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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1화]

종이컵이 식기 전에

작성: 2026.03.23 13:27 조회수: 163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넥타이 매듭을 세 번째 고쳐 맸다. 윈저 노트는 너무 격식 차려 보였고, 플레인 노트는 너무 대충 맨 것 같았다. 결국 두 번째로 만든 매듭 그대로 두기로 했다. 도현우는 거울 속 자기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 준비는 됐다. 손바닥에 쥔 메모 카드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는 사실만 빼면. 세면대 위에 카드를 올려놓고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형광등 아래서 자기 얼굴이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입꼬리를 올려 봤다. 어색했다. 내려 봤다. 그게 더 어색했다. 결국 아무 표정도 짓지 않기로 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오전 아홉 시 이십 분. 지점 사무실은 아직 절반만 불이 켜져 있었다. 맞은편 한 대리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노트북 화면을 넘기고 있었고, 창가 쪽 박 실장은 전화 통화 중이었다. 복합기 옆에서는 출력물이 뽑히는 소리가 리듬처럼 반복됐다. 현우는 자기 자리에 앉아 열한 시 상담 파일을 다시 펼쳤다. 고객 이름은 김정호, 마흔여덟, 자영업자.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건 고객 쪽 요청이었다.

보장 분석표의 모서리를 맞추던 현우의 손이 두 번째 장에서 멈췄다. ‘작년 가입 계약’이라고 표시된 줄 아래, 원청약서와 고지 답변을 대조하는 칸이 비어 있었다. 사내 조회 화면에는 계약명과 가입일만 요약돼 있었고, 당시 고객이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는 원문서를 열어 봐야 알 수 있었다. 현우는 빈칸 옆에 작은 물음표를 그렸다. 지금 확인할까 싶어 마우스를 잡았지만, 첫 상담에 늦을까 봐 겁이 났다. ‘상담 뒤 확인.’ 그는 포스트잇에 그렇게 적어 파일 안쪽에 붙였다. 대수롭지 않은 뒷일처럼 밀어 둔 두 글자가 나중에 얼마나 무거워질지는 알지 못했다.

“현우 씨, 오늘 첫 타석이지?”

한 대리가 커피 잔을 들고 다가왔다. 현우는 파일을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네, 김정호 고객님이요. 열한 시예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 첫 번째는 얼굴 트는 거야.”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방 안에는 메모 카드 세 장과 예상 질문 답변지까지 들어 있었다. 얼굴 트는 게 목표인 사람이 예상 질문 답변지를 챙기지는 않는다. 그걸 알면서도 넣었다.

열 시 사십오 분, 약속 장소인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도착했다. 일부러 십오 분 일찍 왔다. 창가 자리를 잡고 종이컵에 아메리카노를 받아 놓았다. 테이블 위에 파일을 펼치고 메모 카드의 첫 줄을 다시 읽었다.

‘보장 분석표 먼저, 니즈 파악 질문 세 개, 추천 상품 설명.’

연수 때 배운 순서 그대로였다. 현우는 파일 여백에 ‘자연스럽게’라고 적었다가 줄을 그어 지웠다. 적는다고 자연스러워지는 건 아니니까.

열한 시 정각,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정호는 현우가 상상한 것보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눈 밑에 그림자가 짙었고 한 손에는 작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도현우입니다. 오늘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정호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앉았다. 둘 사이에 보장 분석표와 종이컵 두 개가 놓였다.

“복잡한 건 아니고요. 보험이 이것저것 있는데 제가 뭘 갖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왔어요.”

그가 분석표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현우가 아침에 물음표를 남긴 바로 그 줄이었다.

“특히 작년에 가입한 건, 그때 제가 뭘 적고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도 헷갈립니다. 새로 들기 전에 그것부터 맞는지 보고 싶어요.”

현우는 포스트잇을 떠올렸다. 원청약서를 아직 대조하지 않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했다. 그러나 첫 상담을 빈손으로 시작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네, 그 부분까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전체 보장부터 보시면요.”

입은 준비한 순서를 따라갔다. 그 순간 김정호가 비닐봉지에서 약 봉투를 꺼내 테이블 한쪽에 올려놓았다. 작은 동작이었는데도 현우의 시선은 거기에 꽂혔다. 병원 이름이 인쇄된 약 봉투였다.

“혹시 편찮으신 데가 있으세요?”

물어보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김정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입술이 한 번 다물렸다가 열렸다.

“아뇨, 그냥 감기약이에요.”

