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사절은 왕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설원 연맹의 세 부족을 대표한 노인은 카르몬 성 밖 흰 천막 앞에서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왕실 단독 인장이 없는 문서에는 국경 병력을 물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엘리안은 자기가 왕이 아니라고 답했다. 계승 심사 혈통을 내세워 하루짜리 왕 노릇을 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사절은 그렇다면 협상할 나라가 없다고 말머리를 돌렸다.
아델린이 천막 밖으로 나왔다. “왕 한 사람이 없다고 여기 있는 도시와 죽은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와 싸웠는지부터 확인하고 가십시오.”
천막 안에는 북방 일곱 도시 대표, 카르몬 병사, 피난민 대표, 왕실과 봉인 감시단이 앉아 있었다. 어느 자리도 단상 위에 있지 않았다. 설원 연맹에도 부족 대표 셋과 전투에서 가족을 잃은 마을 사람이 따로 들어왔다.
전쟁의 원인은 한 문장으로 맞지 않았다. 왕실은 과거 설원 연맹에 겨울 통행료와 말 사료를 지급하는 대신 국경을 지키게 했다. 카이런 권한이 무너지며 지급이 끊겼고, 일부 카르몬 장교는 계약이 끝났다는 통지 없이 길을 막았다.
설원 쪽 젊은 지휘자는 그래서 창고를 공격할 권리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카르몬 피난민 대표는 그 공격으로 집과 수레를 잃은 사람 이름을 읽었다. 계약 파기와 민간인 습격은 같은 책임이 아니었다.
바르논도 자기 장교가 첫 사절을 구금하고 말을 빼앗은 기록을 인정했다. 요새를 잃은 수치를 설원 전체의 침략으로만 쓰면 현재 책임이 보이지 않았다.
첫 쟁점은 포로였다. 설원 연맹은 카르몬에서 항복한 병사 전원의 귀환을 요구했고, 북방 도시는 민간인 약탈 혐의자를 돌려보낼 수 없다고 했다.
공동 심리관은 전투 참여, 강요, 약탈 증거, 부상 상태를 구분한 명단을 냈다. 단순 경계병과 취사 인부는 우선 교환하고, 구체적 혐의가 있는 사람은 공개 자료와 반론 기회를 거쳐 심리하기로 했다.
사절은 왕의 포괄 사면이 없으면 끝없는 재판이 된다고 비웃었다. 엘리안은 빠른 사면이 피해자의 증언도, 강요된 병사의 사정도 함께 지운다고 답했다. 처리 기한과 중간 통지를 넣어 지연을 권력으로 쓰지 못하게 했다.
두 번째는 국경선이었다. 설원 연맹은 겨울 방목지 세 곳을 요구했고 카르몬은 옛 지도에 그 땅이 왕실령이라고 했다. 하르트가 꺼낸 지도는 서로 다른 시대에 강줄기가 바뀐 것을 반영하지 못했다.
현장 목동들은 돌기둥보다 우물과 겨울길을 기준으로 이동한다고 증언했다. 양쪽은 영구 소유를 정하지 않고 한겨울 공동 통행 구역과 물 사용 순서를 먼저 정했다. 봄 해빙 뒤 실제 지형을 함께 측량하기로 했다.
세 번째는 군량 배상이었다. 카르몬은 빼앗긴 곡식과 불탄 수레를 요구했고, 설원 쪽은 끊긴 통행료와 압수된 말 값을 냈다. 양쪽 손실표는 단위부터 달랐다.
마센과 설원 회계자는 포대, 말, 수레, 노동일을 같은 판에 억지로 돈 한 값으로 바꾸지 않았다. 확인된 물건과 추정 손실, 생계 복구가 필요한 항목을 나눴다. 사망을 곡식 값과 상계하지 않았다.
협상은 이틀째 밤 깨질 뻔했다. 설원 젊은 지휘자가 병력을 강 건너에 남기겠다고 했고 카르몬 장교들은 즉시 퇴장을 요구했다. 세라는 양쪽 정찰선을 지도에 표시해 실제 거리를 먼저 확인했다.
설원 병력 일부는 중앙 지휘관 명령을 받지 않는 별도 부족대였다. 사절이 모든 부대를 물리겠다고 약속해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사실을 반역으로 숨기지 않고 각 부족 대표가 자기 병력 위치와 연락 시각을 적었다.
북방 일곱 도시도 하나의 군대가 아니었다. 휴전선 감시는 카르몬만 맡지 않고 강변·산악 도시와 설원 세 부족이 교대표를 나눴다. 어느 한쪽 보고만으로 위반을 확정하지 않도록 반대편과 중립 봉인 거점이 함께 확인했다.
