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없는 창고의 포위는 둘째 날 정오까지 이어졌다. 기름통을 분리한 뒤 안에서는 불을 켜지 않았고 창문마다 곡식 자루가 쌓였다. 책임자들은 장부를 태울 수 없게 되자 붙잡힌 수레꾼과 남은 청소년을 문 앞에 세웠다. 사람이 새 벽이 됐다.
진무백은 정문 돌파를 거절했다. 안에 있는 최소 열두 명 가운데 누가 무기를 들었고 누가 방패인지 어둠 속에서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창고 구조도를 바닥에 놓고 세 가지를 따로 표시했다. 사람 퇴로, 물자 이동로, 증거 보관실이었다.
혜륜은 사람 퇴로를 맡았다. 낮은 뒷창 아래에 넓은 천을 펴고 뛰어내리는 사람을 받칠 준비를 했다. 창문을 깨면 파편이 떨어질 수 있어 틀째 빼는 방법을 목수와 찾았다. 무공보다 창고를 지은 손의 지식이 먼저였다.
남궁현은 물자 퇴로를 맡았다. 곡식 자루가 문을 막고 있었지만 일부는 가족 공동 구매분이었다. 압수품이라 한꺼번에 가져가지 않고 봉인 번호와 받는 집을 확인했다. 위험 원료 상자만 별도 수레에 실을 준비를 했다.
구칠은 증거 보관실 벽의 옛 암호를 읽었다. 책임자들이 장부를 불태우지 않는 이유는 빚을 계속 받을 유일한 근거였기 때문이다. 종이를 지키면서 사람을 방패로 삼았다. 그는 장부가 살아 있어야 피해자가 빚을 대조할 수 있다는 역설을 이용하기로 했다.
외부 기록자는 장부를 공동 보관하면 실제 원금 증명에 쓸 수 있다고 안쪽에 알렸다. 넘긴 사람이 전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장부를 지키려 인질을 세울 이유는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책임자 하나가 거래를 묻자 선처 약속은 없다고 답했다.
안의 책임자 노객 석모는 안전 통행과 돈 절반을 요구했다. 진무백은 돈과 처분을 흥정하지 않았다. 무기를 내려놓고 사람을 먼저 보내면 치료와 공개 심리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도 다치면 치료받지만 이익 은닉은 계속 조사된다고 밝혔다.
석모는 붙잡힌 수레꾼 목에 칼을 댔다. 경비가 활을 겨누자 혜륜이 내리게 했다. 한 발이 석모를 맞혀도 뒤 사람을 찌를 수 있었다. 대화 담당과 퇴로 담당은 서로의 신호를 확인하며 시간을 벌었다.
창고 안 청소년 하나가 곡식 자루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두 번, 한 번, 세 번은 아이들이 정한 위치 신호였다. 연지가 밖에서 그림과 맞춰 봤다. 목수는 그 벽 뒤에 빈 환기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혜륜과 목수는 환기통 덮개를 소리 없이 풀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물과 흰 천, 안전 설명 쪽지를 밀어 넣었다. 나올 사람은 무기를 두고 천을 들라는 내용이었다. 내부 선택을 기다리는 통로였다.
첫째로 붙잡힌 수레꾼 하나가 기어 나왔다. 그는 다리에 쇠사슬이 있었지만 끝이 바닥이 아니라 곡식 자루에 묶여 있었다. 밖 사람들이 자루 무게를 받치고 줄을 잘랐다. 증거 자루는 위치를 표시한 뒤 물자 담당에게 넘겼다.
수레꾼은 밖으로 나온 뒤 다시 들어가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혜륜은 그 용기를 이용하지 않고 내부 구조와 친구 위치만 물었다. 다친 사람이 구조자가 되어야 자유를 얻는다는 조건을 만들지 않고, 성인 경비가 다음 퇴로를 준비했다.
둘째로 청소년 둘이 나왔다. 하나는 작은 칼을 들고 있었고 창 밖에서 내려놓았다. 경비는 칼을 들었다는 이유로 공격하지 않고 손을 보이게 한 뒤 진료 구역으로 보냈다. 자발적으로 감시했는지는 이후 따로 물었다.
석모는 환기통을 알아채고 장부 상자를 인질 곁으로 옮겼다. 종이를 넘기지 않으면 아무도 빚을 없앨 수 없다고 외쳤다. 구칠은 맞는 부분을 인정했다. 그래서 태우지 않고 피해자와 외부 기록자가 나눠 보관할 것이라고 다시 말했다.
