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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9화]

증언은 서류보다 먼저 도착했다

작성: 2026.06.13 19:39 조회수: 4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AI가 창작한 장기 연재소설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사건과 무관한 창작물입니다.

마틴이 종이 뭉치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건 오전 아홉 시 십 분이었다. 삐뚤어진 손글씨로 가득 찬 A4 용지 열두 장, 볼펜 자국이 눌러 써 있어서 뒷면까지 자국이 배어 있었다. 그가 밤새 직접 받아 적은 것이었다. 서미라는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가 첫 줄을 읽고 내려놓았다.

"이게 다 누구 얘기야?"

"여기서 일하거나 살았던 사람들이요. 근데 명부에는 없는."

마틴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말했다.

"열두 명 중에 다섯은 지금도 이 골목 안에 있어요. 나머지는 이미 나간 사람들이고."

선우는 테이블 끝에 서 있었다. 종이를 가져다 읽었다. 베트남 출신 봉제 일용직, 골목 뒤쪽 고시원 삼 년 거주자, 공방 창고를 월세 없이 써 온 화가 지망생. 공식 임대 계약도 없고 전입신고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재개발 통보 대상에서 처음부터 빠져 있는 이름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직접 쓴 거야?"

선우가 물었다.

"제가 통역 도와서 받아 적은 거요. 서명은 여섯 명 받았어요. 나머지는 신분 노출 겁난다고 거절했고."

마틴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

"근데 그것도 사실이잖아요. 겁나는 거."

장하늘이 문을 밀고 들어온 건 그 직후였다.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편의점 컵이었다. 문을 닫으면서 테이블 위 종이 뭉치를 봤고, 커피를 내려놓기도 전에 말했다.

"이거 뭐예요?"

"취재 안 됩니다."

서미라가 먼저 말했다.

장하늘이 서미라를 봤다가 선우를 봤다가 마틴을 봤다. 마틴이 어깨를 으쓱했다. 장하늘은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취재 전에 읽을 수는 있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선우가 종이 열두 장을 다시 정렬해서 가운데 밀었다. 장하늘이 첫 장을 집어 들었다.

문제는 오전 열 시 이십 분에 생겼다. 박 씨한테서 문자가 왔다. 내용은 짧았다.

'미라 씨, 저 오늘 못 가겠어요.'

서미라가 그 문자를 읽고 핸드폰을 테이블에 엎어놨다. 탁, 소리가 났다.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어제 집까지 갔잖아요."

마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갔지."

서미라가 짧게 대답했다.

어젯밤 서미라가 박 씨 집에 찾아갔을 때 박 씨는 현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문틈으로 목소리만 들렸다. 다음 날 아침에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생각해 본 결과가 저 문자였다. 서미라는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세 번 갔다가 끊겼다. 받지 않았다.

선우는 박 씨 문자를 보고 잠깐 창밖을 봤다. 골목이 보이지 않는 방향이었다. 벽이 보였다. 그는 서미라 쪽으로 돌아섰다.

"박 씨 집 건물주가 조합이랑 선협의 했다는 거, 어제 이정훈 씨가 확인해 준 거 맞죠?"

"맞아."

"그럼 박 씨는 건물주한테 직접 압박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서명 못 하겠다는 게 본인 의지 문제가 아닐 수 있어요."

서미라가 선우를 봤다. 잠깐 뭔가를 따지는 눈이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하늘이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명부에 없는 사람들이 증언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기록이에요. 이걸 제대로 쓰면 가람개발이 통보 자체를 건너뛴 대상이 실재한다는 게 증명돼요."

"그러니까 취재 안 된다고요."

서미라가 다시 말했다.

"이 사람들 이름이 기사에 나오면 당장 문제 생겨요. 비자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다 같이."

"이름 안 써도 돼요. 내용이 중요한 거지."

장하늘이 종이를 내려놓으며 서미라를 봤다.

"제가 인물 보호하면서 기사 쓴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거 믿으라고요?"

"못 믿으면 제가 왜 여기 있어요."

