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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3화]

격자는 알고 있는 사람의 손이 먼저 닿는다

작성: 2026.06.16 19:19 조회수: 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오후 한 시 이십칠 분이었다. 수로 안에서 시간은 벽 온도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콘크리트가 낮 햇볕을 머금으면 손바닥에 미지근한 기운이 올라왔고, 식으면 손가락 끝부터 감각이 무뎌졌다. 세온은 손전등을 오른손에 쥔 채 왼손으로 벽면을 짚으며 걸었다. 발목까지 올라온 물이 장화 안쪽으로 스미는 느낌은 한 시간 전에 이미 포기했다. 지금 느끼는 건 물이 아니라 무게였다. 장화 한 짝에 물이 차면 오백 그램은 더 나갔다.

앞에서 걷는 도혁의 등 쪽 실루엣이 손전등 불빛 끄트머리에 걸쳐 있었다. 도혁은 지금까지 방향을 바꿀 때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왼쪽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꺾을 때도, 낮게 처진 배관 아래를 지날 때도 걸음이 일정했다. 어림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조금씩 머뭇거린다. 세온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주시했다.

"삼십 미터."

도혁이 낮게 말했다. 26화에서 그가 처음 그 숫자를 말했을 때와 똑같은 톤이었다. 확인하는 말투가 아니라 보고하는 말투. 태민이 뒤에서 손전등을 비스듬히 올렸다. 격자 윤곽이 물 위로 반사되어 흔들렸다.

"여기서 멈춰."

태민의 말이 짧게 떨어졌다.

도혁이 걸음을 멈췄다. 이번에는 바로 멈췄다. 세온은 그 타이밍을 기억해 두었다. 명령을 들은 사람이 멈추는 데는 보통 반 박자 지연이 있다. 생각하고 따르기 때문이다. 도혁은 지연 없이 멈췄다. 멈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뜻이었다.

격자는 생각보다 낮았다. 세온이 손전등을 정면으로 들자 녹슨 쇠창살이 수면 위로 약 일 미터 올라와 있었고 아래쪽은 물에 잠겨 있었다. 좌측 하단에 손잡이처럼 보이는 둥근 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도혁은 그 쇠고리를 보자마자 발을 물속으로 넣었다.

"잠깐."

세온이 말했다.

도혁이 멈췄다. 이번에도 반 박자 없이.

"저 손잡이 위치 알고 있었어요?"

침묵이 두 박자 흘렀다. 수로 안의 침묵은 물 흐르는 소리를 더 크게 만들었다.

"물속에 있으면 보통 저 위치에 달아요."

도혁이 어깨를 한 번 들었다 내렸다.

"설치 규격이 있거든요. 군납 규격."

태민이 세온 옆으로 한 발 나왔다.

"군납 규격을 어떻게 알아?"

"저 사람들한테 물건 날랐으니까요."

도혁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능청스러운 것과 담담한 것 사이 어딘가였다.

"군 납품 창고 출입 서류 끊으면서 한 번씩 봤어요. 치수 맞추려고."

하린이 세온 등 뒤에서 태블릿을 가슴에 붙들고 있었다. 신호는 여전히 없었다. 화면은 어두운 수로 안에서 빛을 내고 있었지만 수신 막대는 하나도 서 있지 않았다. 하린이 세온 쪽으로 눈을 올렸다. 세온은 그 눈빛을 받고 짧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신호 여부를 물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윤호가 뒤에서 앞으로 반 걸음 나왔다.

"격자 구조가 단면이에요, 복면이에요?"

도혁이 윤호를 돌아봤다.

"무슨 말이에요?"

"안쪽에 격자가 하나 더 있느냐고요."

윤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안에 뭔가 계산하는 것이 있었다.

"군 수로 거점 확보 문건에는 복면 설치가 기본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격자 두 개. 이쪽에서 열면 안쪽 격자가 자동으로 잠기는 방식."

세온이 윤호를 봤다.

"그 문건에 그런 세부 사항이 있었어요?"

