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침 여덟 시 오십 분이었다.
서하는 자리에 앉자마자 파일 서랍을 확인했다. 잠겨 있었다. 어젯밤 집에 오면서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것이 있었는데, 막상 사무실에 들어서니 그게 뭔지 잠깐 흐릿해졌다. 에어컨이 켜지면서 바람이 한 번 밀려왔다. 서류 한 장이 바닥으로 날아갔다. 서하는 그걸 줍지 않고 서랍 열쇠를 꺼냈다.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났다.
한재원이 들어온 건 그보다 삼 분 뒤였다.
"왔어요?"
서하가 고개를 들지 않자 한재원은 자기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 엘리베이터가 이상해. 사 층에서 멈추질 않나, 문이 안 열리질 않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한재원은 잠깐 뭔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커피머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머그잔을 꺼내다가 손잡이가 잡히지 않아서 한 번 더 시도했다. 그것도 조용히 실패했다. 한재원이 머그잔을 내려다보는 표정이 어딘가 억울해 보였다.
서하는 파일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어젯밤 끼워둔 메모지가 그대로 있었다. 날짜 세 개, 이름 하나, 물음표 두 개. 손가락으로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가 뗐다. 종이가 살짝 말려 있었다. 습기 때문인지 어젯밤에 너무 꽉 쥐었던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도윤은 아홉 시 삼 분에 들어왔다.
평소보다 약간 늦은 시간이었다. 서하는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 보게 됐다. 도윤이 자리에 앉아 가방을 정리하는 동안, 서하는 화면에 눈을 고정한 채 손가락만 키보드 위에 올려뒀다. 아무것도 입력하지 않았다. 프린터가 예열 소리를 냈다. 사무실 안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한재원이 커피를 마시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소리조차 평소보다 작게 들렸다.
"오늘 날씨 되게 덥겠다."
한재원이 창 쪽을 보며 말했다.
"아직 유월인데."
도윤이 "그러게요"라고 짧게 받았다.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면 속 숫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광등 불빛이 유난히 하얗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아홉 시 이십 분이 됐을 때, 서하는 슬쩍 도윤 쪽을 봤다. 도윤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스크롤을 내리다 멈췄다가 다시 올렸다가 또 멈추는 걸 반복했다. 뭔가를 읽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화면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서하는 그 손을 한 박자 더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아홉 시 이십칠 분.
서하는 물을 마시러 가는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탕비실 쪽으로 걸어가다가 발걸음을 늦췄다. 복도 쪽에서 청소 카트 바퀴 소리가 멀리 지나갔다. 소독제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도윤의 책상 옆을 지나는 순간, 파일 꽂이 사이에 끼어 있던 종이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봤던 것과 같은 자리였다. 얇고 반투명한 질감, 영수증 롤지처럼 가장자리가 살짝 말린 형태. 메모지와 나란히 놓으면 어떨지, 그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탕비실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으면서 서하는 숨을 한 번 고르게 내쉬었다. 컵이 차는 소리가 작게 났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뭔가가 달라질 것 같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그게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아직 몰랐다. 그냥 달라질 것 같다는 것만 알았다.
서하가 탕비실에서 돌아왔을 때, 도윤이 의자를 조금 당겨 앉았다.
"잠깐 얘기해도 돼요?"
서하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도윤이 먼저 말했다. 한재원이 핸드폰에서 눈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서하는 물컵을 책상에 내려놓고 도윤 쪽으로 의자를 조금 틀었다.
"어제 얘기했던 거요."
도윤이 낮게 말했다.
"그 이름."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가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게..."
도윤이 잠깐 멈췄다.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 그냥 놓여 있었다.
"팀에서 들은 게 아니에요."
서하는 물컵을 손으로 잡았다. 잡은 채로 내려놓지 않았다.
"시스템 접속 로그 정리하던 때였어요. 작년 하반기."
도윤의 목소리는 천천히, 그리고 조금 조심스럽게 이어졌다.
"정식 경로가 아니라 임시 계정으로 들어온 흔적이 있었는데, 거기 붙어 있던 이름이 그거였어요. 이름이라기보다 계정 ID에 가까운 거였는데, 글자 조합이 딱 그 세 글자였거든요."
"그걸 그때 보고했어요?"
서하가 말했다.
도윤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못 했어요."
두 글자가 사무실 안에 조용히 남았다. 한재원이 커피머신 앞에서 캡슐을 교체하는 소리가 났다. 딸깍, 딱, 하는 소리가 두 번 났다가 멈췄다. 한재원이 "아 이거 왜 이래" 하고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보고 못 한 이유가 있어요?"
서하가 물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마지막 단어에서 약간 힘이 들어간 것 같았다.
도윤이 화면을 봤다가 서하를 봤다.
"그게 실제 접속인지 로그 오류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무렵에 그 사람이 팀을 떠났고, 저도 그냥..."
말이 흐려졌다. 도윤이 입술을 한 번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그냥 넘겼어요."
서하는 시계를 봤다. 아홉 시 삼십오 분이었다. 박 상무 면담까지 이십오 분이 남아 있었다.
"그 임시 계정이 접속한 날짜가 기억나요?"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포스트잇 한 장을 꺼내 뭔가를 적었다. 날짜였다. 서하 쪽으로 밀어줬다. 서하는 그걸 들고 파일 안쪽에 넣었다. 메모지 바로 옆에. 종이 두 장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날짜가 겹치는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파일을 덮었다.
그 순간 한재원이 탕비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캡슐이 없어. 커피가 없는 게 말이 돼요? 금요일 아침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재원이 서하와 도윤을 번갈아 봤다.
"왜 둘 다 표정이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없어요."
서하가 말했다.
한재원은 석 초쯤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뭔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이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자리에 앉으면서 "이 팀은 진짜 분위기가 왜 이러냐" 하고 혼잣말을 했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서하는 파일을 챙겼다. 포스트잇 날짜와 메모지와, 도윤이 어제 건네준 얇은 종이 한 장이 같은 파일 안에 들어 있었다. 면담 준비를 마쳤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도윤에게 짧게 눈을 맞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윤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복도로 나가기 직전, 서하는 멈췄다.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 임시 계정, 접속 이후에 뭔가 변경된 게 있었어요?"
도윤이 잠시 뒤에 대답했다.
"한 건이요. 접수 처리 이력이에요."
서하는 그 말을 등으로 받으며 복도로 나갔다. 에어컨 바람이 없는 복도는 한 박자 더 더웠다. 박 상무 면담까지 이십이 분이 남아 있었다. 서하는 파일을 가슴 쪽으로 당겨 잡으면서 걸음을 이어갔다. 임시 계정, 작년 하반기, 접수 처리 이력 하나. 세 가지가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으려다 아직 잡히지 않은 채로 흔들렸다. 도윤이 보고를 못 한 게 확신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 질문은 이십이 분 안에 풀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도윤이 포스트잇을 건네던 그 손이, 왜인지 조금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도 서하는 이미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