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매진 폐곡창 마당에는 문파 깃발이 하나도 없었다. 가운데에는 오창관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 운송꾼과 약방 사람이 앉았다. 당문·남궁·소림·무당·개방, 다섯 문파 대표는 뒤쪽 낮은 의자에 자리했다. 곽연수는 무장하지 않은 마을 호위 사이에 포승을 맨 채 앉았다.
공개 심판의 첫 발언자는 문파 대표가 아니었다. 장씨가 딸의 목패를 들고 ‘처리’라는 글자가 어떻게 죽음과 행방불명을 감췄는지 말했다. 이어 범초가 오창관 문이 닫힌 날의 곡식 수량을 읽었다. 도성과 매아 유족은 구칠의 배신으로 잃은 사람 이름을 직접 불렀다.
청연도인은 세 원본의 봉인을 하나씩 확인했다. 당문 창고 출고 원본, 실종자 명단 원본, 오창관 폐쇄 원본이 햇빛 드는 탁자에 펼쳐졌다. 개방의 검은 장부, 진무백 아버지의 운송 원장, 오창관 생존자 대조표는 옆 탁자에 놓였다. 어느 한 문서도 다른 것을 명령하지 않았다.
첫 대조는 날짜였다. 소림이 오창관 배급 불능을 기록한 날, 당문은 해독제보다 독환을 먼저 내보냈고 남궁은 피난 수레를 병장기 호송으로 돌렸다. 무당은 산길을 봉했으며 개방 일부 장로는 우물 정보를 대가로 곡식을 받았다. 따로 보면 작은 결정들이 같은 날 사람들의 퇴로와 식량을 함께 끊었다.
다섯 문파 대표는 전시 불가피성을 말하려 했다. 고씨가 발언 순서를 피해자 뒤로 돌렸다. 노달은 불가피했다면 왜 전쟁 뒤 원본을 숨겼느냐고 물었다. 침묵은 전장의 혼란이 아니라 평화가 온 뒤에도 이어진 선택이었다. 대표들은 그 질문을 기록에 넣는 데 동의했다.
실종자 명단의 미확인 일곱 이름도 곽연수 급료 장부에서 확인됐다. 넷은 서쪽 여울 매장표에 사망일과 위치가 적혀 있었고, 셋은 중계창 가족 배급 목록의 가명과 손도장이 맞았다. 살아 있는 세 사람이 마당에서 본명을 확인했다. 남은 이름을 후속 비밀로 남기지 않고 사망과 생존을 모두 가족에게 돌려주었다.
구칠과 나준은 여울 매장지를 확인한 기록을 제출했다. 도성과 매아의 유해도 같은 길목에서 찾아 유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구칠은 장부 운반로를 판 책임을 다시 읽고 개방 지휘권 박탈을 받아들였다. 유족은 그가 수색과 호송 복구에 참여하되 돈과 인원을 혼자 정하지 못하게 했다.
당소연의 아버지는 마당 앞에서 입회 증언을 반복했다. 독환 거래, 환자 구조, 원로회 결재, 장부 절취를 한 줄도 빼지 않았다. 처분은 독재고 접근과 단독 출고 권한의 영구 박탈, 외곽 진료소에서의 감독 치료였다. 수입 일부는 독 피해자 치료에 쓰고 사용 내역을 공개하기로 했다.
남궁가 숙부와 비고지기는 선대 호송과 현 세대 은폐를 나눠 인정했다. 남궁가는 후계자 개인 돈이 아니라 가문 공동 재정으로 미확인자 수색과 유족 거처를 맡았다. 남궁현은 후계 후보에서 스스로 빠지고 가족·가문 사이 공개 연락책을 맡되 명단 상자의 열쇠는 갖지 않았다.
무진대사는 오창관 폐쇄 원본을 봉하고 법경의 죄만 적은 일을 증언했다. 소림은 누락 구휼미를 현재 생존자 수와 치료 필요에 맞춰 갚고 봉인경 열람표를 공개하기로 했다. 무진은 장로 자격과 강론 권한을 내려놓고 생존자 진료소의 기록 정리와 곡식 계량을 맡았다.
현허진인은 무당 대표 자리에서 임시 장문인 목패를 내려놓았다. 외유 뒤 복귀 과정과 출처 없는 보고로 순찰을 바꾼 책임을 인정하고 정식 선출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다. 하늘문은 류정화와 외부 입회자가 함께 운영하는 공개 위탁소로 바뀌며 반환 거절 기록도 열람 목록에 올랐다.
개방 장로회는 도성과 매아 순직 기록을 바로잡고 구칠에게 넘겼던 연락 권한을 유족·전령 공동 표로 바꿨다. 안전 가옥은 위치를 무턱대고 공개하지 않되 누가 접근을 승인했는지 남기기로 했다. 보호를 이유로 다시 한 명의 연락책이 모든 길을 갖지 못하게 했다.
다섯 문파의 공동 전쟁 빚은 곡식만으로 계산되지 않았다. 치료, 매장 확인, 거처, 기록 복원, 증언자 호송 비용이 항목별로 정해졌다. 각 문파가 낼 몫은 당시 전용한 물자와 은폐 기간을 함께 반영했다. 피해자 대표가 반년마다 사용 내역을 대조하기로 했다.
그제야 곽연수 앞으로 살해 명령표와 첫 인장이 놓였다. 그는 진무백의 아버지를 직접 죽였고, 구칠이 판 길에서 매복을 명령했으며, 가족 배급으로 운반자를 협박하고 오창관 대조표 소각을 지시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자신의 질서가 없었다면 생존자는 더 일찍 버려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범초는 처음 생존자 길을 만든 사람이 법경이며 곽연수가 아니라고 답했다. 나준은 번호와 급료가 생긴 뒤 사람 이름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증언했다. 서백하는 곽연수와 거래해 일부를 살린 일이 조직의 강압을 오래 유지하게 한 측면까지 인정했다. 곽연수의 질서 논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말 앞에서 하나씩 무너졌다.
