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낮 열두 시 사십 분, 루셀 협업 공식 보도자료가 나간 지 정확히 두 시간 열일곱 분 뒤에 두 번째 기사가 올라왔다.
지민이 제일 먼저 발견했다.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는 순간이었는데, 컵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로 손이 멈췄다. 제목이 짧았다. 「아르덴 루셀 협업, 강도윤 복귀는 연막?…내부선 '반년도 못 간다'」. 기사 첫 문단에 익숙한 리듬이 있었다. 어젯밤 세 곳에 동시 배포됐던 그 기사와 문장 구조가 닮아 있었다. 지민은 커피를 그냥 내려놓았다. 내용물이 조금 흘렀고, 닦지 않았다. 손가락이 화면을 스크롤하는 동안 커피가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번졌다.
지민이 홍보팀 사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었다. 서린은 창가 쪽 보조 책상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이 열려 있었고, 그 옆에 출력된 A4 파일 한 뭉치가 놓여 있었다. 서린이 손으로 파일을 자연스럽게 덮는 동작은, 지민이 문 앞에서 멈추는 속도보다 조금 빨랐다. 두 사람 다 그 타이밍을 알아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민이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서린은 화면을 가져다 보지 않았다. 대신 자기 노트북 창을 열어 같은 기사를 불러왔다. 읽는 속도가 빨랐다. 두 번째 문단에서 눈이 멈췄다.
'협업 계약 내부 조건에 따르면 루셀 측은 위약금 조항 없이 삼 개월 시점에서 재검토권을 갖는다.'
이건 보도자료에 없는 내용이었다. 계약서 조항이었다. 그 조항을 아는 사람은 아르덴 내부에서 세 명이었다. 서린, 지민, 그리고 도윤.
"이거 어디서 샌 거야."
지민이 낮게 말했다. 물음표가 없었다.
서린은 대답하지 않고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 마지막 줄이 문제였다.
'한 관계자는 강도윤의 복귀가 매각 속도를 늦추기 위한 쇼라고 말했다.'
관계자. 서린은 그 단어를 입 안에서 한 번 굴렸다. 관계자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가릴 수 있는지는 이 일을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서린은 노트북 화면을 그대로 두고 창밖을 한 번 봤다. 아르덴 앞 거리에 토요일 점심 인파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도윤이 사무실 문 앞에서 노크했다. 두 번. 짧게.
"들어와도 돼요?"
지민이 먼저 대답했다.
"이미 다 봤어요?"
도윤이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태블릿이 들려 있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는데, 같은 기사였다. 서린과 눈이 마주쳤다. 도윤이 먼저 시선을 내렸다. 기사 화면 쪽으로. 서린은 그 시선이 내려가는 방향을 따라가지 않으려 했다. 따라갔다.
"삼 개월 재검토권."
도윤이 조용히 말했다.
"이거 루셀이 흘린 건 아니에요. 박준혁이 이걸 굳이 밖에 낼 이유가 없거든요."
지민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우리 안에서?"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기사 화면을 한 번 더 보다가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서린이 그 움직임을 봤다. 손이 조금 천천히 움직였다. 뭔가를 참는 사람의 속도였다. 도윤이 말을 고르고 있다는 걸 서린은 알았다. 고르다가 결국 꺼내지 않는다는 것도.
서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보도자료 배포 전에 이 조항을 문서로 받은 사람 정리해. 이메일 수신 기록 포함해서."
지민이 이미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손이 빨랐다. 그런데 손가락이 첫 글자를 치다가 멈췄다. 지민이 그 상태로 화면을 봤다. 수신자 목록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당연히 있었다. 그게 왜 지금 이상하게 보이는지, 지민은 잠깐 자신도 몰랐다.
"지민 씨."
서린이 불렀다.
"아, 응. 뽑을게요."
지민이 다시 타이핑을 시작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반 박자 늦었다.
