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아홉 시 이십 분, 서하는 회의실 의자를 두 줄로 놓지 않고 둥글게 벌려 놓았다. 민주와 건물 관리인, 수리업체 직원을 한꺼번에 마주 앉히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먼저 각자의 말을 따로 듣고, 서로 확인할 내용만 나중에 같은 자리에서 묻기로 했다.
수진이 물병을 테이블 끝에 놓으며 말했다. “사람이 많아지면 기억보다 목소리가 큰 쪽이 이겨. 오늘은 순서를 지켜.”
첫 번째로 들어온 사람은 지난달 22일 세탁소에 갔던 업체 직원이었다. 작업복 대신 회색 셔츠를 입고 왔지만, 민주가 제출한 화면 속 조끼의 3반 책임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손바닥을 무릎에 붙인 채 작업지시서를 바라봤다.
도윤이 물었다. “그날 무엇을 수리했습니까?”
“위층에서 내려오는 배관 접합부를 조금 잘라 내고 새 부속으로 연결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은 멈췄습니다.”
“압력이나 배수 시험은 했습니까?”
직원은 입술을 다물었다가 고개를 저었다. 다음 현장 시간이 밀려 물을 짧게 흘려 본 것이 전부라고 했다. 완료 사진은 작업을 끝내기 직전에 찍었고, 세탁소 주인은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준법 담당자가 수리완료확인서 사본을 화면에 띄웠다. “여기 ‘강민주’라는 이름은 누가 썼습니까?”
직원의 시선이 종이 아래쪽에 멈췄다. 회의실 벽시계가 두 번 움직인 뒤에야 답이 나왔다.
“제가 썼습니다.”
그는 건물 관리인이 열쇠로 문을 열어 줬고, 공사가 끝났으니 확인란도 정리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업체 전산에 그날 완료 처리를 해야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임차인 이름을 적는 것이 현장 확인을 대신하는 관행이라고 생각했고, 민주에게 전화하거나 서명 권한을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서하는 빈칸이 많은 업체 양식을 다시 봤다. 확인자 이름 아래에는 본인, 대리인, 현장 관리자 가운데 누구인지 표시하는 칸이 없었다. 직원은 작업지시서에 인쇄된 점포 대표 이름을 그대로 옮겼다고 했다. 양식이 모호했다고 해서 권한 확인이 필요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왜 같은 일이 반복됐는지 살필 자료는 됐다.
“관리인이 대신 확인할 수 있다는 말과, 임차인 이름을 써도 된다는 말은 구분했습니까?” 수진이 물었다.
직원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진술은 확인서에 적혀 서명됐다. 이번에는 직원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읽은 문장 아래에 했다. 서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종이 위의 이름이 같아 보여도 누가 어떤 뜻으로 적었는지가 전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 관리인은 다른 방에서 설명했다. 민주는 평소 긴급 수리를 위해 열쇠 사용을 허락했고, 그래서 공사 확인도 대신할 수 있다고 여겼다고 했다. 그러나 열쇠를 써도 좋다는 문자 어디에도 민주 이름으로 확인서를 작성해도 된다는 내용은 없었다.
“건물주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수리 끝났다는 보고만 받았습니다. 서명을 누가 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도윤은 그 말을 그대로 기록하되 사실로 확정하지 않았다. 건물주에게도 별도 서면 답변을 요청했다. 관리인의 기억과 직원의 진술이 맞는 부분, 서로 다른 부분을 나눠 표시했다. 관리인이 휴대폰으로 보관한 원본 영상과 메시지도 임의로 편집하지 않은 파일 형태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오후 한 시, 민주가 들어왔다. 업체 직원과 관리인은 옆 회의실에서 기다렸고, 서하가 먼저 오전 진술의 범위를 설명했다. 민주에게는 함께 확인할지, 각자의 서면만 받을지 고를 수 있다고 안내했다.
“같이 듣겠어요. 대신 제가 화내면 예민하다고 적지 마세요.”
수진이 말했다. “감정은 평가하지 않겠습니다. 사실과 요청을 적겠습니다.”
같은 자리에 앉은 뒤에도 누구도 민주에게 서둘러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업체 직원은 자신이 이름을 적었다고 다시 말했다. 관리인은 열쇠 사용 허락을 넓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민주는 두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푸른 파일에서 그날의 학교 상담 확인서를 꺼냈다.
“문을 열어 준 적은 있어요. 빨리 고쳐 달라고도 했어요. 그렇다고 제 이름을 쓰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수리가 제대로 됐는지도 저는 못 봤고요.”
