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길 임시 초소에는 회수된 번호패 서른둘이 한 줄로 놓였다. 나무패마다 숫자는 있었지만 사람 이름은 없었다. 객주들은 번호만 알면 품삯과 빚을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심리석은 그 계산이 누구의 삶과 어떤 행위에 붙었는지 본명부터 다시 물었다.
오석은 `삼칠` 패 옆에 섰다. 그는 보리와 약초를 옮겼고 사람을 숨겨 나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장부에는 같은 번호가 세 해 전 납치 수레에도 적혀 있었다. 번호가 사람보다 오래 살아 다른 사람의 죄까지 덮어씌우고 있었다.
옛 수레꾼들은 패를 서로 빌리거나 물려썼다고 증언했다. 죽은 사람 패를 가족이 쓰기도 했고 객주가 빚과 함께 넘기기도 했다. 번호 기록만으로 현재 사람의 과거 행위를 확정할 수 없었다. 수레 경로와 목격, 받은 품삯을 다시 맞춰야 했다.
외부 기록자는 본명을 공개하기 두려운 사람에게 비공개 원본과 별칭 공개본을 허용했다. 다만 심리 당사자와 피해자는 확인된 신원을 열람할 수 있었다. 이름을 되찾는 일이 장터 벽에 가족 거처까지 붙이는 벌이 되지 않게 했다.
첫 대조에서 오석이 쓴 삼칠 패는 세 사람을 거쳤음이 드러났다. 첫 사용자는 납치 수레를 몰았고 이미 사망했다. 둘째는 곡식 운반자였고 셋째가 오석이었다. 같은 숫자 아래의 행위가 한 줄 죄명으로 합쳐지지 않았다.
둘째 수레꾼 백남은 가족 식량을 대가로 사람 둘을 창고까지 옮겼다고 인정했다. 그는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지만 수레 안에서 울음소리를 들은 뒤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협박과 뒤늦은 인지가 함께 있었다. 모른 시간과 알게 된 뒤 선택을 나눴다.
셋째 수레꾼 장두식은 처음부터 납치임을 알고 높은 품삯을 받았다. 그는 가족도 굶었다고 주장했지만 같은 마을 다른 운반자보다 세 배를 챙긴 장부가 나왔다. 생계 압박이 있었어도 이익과 자발적 가담의 정도가 달랐다.
강요받은 운반자들은 장두식과 같은 줄에 세우지 말라고 요구했다. 피해 유족은 강요를 이유로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했다. 심리석은 두 요구를 모두 듣고 납치 인지 시점, 거부 가능성, 협박 내용, 이익, 이후 신고를 항목별로 만들었다.
판정 초안은 당사자와 피해자에게 사흘 동안 열렸다. 수레꾼은 협박 시각과 품삯을 정정할 수 있었고 유족은 빠진 피해를 이의로 냈다. 이름 보호를 택한 사람도 외부 보관자를 통해 자기 항목을 확인해, 공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반박권을 잃지 않았다.
오석에게는 통행 계약 위반과 제한 원료 무지 운반만 확인됐다. 그는 상자 내용을 확인할 권한이 없었지만 이상 냄새를 맡고도 묻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 위험 물자 교육과 한 달 공개 호송 감독을 받되 납치 가담자로 판정하지 않았다.
백남은 피해자 대면 여부를 유족이 정하게 하고, 강제 운송 피해 회복 노동과 일정 품삯 배상에 참여했다. 가족을 굶기지 않도록 기본 수입은 남겼다. 협박한 객주에게는 별도 책임이 돌아갔다. 강요가 고려돼도 울음 뒤 침묵은 기록에서 빠지지 않았다.
장두식은 높은 이익과 반복 가담 때문에 수레 지휘권이 장기간 제한됐다. 숨긴 재산 일부는 피해 회복에 묶였고 공개 심리에 계속 출석했다. 그 어머니 배급은 그대로 유지됐다. 가족 밥독으로 그의 자백이나 배상을 대신 받지 않았다.
번호패 거래를 중개한 객주는 사람보다 패가 계약 주체였다고 항변했다. 누가 쓰든 번호 빚만 받았다는 말이었다. 심리석은 실제 사람이 바뀌어도 빚을 이어 붙인 행위가 강제 노동을 만든 책임을 물었다. 패의 연속성이 본인의 동의가 되지 않았다.
