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차를 습격한 병사들은 카르몬 깃발을 달고 있었다. 아침 교대 직전, 북문 경비는 익숙한 흰 탑 문장을 보고 차단봉을 올렸다. 병사들은 부상자 수송 명령서를 내밀고 군량 수레 넷을 호위하겠다고 했다.
반 리를 간 뒤 그들은 마부를 끌어내리고 수레를 서쪽 숲으로 몰았다. 저항한 동행 기록자는 어깨를 다쳤지만 목숨은 건졌다. 공격자들은 로벨 군량표를 길에 뿌리며 `헌장군이 곡식을 빼돌렸다`고 외쳤다.
소문은 수레보다 빨리 요새에 돌아왔다. 피난민들은 공동 창고가 있어도 아군이 훔치면 소용없다고 항의했고, 카르몬 병사들은 회색늑대가 자기 문장으로 위장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마렉은 모욕이라며 당장 숲을 수색하자고 했다. 카르몬 부사령관도 회색늑대 숙소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맞섰다. 아군 깃발 하나가 어제 함께 싸운 두 집단을 갈라놓았다.
세라는 검을 뽑지 않고 습격 지점으로 갔다. 진흙 위에는 수레바퀴 자국 넷과 말발굽 자국 열여섯 줄이 남아 있었다. 카르몬 군마의 편자에는 겨울 미끄럼 방지 못이 네 개 박히지만, 습격대 말은 뒤쪽 두 개만 새것이었다.
“깃발은 카르몬이고 말은 섞였어.”
하르트는 찢긴 군량표를 주웠다. 원본에는 마센과 카르몬 보급관, 주민 동행자의 세 확인이 있어야 했다. 길에 흩어진 종이에는 마센 인장만 선명했고 나머지 둘은 흐린 압인으로 흉내 냈다.
마센의 인장이 찍혔다는 이유로 그를 구금하자는 요구가 나왔다. 엘리안은 인장을 찍은 시각과 종이 반출 수부터 확인했다. 마센은 전날 저녁 인계표 여덟 장에 서명했고 한 장을 잘못 써 폐기함에 넣었다.
폐기함은 비어 있었다. 태워야 할 종이를 누군가 가져간 것이다. 창고 출입표에는 야간 보급관 보조가 폐기함을 옮겼다고 적혀 있었다.
세라는 수레바퀴 자국을 따라갔다. 네 바퀴 중 하나에는 축 수리를 위해 판 세 갈래 홈이 있었다. 북쪽 봉인 공격 때 베도르 수송대를 확인하게 했던 것과 비슷했지만 같은 수레는 아니었다. 흔적을 오래된 적의 이름에 억지로 연결하지 않았다.
숲길 끝 폐제재소에서 빈 포대 두 장이 발견됐다. 공격자들은 곡식을 다른 수레로 옮긴 뒤 흔적을 나눴다. 바닥의 보리알이 북서쪽과 남쪽 두 방향으로 이어졌다.
바르논은 병력을 반으로 나눠 추격하자고 했다. 엘리안은 군량 수레 수와 필요한 인원을 계산해 남쪽 길은 빈 수레 미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래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주민 추적자 둘과 경비 넷만 보냈다.
북서쪽에서는 카르몬 문장을 벗어 던진 병사 하나가 붙잡혔다. 그는 베도르가 해산 뒤 일자리를 잃은 옛 귀족 수비대 소속이었다. 카이런의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헌장이 군량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주면 옛 지휘가 돌아온다`는 새 모집책의 말을 따랐다고 했다.
심문관은 모집책 이름을 얻기 위해 고문을 요구했다. 세라는 포로의 장화, 급료 동전, 이동 경로부터 기록했다. 겁먹은 진술 하나에 맞춰 증거를 만들면 아군 깃발과 다를 것이 없었다.
동전은 카르몬 요새 안 급료 창구에서 최근 지급한 것이었다. 바르논의 얼굴이 굳었다. 외부 잔당만의 일이 아니라 안쪽 누군가가 접근을 도왔다는 뜻이었다.
야간 보급관 보조는 도망가지 않았다. 그는 군량표 폐기본과 빈 통행패를 건넨 사실을 인정했다. 헌장 방식 때문에 배급이 느려지고 병사 몫이 줄었다고 믿었고, 한 번의 실패를 만들면 바르논이 다시 단독 통제를 얻을 것이라 생각했다.
“곡식을 훔쳐 굶게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수레를 하루 숨겼다가 발견하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엘리안은 의도가 피해를 지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피난민 배급 한 끼가 줄었고 기록자는 다쳤다. 다만 그를 오래된 왕당파의 거대한 첩자로 부르지도 않았다. 현재 한 행동과 함께 가담한 사람을 확인했다.
