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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5-8화]

어머니가 고른 질문

작성: 2026.09.01 19:51 조회수: 1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본 작품은 가상의 무협 세계를 배경으로 한 창작물입니다. 작중 등장하는 무술, 비급, 문파 체계 등은 모두 허구이며, 폭력 묘사는 장르적 관습 안에서 다루어집니다.

노진수의 마지막 길을 확인할 증인은 세 사람이었다. 염삼 교대장 딸 문소애, 탈출 배를 저었던 늙은 사공, 당시 함께 갇혔던 우석이었다. 셋은 서로 만나지 않은 채 파서진에 도착했고, 객잔의 다른 방에 머물렀다. 진수 어머니는 누구 얼굴도 먼저 보지 않았다.

회당 서기는 사망 확인에 필요한 질문 목록을 내밀었다. 얼굴 생김새, 신체 흉터, 죽은 장소와 시각, 시신 처리였다. 노모는 종이를 한참 읽다가 절반을 접었다. “사람 얼굴은 어둠에서 달라지고 흉터는 남이 배울 수 있어. 내가 물을 것을 내가 고르겠다.”

그녀가 첫째로 적은 것은 국밥 간이었다. 진수는 소금길에서 일하면서도 국에 소금을 먼저 넣지 않았고, 무 조각을 으깬 뒤 마지막에 간을 봤다. 둘째는 짚신 뒤축을 고칠 때 매듭을 숨기는 위치였다. 셋째는 비가 오면 어느 어깨부터 젖은 옷을 벗는지였다.

한소령은 질문이 따뜻하다고 칭찬하지 않았다. 일상 기억도 누군가 미리 들으면 외울 수 있었다. 각 증인에게 질문을 하기 전 어디서 그 정보를 알았는지, 서로 접촉했는지 확인했다. 노모의 답은 별도 봉투에 넣고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

문소애는 죽은 탈출자가 국을 받자 소금 그릇을 밀어 냈다고 말했다. 무가 없어서 마른 순무 조각을 물에 불려 으깼다고도 했다. 짚신은 뒤축 안쪽 옆면에 매듭을 넣어 고쳤다. 비에 젖은 옷에 관해서는 기억하지 못했다. 세 질문 가운데 두 개가 맞았다.

늙은 사공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밤중에 다친 사람들을 태웠고 한 사내가 배에 오르지 않은 채 밧줄을 잘랐다고 했다. 그는 오른쪽 어깨의 옷을 먼저 벗어 밧줄에 감았다. 노모가 봉투에 적은 답은 왼쪽이었다. 첫 불일치가 생기자 방 안 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노모는 진수라면 왼팔 화상 때문에 오른손으로 왼쪽 옷깃부터 잡는다고 설명했다. 사공은 어둠에서 어느 어깨인지 반대로 봤을 수 있다고 했지만, 기록자는 그 변명을 답에 덧붙이지 않았다. 틀린 기억은 그대로 남겼다. 다른 증거가 맞는다고 불일치를 지우면 사망 결론을 위해 사실을 맞추게 된다.

우석은 기억이 조각나 있었으므로 질문을 직접 받지 않았다. 담여화의 이전 관찰 기록과 그가 자발적으로 말한 문장을 대조했다. 그는 `무 없는 국`, `발을 찌르는 매듭`, `젖은 소매를 찢어 밧줄에 감은 사람`을 여러 날 간격으로 말했다. 노모의 답을 들은 적은 없었다.

우석이 가진 노진수 임금패 뒤에는 칼로 긁은 네 줄이 있었다. 문소애는 탈출할 사람 수라고 기억했고, 사공은 배에 오른 사람이 넷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창고에는 다섯이 갇혀 있었다. 한 사람은 배에 타지 않았고, 그가 밧줄을 끊어 추격 배를 막았다.

“그 사람이 죽는 걸 봤소?” 노모가 사공에게 물었다. 사공은 물살에 넘어지는 모습과 뒤따른 화살을 봤지만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했다. 사망을 추정할 수 있어도 확정하려면 더 필요했다. 노모는 울음을 참지 않으면서도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문소애는 아버지가 숨겨 둔 염삼 사고 장부를 꺼냈다. 그날 창고 감독은 노동자 한 명이 도주 중 사망했다고 적고 이름 대신 임금패 번호를 썼다. 번호는 노진수의 패와 맞았다. 시신을 소금 구덩이 동쪽에 묻었다는 위치도 기록돼 있었다.

발굴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는 노모에게 돌아갔다. 사람들은 유해를 찾아야 확실하다고 했지만, 소금 구덩이는 지금도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었다. 무리한 발굴이 작업장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었다. 노모는 먼저 비파괴 확인과 당시 매장에 참여한 사람을 찾자고 했다.

