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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12화]

우리 건물의 불빛

작성: 2026.05.31 22:21 조회수: 2
창작물 안내
[AI 생성물] 본 소설의 내용과 표지는 인공지능(AI) 모델을 통해 기획 및 작성된 허구의 창작물입니다.
이 콘텐츠는 보험을 소재로 한 창작물이며 실제 상품 추천이나 보장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전 아홉 시 반이었다. 민주는 세탁소 카운터 뒤에 서서 봉투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사진 세 장, 도면 복사본, 박명자가 손으로 받아 적은 날짜 목록. 어젯밤에 혼자 순서대로 늘어놓아 봤을 때는 손이 조금 떨렸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냥 종이로 보였다. 스팀 기계가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가게 안을 채웠다. 열기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창문은 반만 열어뒀다. 바깥 공기가 오늘은 좀 찼다.

박명자가 먼저 들어왔다.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눅눅한 복도 공기가 잠깐 밀려들었다가 세탁소 열기에 금방 밀려났다.

"야, 이거 받아. 집에 호두과자 있어서 가져왔어. 회의 하는 데 입이 심심하면 못 해."

민주가 봉지를 받아들고 카운터 위에 올려두었다. 명자는 사진이 늘어선 테이블을 보더니 잠깐 멈췄다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안경을 고쳐 쓰고 사진 한 장을 집어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 손이 조용했다.

"황 사장은?"

"연락했어요. 온다고 했는데 십 분 늦는다고."

민주가 대답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뒷방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준수였다. 후드 티 위에 짧은 패딩을 걸쳤는데 소매에 뭔가 묻어 있었다. 기계기름 같은 자국이었다.

"너 뭐 했어?"

"위층 환풍기 고정 나사 헐거워진 거 조금 전에 봤거든요. 그냥 두면 또 진동 와서 떨어질 것 같아서."

명자가 준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이게 아들이야 수리기사야? 어머, 손이 시커멓잖아."

준수가 소매를 잡아 올리면서 "아직 멀쩡해요" 하고 낮게 웃었다. 민주는 그 웃음을 잠깐 봤다. 탈진해서 보건실에 실려 갔던 그 얼굴이 아니었다. 창백하지 않았다. 민주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대신 카운터 서랍에서 낡은 행주를 꺼내 준수 쪽으로 밀었다. 준수가 받아서 손을 닦으면서 "감사합니다" 했는데, 그 말이 어딘가 어색하게 공손해서 민주가 피식 웃었다.

황 사장이 들어온 건 열 시 직전이었다. 이 사장도 뒤따라 들어왔다. 이 사장 아내 유순희가 빠끔 문을 열더니 "나는 가게 봐야 해서" 하고 가방만 밀어 넣었다. 가방에는 롤케이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민주가 "아, 감사합니다" 하자 유순희는 "쫄지 마요" 한마디 남기고 복도로 사라졌다. 이 사장이 그 뒷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이 응원을 저렇게 해"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이 다 모이자 세탁소가 좁아졌다. 의자가 모자라서 준수는 카운터 앞에 서 있었고, 이 사장은 행거 옆에 어정쩡하게 기댔다. 스팀 기계가 한 번 더 사이클을 돌리면서 열기가 훅 올라왔다. 민주가 테이블 위의 종이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지난주에 관리인이 왔다 간 거 다들 아시죠. 계약 조건 재검토 얘기요. 그 사람이 저한테 제일 먼저 왔는데, 명자 어머니한테도 비슷한 얘기를 작년에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넘어갔고요."

명자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넘어가면 또 와. 그게 방식이야. 가장 약해 보이는 데서 시작해서 하나씩 밀어내는 거지."

황 사장이 테이블 위 사진 한 장을 집어들었다. 빈 점포 벽 안쪽을 찍은 것이었다. 탄 전선 다발과 서툴게 틀어막은 벽면이 찍혀 있었다. 황 사장은 그걸 한참 봤다. 손가락 끝이 사진 모서리를 꾹 눌렀다 떼는 게 보였다.

"이게 언제 찍은 겁니까."

"지난주 수요일요."

황 사장이 사진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3년 전에 저도 비슷한 냄새를 맡은 적 있어요. 새벽에. 근데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고, 관리인한테 물어봤더니 점포 공사 냄새라고 하더만."

