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하의 사문패는 청문 멸문 당일 대문을 연 사람의 패였다. 그가 살아 돌아와 고백한 뒤에도 패는 목에 걸리지 않고 천주머니 안에 있었다. 본산 유족은 배신의 증거라 했고, 백도겸 쪽은 별원 계보를 완성할 유물이라며 넘겨 달라고 했다.
백도겸은 윤세하가 사형 자격을 잃었으니 패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본산 유족은 방계 선대도 학영회와 타협했으니 가져갈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양쪽은 패의 새 주인을 다투면서 정작 윤세하가 그것을 어떻게 보관해 왔는지 묻지 않았다.
윤세하는 감독 서리에게 패를 가져와 달라고 했다. 자기 방에 혼자 두고 있었지만 감독 기간 동안 유물 반출은 입회가 필요했다. 그는 천주머니를 탁자 위에 놓고도 바로 열지 않았다. 발견 시각, 봉인끈 상태, 마지막 열람자를 먼저 읽었다.
패 앞면에는 본산 문양, 뒷면에는 남쪽 별원 통행 홈이 함께 있었다. 윤세하는 멸문 직전 양쪽을 오가는 전달 역할을 맡았다. 그 이력 때문에 두 무리가 모두 자기 정통성에 유리한 증거로 보았다. 한 물건이 두 관계를 잇는 순간 소유 싸움은 더 커졌다.
서진해는 사형의 물건이니 윤세하가 고르라고 말하려다 멈췄다. 사형제 관계를 회복한 적도 없고, 개인 선택만으로 공적 증거를 넘길 수 있는지도 불분명했다. 그는 윤세하에게 원하는 처리와 법적·기록적 한계를 나눠 말해 달라고 했다.
윤세하는 패를 가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목에 걸면 과거 지위를 되찾는 것 같고, 부수면 불편한 증거를 없애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넘기면 그 편을 정통이라 선언하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소유를 포기하되 증거 탁자에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백도겸은 포기가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윤세하는 자신이 대문을 연 행동과 이후 침묵에 관한 증언 의무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패를 가지는 일과 출석 책임은 다른 문제였다. 유물을 붙들어야만 잘못을 기억할 수 있다는 생각도 경계했다.
공개 증거 탁자는 세 면이 유리인 낮은 함이었다. 누구든 겉모양을 볼 수 있지만 꺼내려면 피해자 대표, 기록 보관자, 외부 서기의 열쇠가 모두 필요했다. 패 소유자는 `청문 공동 기록`으로 적혔다. 본산이나 방계 어느 목록에도 개인 재산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본산 유족 하나가 패를 깨뜨리자고 요구했다. 배신의 상징을 남기면 윤세하를 다시 사형으로 추앙할 사람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다른 유족은 바로 그 위험을 설명하는 표지와 함께 남겨야 한다고 했다. 파괴와 보존 사이에서도 피해자 의견이 하나가 아니었다.
심리자는 패 옆 설명문을 유족이 공동 작성하게 했다. `이 패는 통행과 배신, 구조와 침묵에 함께 사용되었다.` 윤세하는 문장을 부드럽게 고치려 하지 않았다. 자기 행동을 한 단어로 선하거나 악하게 만들지 않는 문장이 더 오래 경계가 될 수 있었다.
백도겸은 별원 통행 홈의 탁본을 요청했다. 계보 교육에 쓸 목적이었다. 유족은 패 전체 탁본이 위조 사문패를 만드는 틀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필요한 홈의 비율을 바꾼 교육용 그림만 제공하고 정확한 크기와 뒷면 결은 비공개로 남겼다.
그날 밤 방계 청년이 윤세하를 찾아와 몰래 패를 빌려 달라고 했다. 별원 제사 하루만 제단에 놓으면 후손들이 마음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세하는 거절하면서도 그 청년을 즉시 고발하지 않았다. 대신 다음 날 요청 자체를 공개 심리에 올리겠다고 알렸다.
청년은 자기가 말한 것을 왜 모두에게 밝히느냐고 화냈다. 윤세하는 은밀한 부탁을 혼자 품은 과거가 결국 더 큰 거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요청자의 이름은 초기 공개판에서 가리고, 같은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과 거절 근거만 기록했다. 고백과 폭로 사이의 범위를 조절했다.
