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장의 첫 문장은 세 번 찢겼다. 엘리안이 처음 쓴 문장은 '왕국의 모든 권력은 백성의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였다. 아델린은 존재한다는 말만으로는 누가 책임지는지 알 수 없다며 줄을 그었다. 세라는 생존이라는 말을 핑계로 군 지휘를 빼앗는 자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루키안은 모든 권력이라는 표현 안에 마도 지식이 슬쩍 숨을 것이라고 비웃었다.
네 사람은 곡물회관 뒤편의 작은 제분실에 앉아 있었다. 넓은 회의실을 두고 이곳을 고른 것은 탁자가 하나뿐이어서였다. 누구도 단상에 올라갈 수 없고, 밀가루 먼지가 묻는 같은 의자에 앉아야 했다.
"그럼 첫 문장을 비워 두죠."
엘리안이 새 종이를 폈다. "우리가 멋진 문장을 만드는 동안 밖의 사람들이 조항부터 보게 합시다."
첫 조항은 군량이었다. 왕실과 영주가 전시를 선포해도 한 사람이 공동 창고를 열 수 없게 했다. 변경 도시 대표와 실제 창고를 쓰는 주민 대표가 서로 다른 열쇠를 맡고, 비상 개방 뒤에는 사흘 안에 사용량을 공개하도록 적었다.
세라가 물었다. "적이 성문 앞에 있는데 주민 대표를 찾느라 창고를 못 열면?"
"현장 책임자 둘이 임시로 열되 칠 일 뒤 권한이 자동으로 끝나게 하죠."
아델린이 답했다. "연장하려면 공개회의 승인을 받고, 누가 몇 자루를 어디로 보냈는지 같은 날 기록합니다."
두 번째 조항은 군사 지휘였다. 세라는 서로 다른 부대가 전장에서 손을 들고 표결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평시에는 도시와 부대가 지휘관을 승인하고, 전시 단일지휘권은 정해진 기간에만 발동하며 주민 대피와 부상자 수습 규칙을 지휘관도 바꿀 수 없게 했다.
"명령이 빠르다는 이유로 시신을 버리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해."
세라는 레온의 이름을 조항 옆 여백에 적었다. 법문에는 들어가지 않을 이름이었지만 왜 그 규칙이 생겼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세 번째는 봉인이었다. 루키안은 왕실, 변경 도시, 마도 감시단, 봉인 거점 주민이 열쇠를 하나씩 나눠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한쪽도 혼자 중심핵을 열거나 닫을 수 없고, 봉인식과 실패 기록은 공개 교육소에 남긴다.
아델린이 눈썹을 찌푸렸다. "모든 봉인식을 아무에게나 공개하면 악용될 수 있어요."
"그래서 단계별로 공개합니다. 주민이 자기 마을 균열을 막는 문양은 누구나 배우고, 중심핵을 건드리는 식은 네 기관이 서로 다른 부분을 보관해 합쳐야만 읽게 하죠. 비밀을 없애는 게 아니라 비밀의 주인을 늘리는 겁니다."
루키안은 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왼손을 탁자에 올렸다. "한 사람이 전부 알면 그 사람의 팔 하나가 왕국 전체의 약점이 됩니다. 제가 이미 증명했잖습니까."
네 번째는 왕실과 계승이었다. 아델린은 적통 심사가 공개 기록과 반론 기회를 가져야 하며 혼외 출생이나 모계 신분만으로 후보를 지울 수 없다고 적었다. 엘리안은 계승 후보가 봉인과 군량, 군권을 동시에 쥐지 못한다는 문장을 덧붙였다.
"왕이 되어도요?"
세라가 묻자 엘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기 때문에 더더욱."
초안이 공개회의 벽에 붙은 뒤 이틀 동안 잉크보다 숯자국이 더 많이 생겼다. 사람들은 읽지 못해도 조항 번호 옆에 표시를 남겼고 서기들이 질문을 받아 적었다. 상인은 비상 개방 기간이 짧다고 했고, 농부는 도시 대표만 열쇠를 가지면 작은 마을은 또 뒤로 밀린다고 했다.
북쪽 마을에서 집을 잃은 여인 에다가 회의장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첫 조항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민 대표를 영주가 고르면 열쇠가 둘이어도 한 손 아닙니까?"