도윤이 그 타이밍을 봤다. 서린도 봤다. 두 사람이 같은 걸 봤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무실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에어컨 소리만 일정하게 돌아갔다.
점심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밥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도윤이 사무실을 나가면서 한마디 했다.
"오늘 저녁 루셀 박준혁이 다시 연락 올 수도 있어요. 이 기사 봤을 테니까."
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문을 닫았다. 발소리가 복도를 따라 멀어졌다. 서린은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트북 화면을 보는 척했다.
지민이 수신자 목록 출력물을 들고 돌아온 건 십오 분쯤 뒤였다. 그사이 서린은 보조 책상 위 파일 뭉치를 서랍 안에 밀어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A4 파일 첫 장을 펼쳤다.
'아르덴 식자재 입고 기록 / 2019년 7월~12월.'
어젯밤 내부 요청으로 받은 파일이었다. 세 번 접혀 있었는데, 그 접힌 자국이 어젯밤 자신이 접은 것인지, 파일이 원래 그렇게 접혀 있었던 것인지 서린은 지금 기억나지 않았다. 첫 장 맨 아래 날짜를 훑었다. 2019년 11월 14일. 아버지 메모에 적힌 날짜보다 열흘 전이었다.
서린의 손이 멈췄다. 열흘.
그때 사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지민이었다. 이번엔 노크를 했다.
"수신자 목록 뽑았어요. 그런데…"
지민이 말을 이으면서 파일이 서린 손에 있는 걸 봤다.
"그거 뭐예요?"
서린이 파일을 뒤집었다. 뒷면이 위로 올라왔다.
"오래된 입고 기록. 연회장 메뉴 세팅 참고하려고."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지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완전히 고개를 들기 전에, 눈이 파일 가장자리에 잠깐 머물렀다. 아주 짧게. 지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신자 목록."
서린이 먼저 말을 돌렸다.
지민이 출력물을 내밀었다. 서린이 받아서 훑었다. 여섯 명. 서린, 지민, 도윤, 총지배인 오대형, 법무팀 이하은, 그리고 한 명. 서린의 손가락이 마지막 이름 위에서 멈췄다. 법무팀 이하은의 참조 수신자로 추가된 이름이었다. 참조. 서린은 그 단어를 두 번 읽었다.
배성재.
서린이 출력물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손이 조용했다. 지민이 그 손을 봤다가 이름을 봤다가, 다시 서린 얼굴을 봤다. 서린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바꾸지 않으려 했다는 게 더 정확했다.
"이거 원래 참조에 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지민이 물었다.
"아니."
서린의 대답은 짧았다.
"법무팀이 실수로 넣은 건지 확인해."
지민이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서린은 창밖을 봤다. 체크인 손님 한 명이 프런트 쪽으로 들어가는 게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캐리어가 작았다. 하루짜리 손님 같았다. 저 사람은 지금 이 건물 안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지 모를 것이다. 모르는 채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아침 나갈 것이다. 서린은 그게 잠깐 부러웠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차우진의 문자가 아직 읽지 않은 상태였다. 어젯밤 것이었다. 서린은 잠금 화면에서 문자 내용 미리 보기만 확인했다.
'루셀 발표 잘 봤어요. 다음 수는 뭐예요?'
마침표가 없었다. 차우진이 마침표를 빠뜨리는 건 실수가 아니었다. 서린은 그걸 알았다. 읽음 표시를 남기지 않고 스마트폰을 뒤집어 테이블에 올려놨다. 화면이 아래를 향했다.
복도에서 도윤의 발소리가 들렸다. 서린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소리가 사무실 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지나쳤다. 서린은 그 소리가 멈췄던 시간을 재지 않으려 했다. 재지 않으려 했다는 걸 알아차리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서랍 속 파일은 그대로였다. 열흘이라는 숫자도 그대로였다. 오늘 안에 그 파일을 다시 펼칠 수 있을지, 서린은 아직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