진무백은 아버지 살해에 대해 직접 질문했다. 곽연수는 운송 원장을 얻어 오대 세력을 통제하려 했고 거절당하자 죽였다고 다시 말했다. 전쟁 생존자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는 말도 덧붙였다. 진무백은 “내 아버지도 전쟁 뒤 가난한 표사였소”라고 답했다. 밑바닥 사람을 죽여 밑바닥 사람의 복수를 완성할 수는 없었다.
공개 심판은 곽연수에게 종신 공동 감호를 내렸다. 어느 문파도 단독으로 풀어 주거나 거래할 수 없고 백매진 다섯 마을과 피해자 대표가 감호 기록을 나눠 갖는다. 무공 수련과 무기 접근, 조직 연락은 금지되며 모든 추가 진술은 입회 아래 공개된다. 사형으로 입을 닫거나 비밀 감옥으로 숨기지 않는 처분이었다.
흑야루의 첫 인장과 두 번째 인장은 모든 명령표 대조가 끝난 뒤 작동 면을 공개 절단했다. 탁본은 증거함에 남기고 절단 조각은 서로 다른 보관소에 넣었다. 급료·배급 명령은 전부 효력 종료 도장을 받았으며 가족 배급은 협박 조건 없이 마을 구호표로 옮겨졌다.
무기고는 다섯 문파가 나눠 갖지 않았다. 독환은 당소연과 외부 의원이 해독·폐기 목록을 만들었고, 평범한 칼과 곡식은 피해자 대표 결정 아래 호송과 구호 도구로 전환됐다. 검은 누각패는 새 조직의 표식으로 쓰지 않고 증거로만 봉했다. 흑야루라는 강압 지휘망은 이름과 운영 모두 끝났다.
번호패를 찼던 사람들도 한꺼번에 무죄나 유죄가 되지 않았다. 배급 협박만 받은 운반자는 본명을 되찾고 보호처로 갔다. 고문·살해에 자발적으로 가담한 집행자는 각 행위의 증언과 물증에 따라 공동 감호나 피해 복구 노동을 받았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도 명령받았다는 말도 자동 면죄가 아니었다.
서백하는 마지막으로 마당 중앙에 섰다. 생존자를 빼낸 일, 무기 수레 세 번을 옮긴 일, 진무백 아버지 죽음을 보고 숨은 일, 나준을 내보내면서 자신은 남은 일을 모두 말했다. 그는 스승 자리나 표국 복권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의 행위가 기록될 곳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했다.
피해자 대표들은 서백하를 감옥에 숨기기보다 감독받는 기록원으로 두기로 했다. 매화맹 구호 창고가 세워지면 배급과 운송 기록을 쓰되 돈·열쇠·호송 명령권은 갖지 않는다. 매달 공개 질문에 답하고 운송 가담 피해가 확인되면 보상 작업을 추가한다. 도망치지 않고 남아서 책임질 최종 자리가 정해졌다.
진무백은 그 처분에 찬성도 반대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유족과 생존자가 결정한 뒤 자신도 한 표를 보탰다. 사제 관계는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으며 공개 자리에서는 서백하를 기록원으로 대하기로 했다. 개인의 그리움이 공동 심판을 바꾸지 않게 했다.
당소연은 아버지 곁에 서되 그의 변호인이 되지 않았고, 혜륜도 무진대사의 처분을 사문 안에서 줄이지 않았다. 남궁현은 숙부의 서명을 확인했고 청연도인은 현허의 목패 반납 시각을 적었다. 여섯 사람 모두 가까운 이를 책임 기록 밖으로 빼지 않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 세 원본은 다시 봉함됐다. 원본 소재, 사본 수, 다음 열람일이 게시판에 적혔다. 가족들은 각자 확인한 이름 옆에 현재 상태를 남겼다. 사망자 매장 위치와 생존자 거처도 보호 범위 안에서 당사자에게 전달됐다. 이름 없는 빈칸은 남지 않았다.
곽연수의 감호 수레가 마당을 떠날 때 누구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용서해서가 아니라 판결이 이미 내려졌고, 돌보다 긴 책임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개를 들었지만 명령을 받을 사람도, 배급을 끊을 장부도, 도망칠 지휘소도 없었다.
범초는 폐곡창 문에 공동 전쟁 빚의 첫 납부표를 붙였다. 다섯 문파 대표가 같은 높이에 도장을 찍고 피해자 대표가 그 위에 확인선을 그었다. 문파가 자비를 베푸는 표가 아니라 빼앗고 숨긴 것을 돌려주는 시작이었다.
마당이 비어 갈 때 진무백은 아버지 운송 원장 사본을 한 장 받았다. 원본은 공동 보관소에 남았다. 그는 아버지 이름 아래 ‘살해자 곽연수, 공개 심판 완료’라고 적힌 문장을 오래 보았다. 복수의 대상은 살아서 감호됐고, 죽음의 이유는 더는 소문이 아니었다.
다섯 문파가 들은 것은 한 악인의 죄만이 아니었다. 자기들이 나눠 만든 굶주림과 침묵, 그 틈에서 태어나 사람을 다시 묶은 흑야루의 전모였다. 곽연수와 강압 조직은 끝났고 서백하의 실종도 책임지는 생으로 결론났다. 공개 심판은 모든 빚을 갚지 못했지만 누가 무엇을 갚을지는 빈칸 없이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