보조가 알려 준 산막에는 곡식 수레 세 대가 있었다. 마지막 한 대는 모집책과 옛 수비대가 국경 쪽으로 몰고 갔다. 세라는 전 병력을 보내지 않고 산막 곡식부터 안전하게 돌렸다.
피난민 일부는 포로를 공개 처형하라고 요구했다. 군량을 건드린 죄는 겨울에 살인과 같다는 분노였다. 주민 대표는 줄어든 배급과 부상 기록을 읽되 처분은 공개 심리 뒤 정하자고 했다.
남쪽 미끼 길을 확인하던 추적조가 다른 단서를 가져왔다. 버린 포대 안에 카르몬 창고용 청색 봉인끈이 있었다. 공격자들은 안에서 받은 끈으로 수레를 합법 인계처럼 꾸몄다.
하르트는 봉인끈 수량을 다시 셌다. 한 묶음이 비었고 그 반출에는 보급관 보조와 상급 보급관의 확인이 함께 있었다. 상급자는 내용을 모르고 빈 서명을 해 둔 관행을 인정했다.
바르논은 부하의 배신이라며 상급자를 보호하려 했지만, 엘리안은 빈 확인이 공격을 가능하게 한 별도 책임이라고 했다. 직접 습격과 같은 죄로 묶지 않되 개선 없이 넘어가지 않았다.
마지막 수레는 국경 샛길에서 멈춰 있었다. 모집책은 곡식을 팔지 못하고 포대를 태우려 했다. 세라는 포대와 사람 사이에 대원을 세우고, 도주로 하나를 열어 무기를 버리면 나오게 했다.
옛 수비대 셋이 투항했고 모집책은 눈길로 달아났다. 세라는 어두운 숲에서 추격하지 않았다. 포로와 군량, 아직 길에 남은 흔적을 확보하는 편이 다음 책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회수한 곡식은 처음 수량보다 일곱 포대 적었다. 산막에서 먹거나 길에 쏟은 양, 불탄 양을 추정으로 채우지 않고 미확인 손실로 남겼다. 마부와 동행 기록자가 직접 포대를 다시 셌다.
카르몬 광장에서 사건표가 공개됐다. 카르몬기 위장, 마센 폐기 인장, 보급관 보조의 통행패, 상급자의 빈 확인, 옛 수비대의 실행이 서로 다른 줄로 연결됐다. 어느 한 집단 전체를 배신자로 쓰지 않았다.
마렉은 회색늑대 숙소 수색을 요구했던 부사령관에게 사과를 받으려 했다. 세라는 공개 정정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대신 다음부터 문장만으로 아군을 확인하지 않고 교대 암호와 인계자 이름을 함께 확인하게 했다.
마센도 폐기표 관리 책임을 인정했다. 서명한 종이는 찢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취소 표시와 수량을 기록해 잠금함에 넣기로 했다. 사본을 보호하는 일만큼 틀린 문서를 누가 다시 쓸 수 있는지 막는 일도 필요했다.
다음 배급에서 줄어든 한 끼는 공동 예비분으로 채웠다. 손실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예비분 사용량과 이유를 같은 수량판에 적었다. 주민들은 곡식이 돌아왔다는 말보다 실제 포대가 창고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붙잡힌 사람들은 카이런의 잔당이라는 이름으로 즉시 닫히지 않았다. 누가 계획했고, 누가 빈 서명을 했고, 누가 칼을 들었는지 각자 심리를 받게 됐다. 모집책의 행방은 미해결로 남되 그가 모든 사건을 조종한 배후 군주라는 암시를 붙이지 않았다.
심리 전까지 포로의 이름과 혐의는 구분해 게시했다. 붙잡혔다는 사실을 유죄 확정처럼 쓰지 않고, 피해 당사자가 진술을 보탤 날짜와 포로가 반론할 날짜를 함께 알렸다. 공개는 분노를 빨리 퍼뜨리는 벽보가 아니라 확인할 순서를 보이는 장치여야 했다.
해 질 무렵 카르몬 깃발이 다시 성문 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깃대 아래 교대 암호판과 담당자 이름이 함께 걸렸다. 같은 문장을 단다고 같은 편이 되는 것도, 다른 깃발이라고 적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엘리안은 회수표 마지막 줄에 `아군 문장 확인 방식 변경`이라고 적었다. 헌장은 습격을 막지 못했다. 그러나 실패를 한 사람의 배신으로 덮지 않고 다음 문을 다르게 열게 했다. 빼앗겼던 곡식보다 그 변화가 더 늦게, 더 확실하게 요새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