반대편에서는 본산 유족이 윤세하에게 패를 밟고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사과를 거부하지 않았지만 유물을 훼손하는 의식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굴욕의 장면이 대문을 연 사람들의 피해를 되돌리지 못하고, 구경꾼에게 쉬운 결말만 줄 수 있었다.
윤세하는 피해자 앞에서 당시 어떤 명령을 들었고 어느 순간 반대할 수 있었는지 다시 증언했다. 외부 위협 때문에 선택지가 좁았지만, 경고할 시간 한 번을 침묵으로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패의 존재는 그 진술을 돕는 물건이지 죄를 대신 짊어지는 부적이 아니었다.
감독 서리는 윤세하가 패를 공동 보관에 넣으면 감독 항목 하나가 끝난다고 설명했다. 윤세하는 남은 기록 대조와 증언 일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확인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내려놓는 날을 책임 종료일로 착각하기 쉬웠다. 일정표의 끝 칸은 그대로 비어 있었다.
서진해는 사형이라는 호칭을 쓸지 윤세하에게 물었다. 윤세하는 공개 업무에서는 이름만 쓰고, 둘 사이 사적 자리에서는 서진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서진해는 당분간 윤세하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용서하지 않는 선택도 복수의 연장이 아니라 관계 경계가 될 수 있었다.
담소령은 패를 보러 온 사람들이 진료소 복도까지 줄을 서자 동선을 바꿨다. 환자가 유물 구경꾼 사이를 지나지 않게 뒷문을 열고, 설명 시간을 정해 대기 줄을 줄였다. 청문의 역사 교육이 현재 환자의 치료 접근을 밀어내지 않았다.
막금산은 패 함을 객잔 상석 옆에 두자는 제안을 반대했다. 권위 있는 자리 가까이에 놓이면 의도와 달리 숭배물이 될 수 있었다. 유리함은 기록실 입구의 낮은 선반에 놓였다. 아이도 내려다볼 수 있고 누구도 무릎을 꿇지 않는 높이였다.
첫 공개일, 어떤 노인은 패 앞에 향을 피웠다. 기록 보관자는 불을 끄며 향이 종이와 나무를 상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숭배 금지라는 꾸짖음보다 보존 규칙을 적용했다. 노인은 화를 냈지만 설명문을 읽고 향 대신 자기 기억 한 줄을 증언함에 넣었다.
백도겸은 유리 너머 별원 홈을 보고 조부 이야기를 적었다. 본산 유족은 대문이 열린 날의 가족 이름을 적었다. 두 기록은 같은 함 옆 서로 다른 서랍에 들어갔다. 한쪽이 다른 쪽의 해설이 되지 않고, 열람자는 둘 다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윤세하는 마지막으로 패를 손에 올렸다. 나무는 생각보다 가벼웠고 목에 걸던 끈 자국만 짙었다. 그는 끈을 새것으로 바꾸지 않았다. 과거 지위를 복원하는 물건이 아니라 사용 흔적을 가진 증거로 남겨야 했다. 천주머니도 발견 물품으로 함께 보관했다.
열쇠 세 개가 돌아가고 유리함이 닫혔다. 윤세하는 자기 손에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했다. 백도겸도 패를 받지 못했고 본산 유족도 부수지 못했다. 모두가 원하는 결말을 얻지 못한 대신 누구도 혼자 물건의 뜻을 정하지 못하게 됐다.
그날 저녁 서진해와 윤세하는 같은 국상에 앉았지만 서로 술을 따르지 않았다. 윤세하는 고백을 했고 서진해는 들었으나 사형제 복원을 선언하지 않았다. 막금산이 상을 치우려 하자 두 사람은 각자 자기 그릇을 부엌으로 옮겼다. 관계는 화해의 의식보다 반복되는 경계 속에서 움직였다.
증거 탁자 안 사문패는 밤에도 빛나지 않았다. 낮은 등잔 아래 평범한 낡은 나무 조각으로 보였다. 윤세하는 빈 목을 가리지 않고 기록실 문을 닫았다. 어느 편도 강화하지 않은 선택 덕분에 패는 권위를 돌려주는 인장이 아니라, 한때 권위가 사람의 침묵을 어떻게 요구했는지 묻는 물건으로 남았다. 다음 날 찾아온 아이도 패의 주인보다 설명문을 쓴 여러 사람의 이름부터 읽었다. 그 질문은 다음 열람자에게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