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가늘어지는 시간이 있었다. 폭우가 한창일 때보다 오히려 그 틈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진무백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빗소리가 작아지면 사람들이 처마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 순간 골목이 열린다. 장시 광장은 아직 빗물이 고여 있었다. 좌판 천막이 처진 채 물을 흘리고, 생선 냄새와 젖은 짚 냄새가 뒤섞여 낮게 깔렸다. 구칠이 마지막 이름을 읽어 내린 뒤 군중은 흩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었다. 혹은 그 이름을 오래 기다려 온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아는 척을 하고 있었고, 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
광장 동쪽 골목 입구에서 처음 움직임이 포착된 것은 구칠이 마지막 이름을 읽고 나서 채 반각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진무백은 그 방향을 먼저 본 것이 아니었다. 혜륜이 멈췄다. 군중 사이에서 혜륜이 발을 멈추면 그것은 이미 신호였다.
"셋."
혜륜이 낮게 말했다. 손가락은 들지 않았고 시선도 거기 두지 않았다. 다만 숨을 한 박자 가라앉히는 것으로 충분했다. 진무백은 왼쪽 처마 아래 서 있던 두 명과, 군중 뒤편에서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서 뒤를 보고 있는 한 명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옷깃이 달랐다. 흑야루 하수인들은 허리 쪽이 불룩했고, 오대 세력 전령들은 소매 안쪽이 뻣뻣했다. 같은 목적으로 왔지만 서로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나쁜 신호였다.
남궁현이 옆에 와 있었다. 언제 왔는지 소리가 없었다.
"흑야루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쪽은 옷깃이 다릅니다."
"알아."
진무백은 짧게 쳤다. 남궁현이 코웃음을 쳤는지 숨을 뱉었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지만 반박은 하지 않았다. 좁은 광장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고 있었고, 그중 몇은 서로 얼굴을 보며 아는 척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가진 사람들, 혹은 그 이름을 기다려 온 가족들이었다. 장부보다 그들이 먼저 위험하다는 것을 진무백은 그 순간 결정했다. 장부는 종이였다.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구칠이 장부를 품 안에 넣는 것을 진무백은 보았다. 구칠의 눈이 마주쳤다. 구칠은 뻔뻔하게 웃었다.
"형님, 저 지금 꽤 값진 물건 안고 있는 거 맞죠?"
"뛰어."
그 한마디가 신호였다. 구칠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북쪽 골목으로 사라지는 것과, 동쪽에서 세 명이 동시에 발을 떼는 것과, 남궁현이 검집을 오른손으로 옮기는 것이 거의 같은 순간이었다. 광장 안 공기가 달라졌다. 군중이 그것을 먼저 몸으로 알아채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진무백이 먼저 움직인 것은 구칠 쪽이 아니었다. 그는 반대 방향, 광장 한가운데를 향해 걸었다.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팔을 붙잡히고 있었다. 흑야루 하수인이 이름을 들은 군중 중에서 특정인을 추려 내려 하고 있었다. 장부보다 증인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손 놔."
진무백이 말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상대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진무백의 손목이 그 팔뚝을 아래에서 쳐 올렸다. 잡혔던 여자가 비틀거렸고 옆 사람이 받았다. 하수인이 허리에서 뭔가를 꺼내려 했지만 그게 완전히 나오기 전에 진무백의 무릎이 그의 옆구리를 눌렀다. 짓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싣는 것이었다. 상대가 숨을 뱉으며 무릎을 꺾었다. 칼집이 바닥에 떨어지며 쇳소리를 냈다. 군중이 그 소리에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혜륜은 그 사이 서쪽 처마 아래 두 명 중 하나를 처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처리였다. 손은 가사 소매 안에 있었고, 발만 두 번 움직였다. 상대가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아 버렸다. 혜륜은 그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눈은 이미 다음을 보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이 혜륜의 측면으로 돌아 들어오려 했지만, 혜륜은 그쪽으로 몸을 틀지도 않은 채 팔꿈치를 한 번 뒤로 밀었다. 상대의 발이 미끄러졌다. 빗물이 고인 바닥이었다. 혜륜이 낮게 중얼거렸다.