두 사람이 마주 보는 동안 선우는 마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틴이 손가락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마틴 씨, 이 사람들한테 다시 물어볼 수 있어요? 익명 기록 형태로 남기는 것, 본인들이 괜찮은지."

마틴이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물어볼 수는 있어요. 근데 이미 어제 많이 얘기한 사람들이에요. 또 불러내는 게."

"불러내는 게 아니라 선택지 주는 거예요."

선우가 말했다.

"지금 이 증언들은 법적 효력이 없어요. 공식 접수 주체도 아니고, 서명도 불완전하고. 근데 이걸 공개 기록으로 남기면 가람개발이 통보 절차를 생략한 대상이 실재한다는 증거가 돼요. 그게 이번 공동행동 제안서의 허점을 거꾸로 메워주는 거고."

회의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편의점 냉장고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렸다. 낮게 윙윙거리다가 잠깐 끊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서미라가 먼저 말했다.

"명부에 없다는 게 오히려 재개발 계획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증거가 된다는 거야?"

"네."

선우가 짧게 대답했다.

"...그 말이 맞으면 왜 진작에."

"진작에는 이 사람들 증언이 없었어요."

장하늘이 가방에서 녹음기를 꺼냈다. 손바닥 크기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버튼은 누르지 않은 채로 두었다. 서미라가 그걸 봤다. 장하늘이 말했다.

"지금 당장 쓰겠다는 게 아니에요. 일단 기록해 두는 거예요. 쓸 타이밍은 같이 정해요."

서미라가 녹음기를 보다가 마틴을 봤다. 마틴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미라가 의자를 당겨 앉으며 말했다.

"그 사람들한테 연락해 봐요, 마틴 씨. 오늘 오후 안으로."

점심 이후에 이정훈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테이블 끝에 섰다.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이정훈이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서명이에요."

선우가 종이를 봤다. 공동행동 참여 동의서였다. 이정훈의 이름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박 씨는요?"

서미라가 물었다.

이정훈이 잠깐 멈췄다.

"박 씨한테 제가 전화했어요. 건물주가 오늘 아침에 직접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 서명 안 하면 내년 재계약 없다고."

서미라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선우는 이정훈을 봤다.

"그 말 박 씨한테 직접 들은 거예요?"

"전화로요."

"건물주가 직접 그 말을 했다는 거, 박 씨가 확인해 줬어요?"

이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재계약 거부 협박은 명백한 압박이었다. 그게 문서로 남지 않더라도 박 씨 증언 하나로 절차 문제를 걸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박 씨한테 다시 물어볼게요. 그 말을 기록으로 남길 의향이 있는지."

선우가 말했다.

이정훈이 테이블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그 사람 지금 많이 무서워해요. 제가 설득할 수 있는 데까지 했어요."

"알아요."

서미라가 말했다.

"고마워요, 이 씨."

이정훈이 나간 뒤 회의실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마틴이 의자를 뒤로 젖히며 천장을 봤다.

"명부에 없는 사람들 증언이 무기가 된다면, 명부에 있는 사람도 압박받고 있다는 게 기록이 되면, 이게 같이 묶이는 거 아니에요?"

선우가 테이블 위 종이 뭉치를 봤다. 손글씨로 가득 찬 열두 장.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름이 있지만 두려워서 서명 못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두 가지가 같은 테이블 위에 있었다.

장하늘이 녹음기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누르지 않았다. 그 손이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달라진 게 있었다.

선우는 핸드폰을 꺼내 메모 앱을 열었다. 오늘 오후 안으로 박 씨에게 직접 전화를 해야 했다. 건물주 압박 발언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지, 그것이 가능한지. 증언 열두 장과 이정훈 서명 한 장이 오늘 이 회의실에서 생긴 일이었다. 아직 구청 접수는 안 됐다. 그러나 골목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종이 위에 올려놓은 날이었다. 선우는 그 생각을 메모에 쓰지 않았다. 쓸 필요가 없었다. 기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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