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제안서 표지에는 강도윤과 노바크라운 총괄 셰프의 얼굴이 마주 보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칼 두 자루가 교차했고, 아래에는 `구도심 호텔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제작사는 두 호텔 주방이 같은 식재료로 세 코스를 만들고 실시간 투표로 승자를 정하자고 했다. 우승 호텔에는 전국 광고와 식재료 협찬이 제공됐다. 패한 호텔에는 도전 서사라는 이름의 후속 편이 준비돼 있었다.
장지민은 도달 수치를 계산했다. 이기면 객실 예약과 레스토랑 예약이 한꺼번에 늘 수 있었다. 져도 노출은 남았다. 현금이 부족한 아르덴에게 보기 드문 기회였다.
도윤은 출연 조건보다 촬영 동선부터 봤다. 주방 안에 카메라 여덟 대, 조리 보조의 얼굴 상시 노출, 돌발 미션을 위한 식재료 변경 권한. 실제 서비스 시간보다 방송 긴장이 우선되는 구조였다.
그는 경쟁 셰프와 싸우기 싫어서 거절한 것이 아니었다. 제한 시간 안에 접시를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주방 노동이 한 사람의 천재성과 승부욕으로 편집되는 방식이었다.
“설거지하는 사람 이름은 어디에 나옵니까?” 도윤이 제작사 회의에서 물었다.
담당자는 엔딩 크레딧에 스태프를 넣을 수 있다고 했다. 도윤은 촬영으로 늘어난 설거지와 검수, 안전 확인 시간을 누가 지급하는지 다시 물었다. 예산표에는 셰프 출연료와 장비 비용만 있었다.
윤서린은 도윤의 거절을 대신 발표하지 않았다. 출연 여부는 개인 계약이지만 호텔 공간과 직원 노동이 포함되는 부분은 운영위원회 심사를 받는다고 했다. 둘의 의견이 같아도 절차를 건너뛰지 않았다.
제작사는 도윤 혼자 외부 스튜디오에 나오면 된다는 수정안을 냈다. 아르덴 주방을 쓰지 않고 직원도 데려오지 않으면 문제가 줄었다. 대신 호텔 이름과 서린과의 과거 관계를 인터뷰 소재로 요구했다.
도윤은 두 번째 안도 거절했다. 아르덴을 지키는 연인 셰프라는 이야기를 다시 팔면, 음식과 호텔 운영은 관계의 배경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서린에게 먼저 허락을 구해 통과시킬 일도 아니었다.
지민은 노출 기회를 완전히 버리기보다 다른 형식을 제안하자고 했다. 도윤은 실제 저녁 서비스를 공개하는 만찬을 제안했다. 경쟁 셰프 없이, 투표 없이, 예약 손님과 지역 조리 학생 앞에서 원가와 역할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공개 만찬의 좌석은 평소보다 적게 잡았다. 카메라는 주방 입구 한 대와 홀 한 대뿐이었고, 직원은 촬영 참여를 고를 수 있었다. 얼굴을 원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다.
메뉴판에는 접시 가격만 아니라 식재료, 노동 시간, 세탁·전기·폐기 예상 비용이 적혔다. 영업비밀이 되는 거래처 개별 단가는 범위로 표시했고, 싼 원가를 자랑하려고 납품가를 압박하지 않았다.
도윤은 자기 이름을 가장 크게 쓰지 않았다. 메뉴 개발자, 조리 책임자, 검수자, 설거지와 홀 담당을 같은 글씨로 적었다.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은 사람은 역할만 표시했다.
노바크라운 셰프에게도 초대장을 보냈다. 대결을 요구하지 않고 손님으로 오거나 오지 않을 선택을 줬다. 그는 일정 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답과 함께 직원 두 명을 교육 목적으로 보내도 되냐고 물었다.
아르덴은 경쟁사 직원에게 특별 감시를 붙이지 않았다. 다른 참가자와 같은 비용을 받고 같은 자료를 제공했다. 촬영 화면에는 소속을 밝히지 않았다.
만찬 첫 접시는 화려하지 않았다. 지역 감자와 남은 빵으로 만든 수프였다. 도윤은 수프 맛보다 냉장 온도와 준비 시간, 남은 재료를 어디까지 다시 쓸 수 있는지 설명했다.
조리 학생 한 명이 스타 셰프의 비법을 물었다. 도윤은 불 조절을 보여 준 뒤, 비법보다 교대표가 지켜져야 같은 맛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피곤한 사람이 마지막 온도 확인을 놓치면 레시피는 의미가 없었다.
