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가 대문 밖에는 실종자 가족 다섯이 흰 천을 깔고 앉아 있었다. 이름을 쓴 목패를 하나씩 앞에 세웠지만 문지기는 들어오게 하지 않았다. 남궁현은 말에서 내려 가족들 뒤에 앉았다. 가문패를 보이면 혼자 들어갈 수 있었으나 그 길을 쓰지 않았다.
대문 안에서는 원로들이 해산을 명령했다. 실종자 명단은 흑야루가 만든 위조이며 가문 비고에는 그런 원본이 없다고 했다. 남궁현은 석 달 전 자신이 본 종이의 크기와 묵인을 소리 내어 설명했다. 원본을 보았으면서 사본만 숨겼다는 사실도 가족들 앞에서 처음 인정했다.
딸을 잃은 장씨가 남궁현에게 왜 석 달이나 기다렸느냐고 물었다. 그는 후계 심사가 끝나면 비고 열쇠를 정식으로 얻어 조용히 꺼낼 생각이었다고 했다. 확실한 권한을 얻을 때까지 피해자에게 기다리게 한 셈이었다. “가문을 바꿀 힘이 필요하다는 말로 내 자리를 먼저 지켰습니다.”
장씨는 뺨을 때리지도 용서하지도 않았다. 오늘 문을 열지 못하면 무엇을 할지 물었다. 남궁현은 가문패를 반납하고 자신이 본 위치와 내용, 막은 사람 이름을 공개 대조일에 증언하겠다고 답했다. 원본 실패를 다시 침묵의 이유로 삼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정오가 되자 대문이 열리고 남궁현의 숙부인 집법원주가 나왔다. 그는 가족은 밖에 두고 남궁현과 개방 입회자만 들이겠다고 했다. 남궁현은 실종자 가족 둘, 종이 감식자 한 명이 함께 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대문 앞 장터 사람들이 모이자 숙부는 마침내 좁은 회의방까지 입회를 허락했다.
비고는 회의방 뒤 돌계단 아래 있었다. 남궁현이 가문패를 홈에 넣자 첫 문이 열렸다. 둘째 문 앞에서 그는 패를 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여기까지는 혈족 권한으로 왔습니다. 이제부터는 가족 입회로 엽니다.” 비고지기에게 정식 반출 청원을 읽게 했다.
숙부는 명단이 족보함 아래 있다는 주장을 부정했다. 비고지기도 모른다고 했다. 남궁현은 자신이 몰래 보았던 날의 행동을 재현했다. 족보함을 옮긴 뒤 바닥 널빤지 한쪽을 누르자 얇은 서랍이 밀려 나왔다. 안에는 기름종이로 싼 세 묶음이 있었다.
첫 묶음은 전쟁 중 남궁 호송대 배치, 둘째는 오창관에서 넘겨받은 인원, 셋째가 실종자 명단 원본이었다. 이름 옆에는 ‘이송’, ‘이탈’, ‘처리’라는 모호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처리 칸의 사람 열아홉은 그 뒤 어느 문파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장씨는 딸 이름을 찾다가 손가락을 멈췄다. ‘처리’ 두 글자 옆에 남궁가 선대 집법원주의 도장이 있었다. 현 숙부의 아버지였다. 숙부는 전시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장씨는 죽였다는 뜻인지, 넘겼다는 뜻인지 묻고 원문 담당자를 불러 달라고 했다.
비고지기는 ‘처리’가 흑야루 전신의 밤길로 신병을 넘긴다는 암호였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피난시키는 뜻이었지만 곽연수가 길을 장악한 뒤에는 강제 운송과 다르지 않았다. 남궁가는 직접 죽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후 생사를 확인하지 않았다. 모호한 한 단어가 책임을 끊었다.
숙부는 원본 반출을 막으려고 무사들을 불렀다. 남궁현의 사촌이 앞에 서서 후계 자리를 포기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남궁현은 탁자 위 가문패를 사촌 쪽으로 밀었다. “자리는 네가 가져도 된다. 하지만 이 종이는 가족들이 읽는다.”
사촌이 검을 뽑자 남궁현은 칼날을 맞대지 않았다. 검집으로 손목을 흘리고 상대의 칼을 족보함 위가 아닌 빈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문 무사 셋이 달려들었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원본 둘레에 앉아 이름을 읽기 시작했다. 무사들은 사람을 베어야만 종이에 닿을 수 있었다.
숙부가 멈추라고 외쳤다. 체면 때문인지 양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칼은 더 나오지 않았다. 남궁현은 사촌을 묶지 않고 무기만 치웠다. 위협 행위와 명령자를 입회서에 적고, 누구도 방 안에서 몰래 처벌하지 못하게 공개 마당으로 데려갔다.
