이디어를 베꼈다는 말이 나왔다. 서린은 계약 형태가 공개된 이상 다른 호텔이 지역 업체와 정상 거래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아르덴 거래처에게 노바크라운과 거래하지 말라는 독점 조항은 넣지 않았다. 업체가 더 큰 주문을 받을 권리를 막으면 지역 협동이 호텔 종속으로 바뀔 수 있었다.
한 업체가 노바크라운 주문 때문에 아르덴 물량을 줄였다. 중단권 기한을 지켰고 대체 업체 인수인계에도 협조했다. 아르덴은 계약 위반이라고 공격하지 않고 약정대로 정산했다.
석 달 뒤 거래처 유지율은 높았지만 비용도 이전보다 늘었다. 서린은 동네 계약이 더 싸다는 홍보를 하지 않았다. 대기와 취소, 촬영 같은 숨은 비용을 정상 가격으로 드러낸 결과였다.
거래처 만족도 조사에서는 아르덴의 잦은 담당자 변경이 불편하다는 답이 나왔다. 교차 확인을 늘리며 연락 창구까지 바뀐 탓이었다. 주담당과 대체 담당을 고정해 책임 위치를 분명히 했다.
세탁소는 대기 비용을 받은 뒤에도 야간 호출이 잦다고 말했다. 긴급 세탁의 정의를 좁히고 다음 날 처리 가능한 물량은 정규 시간으로 옮겼다. 돈을 지급한다고 모든 시간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공연팀 한 곳은 관객 수가 적어 계약 종료를 선택했다. 아르덴은 상생을 포기했다고 비난하지 않고 남은 출연료와 장비 운송비를 정산했다. 중단권이 실제로 사용될 때도 존중했다.
새 공연팀을 급히 찾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로비를 조용히 두고 손님·직원에게 필요한 시간대를 다시 물었다. 빈 공간을 실패로 느껴 무료 행사를 채우지 않았다.
지역 협동 계약의 첫 갱신에서는 단가가 평균 육 퍼센트 올랐다. 아르덴은 물가와 노동 비용 자료를 검토한 뒤 수용하고 제공 횟수를 일부 줄였다. 같은 예산에서 사람의 값을 깎지 않았다.
서린은 유지율보다 정해진 날짜에 떠날 수 있었던 업체 수를 함께 봤다. 떠날 권리가 있는 관계에서 남은 비율이어야 숫자도 의미가 있었다.
직원 대표는 늘어난 비용이 임금 인상을 막는지 물었다. 재무 담당은 두 항목을 같은 표에 올렸다. 비필수 행사 수를 줄이고 거래처 단가와 직원 임금을 모두 유지하는 안이 채택됐다.
협동 계약 갱신 회의에서 업체들은 아르덴의 늦은 발주 두 건을 지적했다. 호텔도 평가받는 거래 당사자였다. 발주 담당자와 재발 방지 기한이 회의록에 적혔다.
장지민은 그날 처음으로 콘텐츠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감동 사연이 아니라 납품 단가, 정산 주기, 중단권이 왜 필요한지 익명 사례로 설명했다. 참여 업체는 얼굴을 내놓지 않아도 됐다.
로비 작은 공연이 끝난 뒤 관객과 직원이 같은 출구로 나갔다. 꽃은 지역 농가에서 왔고 빵은 제시간에 정산됐으며 세탁 기사는 기다린 만큼 비용을 받았다. 동네가 호텔의 거래처가 된 날은 박수가 아니라 영수증과 중단권으로 완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