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전, 시스템 담당자가 상담준비 화면 오른쪽 위의 '이전 답 복사' 버튼을 회색으로 바꿨다. 도현우는 버튼이 비활성화된 것만 보고 끝내지 않고 실제 새 파일을 만들어 눌러 봤다.
화면에는 '고객별 사실은 이전 기록에서 복사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가 떴다. 질문과 직원용 도움말만 새 파일로 넘어갔고 답은 모두 미확인이었다.
공용 답안 문구가 들어 있던 4.2판은 활성 서식 목록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원본 파일은 사건 번호와 해시를 붙여 제한 보존함에 남았다. 누가 오류를 조사한다고 일반 상담 폴더에서 다시 열 수는 없었다.
민재가 보존함 권한을 시험했다. 그는 전환 작업자였지만 현재는 원본 열람 권한이 없었다. 사건 검토 사유와 승인자가 있어야 제한 접근을 요청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파일인데도 못 보네." 민재가 말했다.
"소유했다고 고객 정보까지 계속 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야." 서아라가 답했다. "필요하면 검토 범위를 승인받아야 해."
새 화면의 첫 칸은 질문 원문이었다. 상담자가 질문을 고치면 버전과 이유가 남았다. 두 번째는 고객 답, 세 번째는 답 출처, 네 번째는 고객 확인 시각이었다.
정정 버튼을 누르면 기존 답이 사라지지 않고 이력으로 접혔다. 새 답을 넣으려면 정정 사유와 근거를 고르고, 외부 제출 여부에 따라 담당 검토가 달라졌다.
권태수는 상담 속도를 보겠다며 시험 고객 역할을 맡았다. 현우가 질문했다. "업무상 물품을 직접 전달하거나 차량을 운전합니까?"
권태수는 일부러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고 답했다. 현우는 있음이나 없음 중 하나를 고르지 않고 구체적 상황을 질문했다.
"이 질문이 상품 판단에 꼭 필요한 단계입니까?" 권태수가 되물었다.
현우는 가상 상담 목적을 확인했다. 단순 기존 계약 목록 정리라면 지금 직무 세부를 수집할 필요가 없었다. 질문 자체를 '현재 절차에 불필요'로 건너뛰었다.
아라는 그 장면을 멈췄다. "답을 정확히 받는 것뿐 아니라, 필요 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도 품질입니다."
새 서식에는 '미확인'과 '미수집'이 따로 있었다. 필요한데 아직 모르는 것과, 현재 목적에 필요하지 않아 받지 않은 것을 구분했다.
직원용 도움말에는 예시 답이 없었다. 대신 좋은 질문의 조건과 금지된 유도 표현이 있었다. '배달 안 하시죠?'가 아니라 '업무상 직접 전달하거나 운전하는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현우는 질문 문구도 모든 업종에 정답처럼 쓰지 말자고 했다. 고객이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를 설명하되 원하는 답이 보이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아야 했다.
시스템 담당자는 질문 변경 이력을 별도 표로 저장했다. 누가 특정 답을 많이 받는지보다, 질문이 언제 왜 바뀌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이전 파일의 답을 내보내는 기능도 제한됐다. 고객이 자기 기록 사본을 요청하면 해당 파일 범위에서 교부할 수 있지만, 새 상담을 빨리 만들기 위한 일괄 복사는 막혔다.
"기존 고객 재상담 때도 다 새로 물어야 합니까?" 한 선배가 물었다.
아라는 답했다. "공식 문서와 유효한 본인 확인 기록은 출처와 시점을 보여 주고 참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사실인지 필요한 범위에서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자동 답으로 복사하지 않습니다."
현우는 김정호의 오래된 파일을 떠올렸지만 열지 않았다. 완료된 고객 사건을 새 서식 시험에 재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테스트 표본은 비식별 연습 자료로 만들었다. 꽃집이나 식자재 업체처럼 실제 사건을 그대로 흉내 내지 않고, 다른 가상 업종과 질문을 썼다.
첫 시험에서는 한 오류가 나왔다. 고객이 답을 정정한 뒤 출력물에는 새 답만 보이고 정정 날짜가 빠졌다. 시스템 담당자는 화면에서는 보이니 괜찮다고 했다.