그 말을 끝내고 나서 황 사장이 입을 다물었다. 말을 더 하려다가 멈춘 것 같았다. 시선이 테이블 위 사진에서 창문 쪽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민주가 황 사장을 봤다. 지난번에 박재원 이름을 꺼냈을 때 그 사람이 짓던 표정이 지금 다시 나왔다. 굳는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정리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민주는 묻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명자가 황 사장 쪽을 한 번 봤다가 민주를 봤다. 민주가 눈으로 잠깐 말렸다. 명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 이 사장이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준수가 카운터 뒤에서 노트를 꺼냈다. 대학 노트 표지에 볼펜으로 뭔가 적어두었는데, 건물 각 층의 공용 전선 위치를 대충 그려놓은 것이었다. 선이 삐뚤고 글씨가 작았지만 번호가 붙어 있었다.

"일단 빈 점포 쪽 공용 전선부터 외부 업체 점검 받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건물주 측 관리인한테 맡기면 또 '담당 부서 확인 중'으로 흐지부지될 거고. 세입자들이 직접 비용 나눠서 업체 부르는 거요."

이 사장이 팔을 내리면서 물었다.

"그게 법적으로 되는 거야?"

"공용 부분은 건물주 책임이 맞는데, 건물주가 안 하면 세입자가 비용 청구 근거 남기고 할 수 있어요. 나중에 계약 갱신 때 조건으로 쓸 수 있고요."

명자가 준수를 보면서 말했다.

"야, 이거 어디서 배웠어?"

준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도서관에서요."

명자가 민주를 봤다. 민주는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입 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이 사장이 "도서관을 그렇게 쓰는 거야" 하고 중얼거렸는데 핀잔인지 칭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세 가지를 정했다. 첫째, 이번 주 안에 외부 전기 점검 업체를 공동으로 부른다. 비용은 현재 영업 중인 세 점포가 나눈다. 둘째, 관리인이 다시 방문하면 세입자 전체가 함께 대응하고 단독으로 서명하지 않는다. 셋째, 건물주 측에 공문 형식으로 점검 요청을 남긴다. 준수가 양식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황 사장이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민주는 봤다.

정리가 끝나자 명자가 호두과자 봉지를 뜯었다. 이 사장이 과자 하나를 집어들면서 "이게 세입자 회의야 간식 타임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황 사장이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준수가 롤케이크 상자를 열다가 칼이 없어서 가위로 비닐을 잘랐는데, 명자가 "그걸 가위로 잘라?" 하고 핀잔을 줬고 준수가 "잘리잖아요" 하고 받아쳤다. 세탁소 안에서 잠깐 웃음 소리가 났다. 스팀 기계 소리와 섞여서 이상하게 따뜻했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 세탁소에는 민주와 준수만 남았다. 민주가 테이블을 정리하는데 준수가 옆에서 종이를 모았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스팀 기계가 다시 사이클을 시작하면서 열기가 올라왔다. 민주는 봉투에 종이를 넣다가 손을 멈췄다. 황 사장이 사진 모서리를 눌렀다 뗐던 손가락이 생각났다.

"밥 먹었어?"

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 사장 아저씨,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3년 전 얘기."

민주가 종이를 봉투에 넣으면서 말했다.

"나도 그런 것 같아."

"근데 왜 말 안 할까요."

민주는 잠깐 생각했다. 봉투를 가방 안에 넣고 지퍼를 잠갔다. 지퍼 소리가 짧게 났다.

"무서우니까. 아니면 자기가 알게 된 게 자기한테도 불리하거나."

준수가 그 말에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멈추는 것 같았다. 민주도 더 하지 않았다. 아직 다 모른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준수가 노트를 접어 후드 주머니에 넣었다. 민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가방 끈을 어깨에 걸었다.

저녁 무렵, 셔터를 내리기 전에 민주는 세탁소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드라이클리닝 기계, 스팀 기계, 행거, 카운터, 뒷방 문. 다 제자리였다. 창문 너머로 복도 끝 빈 점포 셔터가 내려진 채 서 있는 게 보였다. 거기 안에 아직 손대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박재원의 이름도 아직 공중에 떠 있었다. 황 사장이 그 이름 앞에서 멈췄던 이유도 아직 설명이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와 달랐다. 이 건물에서 불이 나지 않게 하려는 사람이 민주 혼자가 아니었다. 세탁소 불을 끄고 나서 민주는 그 생각 하나를 가지고 골목을 나왔다. 봄밤이었다. 비 온 뒤 골목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고, 공기가 아직 찼지만 어젯밤보다는 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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