구칠은 번호표와 옛 암호표를 대조했지만 혼자 판정하지 않았다. 안전가옥에서 나온 장부, 피해자 기억, 마을 통행표가 함께 놓였다. 정보꾼이 숫자를 읽는 능력은 자료 하나일 뿐 사람의 이름과 행위를 결정하는 권력은 아니었다.
서백하는 감독 아래 기록 보조로 참석했다. 그는 옛 운송 때 번호 교체를 묵인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패가 누구에게 넘어갔는지 기억나는 범위와 추정을 나눴다. 과거 내부자라는 이유로 그의 기억을 진본처럼 쓰지 않았다.
피해자 한 명은 백남 목소리를 기억했다. 수레 안에서 물을 달라고 했을 때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한 사람이라고 했다. 백남은 그 장면을 인정했다. 그가 몰래 물통을 넣어 둔 사실도 나왔다. 작은 도움은 납치 운반 책임을 지우지 않았고, 잔혹함만 있었다고 왜곡하지도 않았다.
본명 공개 자리에서 한 여성 운반자는 이름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옛 객주가 가족을 찾을까 두려웠다. 심리석은 그녀의 신원을 외부 보관자가 확인하고 공개본에는 `동쪽 수레꾼`으로 남겼다. 본명을 존중한다는 말로 안전 선택을 빼앗지 않았다.
그녀는 협박받아 식량을 옮겼지만 한 번 무기 상자를 숨겨 나른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 내용은 몰랐으나 무거운 쇳소리와 경비를 보고 의심했다고 했다. 그 진술은 이후 샛길 수색에 쓰였지만 공로로 책임 심리를 면제하지 않았다.
번호패를 모두 당장 태우자는 표결은 부결됐다. 아직 실종 수레와 빚 장부를 대조하는 데 필요했다. 각 패는 사용 기간과 확인된 사람을 붙여 공동 기록함에 보관하고 대조가 끝난 뒤 공개 폐기하기로 했다. 상징을 남기는 것과 증거를 보존하는 일을 구분했다.
공개 호송에 쓸 새 패는 숫자가 아니라 이름과 역할, 그날 경로를 적었다. 이름 공개를 원치 않는 사람은 외부 확인 번호를 병기했다. 패는 계약이 끝나면 반납되고 빚과 함께 다음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도구가 사람보다 오래 책임을 끌고 가지 못하게 했다.
객주들은 본명 계약이 느리고 비용이 든다고 반발했다. 마을 공동 호송조는 출발 전 확인 시간을 품삯에 포함했다. 서류를 쓰는 노동도 공짜로 떠넘기지 않았다. 낮은 품삯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옛 번호로 돌아가지 않게 했다.
피해 유족들은 판정문에 강요 정도만 강조될까 걱정했다. 기록자는 각 수레가 낳은 피해와 현재 상태를 먼저 읽고, 그 뒤 운반자의 조건을 붙였다. 가담자 사정을 설명하는 말이 피해자를 배경으로 밀지 않도록 순서를 정했다.
오석은 새 이름패를 목에 걸지 않고 수레 옆 고리에 달았다. 몸에 번호를 달아야 일하는 사람이 된다는 습관을 끊고 싶었다. 경비는 패와 얼굴을 맞추되 길을 지날 때마다 소리쳐 부르지 않았다. 확인과 모욕을 나눴다.
백남은 피해 회복 수레 첫날 물통을 맡았다. 유족이 원치 않아 직접 만나지 않고 공동 창고에 내려놓았다. 그는 과거 수레에 물을 넣었던 일을 선행으로 말하지 않았다. 이번 역할은 처분 일부이자 새 노동이었고 품삯 일부가 가족에게 갔다.
장두식은 심리 뒤 감호소로 돌아갔다. 어머니에게 배급을 끊지 않는다는 통보도 함께 갔다. 그는 그 배급을 자기 선처 근거로 쓸 수 없었다. 가족 보호와 개인 책임이 같은 봉투에 들어갔지만 서로 다른 문서였다.
해가 질 때 서른둘 패 가운데 열아홉의 사용자가 확인됐다. 여덟은 여러 사람을 거쳤고 다섯은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심리석은 `전원 확인`이라 쓰지 않았다. 남은 불확실성을 다음 샛길 대조와 공개 질문으로 넘겼다.
번호패 밑에서 나온 본명들은 모두 영웅도 모두 피해자도 아니었다. 어떤 이는 강요받았고, 어떤 이는 이익을 골랐으며, 많은 사람은 두 시점 사이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이름을 되찾는 일은 무죄를 주는 의식이 아니라 각 행위를 정확한 사람에게 돌려주는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