홀 직원은 손님 앞에서 서비스 지연 한 건을 직접 설명했다. 촬영 때문에 통로가 좁아 접시 두 개가 늦었다. 도윤은 카메라가 만든 문제를 직원의 실수로 돌리지 않고 다음 코스 전에 장비 위치를 바꿨다.
지민은 실시간 반응을 화면에 띄우지 않았다. 만찬 중 투표와 댓글을 보게 하면 다시 카메라를 위한 행동이 될 수 있었다. 질문은 현장 참가자에게 먼저 받고, 영상 댓글은 다음 날 답했다.
공개 만찬 수익은 크지 않았다. 좌석을 줄이고 직원 초과 근무를 지급하자 남은 금액은 평소 저녁 영업과 비슷했다. 지민은 성공 숫자를 부풀리지 않고 비용표까지 공개했다.
방송사는 만찬 일부를 뉴스 코너로 쓰고 싶다고 다시 연락했다. 아르덴은 대결 문구와 서린·도윤 관계 질문을 빼는 조건으로 짧은 사용을 허가했다. 직원별 동의 범위도 다시 확인했다.
영상은 셰프 대결 예고편보다 조회 수가 낮았다. 그러나 조리 학교 두 곳에서 교육 자료 사용 문의가 왔고, 지역 식당 직원들이 원가표 양식을 요청했다. 다른 종류의 확산이었다.
교육 자료 사용 계약에는 영상 속 직원의 동의 기간을 다시 확인하는 조항이 붙었다. 공개 만찬에 동의했다고 학교 수업과 온라인 보관까지 자동 허용된 것은 아니었다.
한 직원은 자기 얼굴 대신 손만 나온 장면도 빼 달라고 했다. 제작팀은 식별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당사자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정했다. 노출 정도를 회사가 대신 판단하지 않았다.
원가표를 받은 지역 식당은 인건비 계산 방식이 자기 업장과 맞지 않는다고 피드백했다. 도윤은 아르덴 양식을 정답처럼 배포하지 않고 업장 규모와 근무 형태에 맞게 고쳐 쓰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공개 만찬 요청이 들어왔지만 바로 반복하지 않았다. 한 번의 투명한 행사가 정기적인 무대 노동이 되면 직원들은 계속 설명하고 촬영돼야 했다. 반년 뒤 교육 필요를 다시 묻기로 했다.
노바크라운 총괄 셰프는 짧은 편지를 보내 대결을 거절한 판단을 존중한다고 했다. 도윤은 그 문장을 경쟁 화해 홍보에 쓰지 않고 개인적으로 답했다. 서로 다른 주방이 존재하는 데 우정 서사도 필요하지 않았다.
장지민은 조회 수가 낮은 결과를 실패 보고서에 넣자고 했다. 도윤은 실패보다 목표가 달랐다고 답하면서도 예상 도달과 실제 도달의 차이는 그대로 남겼다. 좋은 의도도 측정에서 빠지지 않았다.
노바크라운 직원들은 만찬 뒤 자기 호텔에서도 근무표와 폐기 비용을 보여 주는 교육을 제안했다고 알려왔다. 아르덴은 그 소식을 승리처럼 홍보하지 않았다. 경쟁사의 내부 변화는 그들이 확인할 일이었다.
도윤은 주방 칠판에서 공개 만찬 일정을 지우고 다음 주 교육 시간을 적었다. 방송을 거절한 날이 특별한 용기의 기념일로 남지 않게 했다. 실제 노동 조건이 계속되는지가 더 중요했다.
서린은 만찬 뒤 도윤에게 아쉬움이 없냐고 물었다. 도윤은 전국 생방송과 큰 협찬을 놓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래도 아쉬움을 견디는 비용까지 자기 선택이라고 말했다.
둘은 호텔 밖에서 늦은 식사를 했다. 서린은 도윤이 자신을 지키려고 방송을 거절했다고 말하지 않았고, 도윤도 사랑을 이유로 선택을 포장하지 않았다. 서로의 일이 관계의 증명이 되지 않게 했다.
다음 날 도윤은 대결 방송 예고 포스터가 검색 결과에 남은 것을 봤다. 그는 삭제를 강요하기보다 출연 불성립과 공개 만찬 링크가 함께 표시되도록 정정을 요청했다. 하지 않은 승부도 기록 속 사실로 바로잡았다.
도윤의 생방송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접시 한 장 뒤에 있는 사람과 시간, 돈을 숨기지 않는 공개 만찬이 남았다. 승자는 없었지만 다음 날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근무표와 이름이 주방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