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우물물은 손이 저릴 만큼 차가웠다. 서진해는 두레박 줄을 감아 올리며 손가락 끝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객잔 뒤편으로 밀려오는 아침 바람에는 장작 연기 냄새가 묻어 있었고, 부엌에서는 막금산이 솥뚜껑을 들었다 놓는 쇳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오 년째 듣는 소리인데도, 요 며칠 사이에는 다르게 들렸다. 솥뚜껑이 아니라 칼집을 여닫는 소리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남았다.
"거기서 뭐 해, 얼어 죽게?"
담소령이 부엌 뒷문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머리를 대충 올려 묶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모습이 어제보다 더 객잔 사람 같았다. 며칠 사이 그녀는 아침 죽 쑤는 일을 제 일처럼 해냈고, 막금산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서진해가 두레박의 물을 항아리에 옮기자 담소령이 다가와 국자로 물을 떴다. 그러다 그의 손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손가락 갈라졌네. 보여 봐."
서진해가 손을 거두려 했으나 담소령은 이미 그의 왼손을 낚아챘다. 물에 젖은 손바닥 위로 오래된 굳은살이 줄지어 있었다. 검을 쥐던 자리, 약연을 갈던 자리였다. 담소령의 눈이 잠깐 가늘어졌다가 이내 풀렸다.
"약방 심부름꾼 손치고는 참 재밌는 손이야."
대꾸를 기다리지도 않고 그녀는 품에서 작은 기름종이를 꺼내 갈라진 손가락에 연고를 발랐다. 밀랍과 자초를 섞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서진해는 그 냄새를 알았다. 청문파 의방에서 겨울마다 만들던 동상고와 배합이 같았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으나 표정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아픈 데 보면 손이 가는 거지."
담소령이 손을 놓으며 말했다. 그러나 돌아서는 그녀의 눈빛은 쾌활한 목소리와 달랐다. 서진해는 그것을 알아보았고, 담소령 또한 자신이 들킨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얇은 침묵이 깔렸다가, 부엌 안쪽에서 솥 끓는 소리가 그것을 덮었다.
아침 장사를 시작하기 전, 막금산이 서진해를 불렀다. 장날이라 장에 다녀오라는 심부름이었다. 소금 반 되, 된장 한 항아리, 생강 두 근. 막금산은 살 물건을 하나씩 불러 주다 말고 서진해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투박한 손이 턱을 한 번 문질렀다.
"오늘 장터에서 쓸데없는 소리 들어도 얼굴에 내지 마라."
평소의 "밥이나 먹어"와는 다른 무게였다. 서진해가 눈을 들었으나 막금산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부엌 선반 위, 어젯밤 도를 꺼냈던 자리에 기름걸레가 접혀 있었다. 도는 보이지 않았다.
장터는 삭풍진에서 반 시진 거리, 관도를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넓은 공터였다. 보름에 한 번 열리는 장이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간혹 멀리서 온 행상이나 떠돌이 무인이 술을 사 마시며 강호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했다. 서진해는 삿갓을 깊이 눌러쓰고 소금장수 앞에서 값을 흥정했다. 사투리를 섞어 말할 때마다 입안에 모래 같은 것이 씹혔다. 자신의 진짜 목소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가끔 헷갈렸다.
생강 좌판 옆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두어 명의 장정이 술을 돌려 마시며 수군대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무림맹 순찰대가 이 근방까지 내려왔다는 거 아냐?"
"뭐 때문에? 산적 소탕이야?"
"산적이면 다행이지. 듣자 하니 옛날 멸문된 문파 잔당을 찾는다더라. 이름이 뭐였냐…… 청문파?"
서진해의 손이 생강을 쥔 채 굳었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생강 껍질이 손톱 밑으로 파고들었으나 통증은 늦게 왔다.
"잔당이라 해 봐야 다 죽었을 거 아냐. 오 년 전 일인데."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다 죽었으면 뭘 찾아? 뭔가 남긴 게 있는 거 아니겠어."
그 '뭔가'가 무엇인지 서진해는 알고 있었다. 품속 가장 깊은 곳, 천으로 세 겹 감싸 넣어 둔 얇은 책자의 무게가 갑자기 몇 배로 무거워졌다. 그는 생강 두 근 값을 치르고 최대한 천천히 돌아섰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으나 걸음은 느렸다. 급할수록 느리게 걸어라. 막금산이 한 번도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그의 걸음은 늘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관도 이정표를 지나쳤다. 어제 확인한 칼자국 세 줄이 여전히 나무에 패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새로운 흔적이 생겨 있었다. 칼끝으로 짧게 그은 듯한 얕은 선 하나. 네 번째 줄이었다. 서진해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세 줄이 전진의 표식이라면 네 번째는 무엇인가. 멸문 전야에 익힌 표식은 세 줄까지만이었다. 네 번째는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무심한 척 이정표 곁을 스쳐 지나가다, 발끝을 반 보 옆으로 틀었다. 보법을 감춘 짧은 움직임이었다. 뒤를 밟는 자가 있다면 그 반 보에 호흡이 흔들린다. 그러나 관도에는 소달구지 바퀴 소리와 장꾼들의 웃음만 흩어질 뿐, 눈에 띄는 기척은 없었다. 그럼에도 서진해의 등줄기에는 식은 기운이 흘렀다. 보이지 않는 자가 더 무섭다. 칼을 드러낸 적보다, 숨을 죽인 적이 오래 산다.