종이 감식자는 명단 원본의 섬유와 먹을 살폈다. 남궁 전시 문서와 같은 닥나무 혼합지였고 가장자리의 푸른 실은 공식 호송 장부에만 쓰였다. 묵인 균열도 선대 인장 원본과 맞았다. 흑야루가 뒤늦게 꾸민 위조가 아니라 남궁가 안에서 만든 문서였다.
호송대 배치 원본의 수레 번호도 명단 옆 작은 숫자와 일치했다. 남궁가가 단순히 타인의 명단을 보관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어느 수레에 태웠는지 직접 관리한 흔적이었다. 숙부는 선대 일이라 했지만 현 가문이 원본을 숨겨 온 기간은 지금 세대의 책임으로 따로 적혔다.
오창관 생존자 대조표 사본을 펼치자 ‘처리’된 열아홉 가운데 열둘의 이름이 나왔다. 다섯은 법경의 구호 길에서 살아남았고 일곱은 곽연수의 번호패를 받았다. 남은 일곱은 아직 생사를 알 수 없었지만, 새 미스터리로 감추지 않고 미확인 피해자로 공개 심판 명단에 올리기로 했다.
장씨의 딸은 오창관 약방 표시가 있는 나무패에서 확인됐다. 오래전 병으로 숨졌고 범초가 매장 위치를 적어 두었다. 장씨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실 앞에서 주저앉았지만 적어도 ‘처리’라는 말 대신 마지막 장소와 돌본 사람 이름을 얻었다. 남궁현은 곁에 서되 위로할 말을 앞세우지 않았다.
비고지기는 원본을 왜 족보함 밑에 숨겼는지 밝혔다. 전쟁 뒤 원로회가 파기하라 했으나 자신이 두려워 태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그는 보존한 공과 은폐한 책임을 함께 진술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그가 원본 호송에 동행해 질문에 답하도록 요구했다.
남궁현은 실종자 명단 원본을 자기 손으로 들지 않았다. 장씨와 비고지기, 개방 입회자가 세 끈을 나눠 잡은 상자에 넣었다. 그는 뒤에서 호위하되 열쇠를 갖지 않았다. 원본을 찾아낸 공로가 소유권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숙부는 가문패를 주워 남궁현에게 돌려주려 했다. 남궁현은 받지 않았다. 후계 심사가 아니라 공개 책임을 마친 뒤 평범한 혈족으로 남을지는 가족들과 다시 논의하겠다고 했다. 정의를 택했다는 한마디로 가문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 영웅이 되지도 않았다.
대문 밖에 나오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명단을 빼앗듯 몰렸다. 장씨가 먼저 상자 앞을 막고 한 사람씩 이름을 확인하게 했다. 남궁현은 질서를 명령하지 않고 물과 의자를 날랐다. 무사들은 칼을 풀어 대문 안에 두고 복사 작업을 도왔다.
사본 첫 장에는 남궁현 자신의 진술이 붙었다. 원본을 본 날짜, 석 달 동안 침묵한 이유, 가족 입회를 요구한 과정, 가문패를 내려놓은 시각까지 적혔다. 그의 선택은 후계권 포기만으로 끝나지 않고 지연 때문에 생긴 위험을 드러내는 기록이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남궁가를 불태우지 않았다. 원본 보존과 질문 답변, 미확인 피해자 수색 비용을 요구했다. 숙부는 공개 대조일에 선대 집법 문서와 현 가문의 재정을 제출하겠다고 서명했다. 지키지 않으면 명단 사본이 이미 여러 마을에 있어 숨길 수 없었다.
남궁현은 수색 비용을 자신의 사재로 먼저 내겠다고 했지만 장씨가 막았다. 개인의 선행으로 가문의 공동 책임을 대신하면 다음 후계자가 없던 일로 돌릴 수 있었다. 남궁가 재정에서 정식 항목을 만들고 가족 대표가 사용 내역을 확인하게 하기로 했다. 남궁현의 몫은 그 결정을 통과시키는 증언이었다.
해 질 무렵 상자는 백매진으로 출발했다. 남궁현은 가문 깃발 없는 말에 올라 맨 뒤를 지켰다. 대문 위 현판을 한 번 돌아봤지만 절하지도 침을 뱉지도 않았다. 가문을 사랑했다는 사실과 가문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함께 들고 가는 길이었다.
실종자 명단 원본은 남궁가 비고에서 나왔고, 가문패는 비고 문턱에 남았다. 남궁현은 정의를 택했다는 칭송 대신 가족들의 질문을 받을 자리를 택했다. 그가 내려놓은 것은 성씨가 아니라 성씨가 진실보다 먼저 들어갈 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