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점포 임대 특약 초안이 도착한 날, 강민주는 보험 상담번호부터 눌렀다. 전기와 배수 시험이 남아 있었지만, 장비를 옮긴 뒤에 주소 문제를 묻기에는 늦을 수 있었다. 그는 옛 계약 번호와 새 점포 도면, 예상 이전일을 식탁 위에 펼쳤다.
상담원은 먼저 계약자 본인과 사업장 정보를 확인했다. 민주는 “가게만 옮기면 그대로 이어지는 거죠?”라고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확인표 첫 질문을 읽었다. 기존 사업장 계약은 언제까지 유효한지, 새 주소는 변경으로 다룰 수 있는지 아니면 별도 심사가 필요한지였다.
답은 한 문장이 아니었다. 건물과 업종, 면적, 설비가 달라지므로 계약별로 종료·변경·신규 검토 가능성을 확인해야 했다. 새 주소와 장비 목록을 제출하면 담당 부서가 조건을 살펴 안내하며, 상담 단계에서 같은 내용이나 결과를 약속할 수는 없다고 했다.
민주는 통화 메모에 `자동으로 옮겨지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그 문장을 손해처럼 읽지 않았다. 새 점포의 위험과 설비를 다시 보는 절차라면, 지난번처럼 무엇을 기준으로 확인했는지 원문을 받아 두는 편이 나았다.
두 번째 질문은 장비 운송이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전문업체가 분리해 트럭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운송 중 충격이나 낙하, 설치 뒤 고장은 어느 계약의 어떤 범위에서 검토되는지, 운송업체 책임 계약은 따로 있는지 물었다. 상담원은 현재 계약만으로 답하지 않고 담당 확인을 접수했다.
운송업체 견적서에는 `운송 중 파손 책임 별도 약관`이라는 작은 문장이 있었다. 민주는 가격 합계만 보지 않고 책임 범위와 신고 시각, 포장 전 사진, 설치 시험 절차를 요청했다. 업체는 모든 고장을 책임진다고 쓰지는 않았지만, 작업 중 직접 사고와 기존 노후 고장을 구분해 확인하는 순서를 계약서에 넣었다.
준수는 장비가 망가지면 보험에서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민주는 어느 쪽에서 어떤 조건으로 검토될지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 금액을 새 세탁기 구입비로 미리 계산하지 않고, 비상 예비비와 수리 견적 한도를 따로 잡았다.
세 번째는 휴업 기간이었다. 옛 가게 문을 닫는 날부터 새 점포 영업을 시작하는 날까지 최소 닷새가 필요했다. 민주는 그 닷새가 이전 때문에 스스로 정한 기간인지, 안전 검사 지연인지, 예상하지 못한 장비 사고 때문인지에 따라 질문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현재 계약의 영업중단 관련 내용이 모든 이전 기간을 다룬다고 가정할 수 없었다. 민주는 상담원의 설명을 요약해 다시 읽고, 약관과 서면 답변 위치를 문자로 받았다. 보장되지 않을 가능성도 자금표에 넣어, 기본 계획은 매출 없이 닷새를 견딜 수 있게 짰다.
박명자에게서는 옛 건물 계약 종료 예정일을 언제로 잡을지 연락이 왔다. 민주는 새 점포 검사가 끝나기 전에 옛 주소의 효력을 먼저 끊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두 주소가 일정 기간 겹치면 모두 같은 조건으로 보호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복 기간의 계약 상태를 각각 확인했다.
새 점포 임대인은 화재 관련 증서를 빨리 내야 열쇠를 준다고 했다. 민주는 아직 발급되지 않은 서류를 약속하지 않고, 심사 접수 확인서와 예정 일정을 먼저 제출할 수 있는지 협의했다. 임대인은 건물 자체 계약과 임차인의 사업장 계약이 다른 문서라는 설명을 듣고 요구 목록을 고쳤다.
전기기사와 배관업체의 확인서도 심사 자료에 붙었다. 민주는 안전 확인서가 있으면 어떤 결과가 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장비 종류와 용량, 배수 경로, 소화기와 피난 출구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자료였다. 추가 질문이 오면 누가 답할지도 표시했다.