"비 오는 날엔 보법부터 고쳐야 합니다."
남궁현 쪽에서 검이 울렸다. 뽑은 것이 아니라 검집째 막은 것이었는데, 그 소리가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광장에 남아 있던 군중이 한꺼번에 뒤로 물러났다. 그것이 오히려 빈 공간을 만들었다. 남궁현은 그 공간을 천천히 밀었다. 상대가 둘이었는데, 한 명은 검집 소리에 발이 묶인 것 같았고 한 명은 남궁현의 자세를 읽으려 옆으로 돌고 있었다. 남궁현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이쪽 방향으로는 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가 와서 바닥이 미끄럽거든요."
상대가 뭐라 대꾸했지만 진무백에게까지 들리지는 않았다. 남궁현의 검이 검집에서 절반쯤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 반박자가 상대의 타이밍을 완전히 망쳤다. 상대가 몸을 굳히는 순간 남궁현이 이미 옆에 있었고, 그다음은 소리가 아니라 그림자가 바뀌는 것으로만 알 수 있었다. 두 명 모두 바닥에 닿았다. 남궁현은 검집을 두드리며 손을 털었다. 그 동작이 너무 여유로워서 진무백은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당소연은 광장 남쪽 점포 처마 아래에 있었다. 싸우고 있지 않았다. 그는 군중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빠져나가는지, 하수인들이 어느 방향을 막으려 하는지를 읽고 있었다. 손은 소매 안에 있었고 표정은 없었다. 다만 눈이 광장 전체를 쓸고 있었다. 진무백과 눈이 마주쳤다.
"북쪽 골목 막혔어요. 구칠은 동쪽으로 돌았을 거예요."
말 한마디였다. 진무백은 그 방향으로 뛰었다.
구칠을 찾은 것은 동쪽 골목 끝, 말 여물통이 쌓인 마방 앞이었다. 구칠은 여물통 위에 올라가서 담을 넘으려다가 발이 미끄러져 여물통을 발로 차 버린 상태였다. 말 사료 냄새와 구칠의 욕설이 동시에 날아왔다. 진무백은 그 광경을 한 박자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다쳤어?"
"아뇨, 위엄만 죽었습니다."
진무백이 구칠의 팔을 잡아당겼다. 구칠이 담 위로 올라가면서 품 안의 장부를 꺼내 진무백에게 던졌다.
"낱장 하나만 떼서 가지세요. 진본은 제가 따로 숨겨 뒀어요."
"어디."
"그건 저만 아는 겁니다. 만약 제가 없어지면 개방 본단 사형한테 물어보시고요. 패찰 번호 칠십삼."
진무백은 장부에서 낱장 한 장을 뜯었다. 손끝이 젖어 있어서 종이가 찢어질 뻔했다. 조심스럽게 뜯어 소매 안쪽에 넣었다. 나머지는 구칠에게 돌려줬다. 구칠이 담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 잠깐 멈추며 말했다.
"형님, 이번엔 제가 먼저 판단했습니다. 나중에 혼내셔도 됩니다."
그리고 사라졌다. 진무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혼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구칠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더 불편했다.
진무백은 마방 골목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아까 광장에서 붙잡혔던 여자가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름을 들은 사람들이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장부의 낱장 하나가 소매 안에서 천천히 젖어 가고 있었다. 이긴 것인지 진 것인지 모르겠다는 감각이 빗소리와 함께 내려앉았다.
그때 골목 입구 맞은편 처마 아래에 누군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싸우러 온 사람은 아니었다. 팔짱을 낀 채 기대어 있었고, 빗속에 젖으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무백이 그 방향을 정면으로 보는 순간, 상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잠깐 진무백의 얼굴을 확인하듯 보다가, 소매 안에 넣은 낱장 쪽을 한 번 더 내려다보고는, 골목 안쪽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진무백은 따라가지 않았다. 쫓을 여력이 없었고, 쫓아야 할 이유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그 시선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이름을 들은 군중을 보던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 낱장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가 마음 안쪽에 걸렸다. 장부의 내용을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낱장 위에 찍힌 무언가를 알아본 것인가. 비가 다시 굵어졌다. 골목은 이미 비어 있었다.