현우는 고객 교부본에도 정정됐다는 사실과 현재 기준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원문 전체를 보여 줄 필요는 없지만 언제 확인한 답인지 모르면 다시 오래된 사실처럼 쓰일 수 있었다.
출력 양식이 고쳐졌다. 현재 답, 확인일, 출처, 정정 이력 존재 여부가 보였다. 원문은 권한 있는 이력 화면에서만 열렸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소개자 이름이 출력물에 불필요하게 들어갔다. 소개 경로는 내부 운영에 필요할 수 있지만 고객 직무 사실 교부본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민재가 출력 필드를 분리하고 아라가 다시 검토했다. 소개 결과 비공유 설정도 새 접수 화면과 연결됐다.
오후 두 시, 정식 배포 전 독립 검토자가 빈 파일 저장, 부분 답 저장, 정정, 출력, 외부 문의 생성, 연락중지 상태를 차례대로 시험했다.
배포 뒤 문제가 발견됐을 때의 대체 절차도 시험했다. 새 화면을 잠그면 상담자는 답이 없는 종이 질문지와 고객 확인 사본을 쓰고, 시스템이 복구될 때 질문·출처·확인 시각을 다시 대조해 입력해야 했다. 장애 중에도 옛 공용 답안으로 돌아가는 선택지는 두지 않았다.
민재는 권한이 없는 계정으로 질문 버전 변경과 원문 열람을 시도했다. 두 기능 모두 차단됐고 사유 없는 접근 시도가 로그에 남았다. 반대로 정정 담당자는 승인 번호가 있을 때에만 필요한 원문 한 건을 열 수 있었다.
아라는 대체 문서의 회수 절차를 확인했다. 입력을 마친 종이는 임의 폐기하지 않고 정해진 보관·파기 기준에 넘기며, 중복 입력이 생기면 어느 쪽이 현재 기록인지 정정 이력으로 연결하도록 했다. 화면이 멈춘 시간이 출처를 잃는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됐다.
모든 시험 결과는 성공이라는 한 줄이 아니라 단계별 화면 번호와 기대값으로 남았다. 실패한 두 항목과 수정 뒤 재시험도 지우지 않았다.
권태수는 배포 승인 버튼을 눌렀다. 이번에는 검토 번호 네 개와 미결 결함 0건이 화면에 있었다. 계약 일정 때문에 임시로 먼저 쓰는 예외 버튼은 만들지 않았다.
기존 4.2판 파일을 휴지통으로 보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현우는 반대했다. 활성 사용에서 걷어내는 것과 조사 증거를 없애는 것은 달랐다. 보존기간과 삭제 권한은 사건 기록에 따라 관리하기로 했다.
공용 폴더 검색 결과에서도 4.2판은 나오지 않았다. 제한 보존함 접근 기록에서만 존재가 확인됐다. '폐기' 상태에는 활성 사용 종료일과 증거 보존 종료 검토일이 따로 있었다.
민재는 새 질문지를 한 부 출력했다. 답 칸은 모두 비어 있었고, 하단에는 질문 버전과 출처 기록 안내가 있었다.
"이제 정말 아무 답도 없네." 그가 말했다.
현우는 종이를 넘겼다. "답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거야. 둘은 다르지."
아라는 새 서식 교육에서 실제 고객 사건을 성공담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류 발견부터 정정까지의 구조만 비식별로 설명하고, 고객 선택이 달랐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교육 끝에 직원들은 답을 빨리 채우는 시험이 아니라, 필요 없는 질문을 건너뛰고 미확인을 남기는 시험을 봤다. 정답은 하나가 아니었지만 출처 없는 답은 모두 틀린 처리였다.
현우는 자기 책상 서랍에서 예전 메모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예상 질문 답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버리지는 않고 교육 전 자신의 방식 기록으로 개인 업무 보관 기준에 맞춰 정리했다.
공용 답안을 걷어낸 화면은 화려하지 않았다. 빈칸과 작은 출처 표시, 정정 버튼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빈 화면에서는 고객이 입을 열기 전에 이미 정해진 대답이 기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