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해가 흐른 뒤에도 취선객잔 첫일은 그릇을 씻는 일이었다. 새벽 장꾼이 남긴 사발, 밤 호송자가 비운 약그릇, 이름을 말하지 않은 손님이 쓴 잔이 한 물통에 모였다. 한소령은 소매를 걷고 물 온도를 확인했다. 등에 남은 봉쇄는 계절마다 아팠지만 더는 벽의 전설이 아니었다.
열아홉 상태표는 그동안 네 번 바뀌었다. 미확정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은 생존 확인, 한 명은 사망 확인으로 옮겨졌고 마지막 한 명은 여전히 근거가 부족했다. 비공개 귀환자 하나는 스스로 이름을 공개했고 다른 둘은 번호로 남았다. 첫 숫자는 지워지지 않고 변경 날짜와 함께 보관됐다.
막리연의 오 년 감독 기간이 끝나는 날, 회당은 열쇠와 서명권을 모두 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오랫동안 다른 검토자의 승인을 받아 보고서를 냈고 날짜 기준표를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사람들은 이제 청명 기록고 책임자가 되어 달라고 권했다. 과거 잘못을 다 갚았다는 축하도 뒤따랐다.
막리연은 열쇠 한 벌을 받지 않았다. 감독은 끝났지만 대조 업무에 두 사람 검토가 필요한 이유는 자기 신분이 아니라 기록의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일반 대조자로 남아 새로 온 서기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겠다고 했다. 책임 기간 종료가 독립 감시 종료로 바뀌지 않았다.
자기 품삯에서 나가던 재심 분담금은 그날로 정확히 끝났다. 운영회는 더 내면 선행이라 칭송받을 수 있지만 의무처럼 보이지 않게 별도 기부 절차를 안내했다. 막리연은 추가 돈 대신 한 달에 두 번 날짜 읽기 수업을 맡았다. 그것도 수강자가 평가하고 원하면 다른 강사를 고를 수 있었다.
윤채의 삼 년 무기 제한은 이미 두 해 전에 끝났다. 청명 창고에는 그의 옛 검이 봉인된 채 남아 있었다. 회당은 오늘 마지막으로 찾아갈지 폐기할지 정하라고 통지했다. 윤채는 봉인을 열어 칼날 상태만 확인하고 소유권을 포기했다. 검은 피해 회복 재원 경매에도 내놓지 않고 쇠붙이로 녹이기로 했다.
사람들은 다시 칼을 차도 되는데 왜 포기하느냐고 물었다. 윤채는 검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고 했다. 호송 길에서 장대와 종, 수레꾼의 판단을 연결하는 일이 자기에게 더 맞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금지가 끝났으니 반드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녹인 쇠는 시장 종의 금 간 추를 보수하는 데 쓰였다. 윤채는 자기 검으로 만든 종이라고 현판을 달지 못하게 했다. 종은 누구나 위험을 알릴 때 치는 공공 도구였다. 과거 주인의 이름이 붙으면 다른 사람이 울리기를 망설일 수 있었다. 쇳물은 모양과 소유를 함께 잃었다.
팽노는 소금길 열쇠를 넘긴 뒤에도 기록고 회의에 참석했다. 예전처럼 답을 먼저 말하지 않고, 당사자 대표가 표식을 설명한 뒤 빠진 부분만 보탰다. 기억이 흐려진 날에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의 사본에는 잡혀 간 네 아이의 표식과 공개 가능한 추모 기록이 남아 있었다.
임복의 일 년 제한도 오래전에 끝났다. 그는 다시 민감 구역 일을 맡지 않고 국솥을 선택했다. 청명은 복귀하지 않는 것을 죄책감의 증거로 보지 않았다. 그의 아이는 진료를 마치고 시장 글방에서 수량표를 배웠다. 가족의 삶이 판정문 꼬리표보다 멀리 갈 수 있었다.
노진수 어머니는 머리가 완전히 희어졌다. 우석은 몇 해 동안 짚신을 신고 남쪽 길의 사람들을 파서진으로 안내하다가, 밑창이 다 닳자 오른짝을 돌려보냈다. 노모는 그가 원해서 건넨 것인지 세 번 확인한 뒤 받아들였다. 대신 새 신 한 켤레를 엮어 그의 발에 맞춰 보냈다.
벽에는 왼짝과 오른짝이 다시 나란히 걸렸다. 오른짝은 소금에 닳아 크기가 줄었고 매듭은 바깥에 있었다. 두 신발은 처음부터 같은 삶을 산 물건처럼 보이지 않았다. 노모는 그 차이를 고치지 않았다. 아들의 마지막과 우석의 생존이 한 켤레 안에서 서로를 지우지 않게 했다.
