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봄, 운교 객잔의 처마는 세 번 고쳐져 있었다. 예전 기록 창고 자리는 작은 강학방이 되었고, 아이들은 이름을 함부로 묻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청문 접수대에는 매달 다른 사람이 앉았다. 담소하의 차례는 석 달 전에 끝났지만 누구도 그를 다시 불러 세우지 않았다.
열일곱 이름 대조표는 그동안 두 번 수정됐다. 미확정 한 사람의 묘가 발견됐고, 주소 비공개였던 생존자 한 명은 스스로 이름을 공개했다. 마지막 훼손 칸은 여전히 인원 여부 미정이었다. `첫 확정본` 옆에는 둘째, 셋째 날짜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담소하는 아침마다 문을 여는 일을 멈춘 지 오래였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 빗장을 잘못 걸까 객잔 맞은편에서 지켜봤다. 어느 날 최 노파의 손자가 열쇠 순서를 틀렸고, 접수는 반 시진 늦게 시작됐다. 아무도 죽지 않았고 기록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뒤 담소하는 맞은편 자리에도 앉지 않았다.
노경천은 회당의 정식 호송 교관이 되었다. 혼자 길을 떠나는 법이 아니라 출발 기록, 중간 확인, 귀환 실패 때의 대체 동선을 가르쳤다. 형 노경운의 동패는 개인 유품함에 있었고, 조사 증거 사본은 공공 보관함에 따로 남았다. 슬픔과 증거가 같은 열쇠에 묶이지 않았다.
연비화는 여섯 이송표의 당사자 가운데 네 사람 앞에서 증언했다. 한 사람은 그녀를 용서했고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으며, 최해연은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다. 연비화의 일정표 끝 날짜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그 빈칸을 벌이라 부르지 않고 자기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남궁의 배상 창고는 피해자 대표가 절반의 열쇠를 가졌다. 남궁세는 원로가 되었지만 심리 때마다 맨 뒤에 앉았다. 가문이 지급한 곡식 수량보다 미지급 사유가 먼저 공개됐다. 완벽하지 않았고 지연도 있었지만, 돈을 내는 쪽이 이야기의 끝을 정하지 못했다.
곽진해와 두칠의 판결은 회당 돌벽에 짧게 남았다. 죄명, 확인된 피해, 남은 복구 책임만 있었고 결투 이야기는 없었다. 두칠이 숨겨 둔 활자망은 목수와 서리 재판으로 이어졌고, 살아 있는 협력자들이 자기 몫의 책임을 받았다. 죽은 우두머리 하나에게 모든 죄가 모이지 않았다.
민서경의 감나무에서는 처음으로 열두 개의 감이 열렸다. 그는 주소 공개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객잔에 감 한 광주리를 보냈다. 쪽지에는 이름 없이 `집이 비를 견딘다`고만 쓰였다. 묘련은 그 문장을 환자 소식철이 아니라 공동 소식판에 익명으로 붙였다.
그날 담소하는 마지막으로 가진 물건을 내놓으러 왔다. 청문 창설 때 쓰던 낡은 검은 열쇠였다. 이미 새 개방 규칙 때문에 없어도 되는 열쇠였지만, 사람들은 상징이라며 그가 간직하길 바랐다. 그는 열쇠를 녹여 문턱의 금 간 못을 보수하자고 했다.
최 노파의 손자가 화덕에서 열쇠를 녹였다. 쇳물은 작은 못 세 개가 되었다. 하나는 접수대, 하나는 진료장, 하나는 외부 검토함 경첩에 박혔다. 어느 못도 문 전체를 열지 못했고, 셋 모두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담소하는 그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오후에는 새 운영 대표를 뽑는 자리가 열렸다. 사람들은 담소하에게 명예 대표라도 맡으라고 했다. 그는 투표권 한 장만 받아 최 노파의 손자도, 자기 제자도 아닌 황주 계약 읽기 탁자의 여인에게 표를 줬다. 결과를 확인한 뒤 축하말도 짧게 하고 자리를 비켰다.
새 대표는 첫 회의에서 담소하의 발언을 끊었다. 진료장 확장 비용을 청문 회복 재원에서 전부 쓰자는 제안에 이해 충돌이 있다는 이유였다. 묘련이 운영할 진료장이고 담소하가 함께 떠날 예정이라면 두 사람은 의결에서 빠져야 했다. 담소하는 잠깐 웃다가 문밖으로 나갔다.