책임자 가운데 젊은 장부지기 하나가 흔들렸다. 그는 숫자를 썼을 뿐 사람을 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구칠은 강제 이자를 알고도 계산한 책임은 심리하되 장부를 온전히 넘긴 사실도 기록하겠다고 했다. 무죄 약속이 아닌 정확한 역할 판정이었다.
책임자들이 항복 조건을 바꾸어 말하지 못하도록 모든 전갈은 문 양쪽에서 같은 서기가 읽었다. 안에서 들은 청소년도 틀린 부분을 소리쳐 고칠 수 있었다. 대화 기록은 석모 처분과 별개로 보존돼 포위 뒤 누가 어떤 약속을 받았는지 확인했다.
장부지기는 뒷창으로 상자 하나를 밀어냈다. 상자 안에는 원본이 아니라 최근 석 달 장부가 있었다. 외부 기록자가 페이지 수와 봉인을 확인하고 공동 보관했다. 안쪽에는 옛 장부가 더 남아 있었지만 첫 이동이 통로를 열었다.
남궁현은 곡식 자루를 옮길 때 받는 집을 큰 소리로 읽었다. 안의 운반자들이 자기 가족 몫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자루는 압수 수레가 아니라 목적지별 수레에 나뉘었다. 물자가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이 투항 선전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석모는 마지막 수단으로 위험 원료 상자 뚜껑을 열려 했다. 당소연은 멀리서 냄새와 표찰을 확인하고 물을 붓지 말라고 외쳤다. 소백이 같은 통의 촉각 패를 기억해 젖은 모래로 덮는 법을 알려 줬다. 안의 청소년이 먼저 모래 자루를 밀었다.
위험 상자가 고정되자 혜륜이 정문 걸쇠를 끊었다. 사람을 향해 돌진하지 않고 문짝이 넘어지지 않게 받쳤다. 방패로 세워진 이들이 옆 퇴로로 빠질 때까지 경비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석모와 책임자 둘의 위치만 계속 확인했다.
진무백은 석모에게 마지막으로 칼을 놓을 기회를 줬다. 석모는 장부를 품고 지붕 사다리로 달렸다. 바깥 산지기가 지붕 퇴로를 이미 막고 있었다. 진무백이 결투로 붙잡지 않고 지역 경비가 내려오게 했다.
책임자 셋은 서로 다른 상태로 나왔다. 석모는 끝까지 저항했고, 장부지기는 자료를 넘겼으며, 한 명은 청소년에게 가족 협박을 가했다. 같은 포위 안에 있었다고 같은 처분을 정하지 않았다. 무기와 손의 위치, 지시 내용을 각각 기록했다.
사람 수는 처음 예상보다 셋 많았다. 바닥 저장칸에 숨은 어린아이 둘과 아픈 노인이 있었다. 당소연은 창고 집계가 끝났다는 말을 취소하고 모든 칸을 다시 확인했다. 치료는 피심리자와 인질을 가리지 않고 위급한 순서로 이어졌다.
곡식 스물한 자루 중 열다섯은 가족 공동 구매, 셋은 강제 이자 담보, 셋은 출처 미확인이었다. 확인된 가족 몫은 그날 출발했고 담보분은 심리 보관함에 남았다. 출처 미확인 자루를 구호 명목으로 임의 배분하지 않았다.
장부 네 상자는 서로 다른 수레로 운반됐다. 한 상자를 빼앗아도 전체 빚 기록을 지울 수 없었다. 사본 작업은 피해자 대조실에서 이뤄지고 원본은 외부 금고에 갔다. 구칠에게는 암호 풀이 사본만 주어졌다.
포위가 끝났다고 아이들을 환호 속에 세우지 않았다. 나온 사람들은 진료·식사·안전 진술 구역으로 흩어졌다. 기자 역할의 서기들도 이름 공개 동의를 받기 전 얼굴 특징을 쓰지 않았다. 구조의 장면이 새 낙인이 되지 않았다.
진무백은 창고 문에 매화맹 깃발을 달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건물은 지역 공동 창고로 전환할지, 위험 때문에 폐쇄할지 주민이 결정할 일이었다. 맹은 첫 안전 점검과 증거 이전까지만 머물렀다. 승리한 세력이 빈 공간을 차지하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창고에 처음 등불이 켜졌다. 사람 수를 다시 확인하고 위험 원료를 옮기기 위한 작업등이었다. 불 없는 창고의 포위는 적장의 패배로 끝나지 않았다. 사람·식량·장부가 다른 길로 안전하게 빠져나와 각자의 주인과 심리 자리로 돌아가며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