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준이 회의실 문을 닫은 뒤에야 화면을 켰다. 첫 장에는 침수 사건이 아니라 분기 비용표가 떠 있었다. 소비자 재검토 파트의 인건비, 외부 조사비, 평균 처리일, 결론 변경률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마지막 줄은 붉었다. `조직 효율화 검토.`
윤서하는 침수 시각표를 들고 들어왔다가 자리에 앉지 못한 채 화면을 봤다. 감사가 끝난 지 여덟 달이었다. 팀은 살아남았고, 새 이름도 얻었다. 그런데 표 안에서 재검토는 다시 비용이 긴 부서로 보였다.
“외부 전문업체에 1차 검토를 맡기고, 내부에서는 최종 승인만 하는 안입니다.” 박성준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다른 안은 기존 보상팀 흡수입니다. 아직 결정은 아닙니다.”
지우가 물었다. “고객 이의와 원결정 담당자 보호는 누가 맡습니까?”
“그 질문도 오늘 기록합니다.” 박성준은 회의록 화면을 열었다. 예전처럼 숫자만 놓고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솔직해졌다고 예산 압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도윤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결론 변경률이 낮으니 필요 없다는 뜻입니까?”
재무 담당자는 고개를 저었다. 변경률뿐 아니라 설명 완료율과 민원 재발률도 봤다고 했다. 그러나 외주업체도 같은 지표를 맞출 수 있다는 제안서가 와 있었다. 더 빠르고 더 싸다는 문장이 표마다 반복됐다.
서하는 `우리 팀은 다르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다른 이유를 감정으로만 말하면, 사람이 바뀌는 순간 기능도 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침수 사건의 접수 화면을 띄웠다. 한 건이 여섯 개의 하위 사건으로 나뉜 기록이었다.
“외주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현장 조사나 기술 점검은 이미 외부 도움을 받습니다.” 서하는 공통 시각표와 개인 자료 접근표를 나란히 놓았다. “다만 원결정과 독립적으로 자료 보존을 요구하고, 문제제기한 직원의 평가 불이익을 확인하고, 고객별 설명을 다시 연결하는 권한은 계약서 한 줄로 생기지 않습니다.”
수진은 지난 여덟 달의 사례를 세 부류로 나눴다. 결과가 바뀐 건, 결과는 같지만 설명과 이의 경로가 보완된 건, 원결정이 적절해 그대로 종결된 건. 두 번째 부류가 가장 많았다. 결론 변경률만 보면 사라지는 일이었다.
지우는 직원 문제제기 기록을 익명으로 집계했다. 재검토 파트가 원본 보존을 요청한 뒤 자료가 제때 남은 비율, 담당자 변경 없이 독립 검토가 이뤄진 횟수, 문제제기 뒤 인사·수당 점검 건수였다. 사람 이름과 사건 세부는 가렸지만 기능은 보였다.
재무 담당자는 여전히 물었다. “그 기능을 기존 부서가 하면 안 됩니까?”
서하는 바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원결정을 내린 지휘선과 재검토 지휘선을 어떻게 분리할지, 자료 보존을 누가 명령할지, 이견을 낸 직원의 평가를 누가 다시 볼지 먼저 써야 합니다. 조직 이름을 지키자는 게 아니라 그 기능을 없애지 말자는 겁니다.”
도윤의 시선이 잠깐 서하에게 머물렀다. 그는 말에 끼어들지 않았다. 박성준은 회의록에 `팀 존치 요구` 대신 `독립 기능 유지 조건 검토`라고 적었다. 작은 차이였지만, 앞으로의 논의를 사람 몇 명의 생존 문제에서 소비자와 직원의 권리 문제로 옮겼다.
회의 막바지에 외주 제안서의 빠른 처리일 산정 방식이 드러났다. 추가 자료를 기다리는 기간은 처리일에서 제외했고, 설명 뒤 이의 접수 기간도 별도 업무로 뺐다. 숫자가 거짓은 아니었지만 같은 시간을 세고 있지 않았다.
서하는 외주안을 공격하는 데 그 차이를 쓰지 않았다. 내부 팀의 처리일도 같은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자고 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숫자만 고르면 다음 회의에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수 있었다.