묘련은 이미 객잔 뒤 약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 하류 세 마을을 돌며 이동 진료와 기록 읽기 교실을 함께 열기로 했다. 묘련은 치료를, 담소하는 길과 숙식을 맡되 어느 마을에서도 장기 대표가 되지 않는 조건이었다. 한 계절 뒤에는 현지 사람이 열쇠를 이어받았다.
“또 문을 만드는 셈 아닌가요?” 묘련이 약병을 천으로 싸며 물었다. 담소하는 대답을 오래 골랐다. “우리가 떠난 뒤 닫히거나 열릴 수 있는 문이면 괜찮겠지.” 묘련은 `우리가 떠난 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떠날 계획이 없는 도움은 곧 자리가 되기 쉬웠다.
저녁 식사에는 오래전 잔화검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왔던 청년이 국을 날랐다. 그는 지금 검보다 문서 읽기를 가르쳤다. 아이 하나가 담소하에게 마지막 초식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담소하는 밥상 위 흘린 국물을 닦으며 “마지막은 없고, 오늘 쓸 줄 아는 건 이 정도다”라고 했다.
아이들은 실망했지만 곧 감을 나눠 먹었다. 누군가 열넷째 식 이야기를 꺼내자 다른 아이가 현판 아래 문장을 읽었다. 숨은 초식 대신 사본과 증인과 서로 다른 열쇠가 있다는 글이었다. 전설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농담이 되어 있었다. 담소하는 그것도 좋은 소멸이라고 생각했다.
밤에는 대조표 연례 검토가 열렸다. 마지막 미정 칸을 지울지 다시 논의했으나 결론은 같았다. 새 증거가 없으면 그대로 둔다. 담소하는 참관석 맨 뒤에서 손을 들지 않았다. 그 칸을 처음 만든 사람이 지금의 결정을 소유할 이유는 없었다.
회의 뒤 최 노파가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남편 이름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손자는 회당 서기가 되었다. 그녀는 담소하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자네가 없어도 저 아이들이 문을 열더군.” 그 말이 그가 받아 본 가장 정확한 작별이었다.
떠나는 아침, 객잔 사람들은 길 양쪽에 서지 않았다. 평소처럼 장을 보고 환자를 맞고 서류를 읽었다. 백천리는 먼 호송에 나가 있었고 노경천은 수업 중이었다. 연비화는 최해연에게 보낼 보고서를 쓰느라 얼굴만 들었다. 아무도 일을 멈추지 않는 배웅이었다.
담소하는 검 한 자루와 옷 두 벌만 등에 졌다. 묘련의 짐은 약재 때문에 세 배나 무거웠다. 그가 대신 들겠다고 하자 묘련은 절반만 넘겼다. “같이 간다는 게 한 사람이 다 드는 뜻은 아니잖아요.” 두 사람은 무게를 바꿔 메고 객잔 문턱에 섰다.
문 옆에는 새 규칙판이 걸려 있었다. `이 문은 한 사람이 열거나 닫지 않는다. 이름의 주인이 공개 범위를 고른다. 치료와 증언은 거래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남긴다.` 글씨는 여러 손이 덧칠해 굵기가 제각각이었다. 아름답지는 않아도 어느 한 사람 필체로 보이지 않았다.
새 대표가 안에서 문을 밀었고, 환자 대표가 바깥에서 받아 열었다. 열쇠 두 개는 서로 다른 허리춤에 있었다. 담소하는 손을 보태지 않았다. 문짝은 가운데 못이 조금 삐걱거렸지만 넉넉히 열렸다. 아침 햇빛이 접수대와 국솥, 진료장 복도까지 한꺼번에 들어갔다.
묘련이 먼저 길로 내려갔다. 담소하는 문을 마지막으로 돌아보지 않으려다가, 감 냄새가 나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은 이미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지나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에는 의자도 기념패도 없었다. 그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문이 거기 있었다.
두 사람은 강 하류 길로 걸었다. 다음 마을에서 누구를 만날지, 얼마나 머물지 정하지 않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떠날 날을 먼저 적겠다는 약속만 있었다.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가 잠시 후 다시 열렸다. 담소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잔화청문의 불은 한 사람의 손을 떠난 뒤에야 오래 타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