그날 청명 운영회에는 다음 십 년 공동 운영표가 올라왔다. 취선객잔 숙식, 공동 기록고, 진료소, 호송 교육을 각기 독립 회계로 두고 필요한 비용만 공개 협약으로 나누는 안이었다. 한 사람이 네 일을 모두 지휘하지 못하며, 이용자 대표는 삼 년마다 바뀌었다.
한소령에게는 무예 교육 책임자 자리가 제안됐다. 그는 첫 여섯 식을 가르치되 검법 독점권을 갖지 않는 조건을 냈다. 배우지 않아도 호송 참여에 불이익이 없고, 종 신호와 대피법을 먼저 익히며, 몸에 무리가 생기면 그만둘 수 있어야 했다. 일곱째 자리는 교육표에 만들지 않았다.
담여화는 진료소 책임을 혼자 십 년 맡으라는 제안을 거절했다. 치료 체계가 한 의원의 명성과 체력에 매이면 자신이 아픈 날 환자들이 길을 잃는다. 세 명의 순환 책임자와 환자 대표 검토, 진료 정보 분리 보관을 조건으로 공동 운영에 동의했다. 그녀는 한소령의 계획에 부속 서명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름은 서로 다른 칸에 있었다. 한소령은 숙식과 안전 교육, 담여화는 진료와 약재 교육을 맡고 공동 의결은 이해 충돌 때 함께 빠졌다. 사람들은 두 사람이 혼인하는지 먼저 물었지만, 담여화는 운영표가 관계 선언문은 아니라고 답했다. 함께 사는 선택도 공동체 권한과 섞지 않았다.
한소령은 십 년이 너무 길지 않으냐고 물었다. 담여화는 매년 그만둘 권리와 인수 기간이 적혀 있으니 길어도 된다고 했다. 영원을 약속하는 대신 떠날 절차를 함께 적는 것이 더 믿을 만했다. 두 사람은 종료와 갱신 조건을 읽고 각자 자기 칸에 지장을 찍었다.
운영표 첫 검토자는 노진수 어머니였다. 그녀는 밥 먹는 시간이 계획 어디에도 없다며 여백을 두드렸다. 숙식 담당자와 진료 담당자가 끼니를 거르면 공동체가 영웅의 굶주림 위에 서게 된다고 했다. 하루 두 번 교대 식사와 대체 담당자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
막리연은 날짜 기준을 확인했고 윤채는 종 점검 주기를 보탰다. 팽노는 비밀 연락표를 운영표에 붙이지 말고 별도 당사자 규칙으로 두자고 했다. 임복은 국솥 비용이 진료비로 잘못 합쳐지지 않게 장부 칸을 나눴다. 오래 책임을 진 사람들이 자기 공로를 자리로 바꾸지 않고 작은 오류를 찾았다.
해 질 무렵 노모는 벽의 짚신 두 짝을 내렸다. 사람들은 추모 패와 함께 계속 두자고 했지만 그녀는 노진수 장례 보자기를 펼쳤다. “찾는 일은 끝났고, 이 신도 할 만큼 걸었어.” 왼짝과 오른짝을 포개지 않고 나란히 놓은 뒤 천을 접었다.
짚신이 있던 빈 벽에는 새 실종 공고를 붙이지 않았다. 노모가 고른 문장이 작은 나무판에 새겨졌다. `찾는 동안에도 밥을 먹을 권리가 있다.` 기다림 때문에 치료와 집, 오늘의 국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글씨 아래에는 누구 이름도 서명되지 않았다.
밤 수업에서 한소령은 여섯째 식까지 동작을 마쳤다. 아이 하나가 그 뒤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그는 검을 닫았다. “뒤에는 오늘 몸이 쉬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웃었고, 그는 등에 통증이 오기 전에 자리를 담임 교사에게 넘겼다. 완성하지 않은 힘은 여전히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다.
담여화는 진료소 문을 닫고 주방으로 왔다. 그녀는 한소령에게 약이 아니라 마른 행주를 건넸다. 둘은 운영표에 함께 서명한 사람답게 거창한 말을 찾지 않고 남은 그릇 수를 나눴다. 물통 한쪽은 따뜻했고 다른 쪽은 헹굼물로 차가웠다.
문밖 시장 종이 세 번 울렸다. 위험 신호가 아니라 늦은 길손이 도착했다는 객잔 약속이었다. 한소령은 누가 왔는지 묻기 전에 의자 둘을 펴고, 담여화는 국솥 불을 살렸다. 청명 사람들은 이름표보다 젖은 어깨와 빈 배를 먼저 보도록 배웠다.
문이 열리자 낯선 노인과 어린아이가 들어왔다. 둘은 자기 사정을 말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한소령은 설명을 재촉하지 않고 따뜻한 물을 내왔고, 담여화는 진료가 필요한지만 물었다. 빈 벽의 문장이 불빛 아래 보였다. 여섯 식 뒤에는 더 강한 비급이 아니라, 누구든 앉아 밥을 먹고 자기 이름을 고를 수 있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