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부엌은 전날 손님들이 남긴 술 냄새와 장작불의 잔열이 뒤섞여 묘하게 텁텁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은 서진해의 몫이었다. 솔잎을 밀어 넣고 부싯돌을 긁으면 연기가 먼저 눈을 찔렀고, 그다음에야 불길이 올랐다. 그 순서가 좋았다. 따뜻해지기 전에 먼저 아픈 것. 삭풍객잔에서 배운 가장 쓸모 있는 가르침이었다.
문제는 오늘따라 아궁이 앞에 한 사람이 더 있다는 점이었다. 담소령은 서진해가 불을 피우기도 전에 부엌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머리를 대충 묶고 약상자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졸고 있다가, 부싯돌 소리에 눈을 떴다.
"……일찍 일어나네."
서진해는 대꾸 없이 솔잎 위로 불씨를 떨어뜨렸다.
"대답 안 하는 거야, 못 하는 거야?"
"……일이 있으니까 일찍 일어난 겁니다."
"그걸 대답이라고."
담소령이 코웃음을 쳤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불길이 오르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젯밤, 막금산은 담소령에게 제안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그릇 닦는 일을 도우면 사흘간 방과 끼니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진료비를 떼인 손님이 새벽에 달아난 탓에 담소령은 빈주머니 신세가 되었고, 자존심과 배고픔 사이에서 고민한 시간은 대략 밥 반 공기 분량이었다.
"사흘이요? 닷새."
"사흘."
"나흘 반."
"사흘. 그릇 깨면 하루 줄어."
막금산은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웃지 않았고, 담소령은 한숨을 쉬며 주저앉았다. 그 대화를 서진해는 장작을 패면서 등으로 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부엌에는 사람이 둘이었다.
서진해는 솥에 물을 붓고 국밥 준비를 시작했다. 무를 썰고 대파를 어슷하게 잘랐다. 소금 항아리 옆에 놓인 작은 자루에서 말린 약초 두 가지를 꺼내 손가락으로 비벼 솥에 넣었다. 방풍 한 줌, 갈근 반 줌. 새벽 추위에 객잔을 찾는 나그네들의 몸을 풀어 주는 배합이었다. 사부에게 배운 것이었지만, 서진해는 그것을 '어디서 주워들은 것'으로 기억하기로 오 년 전에 정해 두었다. 결심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그거 방풍이지?"
담소령이 졸음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약초를 넣는 서진해의 손이 반 박자 늦어졌다.
"……예."
"방풍에 갈근. 국밥에?"
담소령이 무릎 위 약상자를 밀어놓고 일어섰다. 가까이 오지는 않았지만, 솥 안을 힐끗 들여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 근처 민간에서 흔히 쓰는 배합은 아니거든. 보통은 갈근을 더 넣지. 어디서 배운 건데?"
서진해는 국자를 들어 솥을 저었다. 김이 올라 그의 얼굴을 가렸다.
"……어릴 때 어른들이 하는 걸 봤습니다."
"어디 어른들?"
"기억 안 납니다."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말하기 싫은 거잖아."
서진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솥 안에서 방풍 잎이 천천히 돌았다. 오 년 동안 아무도 이 국밥의 배합을 묻지 않았다. 의녀가 이 부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침 장사가 시작되자 객잔은 금세 바빠졌다. 서진해는 국밥 그릇을 나르고 빈 그릇을 거두었다. 담소령은 설거지통 앞에서 팔을 걷어붙인 채 투덜거렸다.
"이 기름때가 왜 이래. 돼지를 삶았어?"
"……소 사골입니다."
"비유를 한 건데."
담소령이 그릇을 물에 담그며 서진해를 올려다보았다.
"너, 한 번도 안 웃었어."
"웃을 일이 없었습니다."
그때 대청 쪽에서 막금산이 소리쳤다.
"그릇 좀 빨리 돌려!"