객잔에 돌아왔을 때 해는 이미 중천을 넘기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담소령이 약첩을 펼쳐 두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서진해가 짐을 내려놓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생강을 이렇게 꽉 쥐었어. 손자국이 다 났잖아."
서진해는 대꾸 없이 소금 항아리를 선반에 올렸다. 담소령은 약첩을 덮으며 말을 이었다.
"아까 그 연고 배합 말인데, 자초 삼 돈에 밀랍 이 돈, 당귀 기름 반 돈. 이거 아무 데서나 쓰는 비율이 아니야."
서진해의 손이 멈추었다.
"약방 심부름만 했다고 알 수 있는 배합도 아니고, 특정 문파 의방에서나 쓰는 거거든."
담소령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쾌활함이 벗겨지고 그 아래의 날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서진해는 선반에서 손을 내리지 않은 채 등을 보인 그대로 서 있었다. 말하면 끝난다. 이 부엌도, 이 객잔도, 오 년간 쌓아 온 평온한 잡역의 시간도.
"나도 이 배합을 어머니한테서 배웠어. 어머니가 어디서 배웠는지는 끝내 안 가르쳐 줬지만."
서진해가 돌아서서 담소령을 보았다. 그녀의 눈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갑지 않았다. 차가움보다는 간절함에 가까운 빛이었다. 추궁하는 사람의 눈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을 더듬어 찾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 빛이 서진해의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다. 분명 경계해야 하는데도, 잠깐은 입술 끝까지 올라온 이름을 붙잡지 못할 뻔했다.
"……옛날에 다니던 약방 어르신이 좀 특이한 분이셨지요."
천천히 내뱉은 말은 끝내 거짓말과 진실의 중간쯤에 걸쳤다. 사투리를 섞는 것도 잊은 목소리였다. 담소령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약방 어르신, 혹시 성이 뭐야?"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서진해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물러서면 담소령은 의심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자신이 지켜 온 위장은 금이 간다. 침묵과 거짓말 사이에서 그는 처음으로 분명한 선택 앞에 섰다.
"묻지 마십시오."
담소령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게 대답이야?"
"예."
서진해는 끝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내가 드릴 수 있는 전부입니다."
짧은 말이었으나 그 안에는 버티는 힘이 실려 있었다. 담소령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낼 줄 알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입술을 깨물었다. 서진해는 그 표정을 보고서야 자신이 그녀를 밀어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적을 속이는 일은 익숙했지만, 자신을 믿으려는 사람을 밀어내는 일은 달랐다. 가슴 어딘가가 둔하게 저렸다.
그때 부엌 문이 열렸다. 막금산이 서 있었다. 평소보다 어깨가 굳어 있었고, 그의 시선이 담소령을 한 번 훑은 뒤 서진해에게 고정되었다.
"진해. 잠깐 나와라."
뒤뜰 장작더미 옆에서 막금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늘 장에서 뭘 들었느냐."
서진해가 순찰대 이야기를 전하자 막금산의 턱이 한 번 굳었다가 풀렸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막금산이 입을 열었다.
"진해야. 떠날 준비를 해라."
그 호칭이 달랐다.
'이놈아'
가 아니었다. 막금산이 서진해를 이름으로 부른 것은, 오 년 전 비에 젖은 아이를 객잔 뒷문에서 거둬들인 그 밤 이후 처음이었다. 서진해의 입술이 떨렸으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떠난다. 그 한마디가 가슴속에 돌처럼 가라앉았다. 숨어 사는 일은 익숙했지만, 이곳을 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왜입니까."
마침내 나온 물음은 낮았으나 분명했다.
막금산이 그를 돌아보았다. 눈빛이 거칠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오래 눌러 둔 무언가가 그 밑에서 꿈틀거렸다.
"네가 여기 더 있으면, 이 집이 피를 본다."
"그럼 저만 보내고 끝납니까?"
말이 나간 뒤에야 서진해는 자신이 따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오 년 동안 한 번도 묻지 못한 것이 목구멍을 밀고 올라왔다.
"정말 저를 살리려는 겁니까. 아니면, 이제 와서 버리려는 겁니까."
장작더미 너머 바람이 한 번 세게 스쳤다. 막금산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의 허리춤에는 아까까지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길게 걸려 있었다. 도였다. 어젯밤 달빛 아래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살리려는 거다."
막금산의 대답은 짧았다.
"버릴 거였으면, 오 년 전에 문턱에서 돌려보냈다."
그 한마디가 서진해의 가슴을 세게 쳤다. 따뜻해서가 아니라, 너무 늦게 들려서였다. 막금산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강호의 어른들은 원래 그런 식이었다. 정을 주고도 말하지 않고, 지키고도 티를 내지 않는다. 대신 칼을 뽑는다.