"별첨 B 본문에는 없었어요."

윤호가 잠깐 멈췄다.

"첨부 도면에 있었어요."

첨부 도면. 세온은 그 단어를 그냥 흘리지 않았다. 별첨 B 본문이 아니라 첨부 도면. 윤호가 지금까지 '별첨 B'라는 표현으로만 문건을 지칭해 왔다는 것, 그리고 도면이라는 단어가 오늘 처음 나왔다는 것. 두 개가 같은 문건인지, 아니면 별도 파일인지. 세온은 그 질문을 지금 당장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다. 격자 앞에서 윤호와 싸울 시간은 없었다.

도혁이 다시 격자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번에는 아무도 막지 않았다. 도혁의 손이 물속으로 들어가 쇠고리를 잡았다. 두 번 당기자 녹슨 소리가 났다. 세 번째에 격자가 안쪽으로 열렸다. 경첩이 울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예상대로, 두 번째 격자가 있었다. 윤호가 말한 그대로였다.

태민이 도혁 바로 옆으로 붙었다. 두 번째 격자는 달랐다. 잠금 방식이 쇠고리가 아니었다. 열쇠 구멍이 있었다.

"열쇠 없어요."

도혁이 말했다. 이번에는 진짜로 멈칫하는 기색이 있었다. 세온은 그 멈칫을 눈으로 잡았다. 아까와 달랐다. 아까는 준비된 사람의 반응이었다. 지금은 준비 안 된 사람의 반응이었다.

"부술 수 있어요?"

하린이 앞으로 나오며 물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물음은 날카로웠다.

태민이 격자 잠금 부분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경첩 쪽 용접 상태 봐야 해. 세온."

세온이 태민 옆으로 붙었다. 용접 부위가 물 밑에 잠겨 있었다. 세온은 장화를 들고 발을 물속으로 넣었다.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손전등을 물 아래로 낮추자 흐릿하게 용접 선이 보였다. 녹이 슬었지만 깊지 않았다. 최근에 관리한 흔적이 있었다. 녹이 고르게 퍼진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슬어 있었다. 어딘가를 누군가 닦아낸 것처럼.

세온이 일어섰다. 물을 뚝뚝 흘리며.

"최근에 누가 이 격자를 열었어요."

아무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물 흐르는 소리만 있었다.

"열쇠가 있는 사람이 이 수로를 지났다는 거잖아요."

하린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이쪽에서 안쪽으로요. 아니면 안쪽에서 이쪽으로."

세온이 도혁을 봤다. 도혁은 격자 쇠창살을 손으로 잡고 있었다. 잡고 있는 것인지,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됐다. 세온은 그 손을 보면서 한 가지를 결정했다. 지금 당장 도혁에게 물어봐야 할 것과, 나중에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격자 앞은 지금 당장의 자리가 아니었다. 열쇠가 없으면 길을 찾아야 했고, 길을 찾으려면 도혁이 필요했다. 순서가 있었다.

"도혁 씨."

세온이 말했다.

"우회 루트 있어요?"

도혁이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있어요."

짧게 말했다.

"삼백 미터 돌아야 해요."

"알려줘요."

도혁이 돌아섰다. 걷기 시작했다. 세온이 따라갔다. 태민이 뒤에서 도혁의 등 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걸었다. 윤호는 품 안의 무언가를 한 번 손으로 눌렀다가 뗐다. 하린은 신호 없는 태블릿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하고 꺼버렸다. 수로 안이 더 어두워졌다.

격자 위 콘크리트 벽에는 수평선 두 개가 긁혀 있었다. 가는 것과 굵은 것. 두 개의 깊이가 달랐다. 세온은 그것을 지나치면서 손전등 불빛을 한 번 더 그쪽으로 올렸다가 내렸다. 가는 선이 먼저였다. 굵은 선이 나중이었다. 두 집단이 다른 시점에 이 자리를 지나갔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 집단은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 두 가지가 수로 냄새 속에서 물보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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