담소령은 입을 다물고 그릇을 닦았고, 서진해는 빈 상을 치우러 돌아섰다. 짧은 침묵 속에 무언가가 남았지만, 둘 다 꺼내지는 않았다.
점심 무렵, 낯선 손님 셋이 들어왔다. 짐을 지지 않은 가벼운 차림에 허리의 병기는 천으로 감싸 드러내지 않았다. 서진해는 상을 닦으며 그들의 발을 먼저 보았다. 먼지가 적었다. 걸어온 것이 아니라 말을 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객잔 앞에는 말이 매여 있지 않았다. 따로 숨겨 둔 것이다. 등 뒤가 서늘해졌지만, 그는 국밥 세 그릇을 나르며 고개를 숙였다.
"드십시오."
셋 중 가운데 앉은 사내가 국밥을 한 숟갈 뜨더니 멈췄다.
"……이거, 방풍 넣었나?"
서진해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사내는 혀를 차며 다시 떠먹었다.
"변방 국밥에 약재를 넣다니, 주인장이 정성이 좋군."
옆의 동행이 웃으며 받았다.
"형님은 뭘 먹어도 품평이야."
사내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 그의 시선이 국밥에서 서진해의 손등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놓치기에는 지나치게 또렷한 눈길이었다. 서진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물러났지만,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손바닥은 이미 젖어 있었다. 담소령만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방풍의 비율을 혀로 가려내는 자들이 있었다. 사부가 가을 아침 마당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의술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숨은 자를 드러내기도 한다고.
오후, 서진해는 뒤뜰에서 장작을 팼다. 도끼를 내리칠 때마다 어깨의 옛 검상이 당겼지만, 그 통증이 오히려 생각을 가라앉혀 주었다. 담소령이 빨래를 널다가 다가왔다.
"아까 그 손님들 봤어? 가운데 앉은 사람, 왼손 검지 첫째 마디에 굳은살이 있더라. 약재를 자주 다루는 손이야. 그런데 허리에 찬 건 약상자가 아니라 병기거든."
서진해는 도끼질을 멈추지 않았다. 담소령은 한 걸음 더 다가와 말을 이었다.
"의술을 알면서 무기를 차는 사람. 정파 문파 중에 의술과 무공을 함께 가르치는 곳은 몇 안 되는데——"
"그만하십시오."
서진해가 말을 잘랐다. 생각보다 단호한 어조였다. 담소령이 눈을 깜빡였다. 서진해는 숨을 고르며 어조를 낮췄다.
"……관심 가지지 마십시오. 지나가는 손님입니다."
"관심 가진 건 네가 먼저잖아. 아까 그 사람 발부터 봤으면서."
서진해는 대답하지 못했다.
담소령이 빨래를 탁 털며 돌아섰다.
"난 의녀야. 사람 몸을 보는 게 일이란 말이야. 그런데 너도 사람을 보더라. 잡역치고는 너무 잘."
그 말이 등에 꽂혔다. 도끼가 장작을 쪼개는 소리만 뒤뜰에 남았다. 서진해는 한 토막 더 패려다 멈췄다. 담소령을 밀어낸 것은 경계였지만, 가슴 밑바닥에 남은 것은 안도보다 씁쓸함에 가까웠다. 오 년 동안 지켜 온 침묵이 자신을 살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방금 내뱉은 말은, 누군가를 막아 세우기보다 스스로를 더 깊이 가두는 소리처럼 들렸다.
저녁이 되어 대청 문을 닫자 막금산이 서진해를 불렀다. 카운터 뒤, 술병이 줄지어 선 선반 앞에 두부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먹어."
서진해가 앉자 막금산은 술잔을 기울이며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불쑥 물었다.
"그 의녀, 얼마나 있을 생각이냐."
"사흘이라 하셨지 않습니까."
"내가 묻는 건 그게 아니다."
막금산의 눈이 서진해를 똑바로 보았다. 평소의 투박함 뒤에 숨어 있던 날이 잠깐 드러났다.