준법 담당자는 세 문장을 분리해 읽었다. 출입에 동의했는지, 공사 완료를 확인했는지, 이름을 대신 쓰도록 권한을 줬는지. 민주는 첫 번째에는 그렇다고 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에는 아니라고 했다. 직원과 관리인도 그 답을 들었다.
민주는 사과보다 먼저 수정된 기록을 달라고 했다. 누가 작성했고 자신은 확인하지 않았다는 내용, 재점검이 아직 남았다는 내용이 한 장에 함께 있기를 원했다. 준법 담당자는 당사자들의 진술을 대신 화해문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확인된 경위와 정정 사실은 사건 기록과 안내문에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의가 끝난 뒤 현장 재점검 결과가 도착했다. 공용 배관과 세탁소로 이어지는 접합부 주변에 다시 젖은 흔적이 있었고, 지난 수리 구간 전체를 시험했다는 자료는 없었다. 점검자는 누수 원인과 책임 범위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불완전한 작업 가능성은 커졌지만, 그 문장만으로 건물주와 업체의 부담 비율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건물주 측은 보험사가 확인 중이니 추가 공사도 기다리자는 의견을 냈다. 수진은 안전과 추가 손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보상 판단이 끝날 때까지 미루라는 뜻은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누가 어떤 비용을 최종 부담할지는 계약과 책임자료를 함께 봐야 하므로, 긴급조치 영수증과 작업 전후 자료를 남겨 달라고 했다.
서하는 손해 목록을 다섯 칸으로 나눴다. 건물 수리, 민주 소유 설비와 비품, 손님이 맡긴 의류, 영업하지 못한 기간, 긴급 조치비. 각각 확인할 계약과 영수증, 사진, 매출 자료가 달랐다. 도윤은 “한 번에 보상”이라는 메모를 지우고 “항목별 담보 및 인과관계 검토”라고 바꿨다.
오후 네 시에는 민주 남편 김정호의 병원청구 담당자가 별도 통화를 연결했다. 김정호는 손을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워 당시 서류 작성을 아내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 서명란에 자기 이름을 대신 써도 된다는 절차까지 이해하고 맡긴 것은 아니라고 했다.
민주가 수화기 너머에서 낮게 말했다. “설계사님이 가족이면 된다고 해서요. 빨리 접수해야 하는 줄만 알았어요.”
담당자는 그 설명만으로 지급이나 부지급을 결정하지 않았다. 김정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회사 기준과 병원 협조 절차를 안내했다. 가능한 경우 새 확인, 본인 의사 녹취, 회사가 인정하는 대리 작성 표시와 입회 등 보완 방법을 검토하되, 실제 적용은 계약과 내부 기준에 따라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설계사의 안내 내용도 별도 확인 대상으로 남겼다.
통화에는 병원 직원이 필요한 범위에서만 참여했다. 진단 내용 전체를 다시 말하는 대신 김정호가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상태인지, 어떤 보완 방식에 협조할 수 있는지만 확인했다. 서하는 병원 기록이 많다고 해서 모두 가져오는 것이 정확한 조사는 아니라는 걸 새로 적었다.
통화를 마친 서하가 두 장의 서류를 나란히 보았다. 한 장에는 남편의 부탁을 받은 아내가 급한 마음으로 적은 이름이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업무 마감을 위해 적힌 이름이 있었다. 둘 다 본인이 직접 쓴 것은 아니었지만, 동의와 권한, 작성 목적, 사후 확인의 경로가 달랐다.
“같은 말로 묶으면 안 되는 거네요.” 서하가 말했다.
도윤이 대답했다. “대신 썼다는 결과만 보지 말고, 누가 알고 있었는지부터 봐. 그리고 서명 문제와 실제 손해 원인도 따로 보고.”
해가 기울 무렵 업체의 서면 답변이 접수됐다. 작성자는 오전에 진술한 직원, 지시는 건물 관리인의 현장 발언, 임차인에게 직접 받은 확인은 없음. 시험 기록은 제출하지 못했고 재점검에는 협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하는 민주에게 보낼 진행 안내문을 읽어 내려갔다. 확인된 사실과 아직 조사 중인 항목이 분명히 갈라져 있었다. 오늘 확정된 것은 누가 이름을 적었는지까지였다. 그 이름이 보상과 책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계약, 수리 상태, 손해 자료를 더 살펴야 했다. 사건은 느리게 앞으로 갔지만, 적어도 더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