상담 부서에서 첫 회신이 왔다. 기존 계약 중 일부는 옛 주소 종료일까지 유지되고, 새 점포는 변경 심사보다 새 조건 제안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장비 운송은 운송계약과 현재 가입 내용을 함께 보아야 하며, 휴업도 원인과 기간 자료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민주는 `된다`와 `안 된다`로 줄이지 않고 원문을 준수에게 보여 줬다. 준수는 표가 더 복잡해졌다고 했다. 민주도 인정했다. 다만 복잡한 답을 짧은 확답으로 바꿨다가 나중에 생활비가 비는 것보다, 지금 칸을 나눠 두는 편이 안전했다.
그는 이전 자금표에서 예상 보험 수입을 모두 지웠다. 확정된 환급이나 정산이 생기면 그때 더하고, 지금은 보증금 반환 일정과 가진 예금, 실제 대출 가능 범위만 넣었다. 장비 운송 추가비와 닷새 휴업비는 지출로 먼저 잡았다.
표의 끝은 적자였다. 민주가 한숨을 쉬자 준수는 자기 첫 급여를 보태겠다고 했다. 민주는 생활비 분담 약속을 다시 가리켰다. 첫 급여는 준수의 방과 식사, 교통비를 먼저 지켜야 했다. 부족한 금액은 점포 임대 조건과 이전 일정을 다시 협상할 문제였다.
민주는 새 임대인에게 보증금 분할 납부와 무상 설치 기간을 요청했다. 임대인은 처음에는 어렵다고 했지만, 전기·배수 검사 기간을 임대료에서 빼고 잔금일을 옛 보증금 반환 예정일과 맞추는 안을 제시했다. 문서에 날짜와 조건이 들어가자 적자 폭이 줄었다.
운송업체와는 한 번에 모든 기계를 옮기지 않고, 먼저 작은 장비로 동선을 확인한 뒤 대형 세탁기를 이동하기로 했다. 시간이 반나절 늘었지만 출입구와 바닥 하중을 현장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민주는 빠른 일정 대신 되돌릴 수 있는 순서를 골랐다.
옛 계약 종료 신청서에는 최종 영업일과 장비 반출일, 열쇠 인도일이 서로 다르게 적혔다. 민주는 담당자에게 각 날짜 사이의 상태를 다시 물었고, 답변을 신청서 옆에 보관했다. 주소 하나를 지우고 다른 주소를 쓰는 일이 달력 한 칸에서 끝나지 않았다.
준수는 어머니가 통화할 때마다 상담원 이름과 시각을 적는 것을 보고 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민주는 모든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같은 질문을 처음부터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답이 바뀌면 누가 틀렸는지를 찾기보다 어떤 자료가 새로 들어왔는지 비교할 수 있었다.
최종 조건 제안서는 새 점포 검사 결과와 설치 완료 확인 뒤 효력이 시작되도록 작성됐다. 민주는 서명 전에 시작일과 옛 계약 종료일 사이의 빈 구간이 없는지 확인했고, 남은 질문은 별도 회신 대기 상태로 표시했다. 어떤 비용도 미리 해결됐다고 쓰지 않았다.
주소 변경 관련 회신 가운데 한 항목은 말로 들은 내용과 달랐다. 상담 때는 한 서류로 가능할 듯했지만 서면에는 새 설비 목록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다. 민주는 상담원을 탓하기보다 어떤 정보가 통화 뒤 보태졌는지 확인했고, 장비 모델과 설치 위치를 새 도면에 표시해 다시 냈다.
재심사 일정이 이틀 늘어나자 임대 잔금일도 함께 밀어야 했다. 새 임대인은 처음 합의한 날짜를 지키라고 했지만, 특약의 검사 완료 조건을 함께 읽고 하루 단위 연장 합의서를 작성했다. 민주는 구두 양해만 믿고 열쇠를 받지 않았다.
옛 주소 고객들에게는 이전일과 계약 상태를 설명하는 대신 영업 종료·재개 예정과 물품 연락 방법만 안내했다. 고객이 알 필요 없는 계약 심사 내용을 홍보 문구로 쓰지 않았다. 새 개업일은 확인이 끝날 때까지 `예정`으로 남았다.
그날 밤 민주는 두 장의 계약 표지에 서로 다른 색 집게를 끼웠다. 옛 주소는 끝낼 책임이 있는 종이였고, 새 주소는 새로 설명받아 선택할 종이였다. 가게 이름이 같다고 계약의 질문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확인표 마지막에 `모르는 돈 없이도 옮길 수 있는가`라고 쓰고, 이제야 이전 날짜를 달력에 동그라미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