박성준은 일주일 뒤 재논의를 잡았다. 그때까지 외주·흡수·독립 유지 세 안에 같은 기능 목록과 같은 시간 기준을 붙이기로 했다. 결론을 미룬 것이 아니라 비교할 표를 먼저 같게 만드는 일이었다.
다음 날 서하는 외주업체 담당자와도 직접 면담했다. 상대는 자신들이 자료를 함부로 다루는 조직으로 묘사되는 데 불편함을 보였다. 서하는 사과하고 질문을 바꿨다. 현장 조사 범위, 원자료 보관 기간, 담당자 교체 시 인수 기록, 고객이 조사 결과를 정정 요청할 창구가 계약서 어디에 있는지 차례로 확인했다.
담당자는 기술 조사와 사진 분류는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원결정 부서에 반대 의견을 강제로 남기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살피는 권한은 없다고 답했다. 서하는 그 한계를 외주의 결함으로 쓰지 않았다. 계약받은 역할 밖의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문장을 비교표에 넣었다. 빠진 기능은 발주하는 회사가 설계해야 했다.
흡수안을 검토하던 기존 보상팀장은 자기 부서도 공정하게 일한다고 반발했다. 서하는 사람의 양심을 의심하는 논의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같은 지휘선 안에서 자기 결정을 다시 보게 될 때 어떤 기록과 승인 장치가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을 전제로 만든 구조는 나쁜 사람이 없어도 바쁜 날 쉽게 무너질 수 있었다.
수진은 실제 한 달 업무를 표본으로 따라가 보자고 제안했다. 조사 요청에서 설명 종료까지 걸린 시간을 외주 방식, 흡수 방식, 현재 방식으로 가상 배치하되, 기다림과 재질문도 빼지 않기로 했다. 세 안 모두 같은 사건을 맡고 같은 개인정보 최소 기준을 적용하도록 조건을 맞췄다.
지우는 직원 인터뷰 동의서를 따로 만들었다. 재검토 기능이 유용했다는 답을 얻기 위해 이름을 모으는 대신, 문제제기 뒤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지 익명으로 물었다. 말하지 않겠다는 선택도 불이익 없이 남길 수 있게 했다. 조직 존치 자료를 만들면서 보호 기능을 먼저 어기는 모순을 피했다.
박성준은 비용표에 `설명하지 못한 비용`이라는 새 행을 추가했다. 소송이나 민원 금액만이 아니라, 같은 자료를 다시 찾는 시간과 고객이 여러 창구를 도는 횟수였다. 정확한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값은 억지로 숫자로 만들지 않고 관찰 항목으로 남겼다.
서하는 팀원들에게 이번 논의에서 누구도 고용을 약속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독립 기능이 남아도 역할과 인원은 달라질 수 있었다. 불안을 달래기 위한 확답 대신 결정 일정, 의견 제출 방법, 개인 면담 창구를 공유했다. 구조를 지킨다는 말이 현재 사람들의 두려움을 지우는 주문은 아니었다.
일주일 표본 결과는 어느 한 안의 압승이 아니었다. 기술 사진 분류는 외부 방식이 빨랐고, 기존 부서 흡수안은 초기 연락이 매끄러웠으며, 독립 유지안은 이견과 설명 이력을 가장 온전히 남겼다. 서하는 장단점을 지우지 않은 채 기능별 조합도 검토하자고 했다. 선택지는 세 조직 중 하나를 승자로 뽑는 표가 아니라, 맡길 수 있는 일과 맡겨서는 안 될 권한을 정하는 설계가 됐다.
회의 자료 마지막 장에는 결정 뒤 석 달 점검일도 미리 적혔다. 어떤 안을 택하든 처리 속도와 정정 가능성, 고객의 이의 접근, 직원 보호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같은 기준으로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서하는 한 번의 조직 결재가 기능의 영구 보증서가 되지 않게 했다.
회의실을 나서며 수진이 물었다. “팀 없어질까 봐 안 무서워요?”
서하는 파일을 품에 안았다. “무서워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남는 이유를 우리 월급으로만 설명하면, 다음에 더 싼 사람이 왔을 때 끝나요.” 복도 끝에는 침수 사건 고객들의 다음 연락 시각이 적힌 보드가 있었다. 서하는 그 보드를 보며 덧붙였다. “저 시간이 사라지지 않게 설명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