매장 일꾼 한 명이 북쪽 마을에서 살아 있었다. 그는 죽은 사내의 오른손 화상과 목에 맨 작은 나무 국자를 기억했다. 국자는 진수가 어릴 때 노모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일꾼은 물건을 빼앗지 않고 시신과 함께 묻었다고 했다. 위치 설명도 사고 장부와 일치했다.

회당 판관은 사망 확인 조건이 갖춰졌다고 보았다. 노모에게 마지막으로 유해를 꺼내 직접 볼 권리를 알렸다. 그녀는 보지 않겠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남긴 독립된 흔적을 믿고 무덤을 다시 흔들지 않기로 한 선택이었다.

우석은 임금패와 짚신을 돌려주겠다고 했다. 노모는 패는 공동 기록고에 두고 짚신은 계속 신으라고 했다. “진수가 마지막에 네 발을 보고 줬는지, 이름을 보고 줬는지는 모르지. 그래도 네가 걸어서 여기 왔으니 그 선택까지 내가 거두진 않겠다.”

그제야 우석은 강물 장면 하나를 더 떠올렸다. 밧줄을 자르던 사내가 `어머니 국은 짜지 않다`고 웃으며 신발을 벗어 던졌다. 자신은 물에 빠진 짚신을 붙잡았고, 사내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 노모는 그 말을 진수의 마지막 유언으로 꾸미지 말라고 부탁했다. 기억난 한 문장 그대로만 남겼다.

사망 확인서에는 `동료 네 명의 탈출을 돕다가 사망`이라고 적혔다. 영웅이라는 말은 넣지 않았다. 진수가 선택한 행동은 기록하되, 그 죽음을 다른 실종자에게 같은 희생을 요구하는 모범으로 만들지 않았다. 살아남은 우석에게 빚진 사람이라는 표도 붙이지 않았다.

노모는 대조판에서 `행방 미확인` 패를 직접 뗐다. 손이 떨려 못이 잘 빠지지 않자 한소령이 도우려 했다. 노모는 고개를 젓고 집게를 가져와 끝까지 스스로 뺐다. 새 패 `사망 확인, 유해 보존`도 자기 손으로 걸었다.

장례 날짜는 일곱 날 뒤로 정했다. 회당은 빨리 마무리하라고 재촉하지 않았고, 노모는 오래 미루지도 않았다. 그동안 문소애와 사공, 우석은 서로의 증언을 처음으로 읽었다. 다른 부분이 남아 있어도 하나의 결론을 함께 지탱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담여화는 노모에게 잠을 돕는 약을 권했지만 반드시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노모는 그날 밤은 울고 싶다며 약을 받지 않았다. 대신 따뜻한 물과 옆방에 사람이 있다는 것만 요청했다. 치료도 슬픔을 빨리 닫는 도구가 아니었다.

장례 보자기에는 왼짝 짚신을 넣기로 했다. 오른짝은 우석의 발에 있었으므로 두 짝을 맞추기 위해 빼앗지 않았다. 노모는 새 왕골로 작은 오른짝 모양을 엮었다. 실제 유품과 대신 만든 물건이 다르다는 표시로 매듭을 바깥에 남겼다.

장례 날 우석은 멀리 서서 노진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노모가 손짓해 가까이 오게 한 뒤 국 한 그릇을 주었다. 그는 무를 으깨고도 간을 너무 짜게 했다. 노모는 웃다가 울었고, 우석은 자기가 진수가 아님을 다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팽노는 사망 확인을 자신의 연락표 공로로 돌리지 않았다. 쇠함이 더 일찍 열렸다면 노모의 기다림이 줄었을 가능성을 기록했다. 동시에 당시 피난길 위험 때문에 숨긴 이유도 남겼다. 잘못과 사정을 함께 적되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지우지 않게 했다.

저녁에 노모는 빈 벽을 오래 바라봤다. 사람들은 새 유품이나 초상을 걸어 주려 했지만 그녀는 못 하나만 남겼다. “일곱 날 뒤 보자기도 내릴 거야. 기다렸다는 사실까지 평생 전시할 필요는 없지.”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과 객잔의 시간을 다시 움직이려는 말이었다.

국솥에서 김이 오르자 노모는 평소처럼 간을 보았다. 소금을 넣기 전 무 조각을 으깨고, 한소령에게 한 숟갈 건넸다. 짜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노진수의 마지막을 확정한 것은 얼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각자 틀릴 수 있음을 남긴 채 겹쳐 놓은 일상의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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