아델린은 왕실 인장 자리를 비워 두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왕실도 과거 계약 당사자로서 한 인장을 찍되, 그것이 다른 열 인장 위에 놓이지 않게 했다. 책임이 있다는 사실과 최종 주권을 갖는다는 주장은 달랐다.
휴전 효력은 아흔 날이었다. 포로 교환, 겨울길 통행, 민간인 귀환, 군량 손실 대조를 그 안에 진행하고 봄에 다시 비준한다. 자동 연장도, 한 사람의 철회도 허용하지 않았다.
서명 직전 땅이 낮게 울렸다. 천막 물그릇 표면에 일정한 간격의 동심원이 생겼다. 루키안의 왼팔 봉인흔이 장갑 아래에서 붉어졌다.
카르몬 장교는 적이 봉인벽을 건드린 것이라며 협상을 중단하자고 했다. 설원 지휘자는 남쪽 마도사들의 함정이라고 맞섰다. 양쪽 모두 자기 적을 먼저 원인으로 불렀다.
루키안은 단정하지 않았다. 첫 통로 개방 기록과 북쪽 표지석 신호, 지금 진동 간격을 대조했다. 사람의 공격 흔적보다 더 깊고 넓은 곳에서 같은 박동이 올라오고 있었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이 벽은 국경선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는 휴전문에 봉인 감시 조항을 추가하자고 했다. 양쪽 거점이 같은 측정법과 중단 신호를 쓰고, 이상 기록을 한쪽 군사 기밀로 숨기지 않는다. 중심핵 식은 여전히 조각 보관하되 주민 대피 정보는 즉시 공유한다.
일부 장군은 다음 전쟁에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반대했다. 피난민 대표는 지난 봉인 폭주에서 약점을 숨긴 쪽이 먼저 주민을 태웠다고 말했다. 군사 위치가 아니라 위험 시각과 대피 범위만 공개하는 절충안이 나왔다.
최종 문서에는 왕 이름이 없었다. 북방 일곱 도시와 왕실 대표 한 명, 주민·군량·봉인 담당, 설원 세 부족이 각자 책임질 조항 아래 서명했다. 엘리안은 전체 문서 위가 아니라 충돌 조정 입회자 칸에 이름을 썼다.
설원 노인은 인장이 너무 많아 누가 약속을 지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르트는 각 인장 옆 첫 보고 날짜와 연락 장소를 보여 줬다. 한 왕의 이름보다 찾아갈 문이 더 많았다.
포로 교환 첫 줄은 취사 인부와 부상자였다. 양쪽 가족이 이름을 확인하고 서로 다른 길로 데려갔다. 용서나 화해를 강요하지 않고 현재 살아 있는 사람부터 돌려보냈다.
카르몬 성벽에서는 승전 깃발 대신 휴전 감시표가 걸렸다. 병사들은 적이 보이면 바로 쏘지 않고 거리와 방향, 무장 상태를 기록해 반대편 거점에 같은 신호를 보냈다.
세라는 회색늑대 호송 계약 종료 시각을 읽었다. 전선이 닫혔다고 모든 위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계약을 공로 때문에 늘리지 않았다. 남을 대원은 새 감시 임무를 다시 선택하게 했다.
바르논은 엘리안에게 카르몬 성문 열쇠를 기념으로 주려 했다. 엘리안은 받지 않고 도시 대표와 성문 근무자, 피난 담당자가 나눠 보관하도록 했다. 요새를 되찾은 사람이 요새를 소유하는 결말을 만들지 않았다.
휴전 사절이 돌아가는 날 빈 깃발은 더 이상 수레 앞에 없었다. 그 자리에 북방 도시와 설원 부족의 작은 신호천들이 같은 줄에 달렸다. 바람이 달라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흔들렸지만 밧줄은 하나였다.
저녁 여섯 시, 봉인벽에서 다시 낮은 진동이 왔다. 이번에는 양쪽 감시소가 같은 시각과 간격을 적어 서로 교환했다. 어느 쪽도 상대 공격이라고 발표하지 않았다.
두 기록의 수치는 완전히 같지 않았다. 설원 쪽 물그릇은 여섯 번, 카르몬 표지석은 다섯 번 움직였다. 루키안은 하나를 틀렸다고 버리지 않고 측정 위치와 도구 차이를 적었다. 공동 감시는 같은 답을 강요하는 일이 아니라 차이를 숨기지 않는 일부터 시작했다.
엘리안은 휴전문 마지막 장에 그 첫 공동 측정값을 붙였다. 변경전선은 왕 없이 닫혔다. 그러나 땅 아래에서 뛰는 낯선 박동은, 나뉜 권한이 이제 전쟁보다 오래된 힘 앞에서도 버틸 수 있는지 묻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