짧은 대답이었다. 현우는 “아, 그렇군요” 하며 웃었지만 분위기가 한 박자 어긋난 걸 느꼈다. 그는 서둘러 설명으로 돌아갔다. 침묵이 무서우면 말이 많아지는 건 현우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여기 이 항목은 일반적으로 많이 놓치시는 부분이거든요. 특히 자영업 하시는 분들은 소득 보전이—”

“그건 나중에 보고요.”

김정호가 고개를 들었다.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냥 지친 사람의 무표정이었다.

“정리 좀 해 달라는 거지, 새로 뭘 들으려고 온 건 아닌데.”

현우는 손에 쥔 펜을 멈췄다. 준비한 흐름이 통째로 빗나간 느낌이었다. 김정호는 처음부터 기존 계약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우는 확인하지 못한 빈칸을 숨긴 채 또 설명부터 꺼냈다. 실적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보완 항목 몇 개만 짚어도 다음 약속을 잡을 여지는 생길지 몰랐다. 하지만 김정호의 말은 분명했다. 정리와 확인이 먼저였다.

현우는 펜을 내려놓고 보장 분석표를 반쯤 접었다.

“제가 설명을 너무 앞세웠습니다. 오늘은 정리부터 하고, 작년 계약은 원문서를 대조한 뒤 확인된 것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하고 나니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민망했지만 조금 숨이 쉬어졌다. 바로 그때 팔꿈치가 종이컵을 스쳤다.

철퍽.

아메리카노가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커피가 분석표 가장자리를 적시며 김정호 쪽으로 흘렀다.

“죄송합니다!”

현우는 냅킨을 움켜쥐고 닦기 시작했다. 김정호는 약 봉투를 얼른 들어 올리며 몸을 뺐다. 카페 직원이 다가와 행주를 건넸다. 커피 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올라왔다. 스물여덟 해 인생 중에 이 이십 초가 가장 길었다.

“괜찮아요.”

김정호가 먼저 말했다. 위로라기보다는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사람의 말투였다. 현우는 젖은 분석표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기존 계약까지 다시 확인해서 깨끗하게 정리한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김정호는 시계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비닐봉지를 집어 드는 소리에 약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김정호가 문을 열고 나가는 뒷모습을 현우는 서서 바라봤다. 유리문에 자기 모습이 비쳤다. 넥타이는 여전히 반듯했다. 그게 더 민망했다.

지점으로 돌아온 건 오후 한 시쯤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서아라 선임과 눈이 마주쳤다. 아라는 자기 자리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었다.

“어땠어?”

“네, 뭐…… 괜찮았습니다.”

아라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현우의 손등에 남은 커피 자국을 잠깐 봤다. 현우는 고개를 돌려 모니터를 켰다. 화면이 밝아지는 동안 자판 위에 올린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카페의 공기가 아직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오후 내내 현우는 김정호에게 보낼 정리 자료를 새로 만들었다. 새 가입을 권하는 문장은 한 줄도 넣지 않았다. 대신 첫 장 상단에 ‘확인 완료’와 ‘원문서 대조 필요’를 나눴다. 작년 계약은 두 번째 칸에 남았다. 당장 원청약서를 열어야 했지만, 현우는 젖은 분석표를 다시 만드는 일부터 붙잡았다. 급한 일을 먼저 했다는 핑계 아래, 불편한 일을 한 번 더 뒤로 밀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탕비실에서 종이컵에 물을 받다가 멍하니 서 있었다. 물이 가장자리까지 차올라서야 수도를 잠갔다. 뒤에서 아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우 씨, 첫 상담이 망하는 건 원래 그런 거야.”

돌아보니 아라가 자기 컵을 들고 서 있었다.

“나도 첫 상담 때 고객 앞에서 프린트를 거꾸로 펼친 적 있어.”

위로도 훈계도 아닌, 그냥 사실이었다. 아라는 물을 다 받고 탕비실 문을 나서기 직전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엔 설명부터 하지 말고, 왜 왔는지부터 들어.”

그 말은 짧았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현우는 종이컵을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한 물이었다. 오늘 카페에서 준비한 말은 많았지만 들어야 할 말은 따로 있었다. 기존 계약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말. 새로 가입하려는 게 아니라는 말.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파일을 펼치기 전에 먼저 묻고 싶었다. 무엇이 가장 불안한지, 어느 계약부터 같이 볼지.

현우는 빈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모니터 옆 파일에서는 ‘상담 뒤 확인’이라고 적힌 포스트잇 한 귀퉁이가 보였다. 읽음 표시는 아직 뜨지 않았다. 퇴근 준비를 하면서도 현우의 시선은 종이컵보다 그 작은 메모에 더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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