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양 시간이 지나도록 산문 쪽에서는 아무 소리가 없었다. 진무백은 기슭 아래 주막 처마 끝에 걸터앉아 식은 죽 한 사발을 절반쯤 비웠다. 숟가락이 사기 사발 바닥에 닿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건너편 돌담에 등을 기댄 청연도인은 그것을 듣고도 고개 하나 돌리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는데, 잠든 것인지 생각에 잠긴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틀째 이어지는 그 침묵이 진무백은 솔직히 좀 불편했다.
"밥은 안 먹습니까."
청연도인이 눈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쪽이 먼저 먹었으니 됐습니다."
"제가 먹는다고 도사님 배가 차지는 않습니다만."
청연도인은 그제야 눈을 떴다. 잠깐 진무백을 보았다가, 아무 말 없이 주막 안으로 들어갔다. 진무백은 사발을 내려놓고 검집 끝으로 땅을 한 번 툭 두드렸다. 이틀 동안 두 사람이 실제로 나눈 말은 이 정도가 전부였다. 기록고 담벼락 앞에서 매화 흔적을 발견한 그날 저녁 이후, 청연도인은 딱 필요한 말만 했고 진무백은 그 이상을 물을 타이밍을 번번이 놓쳤다. 물어봐야 할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청연도인의 침묵에는 묘한 밀도가 있어서, 함부로 건드리면 오히려 더 단단히 닫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기록고 봉인을 해제하려면 무당 장문인 현허진인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청연도인은 사흘이 지나도록 장문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진무백이 전날 저녁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청연도인이 한 대답은 짧았다.
"명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충분하지 않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 걸렸다. 매화 흔적이 명분이 아니라면 무엇이 명분인가. 혹은 청연도인은 이미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어서, 그것이 드러나기 전에 장문인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것인가. 진무백은 소매 안에서 매화 문양 조각을 꺼낼까 잠깐 생각했다가 그만두었다. 꺼낼 자리가 아직 아니었다. 패를 너무 일찍 보이면 상대가 아니라 동행이 먼저 달라진다.
주막 안에서 청연도인이 나왔다. 손에 찻잔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진무백 앞에 하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차가 식기 전에 드십시오."
"고맙습니다."
진무백이 찻잔을 들었다. 차는 뜨거웠다.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다가 문득 청연도인이 자신의 것을 챙겨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이틀 동안 밥도 따로, 잠도 따로였다. 그런데 차는 같이. 작은 변화였지만 진무백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청연도인도 이 침묵이 오래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발소리가 들린 것은 오전 해가 중천을 막 넘길 무렵이었다.
진무백이 먼저 알아챘다. 주막에서 기록고 담장까지는 돌길로 이백 보 남짓이었다.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는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두 발이었고, 무게 배분이 일정했다. 내공을 가다듬은 사람의 걸음이었다. 진무백은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손이 자연스럽게 검집 쪽으로 갔다.
주막 문 앞에 서 있던 청연도인이 그 표정을 보고 즉시 담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말이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돌길을 밟는 발소리를 죽이며 담장 북쪽 모서리 쪽으로 돌아가자 반쯤 열린 쪽문이 보였다. 낡은 쇠 자물쇠가 열린 채 담장 돌에 걸쳐져 있었다. 쇠에 녹이 슬어 있었지만 자물쇠 고리 부분만 유독 깨끗했다. 최근에 열렸다는 뜻이었다.
청연도인의 손이 검 손잡이 위에 얹혔다. 진무백은 쪽문을 밀지 않고 옆 담장에 등을 붙인 채 귀를 세웠다. 담장 안에서 발소리가 멈췄다. 이어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조심스러운 소리였지만 담장 안 공간이 좁아 소리가 울렸다. 진무백은 숨을 고르고 쪽문을 차고 들어갔다.
안쪽은 기록고 외벽과 담장 사이의 좁은 공간이었다. 이끼가 낀 벽돌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무언가를 살피고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회색 도포에 작은 체구, 사십 안팎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손에는 접힌 종이가 들려 있었다. 여자는 놀란 기색을 빠르게 지우고 오히려 두 사람을 번갈아 훑었다. 그 눈이 무당 복색을 확인하고 청연도인에게 잠깐 멈췄다.
"누구요."
진무백의 목소리는 낮고 짧았다. 검집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였다.
"무당 검수 청연도인이시면 맞습니까."
청연도인이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쪽은."
여자는 종이를 접어 소매 안에 넣으며 말했다.
"선대 장문인 유묵을 보관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이 기록고에 마지막으로 드나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잠깐의 침묵이 있었다. 청연도인의 얼굴에 무언가 스쳤다가 지워졌다. 진무백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청연도인이 이 여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모른다고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눈이 좁아지는 것도 아니고, 놀라는 것도 아니었다. 짐작했던 것이 맞았다는 얼굴이었다.
"봉인 이후 기록고에 출입 기록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청연도인이 말했다. 여자는 담담하게 받았다.
"없는 것처럼 되어 있겠지요. 그렇게 해두고 왔으니까."
진무백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여자의 소매 쪽을 보았다. 종이 한 장. 기록고 담벼락 매화 흔적 바로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위치가 어제 진무백이 발견한 흔적과 정확히 일치했다.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 종이, 보여줄 수 있습니까."
진무백이 말했다. 여자는 그를 보았다. 무당 복색이 아니었다. 검집 모양이 표국 계열이라는 것을 알아챈 듯 눈이 잠깐 좁아졌다.
"무당 사람이 아니군요."
"아닙니다."
"그러면 이 자리에 있을 이유는."
진무백은 소매 안에서 매화 문양 조각을 꺼내지 않았다. 꺼낼 자리가 아직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신 청연도인을 보았다. 청연도인이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말했다.
"같이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 한마디가 의외였다. 진무백은 내심 청연도인이 자신을 떼어 내거나 적어도 모른 척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여자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소매 안 종이를 꺼내 펼쳤다.
기록이었다. 날짜와 이름, 그리고 숫자 몇 개. 필체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선대 장문인의 것이 분명했고, 다른 하나는 더 작고 촘촘했다. 여자의 손가락이 아래쪽 이름 자리를 짚었다.
"봉인 결정 당일 밤,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방문자가 있었습니다. 이 종이가 그 흔적입니다. 이름은 없지만 방문 목적은 적혀 있어요."
목적. 진무백의 눈이 그 줄을 찾았다. 여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자리에는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위탁 반환.
위탁한 것을 돌려받으러 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 선대 장문인의 필체로 짧게 덧붙여진 한 줄이 있었다.
거절함.
청연도인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좁은 공간 안에서 그 소리는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진무백은 그 소리를 듣고 이 여자가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가 자신들과 같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만 그 이유의 끝이 같은 방향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같은 문 앞에 서 있다고 해서 같은 곳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진무백은 그것을 강호에서 일찍 배웠다.
"거절당한 그 밤, 방문자는 그냥 돌아갔습니까."
진무백이 물었다. 여자는 종이를 접으며 잠깐 멈췄다.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저는 이 종이만 남겨두고 자리를 비웠으니까요."
"왜 비웠습니까."
여자가 진무백을 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청연도인의 것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진무백은 두 사람이 같은 종류의 무언가를 삼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것이 이 기록고 안에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쪽문 밖에서 바람이 지나갔다. 담벼락 위 소나무가 흔들렸다. 매화 흔적이 새겨진 담장 모서리에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닿았다가 구름에 가려졌다. 기록고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러나 이미 세 사람이 그 앞에 서 있었고, 셋 모두 같은 문을 보면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