제분실의 네 사람은 아무도 바로 답하지 못했다. 다음 날 수정본에는 주민 대표를 창고 이용 가구가 직접 뽑고, 영주와 상단에 고용된 사람은 같은 임기에 맡을 수 없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변경 도시 대표들은 왕실이 약해질 것을 우려했고, 귀족 대표들은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마도회 감시관은 봉인 교육이 자격 체계를 무너뜨린다고 했다. 논쟁은 사흘 밤을 넘겼다. 한 번은 베도르가와 가까운 귀족이 문서를 낚아채 난로에 던지려 했다.
그보다 먼저 방청석의 제분소 인부가 종이를 붙잡았다. 종이 가장자리만 그슬렸다. 서기단은 즉시 보관 중인 여섯 사본을 꺼내 같은 문장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회의는 방해자를 내보낸 뒤 계속됐다. 기록이 나뉘어 있으면 불 한 번으로 논의를 되돌릴 수 없었다.
카이런과 오스렌의 심리도 같은 기간 열렸다. 카이런은 귀족 작위와 군 지휘권, 왕실 자문 지위를 임시 박탈당했고 도주와 주민 인질 혐의로 공동 구금됐다. 오스렌은 위조 봉인과 분관 붕괴, 이르반 테셀의 기록 삭제에 대해 공개 재판을 받게 됐다. 두 사람의 재산 가운데 범죄 수익으로 확인된 몫은 북쪽 마을 복구와 희생자 유족 지원에 묶였다.
엘리안은 베도르가 전체를 처벌하자는 요구를 막았다. "한 사람의 혈통으로 자격을 주지 않겠다면, 같은 이유로 죄도 물려주지 않아야 합니다." 카이런에게 충성했지만 수문에서 무기를 내려놓은 병사들은 개별 심사를 거쳐 귀향하거나 공동 경비대에 지원할 수 있게 했다.
드론은 첩자 행위의 책임을 인정했다. 강요와 가족 협박, 증거 보존 협조가 함께 참작됐다. 그는 형을 면하지는 않았지만 공개 기록 정리와 피해 복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구금 기간이 줄었다. 동생은 아무 혐의 없이 풀려났다. 가족을 미끼로 쓴 자의 죄를 가족에게 돌리지 않는다는 조항이 별도 판례로 남았다.
마지막 날, 첫 문장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에다가 숯 묻은 손으로 그 자리를 두드렸다. "열쇠를 나누는 이유를 쓰면 되지 않습니까. 누구도 우리 목숨을 혼자 계산하지 못하게 한다고."
아델린이 그 말을 법문으로 다듬었다. 엘리안은 다시 평범한 말로 고쳤다. 결국 첫 문장은 이렇게 남았다. '왕국의 생존을 좌우하는 권한은 나누어 맡고, 그 사용은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기록한다.'
문서의 이름은 공동통제 헌장이 됐다. 왕실 대표, 귀족회의, 변경 도시와 주민 대표, 마도 감시단이 각각 인장을 찍었다. 네 인장 가운데 하나라도 빠지면 봉인 중심핵과 전시 군량을 함께 움직일 수 없었다. 비상권한에는 끝나는 날짜가 먼저 적혔다.
서명 직전 세라는 자기 군권도 같은 제한을 받는지 다시 물었다. 아델린은 예외가 없다고 답했고, 루키안은 학교장도 중심핵 열쇠를 겸할 수 없다고 자기 조항을 덧붙였다. 네 사람은 남의 권력만 나누는 헌장이 아니라 자기 손에서 무엇을 내려놓는지 확인한 뒤 펜을 들었다.
엘리안과 세라, 루키안, 아델린은 문서 맨 아래가 아니라 입회자 명단 중간에 이름을 썼다. 초안을 만든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 큰 칸을 갖지 않았다. 하르트는 모든 수정 이력과 반대 의견을 별책으로 묶었다.
헌장이 확정되자 회관 밖 종이 네 번 울렸다. 왕실을 위한 한 번, 귀족을 위한 한 번, 변경 도시를 위한 한 번, 봉인을 지킬 사람들을 위한 한 번이었다. 다섯 번째 종은 울리지 않았다. 어느 한 사람이 네 소리를 합쳐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세라는 제분실로 돌아와 찢긴 초안 세 장을 모았다. "이건 버리나?"
루키안이 말했다. "남겨 둡시다. 네 사람이 처음부터 현명했던 것처럼 기록되면 곤란하니까."
엘리안은 그슬린 종이와 틀린 문장까지 기록함에 넣었다. 헌장은 완벽한 네 사람이 내려 준 답이 아니었다. 서로를 믿으면서도 서로의 손을 제한하고, 바깥의 질문으로 고쳐진 불편한 약속이었다. 그래서 왕관보다 오래 버틸 가능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