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은 에드란의 마지막 편지를 사흘 동안 열지 않았다. 봉인 보관함을 지날 때마다 손이 멈췄지만, 다크스 체포 작전 준비와 편지를 읽는 일은 서로 다른 시간이어야 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전술 자료처럼 급히 펼치고 싶지 않았다.
넷째 날 아침, 그는 엘라에게 함께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안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미라와 레오도 부르지 않았다. 성 안 작은 목공실, 창문이 두 개라 문을 닫지 않아도 조용한 곳을 골랐다.
엘라는 편지를 탁자 위에 놓고 뒤로 물러났다. "내가 먼저 읽은 적은 있어. 전달할 사람을 찾으려고 이름을 확인해야 했어. 내용은 네가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겠다."
카일은 봉인의 갈라진 선을 따라 칼끝이 아닌 종이칼을 넣었다. 안에는 긴 유언이 아니라 짧은 문장들이 있었다. 에드란은 자신이 낙인 장부를 빼내다 붙잡힐 가능성이 크며, 어린 카일이 어디로 옮겨졌는지 알 수 없다고 썼다.
첫 문장은 사과였다. 아들을 싸움에서 멀리 두려 했으나 자기 행동 때문에 오히려 표적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둘째는 베일가의 땅과 작위가 몰수될 것이며, 그것을 되찾는 일을 아이의 의무로 만들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마지막에는 검 이야기가 나왔다. '카일은 왼발을 먼저 내딛고 오른쪽 손목을 늦게 돌린다. 내가 가르친 형식이 아니라 부엌 빗자루로 용을 잡던 놀이에서 생긴 버릇이다.'
카일은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전투에서 위기에 몰릴 때마다 몸이 먼저 내놓던 움직임, 이안도 출처를 설명하지 못했던 반걸음이 떠올랐다. 혈통이 깨어난 신비한 검술이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반복한 놀이가 근육 깊은 곳에 남은 것이었다.
엘라는 가죽 통에서 어린 카일의 목검 그림을 꺼냈다. 삐뚤어진 용 옆에 두 사람이 서 있었고, 큰 사람은 칼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그림 아래 에드란의 글씨로 '용에게 먼저 물어볼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슨 뜻이었습니까?" 카일이 물었다.
"네가 빗자루로 의자를 때려 부수니까 에드란이 적은 거야. 적처럼 보여도 왜 길을 막고 있는지 먼저 물으라는 놀이 규칙이었지."
카일은 웃음이 나오다가 목 안에서 꺾였다. 아버지를 영웅으로만 상상하면 이런 어설픈 장면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에드란은 거대한 반역을 막으려 한 기록자였고, 부엌 의자를 지키려 아이와 실랑이한 사람이기도 했다.
편지 뒷면에는 베일가 소유 목록이 있었다. 북쪽 숲, 낡은 저택, 농지, 기사 작위. 모두 다크스 가문으로 넘어갔거나 왕실에 귀속됐다. 엘라는 조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반환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연히 네 것이 된다는 뜻은 아니야. 상속을 청구할지, 피해 회복 재원으로 돌릴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어. 다른 친족의 권리도 확인해야 하고."
카일은 베일 성을 되찾고 귀족이 되는 장면을 잠시 상상했다. 노예라는 말을 던졌던 사람들 앞에 문장을 세우는 모습은 달콤했다. 그러나 성과 작위가 자신이 살아남은 시간을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지금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다크스에게서 몰수할 재산과 우리 집 것이었던 재산도 구분해야 합니다. 아이들 지원에 쓸 수 있다고 해서 내가 먼저 포기한다고 약속하지도 않겠습니다."
엘라는 그 답을 존중했다. 희생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도 혈통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카일의 상속 여부는 공개 재판 뒤 별도 심사로 남겼다.
그날 오후 카일은 훈련장 모래 위에 어린 시절 동작을 다시 해 봤다. 왼발을 먼저 내딛고 오른쪽 손목을 늦게 돌렸다. 정규 검술로는 빈틈이 생겼지만 상대의 칼을 맞받지 않고 옆으로 흘리는 데 유리했다.
레오는 멀리서 보고 다가왔다. "이안 단장의 비밀 검법인가?"
"부엌 빗자루 검법이래."
레오는 처음에는 웃지 못했다. 카일이 다시 말하자 짧게 웃었다. 둘은 목검으로 동작을 시험했다. 카일은 레오의 공격을 흘렸지만 두 번째 찌르기에 옆구리를 맞았다. 몸의 기억은 완성된 비법이 아니었고, 현재의 훈련과 판단이 필요했다.
