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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3-3화]

합의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작성: 2026.06.13 21:39 조회수: 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토요일 오후, 사무실은 조용했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지민은 돌아오지 않았고, 복도 끝 어딘가에서 환풍기 소리만 낮게 돌고 있었다. 서린은 창가 책상에 앉아 루셀 협업 자료를 다시 펼쳐 놓고 있었다. 정확히는 펼쳐 놓고 보지 않고 있었다. 커피가 식어 있었다. 언제부터 식었는지 몰랐다.

두 번째 기사가 나온 뒤로 서린은 자꾸 같은 페이지를 읽었다. 읽는 게 아니라 눈이 그 위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배성재 이름이 이메일 참조 수신자 목록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재검토권 조항이 외부로 나갔다는 사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나갔는지가 없었다. 그 빈칸이 서린을 계속 같은 자리에 붙들어 놓고 있었다.

오후 두 시 사십 분,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이 박준혁이었다.

서린은 전화를 받으며 창문 쪽으로 등을 돌렸다. 빗물이 창 아래쪽에 얇게 맺혀 있었다. 박준혁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차분했다. 흔들린 사람 같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기사 봤어요. 두 번째 거."

박준혁이 말했다. 잠깐 쉬었다가 이었다.

"협업은 계속 하고 싶습니다. 우리 쪽도 이 시점에 파트너를 바꾸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요. 그런데 조건을 하나 바꿔야 할 것 같아서요."

서린은 볼펜을 들었다. 메모할 준비였다. 손이 빨랐다.

"강도윤 셰프가 다음 주 목요일 발표 행사에 직접 나와 주셔야 해요. 루셀 측 인원 두 명이 함께 서는 공개 자리. 기사 하나로 흔들린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방식으로요. 서면 합의가 아니라 얼굴."

박준혁의 말이 끝났다. 서린은 받아 적은 메모를 내려다봤다. 목요일. 공개 행사. 강도윤.

전화를 끊고 나서 서린은 십 초 정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창밖에서 차 한 대가 지나갔다. 빗물이 유리를 타고 내려갔다. 서린은 볼펜 뚜껑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수락하면 됐다. 조건은 어렵지 않았다. 도윤이 나가면 됐다. 그런데 발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방 앞에서 도윤을 불렀을 때, 도윤은 행주로 손을 닦으면서 고개를 들었다. 서린이 어떤 표정인지 한 번 봤다. 그리고 행주를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말이 없었다.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들어와요."

도윤이 먼저 말했다.

서린이 들어가서 바로 얘기했다. 박준혁의 전화 내용을, 조건을, 목요일을. 도윤은 서린이 말하는 동안 냉장고 쪽을 보고 있었다. 냉장고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그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처럼. 서린이 다 말하고 나서 잠깐 기다렸다. 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못 해요."

도윤이 말했다.

서린이 반응하기 전에 도윤이 이어서 말했다.

"공개 행사 나가는 건요. 못 한다는 게 아니라, 이 상태에서 나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지금 두 번째 기사 소스가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카메라 앞에 서면 그게 다음 기사가 돼요. 타이밍이 나빠요."

서린은 볼펜을 손에 쥔 채 도윤을 봤다.

"루셀이 흔들리면 매각설 반박 카드 전부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요. 그거 알죠?"

"알아요."

도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낮은데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못 하겠다는 거예요. 내가 나가서 다음 날 또 뭔가 터지면 그건 루셀 행사가 아니라 내 기사가 되는 거고, 아르덴이 거기 엮이는 거예요. 서린 씨한테 그걸 떠넘기고 싶지 않아요."

서린이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도윤이 처음으로 제대로 거절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도윤은 대부분 서린이 끌고 가는 방향을 같이 걸었다. 가끔 농담을 끼워 넣으면서, 타이밍을 비틀면서.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거절의 이유가 자기 보호가 아니었다는 게, 서린은 그게 더 다루기 어려웠다.

"배성재 쪽이 내부 정보를 받은 경로를 먼저 확인해야 해요."

도윤이 말했다. 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두 번째 기사에 재검토권 조항이 들어간 건, 법무팀 말고는 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이메일 수신자 목록에 배성재가 참조로 들어간 게 확인됐다면서요. 그 경로가 뭔지 먼저 알아야 행사 나가는 게 의미가 있어요. 모르는 상태에서 나가면 그 자리가 다음 폭탄 터지는 자리가 될 수 있어요."

서린은 볼펜을 메모지 위에 내려놨다. 도윤이 말한 건 서린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도윤이 그걸 이렇게 조용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서린이 생각하고 있던 것을 도윤이 먼저 말하는 것도.

"법무팀 이하은 씨한테 확인 요청하면 돼요."

서린이 말했다.

"이하은 씨가 배성재 쪽 압박을 받고 있을 수도 있어요."

도윤이 말했다. 서린이 눈을 들었다. 도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확인 요청하는 순간, 그 사람이 배성재 측에 서린 씨 움직임을 알릴 수도 있고. 아니면 기록이 수정될 수도 있고."

두 사람 사이에 잠깐 말이 없었다. 주방 환풍기 소리만 낮게 돌았다. 서린은 도윤이 이 상황을 자기보다 더 넓게 보고 있다는 게 이상하게 불편했다. 불편하다는 게 맞는 표현인지는 몰랐다. 믿어야 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앞서 있을 때 생기는, 그 묘한 감각. 고마운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한 발 늦은 것 같기도 한.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예요."

서린이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확인을 요구하는 어투였다.

"박준혁한테 사흘 달라고 해요."

도윤이 말했다.

"목요일 행사 전에 내부 경로 확인하고, 그 이후에 내가 나갈 수 있는 조건이 되면 나가는 거예요. 합의가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거예요."

서린은 대답 없이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적어 놓은 단어들을 훑었다. 목요일. 공개 행사. 강도윤. 거기에 도윤이 말한 것을 덧붙이면, 사흘. 경로 확인. 순서. 서린이 먼저 생각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도윤이 먼저 말했다.

"알겠어요."

서린이 말했다.

주방을 나오면서 서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봤으면 도윤이 어떤 표정인지 봤을 텐데. 보지 않은 게 선택인지 피로인지는 복도를 다 걷고 나서도 몰랐다.

사무실로 들어가 박준혁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부 조율 사항이 있어 사흘 이내 재확인 드리겠습니다. 협업 방향은 변함없습니다.'

짧고 명확하게. 박준혁이 그 문자를 어떻게 읽을지는 아직 몰랐다. 수락할 수도 있고, 그 사흘 사이에 다른 선택지를 타진할 수도 있었다.

서린은 문자를 보내고 나서 서랍을 열었다. 2019년 입고 장부 파일이 그대로 있었다. 도윤이 배성재 경로를 먼저 확인하자고 했고,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린에게는 그것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었다. 11월 14일. 아버지 메모보다 열흘 앞선 날짜. 그게 뭔지 아직 몰랐다.

파일 첫 장을 펼쳤다. 숫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서린은 날짜를 찾았다. 11월 14일 항목 옆에 적힌 숫자 두 개가 보였다. 거래 번호처럼 보이기도 했고, 객실 번호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직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서린은 손가락으로 그 숫자 위를 짚었다가 뗐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지민이었다. 서린은 파일을 덮지 않았다. 덮을 수도 있었다. 지민이 문을 열기 전까지 시간이 충분했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덮지 않은 게 선택인지 피로인지는, 지민이 들어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지민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책상 위를 봤다. 덮여 있지 않은 파일을. 지민의 눈이 날짜 위에서 잠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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