해가 지고 객잔에 손님이 셋 들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행상이었으나 서진해의 눈은 그들의 손을 먼저 보았다. 굳은살의 위치, 손가락 관절의 굵기. 한 명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묵은 칼자국이 있었다. 칼을 거꾸로 쥐는 습관이 남기는 흔적이었다. 다른 한 명은 술잔을 들 때 어깨가 아니라 허리로 먼저 힘을 받았다. 외공을 익힌 자의 몸이었다. 셋째는 말수가 적었으나 방 안에 들어설 때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 습관처럼 기척을 죽이는 자였다.
원인이 분명해지자 수싸움도 또렷해졌다. 저들이 정말 행상이라면 밤새 술이나 마시다 갈 것이다. 아니면, 객잔의 숨은 칼을 확인하려 들 것이다. 서진해는 표정을 움직이지 않은 채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손님이 건네는 말에 짧게 답하고, 부엌으로 돌아와 솥을 닦았다. 손은 움직였으나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다. 저 셋이 오늘 밤 떠나지 않으면, 막금산이 정말 도를 뽑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솥 닦는 소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저 손님들, 장꾼 같아 보여?"
어느새 곁에 선 담소령이 낮게 물었다.
서진해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번에는 거짓말을 고르지 않았다.
"아닙니다."
담소령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럼 왜 들였어?"
"막을 수 없으니까요."
그 말은 곧, 싸움이 나면 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담소령은 잠깐 숨을 삼켰다. 그러고는 약첩을 접어 품에 넣었다.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서진해는 이상하게도 더 불안해졌다. 강호를 모르는 이의 무모함이 아니라, 물러서지 않는 사람의 결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밤이 깊자 객잔은 겉으로만 잠잠해졌다. 마루는 조용했지만, 조용할수록 사람의 기척은 더 또렷했다. 방 안 손님 셋의 호흡은 일부러 느리게 가라앉아 있었고, 부엌 쪽에서는 막금산이 장작을 뒤적이는 척 발의 중심을 옮기고 있었다. 언제든 도를 뽑을 수 있는 자세였다. 서진해는 물동이를 들고 뒤뜰로 나갔다가 우물가에 선 담소령을 보았다. 그녀는 이미 소매를 걷어붙인 채 돌난간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 하십니까."
"낮부터 자꾸 마음에 걸려서."
담소령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
"우물 안쪽 돌틈에 뭔가 끼어 있더라."
그녀가 몸을 더 숙이려 하자 서진해가 반사적으로 손목을 붙잡았다. 우물가 돌은 밤이슬에 젖어 미끄러웠다.
"위험합니다. 내일 밝을 때 보시죠."
"내일이면 없어질 수도 있어."
담소령이 손을 빼내며 쏘아붙였다.
"당신은 자꾸 내일을 말하네. 그런데 오늘 밤 지나면, 정말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아."
그 한마디에 서진해는 더 말하지 못했다.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지금 여기서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부딪쳤다. 잠시 뒤 그는 짧게 숨을 고르고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우물 난간에 한 발을 디뎠다.
"내가 꺼내겠습니다."
그것은 만류가 아니라 결단에 가까웠다. 담소령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리지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서진해는 몸을 낮춰 돌틈을 더듬었다. 차가운 물기와 이끼가 손끝에 묻었다. 손목에 힘을 주자 오래 숨겨 둔 내공이 아주 얇게 흘렀다. 티 나지 않을 만큼만, 그러나 미끄러지지 않을 만큼은 분명하게. 오 년 동안 감춰 온 몸의 기억이 저절로 깨어났다.
잠시 후 손가락 끝에 젖은 종이의 감촉이 걸렸다. 그가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 내려오자 담소령이 곧바로 등잔불을 가까이 가져왔다.
달빛과 희미한 불빛 아래, 종이 위에 먹으로 쓴 글자 두 개가 번져 있었다.
잔화(殘火).
서진해의 숨이 멎었다. 그가 쓴 것이 아니었다. 이 객잔에서, 그보다 먼저 누군가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종이는 오래 젖어 있었는데도 먹빛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아주 오래된 흔적만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담소령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뭔지 알아?"
서진해는 대답하지 못했다. 담소령의 눈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더 이상 객잔의 잡역꾼이 아니었다. 그때, 우물 안쪽에서 물이 한 번 낮게 흔들렸다.
철퍽.
바람이 없는데도 수면이 먼저 움직였다. 서진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객잔 지붕 너머 어둠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척이 스쳤다. 기세는 숨겼으나 시선은 숨기지 못한 자의 미세한 압박이었다. 같은 순간, 객잔 안쪽에서 문설주가 아주 작게 울렸다. 손님 셋 중 누군가가 움직인 것이다.
막금산의 도가 뽑히기 직전의 정적이 뒤뜰까지 번져 왔다. 담소령은 종이를 움켜쥔 채 서 있었고, 서진해는 본능처럼 그녀의 반 보 앞을 막아 섰다. 잔화라는 이름을 이곳에 남긴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지금 이 객잔을 둘러싼 것은 무림맹의 추적뿐인가, 아니면 청문파의 불씨를 아는 또 다른 누가 먼저 손을 뻗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