기한은 울타리 밖에서 지켜보다 용에게 왜 길을 막았는지 정말 묻느냐고 했다. 카일은 "사람에게는 묻고, 달려드는 멧돼지에게는 피한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훈련장 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울타리에 기대어 목검 소리를 들었다.
왕실 기록관은 에드란의 편지에서 공적 증거가 되는 부분을 복사해도 되는지 물었다. 카일은 낙인 장부와 다크스 서명에 관한 두 문장만 허락했다. 부엌 빗자루와 상속에 관한 내용은 사적 기록으로 남겼다.
그 구분 때문에 에드란의 행동이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필요한 증거만 재판에 들어가고, 한 가족의 기억은 관중의 호기심에서 보호됐다. 카일은 편지 원본을 다시 봉인하되 언제든 열람할 수 있는 공동 보관함을 골랐다.
저녁에는 기사단 문장 담당자가 찾아왔다. 베일가 문장을 복원하면 카일의 방패에 반쪽 칼을 새길 수 있다고 했다. 카일은 거절했다. 낙인과 가문 문장이 같은 모양을 빼앗아 쓴 역사는 조사 중이었고, 지금 당장 어느 쪽 표식을 몸에 새길 이유가 없었다.
"그럼 기사 명부에는 무슨 성을 적지?" 담당자가 물었다.
"카일이라고만 적어 주십시오. 빈칸은 잘못이 아닙니다."
담당자는 규정상 성이나 출신지를 써야 한다고 난처해했다. 베른이 명부 규정을 찾아 '본인이 쓰지 않는 호칭은 강제하지 않는다'는 전쟁 고아 조항을 적용했다. 임시로 이름 하나만 기록하고 상속 심사 결과와 무관하게 본인이 변경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카일은 에드란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기록과 놀이, 구하려 했던 사람들을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다만 그 기억이 카일을 베일가의 후계자로 자동 완성하지는 않았다.
밤 훈련을 마치며 그는 왼발을 내딛었다. 몸이 기억한 검은 아버지에게서 왔지만, 어디에 겨눌지는 지금의 카일이 정했다. 다크스를 죽이기 위해 칼을 세우지 않고, 살아 있는 증거와 사람을 데려오기 위해 칼집에 손을 얹었다.
카일은 편지 사본을 열린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희망의 본보기로 들려주면, 부모 기록을 찾지 못한 아이에게 또 다른 기준이 될 수 있었다. 묻는 아이에게만 필요한 만큼 말하기로 했다.
단은 목검 그림을 보고 자기도 그림을 그려도 되느냐고 물었다. 카일은 종이와 숯을 건넸고, 단은 검 대신 문이 두 개 달린 집을 그렸다. 기한은 그림을 보다가 한쪽 문에 안쪽 손잡이를 덧그렸다.
카일은 두 아이 그림을 에드란 편지와 같은 보관함에 넣자고 하지 않았다. 각자의 기록은 각자 고른 서랍에 두었다. 비슷한 기억을 한 가족 이야기로 묶는 것은 다정해 보여도 소유의 또 다른 모양이 될 수 있었다.
상속 담당자는 베일가 농지 일부에 현재 농민들이 십 년 넘게 살고 있다고 알려 왔다. 카일이 권리를 주장하면 그들의 경작권과 세금 문제도 검토해야 했다. 빼앗긴 것을 돌려받는 일과 다른 사람을 다시 내쫓지 않는 일을 함께 판단해야 했다.
카일은 농민 대표를 부르기 전에 서면 현황을 요청했다. 자신의 신분 회복을 알리는 깜짝 방문으로 사람을 두렵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상속 결정은 체포 작전이 끝난 뒤 공개 상담으로 미뤘다.
그날 밤 그는 부엌에서 빗자루를 하나 빌렸다. 검 자세를 취하자 조리사가 바닥 청소부터 하라고 웃었다. 카일은 진짜로 밀가루 자국을 쓸었다. 몸이 기억한 검은 전설이 되지 않고 다시 평범한 도구의 무게로 돌아왔다.
에드란의 마지막 부탁은 가문을 되찾으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아이가 자기 의무를 고르게 두라는 말이었다. 카일은 아버지의 뜻조차 절대 명령으로 만들지 않고, 오늘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한 걸음만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