"그 아이 눈이 밝아. 네 곁에 오래 두면 위험해."
서진해는 두부를 집으려던 젓가락을 멈추었다.
"……뭐가 위험합니까."
막금산은 대답 대신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른 말을 꺼냈다.
"오늘 낮에 온 셋, 내일 아침이면 떠날 거다. 그 전에 얼굴 마주치지 마라."
"……그들이 누굽니까."
"모른다. 모르는 게 좋아."
막금산은 빈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무거웠다. 술잔 하나가 닿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눌러 삼키는 소리 같았다.
서진해는 두부를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는 게 좋다는 말은 늘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됐다. 청문파가 불탄 밤 이후, 그는 그렇게 버텨 왔다. 묻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지나가게 두는 것. 그런데 오늘 하루는 그 오래된 버릇을 자꾸 흔들었다. 담소령은 국밥 한 솥에서 흔적을 읽어 냈고, 낯선 사내는 숟갈 하나로 배합을 짚어 냈다. 막금산은 그들을 피하라고 했다. 피하면 안전할 것이다. 적어도 오늘 밤은. 하지만 청락이 돌아온 뒤에도 계속 등을 돌린다면, 자신이 대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버리는지조차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서진해는 결심했다. 내일 아침 손님 셋을 먼저 찾아 나서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기 전, 한 번만이라도 기척은 확인하겠다. 막금산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른 척하지 않는 길. 그가 고를 수 있는 가장 좁은 길이었다.
밤이 깊었다. 서진해는 잠이 오지 않아 다락방 바닥 아래 숨겨 둔 청락을 꺼냈다. 천을 풀자 칼날이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핏자국은 말라붙어 검게 변해 있었지만, 그 안의 검은 기운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검을 무릎 위에 올리고 눈을 감았다. 잔화심결의 첫 호흡, 잔불귀원(殘火歸元)을 천천히 이어 갔다. 숨을 들이쉴 때 단전에서 가느다란 내공이 올라왔고, 그것이 손바닥을 통해 검에 닿는 순간 검은 기운이 움직였다. 핏자국 속에 묻혀 있던 그것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미세하게 떨렸다. 서진해의 내공과 같은 결로, 같은 흐름으로.
서진해는 눈을 떴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이것은 독이 아니었다. 내공의 잔기, 그것도 잔화심결과 같은 뿌리를 가진 누군가의 것이었다. 사부는 이 심결을 자신에게만 전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피의 주인은 사부와 같은 것을 익힌 사람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사부 자신의 피인가. 그러나 사부는 오 년 전에 죽었다. 마르지 않은 피가 죽은 사람의 것일 리 없었다. 서진해는 천으로 청락을 다시 감쌌다. 손가락 끝에 검은 기운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익숙한 온기였다. 사부의 손에서 느꼈던 것과 닮아 있었다.
복도 너머 담소령의 방에서는 아직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서진해는 알지 못했다. 그 불빛 아래서 담소령이 어머니의 유품인 약첩을 펼쳐 놓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약첩의 첫 장에 적힌 배합이, 오늘 아침 자신이 국밥에 넣은 방풍과 갈근의 비율과 정확히 같다는 것도. 다락방 창틈으로 삭풍이 스며들었다. 아래층에서는 막금산이 홀로 술을 마시는 소리가 희미하게 올라왔다.
탁.
술잔이 탁자에 닿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더 무겁게 들렸다. 서진해는 청락을 품에 안은 채 벽에 등을 기댔다. 내일 아침, 낯선 손님 셋이 떠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다시 헤아렸다.
그때였다.
아래층 마당 쪽에서 아주 짧게 나무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라고 넘기기에는 지나치게 또렷했다. 막금산도, 담소령도 아직 잠들지 않은 밤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 뒤에는 기척이 더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한 번만 흔적을 남기고 숨을 죽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